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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8:7은 이런 내용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아마도 본 절의 말씀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애용해 암송하는 성경구절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문은 분명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나(벧후1:21-22, 딤후3:16) 그렇다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약속과 보증의 말씀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헛되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전통적인 신앙관에 깊이 사로잡힌 나머지 말씀의 본의를 왜곡되게 해석해 펀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 중 하나의 경우입니다.
우선 본문의 배경을 개략적으로 살펴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경건하고 신실한 신앙과 관련해 사단의 1차 참소와 하나님의 허락으로 욥은 그의 열 자녀와 재산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욥은 이 모든 일의 결국을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함으로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범사에 현실을 믿음으로 수납합니다(욥1:21-22).
그러자 사단이 2차로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욥의 생명만을 제외하고 모든 경우를 사단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러자 사단은 이번에는 욥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침으로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심한 악창이 나게 해, 재 가운데 앉아 기와조각으로 온 몸을 긁어야 할 정도로 몹쓸 병에 시달리게 합니다(욥2:7-8). 그 상태가 얼마나 지독하고 처참했는지 욥의 아내조차도 '믿음의 순전성을 지키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 섞인 욕을 퍼부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욥의 세 친구 곧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욥의 소식을 듣고 문병 차 찾아옵니다(욥2:11).
본문은 그 중 한 사람인 수아 사람 빌닷이 온 몸이 악창으로 만신창이가 돼 고통당하고 있는 욥을 문병와서 건넨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관점의 위로의 말입니다. 빌닷의 위로의 말이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인본주의적인 관점이란 사실은 문맥상 본문의 말씀(욥8:7)이 욥이 당하는 고통과 시련을 영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필유곡절이라는 인과론적 시각에서 접근해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집니다. 다시 말해 욥의 자녀들이 일시에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며 이제 욥마저도 그 옛 모습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 고난 중에 처해짐은 분명 하나님 앞에 감춰진 무슨 큰 죄악이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이 빌닷의 시각이란 말입니다(욥8:4-6).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며 용서를 빌라는 제안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욥의 형편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재앙을 거두시고 전처럼 회복시켜 주실 것이 확실할 것이라는 강력한 주문입니다. 이런 시각은 비단 빌닷의 관점만은 아닙니다. 그의 다른 두 친구인 엘리바스와 소발의 경우도 한결 같이 동일한 관점에서 욥의 고난을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보편적 상황판단 하에서 빌닷은 욥을 향해 저 유명한 말씀(?)인 욥8:7을 자기소견을 좇아 토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당하는 현재적 고난의 배경과 경위의 전말을 성경독자들의 입장에서 익히 알진 대, 욥의 악창은 단순히 인과응보적 차원에서 간단히 해석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죄인인 것만은 틀림없지만(롬3:10, 23절) 지금 욥이 당하고 있는 시련은 사단의 악의적인 송사와 참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제한적인 허락으로 주어진 의도적인 시험이요 시련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의 세 친구들, 특히 본문(욥8:7)과 관련해 욥의 고난을 해석하는 빌닷의 관점은 하나님의 본의와는 무관한 자의적 해석인 동시에 펀의적인 적용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욥기서를 마감하고 있는 욥42장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 중 특별히 엘리바스를 지목해 말씀하시기를 "욥의 고난과 관련해 하나님의 관점에 대해 언급한 세 친구들의 대화의 내용들이 하나 같이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십니다.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키기에 족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욥으로 하여금 세 친구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당하게 말한 세 친구들의 대화 내용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욥42:7-8).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즉각 욥을 통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의 제사를 기쁘시게 열납해 주십니다. 이는 욥의 고난의 의미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는 무관하게 자의적이고 임의대로 해석해 말했던 세 친구들의 관점과 대화의 내용이 부당한 편견임이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욥을 통한 속죄제사로 인해 결과적으로 저들의 망언들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음을 가리킴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빌닷이 말한 바 욥8:7의 말씀은 욥의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의중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데서 나온 인간적 편견이요 망발일 뿐입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잘못 곡해하고 있듯이 매사에 복을 주시며 성공적 삶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증된 말씀으로받아 적용시키기에는 심히 무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편의적 적용을 일컬어 사단적이며(마16:21-23) 불법적이고(마7:21-23) 불복종적 신앙(롬10:2-3)이라고 엄히 경고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줄 압니다.
이렇듯 한국기독교회 속에서 욥8:7의 본문의 말씀이 본의와는 무관하게 축복과 성공을 보증해 주는 말씀으로 곡해돼 사용되고 있는 것은, 첫째로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지를 총체적인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통전적 계시안목의 결핍 때문이며, 둘째로 종교심을 빙자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유혹에 깊이 사로잡혀 지엽적인 말씀을 문맥을 무시한 채 임의대로 선택해 방편적으로 적용시키는 일에 익숙해진 잘못된 신앙 전통에 기인한다고 하겠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7:8-9).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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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간략하게 줄인다면 병들어있는 욥에게 문병 온 세명의 친구중 한명인 빌닷이란 사람이 욥에게 한 위로의 말입니다.
이런 세명의 친구들의 말에 대해 욥기 42장에 하나님은 너희들이 한 말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고로 욥기8장7절의 빌닷의 말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허.....참 언제 이렇게 숨은 공부를..ㅡ,.ㅡ;
기록되어있는 그 말에 깊은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어느날 새벽 기도중에 그리 말씀하시더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요? 하나님이 그 말씀을 부정하였는데 그 말씀을 주셨다는건 하나님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글에는 여호와하나님,예수님,제사장,사도,천사,인간,사탄,...등의 말들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는 누를 범하지 마십시요.
언제는 한번 이리 말씀도 하셨는데 " 너 제발 술좀 끈어라" 그런말도 성경에 나오나요? 말에 대한뜻은 각자가 여러가지로 해석 할수있고, 또, 하는 분 역시 여러 가지 의도로 말씀하실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그런것들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거 같습니다.
" 지금은 힘들어도 열심히 하면 다 잘될꺼야" 라는 의미였는데 짧은 지식이다 보니 은버들님 글을 볼때마다 여러가지로 배울게 많군요. 다음부터는 의미에 적합한 구절에 대해 문의 드려도 될까요?
여튼.. 믿음의 형제 자매분들이 계셔 더 더욱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