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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구간 때 계룡산 쌀개봉과 천왕봉을 우회하면서 천왕봉 정상의 천단을 보지 못했고, 숯용추 쪽으로 잘못 진입하여(잘못 걸려진 리본 회수) 중간을 잘라 먹으며 어정쩡하게 종주한 것이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기분이 찜찜하다. 다행히 2주전 무주에 모임이 있어 가는 길에 천왕봉 천단을 확인하고 양정고개까지 확실하게 정맥길을 이어 놓으니 마음은 더없이 편안해진다.
마치 방학은 다 끝나 가는데 숙제를 하지 않아 걱정이 되는 것처럼 온통 정맥생각 뿐이다. 휴가를 내어 가려하니 지금까지 좋았던 날씨마저 추워지고 비가 올 지도 모른다고 하는 등 핑계거리를 계속하여 만들어 주고 있다.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라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수요일 하루 연차휴가를 내어 화요일 마지막 계룡행 무궁화열차를 타고 계룡역에 도착하니 11월 30일 새벽 1시가 되었다. 계룡시에서 보는 밤하늘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이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이것도 산행 중 받게 되는 덤일 것이다.
백령고개까지 도상거리 41.6km를 계획하고 왔으나 오후 5시 30분이면 날이 저물고 귀가하는 차량사정을 감안하여 오항리에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계룡시 양정고개 - 금산군 오항2리 산벚꽃동산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32.5km
- 산행일시 : 11/30(수) 01:20 ~ 17:20
- 산행소요시간 : 16시간(식사시간 제하면 약 14시간 40분)
★ 산행기
무궁화열차를 타고(8,200원) 계룡역에 정차 중인 택시에 올라 엄사리 두마파출소에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는 요금기를 꺽지도 않고 4천원을 달라고 한다. 거리상 2km밖에 되지도 않고 시외지역도 아닌데, 터무니 없는 바가지라 생각되었지만 군말없이 준다. 그네들의 궁박한 삶을 잘 알기 때문에 그저 불우이웃 돕기하는 셈치면 되는 것이지, 산행시작부터 1~2천원 때문에 기분을 잡칠 수는 없었다.
정맥길은 양정고개 두마파출소 옆으로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되었다. 배낭을 나무계단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바나나 몇 개로 요기를 했다.
01시 20분, 해드랜턴과 손전동을 켜고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2구간 마루금 답사를 시작하였다. 계룡시민들이 이 등로를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는지 등로가 넓고 걷기에 편안하다. 그런데, 천마정에 이를 즈음 나침반을 찾으니 나침반이 보이질 않는다. 택시에서 흘렸는지 들머리에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방향이 식별안되거나 길을 제대로 밝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을 떨어뜨렸으니 난감한 기분이다.
다행히 표시기가 계속하여 촘촘하게 붙어 있었고, 날씨가 좋아 길을 놓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이런 화창하게 맑은 날 산행할 수 있게 있는 것도 덤은 덤이다. 최소한 터널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준 것만 해도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
천마정을 지나 30분만에 누군가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이 있는 천마산에 도착하고 임도를 횡단하여 봉우리 하나를 넘은 후 산비탈의 잣나무 사잇길로 내려섰다. 도로 옆으로 빈집으로 추정되는 허름한 집과 방치된 폐타이어 적치물을 오른쪽으로 두고 우회하자 산위로 올라가는 표시기가 보인다.
철탑을 지나 가파르게 무명봉을 오르자 완만하게 마루금이 이어지고 삼각점이 있는 304.8봉이 나타난다. 02시 40분, 오른쪽으로는 태조왕건이 세웠다는 개태사 이정표가 있는 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등로가 천마산 구간보다는 약간 거칠다 하더라도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곳이 없어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시간당 거의 도상거리 3km에 육박할 정도로 등로가 평탄하여 이 속도로 진행한다면 오후 5시 이전에 백령고개까지 무난하게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03시 정각, 천호봉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땀을 씻어 내었다. 날씨마저 일기예보와는 달리 포근하다. 바람한 점 없고, 청명하여 밤인데도 어슴프레 계룡산과 향적산, 국사봉의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향적산에는 그 지난 주에 다녀 온 곳임).
03시 40분, 대목재를 거쳐 04시 정각에는 연산면과 벌곡면의 경계인 황룡재에 내려선다. 삼천리교육원 입구를 따라 교회로 들어가자 왼쪽으로 꺾이며 시멘트포장도로 끝나는 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진행하자 감전경고문과 함께 정맥길의 등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나무계단 공사를 하고 있는지 계단으로 사용될 나무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공동무덤 지나 조금 더 진행하자 04시 30분, 동쪽을 제외하고는 전망이 확 열려 있는 함박산에 도착하게 된다. 패러글라이딩하다 사고로 숨진 동료를 그리워하는 추모비가 함박산 정상에 박혀 있었다. 2시간 뒤라면 산불감시소 안에 들어가 식사하면 좋겠지만 아직 아침밥을 먹기에는 너무 일러 그냥 진행하여야 했고, 05시 10분 깃대봉에 도착하여 삼각점이 있는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앉아 있으려니 금새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호남고속도로가 있는 뒷목으로 내려오자 짓다가 말았는지 외양을 어느 정도 갖춘 커다란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 오른쪽으로 문이 열려 있는 관리사무실이 있어 안을 확인하니 침대에 전기장판도 있고 책상이 하나 있는데, 서류와 각종 사물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양촌면노인복지의료시설로 2005년 1월까지만 달력이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올해 1월까지 공사하다가 부도가 나서 공사를 중단한 것 같았다.
아침을 먹기에는 아주 훌륭한 장소였다. 아까 깃대봉에서 떡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식욕은 없지만 건조한 날씨라 산속에서 버너를 사용해서는 안될 것 같이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밥과 함께 끓인 라면을 꾸역꾸역 넣으니 토할 것 같이 배가 불러 온다.
05시 40분에서 06시 30분까지 넉넉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왼쪽 길을 따라 내려서자 이내 호남고속도로에 이르게 되고 왼쪽으로 조금 더 가자 지하수가 흐르는 터널로 고속도로를 관통할 수 있었다. 다시 고속도로에 거의 붙어 오른쪽으로 올라오자 보리밭을 지나게 되고 철제사다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왼쪽으로 방향으로 바꾸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되었다.
07시 20분 곰치재를 지나자 대둔산 넘어 여명이 비추기 시작한다. 바랑산과 월성봉에 이어 대둔산의 위용이 장관이다. 08시 10분, 368.9봉 삼각점을 확인하고 내려오니 08시 24분, 물한이재에 도착한다. 도로의 경사도를 낮춘다고 산을 계속하여 깎아 절개지를 따라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대둔산에 가까워지는지 마루금이 급격하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09시 40분, 바랑산(554.4m)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 보니 오늘 양정고개에서부터 출발한 마루금이 구불거리며 따라오는 형상이다. 저 멀리에는 계룡산과 향적산이 조망이 된다. 10시 10분, 마치 골프장의 잔디가 깔린 듯한 헬기장이 나타나며 월성봉(650m)에 도착한다. 오른 쪽으로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함께 바위위의 소나무 모습이 한폭의 수채화 같다. 그리고 아랫마을 오산리의 비닐하우스가 정겹게 느껴진다.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겠지만 무엇을 파는지 떠돌이 장사꾼은 확성기로 방송하며 시골의 적막을 깨고 있다. 548봉의 절벽의 멋진 바위위에 올라 밑을 보니 그 아래에 팔각형 모양을 한 특이한 모습의 법계사가 위치하고 있었다. 월성봉에 있는 석축진지는 마치 제주도 무덤돌담과 같이 아기자기하게 돌을 쌓은 형상이다. 처음에는 이곳이 달이산성인 줄 알았지만,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달이성은 실존하는 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양촌에서 달이 떠오르는 방향이 월성봉이고 이 바위 절벽이 높은 성벽을 두른 듯 보이기 때문에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으로 月城峯이라 하고 우리말로 달이성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흔들조개바위가 벼랑위에 걸쳐져 있었고 조금 가파르게 내려가니 갈림길이 있었지만 직진의 바위지대가 아닌 오른쪽으로 마치 계곡으로 떨어질 듯 내려가야 했다.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자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망이 완전하게 열리면서 마루금 왼쪽으로는 6.25때 대둔산의 공비를 토벌하다 산화한 1,376명의 경찰공무원의 영령을 기리기 위한 경찰전승탑이 보인다. 12시경 마천대에서 식사하기로 했지만, 등로자체가 거칠어 시간지체가 많다. 물론 가끔씩 릿치를 해야하는 곳도 많아 산행기분을 만끽할 수는 있었다. 12시 20분, 삼거리 봉우리(8?9m)에 도착하자 동네분 들인지 앉아서 떡을 들다가 조금 나눠 준다. 12시 50분 개척탑이 서있는 대둔산 마천대(877.7m)에 도착하여 잠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다 마땅하게 식사를 할 수 장소를 찾지 못하여 공원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산중매점이 있어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그 자리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13:00~13:23). 갈림길이 많이 배티재로 꺾이는 지점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고, 우왕좌왕하면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용문굴로 내려가는 곳이 배티재로 꺾이는 곳으로 알았지만 다른 사람이 소지한 지도를 보니 엄연히 달랐다. 내가 소지한 지도에는 이정표가 지시하는 지명이 나타나지 않아 어느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산장에서 대둔산을 잘 안다는 사람조차도 배티재가는 방향을 잘못 알려 줌으로써 또 한번 길품을 팔게 되었고 다시 올라와 확인하니 태고사로 내려가는 방향이 맞을 것 같아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오른쪽 능선이 맞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다시 올라와 능선을 확인해 봤지만 그 능선으로는 사람이 지나간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또 다시 태고사방향으로 내려서서 진행하니 오른쪽으로 장수약수터를 가르키며 길이 분기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갈길은 바쁜데, 1시간 이상의 아까운 허비하고 말았다. 백령고개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뛰어야 할 것 같아 달리기로 하였다. 배티재가 불과 몇백미터 남지 않았는데, 표시기도 없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이는 장소를 찾지를 못하여 막연하게 진행하다 보니 우측으로 정맥종주하는 분으로 생각되는 표시기가 있어 따라 내려 가봤지만 과연 이 리본이 맞는지 그 상황에서 확신이 서질 않았고, 더 이상 표시기도 보이질 않았다. 등로에 엄청나게 쌓인 낙엽때문에서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 15시 30분 도로에 내려섰지만 배티재가 아니었다. 마을이 인접하여 있는 것으로 봐서 오대산(五臺山, 569.1m) 못미쳐 태봉골로 내려선 것이 분명하였다.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자 15시 45분 배티재 안내표지가 보이고 대둔산 휴게소에 도착한다. 다시 한번 30분 이상을 허비하면서 백령고개까지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생각되어 오항동 산벚꽃동산까지 여유롭게 산행하기로 하였다. 휴게소에 들러 캔맥주를 구입하여 단숨에 들이키자 갈증이 가신다. 주인아주머니가 수많은 정맥꾼들을 만났는지 들은 풍월로 금남정맥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15시 55분, 산벚꽃동산까지는 도상거리가 4k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휴게소 오른쪽 이치전적지(梨峙戰蹟地 : 전북기념물 26)가 있는 우측절개지의 표시기를 따라 올라가자 휴양림의 물탱크를 만나게 되고 이를 우회하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계속하여 오르막이 이어진다. 막걸리와 맥주를 마셔서 그러는지 잠이 쏟아진다. 16시 40분, 비몽사몽 무명봉에 도착하여 마지막 휴식을 취한 후 왼쪽으로 방향을 바뀌는 마루금을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인삼밭이 펼쳐져 있었지만 산위쪽으로는 인삼이 재배되고 있지는 않았다. 17시 00분,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하산을 재촉하였다. 가까이에서 조망되는 635번 지방도는 가끔씩 차들이 지나갈 뿐이었다. 17시 20분, 산벚꽃동산(금산군 진산면 오항2리)에 도착하였다. 팔각정이 있었고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자 오항2리가 표시된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산행을 마쳤다는 그런 좋은 기분보다도 걱정이 밀려왔다. 지나가는 차가 있어야 아무차라도 얻어 타고 귀가할 수 있을 텐데, 10분 이상 기다려도 버스는 고사하고 자가용도 지나가질 않는다. 아무차라도 무조건 잡을 생각으로 한참만에 지나가는 트럭을 세우자 태워준다. 목적지가 옥천이라 옥천까지 갔지만(19:00) 기차를 타려면 두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옥천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1,500원) 대전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시 30분 안양행 시외버스(9,100원)에 오르자 승객이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기사는 승객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태울 수밖에 없다고 하니 내 스스로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거의 눕다시피 편하게 평촌 집에 도착하니 22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