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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남들은 봄이라고 벌써 꽃구경간다고 가슴 설레지만 집없이 떠도는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신세 정도는 아니라도 조직과 소속감을 잃은 우리 임들은 설렁하게 움츠려든 새가슴되어 이상화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시처럼 봄맞이 할 기분이 영 아닌데 그놈의 봄은 왜 잊지 않고 또 와서 속을 뒤집는지 환장하겠더랍니다. 도예가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빚었고 남이 보기에는 그래도 괜찮아 보이며 상품성도 제법있는 그릇이지만 목표한 일정 수준에 미달하여 작품성이 떨어질 때는 미련을 버리고 과감하게 깨뜨리는 장면을 TV 화면을 통해 접하면서 아깝고 낭비적이며 무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싸게 팔든지 그냥 나눠주든지 하지... 우린 생판 다른 개념(concept)으로 만들고 애지중지 가꿔온 킬리만자로산학회에서 만남과 경험 그리고 추억을 쌓았으며 많은 산행인들의 사랑과 찬사를 받았는데 3년 7개월만에 정말 느닷없는 일들로 혼란스러워 불편한 동거보다는 깔끔한 결별이 낫다싶어 본의아니게 조직을 해체했습니다. 우리는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보태지는 또 하나의 산악회가 아닌 전혀 딴판인 산학회(山學會)를 지향했는데 산악회(山岳會)도 못되고 오히려 지양할 바가 많은 산악회(山惡會)가 되었습니다. 포효(咆哮)하는 호랑이를 그리려했는데 고양이도 못되고 이제는 들쥐꼴로 지리멸렬(支離滅裂)입니다. 산행과 여행의 디딤돌이나 버팀목이고자 했는데 걸림돌이 되고 빗장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애써 꾸려왔는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억울한데다 턱없이 폄하하고 오용될 때면 분하고 허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개 발에 주석편자' 라는 말도 생각났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원균의 모함으로 옥살이를 치르고 백의종군했으나 원균이 왜군에 크게 패배하는 바람에 다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남은 배는 고작 12척. 임진왜란 당시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밀지에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건의하며 이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하찮은 신하(이순신)는 죽지 않았다(尙有十二微臣不死)”는 장계(狀啓)를 올렸는데 이 장계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조정에 용기를 불어 넣었고 나아가 명량해협에서 왜군 선박 수백척을 수장시키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같은 조건이라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는 법입니다. '12척에 불과한 배로 어떻게 적의 대군과 싸울 수 있겠느냐' 고 좌절과 '여전히 12척이나 남아있다. 비록 배는 적지만 내가 죽지 않는 한 적이 우리를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자세로 분연히 일어서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1598년 음력 11월 19일 새벽. 이순신 장군이 한창 독전하다가 문득 지나가는 탄환에 맞았는데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 전방급 신물언아사).” 라는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은 것은 탐욕과 파괴의 여신인 칼리이고 어둠의 자식인 킬러이지 킬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서 만나서 함께 가야할 산이 있고 떠나야 할 길이 있습니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2004년 3월 4일 |
첫댓글 몇년 전에 겪었던 아픈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 날까 봐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운 길동무"로 거듭나서 단단한 모임으로 결성이 되가는 모습이 기쁘고 좋아 보여 이 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누리님...
내가 쓰고 내가 보낸 글이지만 나는 간직하지 않는데 이렇게 남아있었군요.
“한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두 번 또 일어난다“ 는 일본의 속담이 있고,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말했지요.
"단 한번만 일어난 일이라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번 일어난 일이라면 반드시 또 일어난다."
우리 모두 주어진 기회를 선용(善用)해서 다시는 어려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제가 오래전부터 킬리팬 이었거든요~~그렇지만 그 시절 산행기를 많이 보관하진 못했어요...이제는 이렇게 마음 아픈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멀다.' 공감백배... 수고하세요~~~~
저는 그리운 길동무의 역사를 희미한 옛사랑과 가끔 올려지는 답글에서 보고 혼자서 짐작하곤 하지요.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사람 사는 일들이 그려지는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음 아파하는 느낌이 전해지기도 했구요.
그 해의 봄과 현재의 봄은 분명 다르겠지요?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고 읽었지요.
여기 '그/리/운/길/동/무'에는 길동무 식구들의 따뜻한 마음 덕에 삶에 필요한
보물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운 길동무 가족들을 응원합니다!
2004년 3월의 글을 지금까지 간직하신분도 모임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 보았습니다.
킬리 창립때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보았던 동호인(?)이라고나 할까요....그동안 오손도손 도란도란 즐거운 모습들이 더 많았었답니다..같이 참여하지 못하는 제가 샘이 날 정도로 ㅎㅎ...
아~~~대단하신 추억이네요 그때 자료들을 가지고 계시다니....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해운님의 열정이 대단하시죠~~~
아~! 그렇군요
제가 이날 재정립 하는날 눈 덥힌 만복대에서 기념산행하고 고사 지내고
저녁에 창립총회에 갔었지요 ^^
그때 부터 나는 킬리인으로 후반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