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교하백(交河伯) 오계(塢系)
1. 교하(交河) 강필(康弼) 파(派)
가. 교하노씨 입향사
교하백 오의 후손 강필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를 도와 통합삼한공신에 올라
선성부원군에 봉작되었고 또 태자자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삼한공이다.
강필의 후손들은 고려 초에 경주의 기계땅에 살다가
장산으로 이주하여 본관을 장산으로 하였으나
고려 충선왕의 휘가 장이므로 이를 경산으로 하였다가
다시 교하로 복관하였다.
선성부원군 강필의 후손 교하노씨 10세손 강평공(康平公) 척(蹠)은
슬하에 서원군 제, 창성군 진, 경원군 은, 신양군 영
아들 4형제를 두었다.
이들 4형제는 모두 고려시대에 높은 벼슬에 올랐고
그 후손들도 조선시대 들어와서 현달하여 명문을 이루었고
그 후 벼슬과 생업 등 연고를 따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서원군 제의 후손들은 주로 경기도 양평, 양주, 강원도 홍천, 서울, 김화(강원도),
김천(황해도), 화성 등지에 살고 있으며 ,
그의 7세손 정직은 경남 창원으로 입향한 후
또 그 후손들은 마산, 창원, 밀양 등지에 살고 있다.
또한 창성군 진의 후손들은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도 등 여러 곳에 살고 있으며,
특히 창성군의 현손인 윤보는 고려시대 때 낭장으로 고려 때의 문신이며 석학인
목은 이색의 본향인 한산이씨 가문에 장가를 들어 그 인연으로 한산에 입향하였다 하며,
그 후손들은 주로 서천에 많이 살고 있다.
창성군 3남 균의 아들이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한으로 공숙공파조이고,
손자가 대제학 영의정 노사신으로 후손들이 청양, 서울, 파주, 강화, 김포, 부여, 달성, 목천,
공주, 보령, 부안, 장성, 여수 등 각지에 살고 있다.
부여에는 문광공 사신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문장공 사신의 7세손 세해는 부여에서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룡동으로 옮겨 살았고
노태우13대 대통령은 세해의 10세손이다.
그리고 경원군 은의 큰아들 향의 후손들은 평양으로 입향하였으며,
둘째아들 전의 증손 유근은 학문이 높고 무예에도 뛰어난 선비다.
조선시대 때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유근의 외척되는 김종서와 진외척되는 황보인을 죽이므로 이들과 인척관계가 있는
유근의 아버지 식은 겨우 목숨만 보전하게 되었다.
그 후 식은 결성현감으로 내려왔으나 항상 불안하고 언제 피하가 있을지를 몰라 미리 짐작하고 식의 아들 유근은 가산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유근의 후손들은 현재 평양, 청주, 당진, 충주, 대전, 괴산, 보은, 공주, 연기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