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지나 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표현보다 더 성탄을 정확하게
말한 것은 없다고 보는데, 성탄을 지내고 난 몸 상태는 별로 평화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술이 문제입니다.
이번 성탄을 앞 두고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한 번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분들도 다 아는 이야기인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돌아와 야 할 탕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가 탕자인 것을 모를 수 도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성탄은 지났지만 탕자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그림으로 표현된 탕자의 모습을 찾아 볼까요.
돌아온 탕자들의 모습을 그린 초기의 작품의 구도는 비슷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아들이 마지막으로 찾아 온 곳은 결국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대개 아버지와 아들의 얼굴이
나란히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이렇게 묘사할 때 보다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돌아온 탕자의 처참한 모습을 관객들이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구도에 충실한 작품을 잠시 보시기 바랍니다.
대개 한쪽에 아들이 위치하고 다른 한 쪽에 아버지가 맞이하는 구도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혀 다른 돌아온 탕자의 구도가 탄생합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 입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탕자의 얼굴이 관객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들의 등이 눈에 들어 옵니다.
한쪽 발은 신발을 신었지만 한 쪽은 벗겨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은 울 듯 말 듯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언뜻 보면 아들 걱정에
많이 지친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숨을 쉬는 듯 하기도 합니다.
아들의 등을 가득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흐르는 것은 잃어 버린 아들을
찾았다는 기쁨일 것입니다.
참고로 돌아온 탕자를 주제로 한 조각상 한 점을 보실까요?
로뎅이 제작한 돌아온 탕자입니다.
길을 잃어 버린 탕자의 절규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나저나 길을 잃어 버린 사람이 어디 탕자뿐일까요?
늘 한 해가 질 무렵, 마음이 스산해지는 건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의 외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요 ------.
첫댓글 글씨유...얼루가야 쓰것소?
거야 물으나마나 오늘도 술집이것쥬.....ㅉㅉㅉ 이런 말 아시나 몰러~ 1차, 2차, 3차. 그 담은 영구차라던데.... 미리미리 조심좀 하시쥬^^!
음---- 참 어울리는 부부야
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