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홉 째 날(May12. Sat) Pompei-Napoly-Sorrento-Capri(Hotel Caesar Augustus)
남쪽으로 가는 길 — 불과 바다의 노래
5월 12일 아침, 로마의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전날의 긴 여정을 마치고도, 여전히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오늘은 남쪽으로 향한다. 제국의 심장에서 시작해, 바다와 불의 땅 — 폼페이와 나폴리, 소렌토를 지나 지중해의 푸른 보석 카프리 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렌트 카는 이른 아침 로마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렸다. 창가에 비치는 들판의 빛은 점점 더 따뜻해지고, 나무 사이로 레몬과 올리브의 향이 퍼졌다. 아펜니노 산맥의 능선이 아침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였다. 2시간여를 달리자, 멀리 '베수비오 화산(Vesuvio)'의 둥근 실루엣이 보였다.
불의 산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 산 아래에는 2천 년 전, 돌처럼 굳어버린 도시 '폼페이(Pompei)'가 잠들어 있었다.
폼페이 — 시간의 재 속에서
폼페이의 골목을 걷는 일은 마치 돌 속의 시간을 걷는 것과 같다.
발아래 돌길에는 마차바퀴의 자국이 선명했고, 벽화는 아직도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기원후 79년, 베수비오의 분화는 도시 전체를 하룻밤에 삼켜버렸다. 그러나 재와 용암은 그 비극을 덮는 동시에, 그 시대의 일상을 고스란히 봉인했다.
우리는 옛 상점의 돌 테이블을 만져보고, 포도주 잔이 놓였을 자리의 자국을 들여다보았다. 집의 마당에는 여전히 분수대가 남아 있었고, 벽에는 라틴어 낙서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한순간 돌처럼 굳은 인간의 형상을 보았다. 몸을 웅크린 채 어린아이를 품고 있던 모자의 주검이 재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형체는 슬픔보다도 더 깊은 정적을 품고 있었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재더미 속에서 나는 오히려 생의 강인함을 보았다. 인간은 무너져도, 그 흔적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존재였다.
나폴리 — 바다와 불의 도시
오후에 도착한 '나폴리(Napoli)'는 폼페이와는 전혀 다른 온도의 도시였다.
화산의 불길 아래서도 여전히 삶이 끓어오르는 곳. 항구로 향하는 길마다 오토바이의 굉음과 어시장 사람들의 외침이 뒤섞여 있었다.
“Vedi Napoli e poi muori —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푸른 바다와 하얀 항구의 곡선, 언덕 위의 성채와 세찬 햇살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오페라였다.
항구 근처 작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으로 '스파게티 알레 봉골레(Spaghetti alle Vongole)'를 먹었다. 갓 잡은 조개가 내뿜는 짭조름한 바다향과 올리브오일의 향기가 어우러졌다. 그 순간, 지중해의 모든 빛과 바람이 한 접시 안에 담긴 듯했다.
창문 너머로는 갈매기들이 바다 위를 돌고 있었다.
나폴리의 바다는 소란스럽고도 생생했다.
소렌토 — 레몬향의 절벽 마을
오후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 무렵, 해안 도로를 따라 '소렌토(Sorrento)'로 향했다.
좁은 해안길은 절벽과 바다 사이를 끼고 이어졌고, 차창 밖으로는 눈부신 푸른 곡선이 펼쳐졌다.
이곳의 공기는 달콤했다. 바람 속에는 레몬꽃의 향이 섞여 있었고, 골목마다 유리병에 담긴 ‘리몬첼로’가 반짝이고 있었다.
해가 바다 위로 기울 때, 나는 절벽 위의 전망대에 섰다.
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푸른 비단처럼 잔잔했고, 멀리 카프리 섬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떠 있었다.
시인 괴테가 사랑했던 이 땅, 그리고 수많은 음악가들이 노래한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의 선율이 귓가를 스쳤다.
소렌토의 바람은 그 노래처럼 달콤하면서도 서늘했다.
카프리 — 푸른 동굴의 섬
저녁 무렵, 우리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카프리(Capri) 섬으로 향했다. 바다 위로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바닷빛은 코발트에서 남보라로 바뀌고 있었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바라본 카프리는 신화 속 섬처럼 신비로웠다. 카프리 해안의 절벽 위에는 하얀 별처럼 빛나는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섬에 도착해 '호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Hotel Caesar Augustus); 들었다.
절벽 끝에 자리한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는, 그 어떤 회화보다 완벽한 풍경이었다.
바다는 하늘과 맞닿은 듯 이어지고, 바람은 레몬과 소금의 향을 함께 실어왔다.
나는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낮 동안 걸었던 폼페이의 재, 나폴리의 소란, 소렌토의 향기가 모두 이 한 바다로 흘러들어 하나의 음악이 되는 듯했다.
멀리 어둠이 내려앉고, 카프리의 불빛이 별처럼 켜져갔다.
바람은 여전히 따뜻했고, 바다는 살아 있었다.
오늘 하루의 길이 내 마음속에서도 하나의 파도처럼 출렁였다.
로마의 돌길에서 시작된 여정이 이 밤, 지중해의 물결로 마무리된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시간은 바다처럼 흘러가지만, 그 기억은 섬처럼 남는다.”
그리고 그 섬이 오늘의 카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