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설이 지동설로 교체되는 사건은 인문, 사회, 종교, 과학 등에 많은 의미를 남겼습니다. 세계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고, 종교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천상계에 대한 환상이 깨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릴레오]에 대한 위인전을 보면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미신을 타파하고 종교의 비 과학적인 설명을 깨트린 영웅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한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1. 천문학의 시작
하지만 천동설은 과학입니다. 천동설의 역사는 카톨릭의 역사보다 훨씬 깁니다. 4대 문명에서부터 별을 관측했으니까요. 그리고 천동설, 정확하게는 천문학이 시작된 이유는 생존과 관련이 있습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모든 사회는 농업사회였습니다. 농업이 국가의 근본이었던 것이죠. 따라서 모든 국가의 지배자들은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소의 이용법을 알리고, 새로운 농기구를 제작하고, 철제 농기구를 보급하는 것 등 농업에 관련된 일은 모두 국가 주도로 이루어졌지요. 그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천체의 움직임이었습니다.
농사는 씨를 뿌리는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날이 따뜻해졌다고 무작정 씨를 뿌리면 갑자기 닥친 한파에 농작물이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정확한 달력을 만들어서 씨를 뿌릴 정확한 시기를 판별하는 일은 고대 모든 나라들의 주요 업무였습니다. 그리고 달력을 만들 때 지침으로 삼은 것이 천체, 즉 해와 별과 달이지요.
2. 천동설의 과학적 성격
고대 천문학이 과학으로 인정받았던 이유는 그들이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일정한 규칙을 구했기 때문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으며, 더욱 정확한 측정을 위해 기계를 개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천동설은 수학적인 연구가 더해져 상당한 학문적인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영어식으로 [톨레미]는 그리스의 천문학자입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 가 등장하기 전까지 최고의 천문학서인 천문학 집대성, 알마게스트를 저술한 사람이죠. 그는 천동설을 기반으로 해서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기술했습니다. 이후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비슷한 작업을 했지만 [톨레미]가 수학적으로 더 가치있는 결과를 남겼죠.
비록 천동설이 실제 천체의 움직임과 다르지만 농업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일식과 월식의 계산도 가능했죠. 비록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정교한 항법에서는 천동설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천동설 역시 충분히 과학적인 이론이었고, 농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입니다.
천동설이 빛을 바랜 이유는 종교와 연관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카톨릭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등이 주장한 지동설을 비판하며 천동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종교적인 이유와 학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3.지동설 vs 천동설
종교적인 이유부터 살펴보지요. 성서에는 땅이 움직인다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태양이 움직인다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었죠. "태양아 멈추어라" 라는 문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후에 카톨릭에서는 이것이 성서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교황이 [갈릴레오]를 추도했습니다만 [갈릴레오] 당시에는 평신도와 하급 사제들이 그를 교황청에 고발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맙니다.
하지만 전 학문적인 이유에 더 큰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레오]는 당시 교황청의 천체 관측 담당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적인 내용을 교환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죠. 게다가 당시의 교황인 우루바누스8세는 교황이 되기 이전부터 [갈릴레오]와 친분이 있었으며 이단심판위원회 위원장 벨라르민 추기경도 [갈릴레오]와 친분이 있습니다. 이에 더해 [갈릴레오]는 당시 이탈리아의 유력자인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는 과학자였습니다. 이에 더해 교황청에서 주관한 달력 수정 사업에 [갈릴레오]가 초청될 정도로 둘 사이의 관계는 상당한 협력 관계에 있었죠.
달력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갈릴레오]는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에 둔 우주관으로 새로운 달력을 제작합니다. 기존 달력보다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었죠.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지동설은 지구의 궤도가 완벽한 원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실제 관측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지동설이 진실이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흔히들 지동설의 수학적 우월성을 두고 '주전원이 필요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지동설이 타원 궤도를 사용했을 경우입니다. 완벽한 원형 궤도를 고집한[갈릴레오]는 자신의 이론과 실제 관측치와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상당한 양의 주전원을 도입합니다. 결국 당시의 지동설은 천동설보다 조금 못했다 뿐이지 원형 궤도 위에 주전원이 뱅글뱅글 돌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죠.
4.시대상황
결국 당시의 천문학자들이 보기에 [갈릴레오]의 연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연구였습니다. 지난 수 천년간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수 많은 학문적 성과를 도출하고, 이를 더욱 정밀하게 하기 위해 수 많은 연구과 기술개발을 거듭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하는 젊은이가 나타난 겁니다. 게다가 명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고요.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의하면 한 패러다임의 문제점은 패러다임 내에서 해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패러다임 내에서 해결되지 못할 경우에만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지요. 즉, 기존의 천문학자들은 패러다임 변환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당시의 천문학자들이 꽉 막힌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어느날 30세의 젊은 대학원생이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내 놓았는데, 실험으로 증명하는데 실패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연히 학계에서는 인정할 수 없지요.
[갈릴레오]와 교황청의 사이가 학문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교황청은 [갈릴레오]에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으로는, 그리고 완벽한 원 궤도로는 지동설을 정당화 할 수 없었습니다. [갈릴레오]는 18년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지동설을 주장하며 천문학자들과 논쟁을 거듭했습니다. 결국 교황청은 [갈릴레오]에게 거짓 이론으로 대중을 현혹하지 말라는 선고을 내림과 동시에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천문관을 가르치지 말라는 선고를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이 나온 재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갈릴레오]는 저 말을 한 적도 없고, [갈릴레오]가 법정에 선 이유도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지동설의 학문적 근거를 제시하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서적이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던 시절이었죠.
5.결론
천동설은 본디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우주관이 아니며, 매우 과학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된 이론입니다. 수천년간 인류에게 씨 뿌릴 때를 알려준 학문이고요. 그러한 천동설을 그저 종교적인 세계관으로 폄하하는건 잘못된 관점이라고 봅니다.
[출처]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