명호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두 번째 동화집 ‘겨울방학을 왜 봄에 하나요?’를 자비로 출판했었다. 전문출판사에 의뢰하였지만 IMF를 갓 졸업하던 무렵이라 국민 경제가 어렵고 책이 팔리지 않는다면서 거절했다. 작품 수준 또한 떨어지는 내용이라 출판을 그만 둘까 생각하다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자비로 출판했었다. 몇몇 친구와 선배 교장 선생님들이 학교 도서실에 두고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싶다면서 책을 사 주어서 출판 비용은 충당할 수 있었다. 책을 내고 얼마 뒤였다.
“출판기념회, 언제 하지?”
교감 선생님이 출판기념회 계획을 왜 미리 알려주지 않느냐고 좀은 섭섭한 투로 물었다. 첫 번째 동화집 ‘청코 만세’를 어린이도서 전문 출판사에서 내어주었을 때도 출판기념회는 하지 않았다. 남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출판기념회 같은 부끄러운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는 어지간한 인격과 학식을 갖춘 전문인이 아니고는 책을 내지 못했다. 책 한 권 내려면 해야 일도 많았지만, 돈도 많이 들어서 평생에 책 한 권 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책 내는 일이 자랑스럽기도 했거니와 축하할 만했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프린터가 일반화되고 인쇄와 제본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은 저렴한 비용으로 책을 낼 수 있어서 책 내는 일이 아주 쉬워졌다. 아무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가히 출판물의 홍수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존경하는 어느 시인은 “책을 내는 일은 종이를 낭비하고 쓰레기를 하나 더 만들 뿐”이라고 비난하며 “책을 낼 수준이 되는데도 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존경받을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출판기념회도 그렇다. 가까운 친구들과 조용히 밥이나 한 끼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될 일을 무슨 대단한 잔치인 냥 멀리 있는 사람을 부르는 등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 출판기념회이다. 초대받고 안 갈 수 없어서 참석해보면, 형식은 거의 비슷한데 꼭 그렇게 해야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에게 꽃다발과 기념품을 증정하는 순서가 있는데, 멀리서 가지고 온 친척들이거나 친구들이 행사장에서 주는 것은 그래도 이해는 되지만, 자녀를 비롯하여 가족들은 집에서 주고받으면 될 것을 행사장까지 들고 와서 공개적으로 주는데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작가를 소개하는 순서와 축사도 빠짐없이 한다. 문학에 임하는 작가의 사상이 어떻고, 작품 경향이 어떠하며, 또 작가는 평생 어떤 삶을 살아왔다는 식으로 소개하는데, 대개 너무 과장되어 거짓말 수준이고, 칭찬 일색이었다. 또 축사도 여럿이 하는데 한결 같이 과분한 칭찬과 미화일색이다. 자화자찬하려고 마련한 자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출판기념회를 보고 있으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제사 지내는 것 같아서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건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었다. 누구누구도 했다면서 자꾸 할 것을 권하였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일이 흐른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동기동창인 교감 선생님과는 사실 격의 없이 잘 지냈다. 그는 수시로 교장실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었지만, 그날 오후에는 무슨 영문인지 교장실 소파에 기대앉아서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의논할 일도 아닌 것을 자꾸 묻는가 하면, 화장실에 가도 어디 가느냐고 묻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운동장 서쪽 끝에 있는 직원 사택에 상수도가 고장 나서 수리하는 것을 확인하러 나가려니까, 이것부터 보자며 본관 교사 동쪽에 있는 퇴비장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운동장으로 돌아가서 수도를 어떻게 고치라고 이야기하고, 학교 식당 뒤에 있는 교장 관사에 잠시 가려고 하니, 기겁하며 운동장 동쪽 끝에 있는 체육 창고에 문제가 있다며 그쪽으로 나를 끌고 갔었다. 조립식 체육창고 벽에는 어린이들이 낙서해 놓은 것이 있을 뿐이었다.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이 낙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기가 막혔다.
“그걸 교감 선생님이 알아서 하지, 뭘 묻습니까?”
라고 나무라고 나니 우스워서 둘이 함께 웃었다. 근 2시간 가까이 교감 선생님이 놓아주질 않았다. 늘 웃는 사람 좋은 교감 선생님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어서 허허 웃기만 했다. 기가 막혀 정색하고, “대체 왜 이러느냐?”라고 물으니, “그럴 일이 좀 있다”고 말하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4시 가까이 되자 분교장에서 선생님들과 기능직 공무원 등 직원 모두가 모이는 것이 아닌가? 직원회의가 있는 날도 아니었고 연수도, 친목 배구를 하는 날도 아니었다.
대체 분교장 직원들이 오늘 왜 본교에 오나?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교감 선생님은 나의 추궁에 “그럴 일이 좀 있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담배가 떨어져서 사택에 담배를 가지러 가려고 일어서니 교무실에 달려가서 담배를 한 곽 가지고 와서 주는 것이었다. 잠시 어디 가려고 해도 막았다. 어디 가려고 해도 반대쪽인 운동장 남쪽의 울타리에 문제가 있다면서 그 쪽으로 이끌었다. 그때 여 선생님 한 분이 준비가 다 되었다고 교감 선생님에게 알려주었다.
“대체, 교장 모르게 무슨 준비를 했느냐?”
고 다그치며 나무라니까 “가보면 안다.” 면서 식당 쪽으로 이끌었다. 식당 입구 현관에는 오색 풍선이 걸려 있었다. 오늘 달았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학예회 때 달아놓은 풍선이 왜 아직 달려 있느냐?”
고 나무라며 교감선생님을 돌아보았는데, 사람 좋은 교감선생님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학예회는 작년 가을에 했었는데 그 때 풍선이 달려있을 턱이 없었지만, 나는 그 풍선으로 착각했었다. 식당 출입구에도 풍선으로 아치를 만들었고 천장에도 풍선이 걸려 있었다. 식당 출입문을 밀자 30명 가까운 직원들이 모두 일어서면서 “와!”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식당 출입문을 감히 들어 설 수가 없었다. 꿈을 꾸는 듯했다. 테이블에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고, 가운데는 시루떡이 한 시루 준비되어 있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아, 나는 오늘 교장 선생님 모시느라고 시껍했네(혼이 났네).”
교감 선생님이 하하 웃으며 이마에 땀을 닦자, 환호와 박수가 또 터져 나왔다. 친목회장이 가리키는 포스터를 보자 웃음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나왔다.
김진호 교장 선생님, 두 번째 동화집 출판기념회 ‘겨울방학을 왜 봄 하나요?’ 2003.10. |
이것을 준비하면서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식당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도록 그토록 집요하게 끌고 다녔구나.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류성번 교감 선생님과 명호초등학교 여러 선생님, 그리고 직원들이 당사자 모르게 정성을 다해 준비한 두 번째 동화집 출판 기념회였던 것이다. 시루떡 시루에는 양초가 두 개 꽂혀 있었다.
“두 번째 동화책이라서 촛불을 2개만 꽂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양초를 꽂는 출판기념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대원 친목회장이 인사말을 할 때는 손수건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촛불을 끄자,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오색 테이프가 머리 위로 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교감 선생님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전 직원이 진정으로 축하해주는 잊을 수 없는 출판기념회였다. 고마운 분들이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2003)
댓글----------------------------------------------------
아, 그랬구나! 명호 이야기를 읽고…….
연잎에 구르는 한 알의 물방울 같은 명징스러움을 봅니다. 명호 이야기를 보면서 동화 속의 이야기라고 착각하였습니다.
교장 한 사람을 위해서 많은 이들이 고생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요즘 사이버 공간의 온갖 폐해를 혼자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작성자가 김진호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호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가 어디서 근무하는지조차도 몰랐습니다.‘아, 명호에 근무하시는구나!’그래 그 사람이라면 진짜야. 그럴 수 있어. 항상 꿈을 꾸듯 아이들을 사랑했으니까! 30대 중반에 같은 학교에서 젊음(?)을 무기삼아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참 꾸밈없고 소박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지. 방과후 소주를 나누면서‘우리 다음에 경영자가 되면 지금처럼은 하지 말재이…….’‘아이들을 위하고, 선생님을 위하는 그런 사람이 되재이……’
그랬던 생각이 납니다. 그걸 기어이 실천하시는구려. 그 이후 제가 교감으로 모셨지요. 그때 제가 했던 말 취소합니다.‘우리나라 교육은 문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가르치는 인간들은 하나 같이 교실 등지고 회전의자만 찾아가면 그것은 얼마나 많은 교육손실이냐?’라고 했지요. 그랬더니‘허허’웃고 말을 못하셨지요. 당신을 보고 훌륭한 경영자가 교육현장을 정말 바꿀 수 있다는데 대해 동의하고 또 안도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경영자는 그냥 지시나 하고, 권위로 굴복시키고, 참 교육이 뭔지도 모르는 그런 분들이라 생각했었으니까요.
당신을 보고 제 말이 틀린 점이 있기에 그때 한 그말 취소하고 사과합니다.‘코찔찔이가 주인공인 당신이 쓰신 동화책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코찔질이 못난이가 훗날 영악한 친구들보다 훌륭한 사람이었듯이, 당신이 근무하는 명호의 아이들(가진 것 없는 소외된 농촌의 어린이들)에게 영롱한 꿈을 영글게 해주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리라 생각됩니다. 교장 선생님! 그리고 명호학교의 발전을 빕니다. 혹시 지나는 길 있으면 옛날처럼 소주 한 잔 합시다.
구상모[www.kbe.go.kr/’01.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