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無比) 큰스님 妙 法 蓮 華 經 문수원 강의 |
今正是其時(금정시기시)일새 決定說大乘(결정설대승)하노라 我此九部法(아차구부법)은 隨順衆生說(수순중생설)하야 入大乘爲本(입대승위본)일새 以故說是經(이고설시경)하노라 有佛子心淨(유불자심정)하야 柔軟亦利根(유연역이근)하며 無量諸佛所(무량제불소)에 而行深妙道(이행심묘도)라 爲此諸佛子(위차제불자)하야 說是大乘經(설시대승경)호니 我記如是人(아기여시인)은 來世成佛道(내세성불도)하리라 以深心念佛(이심심염불)하고 修持淨戒故(수지정계고)로 此等聞得佛(차등문득불)하고 大喜充徧身(대희충변신)하리니 佛知彼心行(불지피심행)일새 故爲說大乘(고위설대승)이시니라 聲聞若菩薩(성문약보살)이 聞我所說法(문아소설법)하대 乃至於一偈(내지어일게)하면 皆成佛無疑(개성불무의)리라 十方佛土中(시방불토중)에 唯有一乘法(유유일승법)이요 無二亦無三(무이역무삼)이니 除佛方便說(제불방편설)이니라 但以假名字(단이가명자)로 引導於衆生(인도어중생)하나니 說佛智慧故(설불지혜고)니라 諸佛出於世(제불출어세)에 唯此一事實(유차일사실)이요 餘二則非眞(여이즉비진)이니 終不以小乘(종불이소승)으로 濟度於衆生(제도어중생)이니라 佛自住大乘(불자주대승)하시고 如其所得法(여기소득법)하야 定慧力莊嚴(정혜력장엄)으로 以此度衆生(이차도중생)이니 自證無上道(자증무상도) 大乘平等法(대승평등법)하고 若以小乘化(약이소승화)하야 乃至於一人(내지어일인)이면 我則墮慳貪(아즉타간탐)이라 此事爲不可(차사위불가)니라
勸信[1.擧佛果上德勸信(1.擧佛內心德 2.擧佛外相德) 2.擧佛因位誓願勸信(1.擧昔誓願 2.擧誓願滿足)]
若人信歸佛(약인신귀불)하면 如來不欺誑(여래불기광)하며 亦無貪嫉意(역무탐질의)라 斷諸法中惡(단제법중악)일새 故佛於十方(고불어시방)에 而獨無所畏(이독무소외)니라 我以相嚴身(아이상엄신)하며 光明照世間(광명조세간)하야 無量衆所尊(무량중소존)일새 爲說實相印(위설실상인)이니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我本立誓願(아본립서원)은 欲令一切衆(욕령일체중)으로 如我等無異(여아등무이)라 如我昔所願(여아석소원)을 今者已滿足(금자이만족)하니 化一切衆生(화일체중생)하야 皆令入佛道(개령입불도)니라
|
妙 法 蓮 華 經 (묘법연화경) 方便品 第二
(방편품 제이) 덕유산의 일출 사진 : 지리산 님
今正是其時(금정시기시)일새 決定說大乘(결정설대승)하노라
我此九部法(아차구부법)은 隨順衆生說(수순중생설)하야
入大乘爲本(입대승위본)일새 以故說是經(이고설시경)하노라
有佛子心淨(유불자심정)하야 柔軟亦利根(유연역이근)하며
無量諸佛所(무량제불소)에 而行深妙道(이행심묘도)라
爲此諸佛子(위차제불자)하야 說是大乘經(설시대승경)호니
我記如是人(아기여시인)은 來世成佛道(내세성불도)하리라
以深心念佛(이심심염불)하고 修持淨戒故(수지정계고)로
此等聞得佛(차등문득불)하고 大喜充徧身(대희충변신)하리니
佛知彼心行(불지피심행)일새 故爲說大乘(고위설대승)이시니라
聲聞若菩薩(성문약보살)이 聞我所說法(문아소설법)하대
乃至於一偈(내지어일게)하면 皆成佛無疑(개성불무의)리라
十方佛土中(시방불토중)에 唯有一乘法(유유일승법)이요
無二亦無三(무이역무삼)이니 除佛方便說(제불방편설)이니라
但以假名字(단이가명자)로 引導於衆生(인도어중생)하나니
說佛智慧故(설불지혜고)니라 諸佛出於世(제불출어세)에
唯此一事實(유차일사실)이요 餘二則非眞(여이즉비진)이니
終不以小乘(종불이소승)으로 濟度於衆生(제도어중생)이니라
佛自住大乘(불자주대승)하시고 如其所得法(여기소득법)하야
定慧力莊嚴(정혜력장엄)으로 以此度衆生(이차도중생)이니
自證無上道(자증무상도) 大乘平等法(대승평등법)하고
若以小乘化(약이소승화)하야 乃至於一人(내지어일인)이면
我則墮慳貪(아즉타간탐)이라 此事爲不可(차사위불가)니라
......................................................................... |
今正是其時(금정시기시)일새 決定說大乘(결정설대승)하노라
지금이 바로 그때(성불을 이야기할 만한 때)이니 결정코 대승을 설하노라.
밑에 죽 계속 나옵니다. 대승(大乘), 큰 수레, 큰 법, 최고의 경지, 최고의
법, 또 부처님의 획득한, 수행을 통해서 획득한 가장 높은 경지, 또 인간의
이르를 수 있는 최고의 어떤 경지를 대승이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설한다.
또 어린아이에게 박사과정을 이야기하면 안 통하죠. 그러나 공부가 높아지고
어느 정도 근기가 되었을 때에는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간단하
게 이야기하면 그런 이야기입니다.
我此九部法(아차구부법)은 隨順衆生說(수순중생설)하야
나의 아홉가지의 구부법은 중생을 수순해서 설해서
入大乘爲本(입대승위본)일새 以故說是經(이고설시경)하노라
대승에 들어가는 근본을 삼을 새 이러한 까닭에 이 경을 설하노라.
대승에 들어가는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수다라로, 가타로, 본사로,
본생으로, 있지도 않은 말도 꾸미기도 하고, 전생에 있었던 이야기도 꾸미기
도 하고, 네 이야기도 하고, 내 이야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도 하고, 온갖
이야기를 다 해서 꾸민 거야. 그건 중생들에게 맞춰서 설한 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대승에 들어가는 근본이 되었다.
그래서 부처가 되었다, 이거야. 대승을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본(本)이 되
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경을 설하노라.
이 경은 무슨 경이죠?
설대승(說大乘), 설시경(說是經) 뜻은 같습니다.
이 경은 무슨 경이죠? 묘법연화경, 법화경이죠.
법화경은 대승경전, 대승, 일불승, 일승을 설하는 경전, 그건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 모두가 부처의 지견을 목표로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부처의 지견은 뭐냐? 부처다 이 말이여!
‘우리가 부처로 살자! 부처니까 부처로 살자!’라고 하는 그 이야기가 이
경이고, 대승이고 그렇습니다.
有佛子心淨(유불자심정)하야 柔軟亦利根(유연역이근)하며
어떤 불자는 마음이 청정해서 마음이 아주 부드럽고 근기가 영리하며
마음이 유연(柔軟)해. 마음이 아주 부드러워. 마음이 아주 옹색해 한다든지,
아주 굳어져 있다든지, 마음이 편협하다든지, 아니면 자기 고집대로, 도대체
자기 고집에서 어떻게 하나도 변통이 없다든지, 융통성이 없다든지, 그런 것
이 아니고 얼마든지 융통성이 있고 남의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또 새롭게 생
각할 수 있고, 또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유연성을 가진
그런 마음, 그리고 또 이근(利根), 근기가 영리해. 영리한 근기야.
無量諸佛所(무량제불소)에 而行深妙道(이행심묘도)라
한량없는 제불의 처소에서 여러 가지 깊고 묘한 가르침의 삶의 길을 행했으되
爲此諸佛子(위차제불자)하야 說是大乘經(설시대승경)호니
이러한 여러 불자들을 위해서 이 대승경전을 설하노니,
대승경전을 설한다는 것이 세 번 나왔어요.
我記如是人(아기여시인)은 來世成佛道(내세성불도)하리라
내가 수기하는 이와 같은 사람들은 오는 세상에 반드시 불도를 이룰 것이다.
내가 수기한다, 이것은 구체적인 수기는 아니죠. 이 앞에 있는 모든 대중들
도 총체적으로 수기하는, 내가 수기하는 이와 같은 사람들은 오는 세상에 반
드시 불도를 이룰 것이다. 오는 세상, 내세라고 하는 것은 뭐냐? 내일도 곧
내세입니다.
내생(來生)이 아니고, 내세(來世)예요. 다음 시간이 내세(來世)입니다. 현재
시간 다음 시간이 내세예요. 지금이 두 시라면 세 시가 내세이고, 지금 세시
라면 네 시가 내세이고, 네 시가 지금이라면 다섯 시가 내세고, 오늘이 말하
자면 금세라면 내일이 내세이고, 그래서 오는 세상이라고 이건 절대 ‘내
생’이라고 하면 안돼요. 죽은 뒤라고 생각하면 정말 망발입니다. 그렇게 해
석하면 결코 아닙니다. 혹 누가 그렇게 해석하거든 ‘그건 틀렸다.’고 펄쩍
뛰세요.
그건 절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에요. 오는 시간에 바로 불도를 이룬다
이거예요. 그런다고 부처님은 딱 수기한 거예요.
以深心念佛(이심심염불)하고 修持淨戒故(수지정계고)로
깊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청정한 계를 닦아서 가지는 까닭으로
此等聞得佛(차등문득불)하고 大喜充徧身(대희충변신)하리니
이러한 이들이 부처님에게 부처가 된다하는 말을 듣고 큰 기쁨이 몸에 가득
차니,
득불, 내세에 성불한다 그 말이죠. 득불이란 말이 그 말입니다. 이러한 이들
이 부처님에게 득불, 부처가 된다고 하는 말, 내세에 성불도 한다는 그 말이
죠. 부처가 된다는 말을 듣고, 큰 기쁨이 몸에 가득차니, 우리 기쁠 때 몸
에 아주 기쁨이 가득 차는 것을 느끼죠. 슬픔도 마찬가지고, 분노도 마찬가
지고. 몸에 어떤 그런 감정을 느끼죠. 여기서 부처가 된다, 너희들은 부처
가 된다 라고 하는 그런 말을 듣고는 대희충변신(大喜充徧身)이라, 온몸에
기쁨이 가득찼다.
佛知彼心行(불지피심행)일새 故爲說大乘(고위설대승)이시니라
부처님은 제불의 심행(心行;마음의 움직임, 흐름, 변화, 생각)을 다 아시고
그런 까닭에 그들을 위해서 대승을 설하시니라.
대승이 중요합니다. 이 법화경에서는 이 대승법, 부처님의 최고의 법을 펴내
려고 안간힘을 쓴 그런 가르침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부처님은 최고의 재산이다. 대승을 설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다 읽
고는 재산을 설해야 되겠다, 대승을 설해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대승을 설한
다 이거예요.
聲聞若菩薩(성문약보살)이 聞我所說法(문아소설법)하대
성문이나 보살이 나의 설한 바 법을 듣되
乃至於一偈(내지어일게)하면 皆成佛無疑(개성불무의)리라
한 게송만이라도 듣는다 하더라도 다 부처를 이루는 데 있어서 의심할 것이
없으리라.
한 게송은 네 구절이거든요. 의심할 게 없어. 틀림없이 다 부처를 이룬다 이
말입니다. 한 게송을 듣는 것으로 부처를 이루는 이것은 너무 큰 거예요, 사
실은.
요 뒤에 조금만 넘어가면 부처 앞에 손을 번쩍 이렇게 한번 들어도 그것으로
도 개성불무의(皆成佛無疑)다, 다 부처가 된다. 게송하나 듣고 부처를 이룬
다하는 것,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법화경을 이정도로 공부하면 개성불무의(皆成佛無疑)예요.
다 성불 하는 데 있어서 의심할 바가 없다.
十方佛土中(시방불토중)에 唯有一乘法(유유일승법)이요
시방 세계 가운데 오직 일승법만 있고,
이거 중요한 말입니다.
無二亦無三(무이역무삼)이니 除佛方便說(제불방편설)이니라
둘(二乘;이승;성문·연각)도 없고 셋(三乘;삼승;성문·연각·보살)도 없으니
방편을 설한 것은 제하느니라.
이승(二乘), 성문(聲聞)·연각(緣覺)도 없고, 삼승(三乘), 성문(聲聞)·연각
(緣覺)·보살(菩薩)도 없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뿐 입니다. 그건 뭐죠?
일승(一乘). 일승법(一乘法) 하나뿐이다 이거예요. 이 세상에 전부 일승법 하
나뿐이다, 아무 것도 없어요. 둘도 없고, 셋도 없고, 넷도 없고, 열도, 천도,
백도, 온갖 방편문이 있지마는 어디까지나 문이야.
방은 하나야. 방은 하나 라구요.
일승의 방, 부처님 지견의 방, 부처의 방,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다.
우리는 방편(方便), 이 경 공부하는 것도 전부 방편이에요.
절 하는 것도 방편, 뭐든 방편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각양각색의 자기 성향에 맞고, 자기 근기에 맞는 방편을 통
해서 결국은 이뤄야할 목표는 뭐냐? 일승법(一乘法).
부처가 되는 것, 부처의 지견 자리, 성불하는 그 자리에 이르려하는 방편문
이다.
무이역무삼(無二亦無三), 시방불토중(十方佛土中)에 유유일승법(唯有一乘
法), 이건 유명한 말입니다.
무이역무삼( 無二亦無三) , 둘도 없고 또한 셋도 없으니
제불방편설(除佛方便說)이니라, 방편을 설한 것은 제하느니라.
방편으로 이승도 이야기하고, 삼승도 이야기하고, 방생도 이야기하고, 염불
도 이야기하고 온갖 방편, 무슨 천도재도 이야기하고, 예수재도 이야기하고
별의 별 수천 만 가지 나라마다 지역마다 민족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어떤
특성과 관습에 맞춰서 온갖 방편이 부지기수로 생긴 거예요. 부처님 당시 때
에는 몇 개 없었어요. 그런데 중국으로, 또 한국으로 이렇게 거쳐 오면서 계
속 그 고유의 종교, 고유의 민족적인 특성 여기에 맞춰서 방편문이 생깁니다.
앞으로 세상이 흘러가면 거기에 맞는 방편이 또 생겨요. 거기에 맞는 방편이
또 생겨요. 생겨야 되고요, 또.
그러니까 제불방편설(除佛方便說)이니라, 부처님의 방편을 설한 것만 제한다.
요 방편설은 중요한 말입니다. 방편설은 중요한 말이 몇 구절 있어요.
시방불토중(十方佛土中)에 유유일승법(唯有一乘法)
무이역무삼( 無二亦無三) 제불방편설(除佛方便說)이니라
밑줄 그었죠?
但以假名字(단이가명자)로 引導於衆生(인도어중생)하나니
다만 거짓 이름과 거짓 글자로써 중생들을 인도하나니,
깨놓고 다 이야기하잖아요? 딴 데에는 이런 이야기 잘 없습니다.
내가 거짓부렁으로 중생들을 인도하려고 내가 그랬다, 이 소리 잘 안 해요.
그 소리하면 안 되잖아요, 사실은. 거짓말한다 하면은 그건 뭐 아무 것도 아
니라고 생각하니까.
한번 했어요. 최종적으로 법화경에 와서 한번 했어요, 여기에.
‘그동안 이야기한 것 모두 다 방편이었다.’
가명자(假名字)로써, 중생들을 꾀기 위해서, 이끌어 오느라고 내가 그렇게 이
야기한 거야. 그러니까 네 소리도 하고, 내 소리도 하고, 있는 소리도 하고,
없는 소리도 하고, 당신의 과거 이야기도 물론 많이 섞였어요. 그러니 부품하
게 불려가지고 이야기도 하고. 갖가지 방편의 문을 열어놓고는 전부
說佛智慧故(설불지혜고)니라
부처님의 지혜를 이야기한 까닭이니라.
결국 우리 목표는 불지견이죠? 또한 불지견 그것을 일대사라고 하기도 하고
일불승이라고도 하고 일승법이라고도 하고, 대승이라고도 하고,
불지견도라고 하기도 하고, 중생을 인도해서 결국은 불지견, 전부 갖가지 방
편의 문을 열어놓고는 그 문을 통해서 열고 들어가는 것은 전부 부처님의 지
혜의 방에, 부처의 방에 들어간다, 이렇게 꾸며놓은 거다 이거야.
諸佛出於世(제불출어세)에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심에
唯此一事實(유차일사실)이요 餘二則非眞(여이즉비진)이니
오직 이것만이 하나의 사실이고 나머지 둘은 진짜가 아니니,
요것도 중요한 말이죠. 요것도 밑줄 그어야 돼.
둘, 셋, 넷, 다섯, 여섯 나머지 전부 진짜가 아니고 방편문이다, 이거예요.
방편문. 방편문이라고 버리라고 하는 뜻은 아니예요.
어차피 우리는 방편문을 통해서 이 일사실(一事實), 여기에 부처의 방에 들어
가야 되니까. 그 방편은 전부 살려주는 것입니다. 어떤 말도 다 살려주는 거
예요. 부처님의 이야기, 무당의 이야기까지 다 좋은 방편이다 이 말이에요.
결국은 그로 인해서 결국은 성불의 길로 들어가는 길이 되니까.
終不以小乘(종불이소승)으로 濟度於衆生(제도어중생)이니라
마침내 소승으로는 중생을 제도하지 않느니라.
절대 부처님은 작은 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게 아니다.
왜 내가 철두시행 할 바에는 있는 것 다 주지, 뭐 하러 아껴? 아끼지 않는다
이거예요. 있는 것 다 줘 버리는 거예요. 어차피 내가 대가를 바라거나, 거
기에 어떤 값을 받거나, 거기에 어떤 칭찬을 들으려고 하거나, 하는 것이 아
닐 바에는 다 줘버려요, 싹 다. 있는 대로 다 줘버려. 그러니까 부처님은 뭐
라고? 마침내 소승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 그럼 대승으로써 제도한
다 이거예요. 대승으로써.
佛自住大乘(불자주대승)하시고 如其所得法(여기소득법)하야
부처님이 스스로 대승에 머무시고 그 얻은 바 법과 같이 하여,
당신이 대승에 머물고 또 그 당신의 대승법 그대로
定慧力莊嚴(정혜력장엄)으로 以此度衆生(이차도중생)이니
정과 혜와 힘 이러한 장엄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니
선정, 지계, 또 힘(十力), 이런 것으로써 꾸며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그런 이
야기입니다.
自證無上道(자증무상도) 大乘平等法(대승평등법)하고
스스로 깨달은 가장 높은 도, 대승의 평등한 법을 깨닫고서(證;證得;증득)
若以小乘化(약이소승화)하야 乃至於一人(내지어일인)이면
그래서 소승으로써 한 사람이라도 교화 한다면(小乘化;소승화)
我則墮慳貪(아즉타간탐)이라 此事爲不可(차사위불가)니라
나는 곧 간탐죄(墮慳貪;아끼고 탐하는 죄)에 떨어지니 이러한 일은 옳지 못
하니라.(불가;不可)
간탐죄, 아끼고 탐하는 죄, 자기가 아끼는 것이 아까워서 조금 밖에 이야기
않는다, 만일 딴 사람이 전부 대승으로 다 가르쳤는데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소승법으로 가르쳤다면 그건 이미 부처님께는 죄인이야. 간탐죄에 걸린다 이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물질은 잘 아끼죠. 물질도 아끼고 음식도 아끼고, 옷
도 아끼고, 뭐 별의 별 것 아끼는데, 그런 아낌은 괜찮아요. 괜찮은데,
법을 아끼면 그건 큰 잘못이야, 법을 아끼면.
간탐(慳貪), 여기서는 물질을 뜻함이 아니고, 부처님 당신의 전부 온갖 고생
을 다 해서 깨달은 그 깨달음의 경지, 이것을 만약 아낀다면 그건 큰 죄인이
야. 우리 생각엔 고생해서 얻었는데 그걸 더 아낄 것 같죠? 그런데 그게 아니
야. 이건 아껴서 될 일이 아니 라구요, 이건.
아껴서 될 일이 아니니까 다 표현해 내는 거죠. 그래서 이러한 것을 만약 아
낀다는 것은 큰 죄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불교에서는 법을 간탐, 법을 아끼
는 것을 크게 경계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요
‘친구에게 가르쳐 주면 안 되는데, 나 혼자만 알아야 되는데...’(일동 웃
음) 이렇게 하면 간탐죄에 걸려요. 이것은 차라리 음식을 아끼고 친구에게
안 주는 것보다도 법을 아끼고 안 주는 것이 훨씬 더 죄가 큽니다. 죄가 커
요. 정말 겸손해서 안한다면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일러주고 싶고 한다면 일
러 줘야죠. 절대 아껴선 안됩니다.
나보다 더 잘 알면 좋잖아요? 나 보다 더 잘 알도록 해 주면 그건 좋은 일이
죠.
勸信
[1.擧佛果上德勸信(1.擧佛內心德 2.擧佛外相德)
2.擧佛因位誓願勸 信 (1.擧昔誓願 2.擧誓願滿足)]
若人信歸佛(약인신귀불)하면 如來不欺誑(여래불기광)하며
亦無貪嫉意(역무탐질의)라 斷諸法中惡(단제법중악)일새
故佛於十方(고불어시방)에 而獨無所畏(이독무소외)니라
我以相嚴身(아이상엄신)하며 光明照世間(광명조세간)하야
無量衆所尊(무량중소존)일새 爲說實相印(위설실상인)이니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我本立誓願(아본립서원)은
欲令一切衆(욕령일체중)으로 如我等無異(여아등무이)라
如我昔所願(여아석소원)을 今者已滿足(금자이만족)하니
化一切衆生(화일체중생)하야 皆令入佛道(개령입불도)니라
|
若人信歸佛(약인신귀불)하면 如來不欺誑(여래불기광)하며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믿고 귀의한다고 하면 여래는 그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말 하지 않는다.(불기광;不欺誑)
그 사람이 아끼거나, 또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한다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
다. 부처님이 그런 마음이 없죠. 정말 당신께 귀의하려면 그 사람을 속일 일
도 없고, 큰 것을 두고 작은 것을 줄 리도 없고, 다이아몬드를 놔 두고 무슨
구리나 은을 줄 까닭도 없는 거죠.
亦無貪嫉意(역무탐질의)라
또한 탐하고 질투할 그런 마음이 없느니라.
斷諸法中惡(단제법중악)일새
그것은 모든 법 가운데 악을 끊는 일 일 새,
그래서 법을 깨닫지도 못하고 깨닫는다 하는 것은 증상만인이고,
또 거짓말 가운데 가장 큰 거짓말이다, 이렇게 하고 또 법을 아끼는 것은 물
질을 아끼는 것 보다 훨씬 더 악이 된다, 더 나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을
안 하는 사람은 모든 법 가운데 악을 끊는 일이다.
좋은 일이죠. 그러니까 불교는 자꾸 전해야 됩니다. 전하면 줄어드는 게 아
닙니다. 자꾸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게 아니예요.
자기가 전하고, 소개를 하고, 이끌어오고 하는 그것이 우리가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일이죠.
故佛於十方(고불어시방)에 而獨無所畏(이독무소외)니라
그런 까닭에 부처님이 시방에서 홀로 아무런 두려운 바가 없느니라.
누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나보다 더 지혜로울 것이다, 이런 데 대한 염
려가 전혀 없다. 홀로 부처님만이 그렇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독무소외(而獨無所畏)니라.
홀로 부처님만이 그런 염려하는 바, 두려워하는 바가 없느니라.
정말 그렇게 되어야 되죠. 누구에게도 자신이 있는 전혀 꺼릴 일이 없는 그
런 경지,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경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我以相嚴身(아이상엄신)하며 光明照世間(광명조세간)하야
나는 상으로써 몸을 장엄하며
이상엄신(以相嚴身), 이거 중요한 말이에요. 상으로써 몸을 장엄한다.
이것은 악세사리로써 하든지, 또는 화장으로써 몸을 장엄하든지, 옷으로써
장엄하든지, 그런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이상엄신(以相嚴身), 부처님
은 본래 타고 나기를 상호를 잘 타고 났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이상엄신(以相
嚴身)이야. 상으로써 몸을 장엄했으며, 부처님보다 조금 떨어진 관세음보살
은 온갖 치장을 다하고, 뭐 화장까지 하구요, 어쨌든 이 사바세계 중생은요
상견중생(想見衆生)이라, 모양을 봐야 마음을 내는 그게 우리의 습관이에요.
그래서 상견중생, 상견중생 그러는데,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도 폼을 아주 중
요시 여겼어. 부처님은 상을 아주 중요시 여겼다구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부처님 32상호 같은 것 갖추지 아니했을 거예요. 왜냐? 상, 32상호 관심을 안
갖는다면 갖출 필요가 없죠. 그러니 32상호와 80종호를 갖춰서 근사하게 좋으
니까 사람들이 속는다구요. 근사하게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상엄신(以相嚴身)이라, 상으로써 몸을 장엄하는 것.
이 세상에서는 통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사람을
판단해도 일단 외모보고 판단하잖아요. 대개 또 그래요, 보면은.
우리 사바세계 중생들의 관례가 되어있으니까.
그러니까 부처님도 이상엄신(以相嚴身)으로서 광명조세간(光明照世間)하야,
지혜의 광명으로 세간을 비춰. 부처님께 빛이 있겠어요? 전등이 있겠어요?
촛불이 있겠어요? 그야말로 지혜의 광명으로 세간을 비춰 보는 것입니다. 이
광명은요, 광명조세간(光明照世間).
그래서 내가 불교에 대해서 뭐 인등을 켜는 일이라든지, 초파일에 등을 밝히
는 일이라든지, 촛불을 켜는 일이라든지 하는 그런 어떤 광명과 연관되고,
빛과 연관되는 것은 이것은 불교에서는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처님 이
름도 따져보면 거의 다 광명과 연관된 그런 이름이다. 비로자나불이 그렇고,
아미타불이 그렇고, 연등불이 그렇고, 일월등명불이 그렇고, 저 앞에 나왔
죠?
次復有佛(차부유불)하시니 亦名日月燈明(역명일월등명)이며 次復有佛(차부유불)하시니 亦名日月燈明(역명일월등명)이라 如是二萬佛(여시이만불)이 皆同一字(개동일자)시니 號日月燈明(호일월등명)이며 又同一姓(우동일성)이시니 姓頗羅墮(성파라타)니라 彌勒當知(미륵당지)하라 初佛後佛(초불후불)이 皆同一字(개동일자)시니 名日月燈明(명일월등명)이며 十號具足(십호구족)하시고 所可說法(소가설법)은 初中後善(초중후선)이니라
- 무비 (無比) 큰스님 법화경 ( 9 ) 第一 序品 문수원 녹취 中 -
|
초불후불(初佛後佛)이 개동일자(皆同一字)시니 명일월등명(名日月燈明)이며,
앞의 부처나, 뒤의 부처나 이름이 똑 같은 이름이다. 전부 지혜다.
지혜의 광명이다. 그러니까 광명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게 됩니다만 부처님은
일단은 상으로써 장엄하며(이상엄신;以相嚴身), 광명으로 세간을 척 비춰서
중생들을 환히 들여다본다(광명조세간;光明照世間), 이거예요. 그래서
無量衆所尊(무량중소존)일새 爲說實相印(위설실상인)이니라
한량없는 대중들의 존경하는 바가 되어 실상의 도장(실상인;實相印)을 설하
느니라.
한량없는 대중들이 나를 존경하고 실상의 인, 여기서 인(印)이란 ‘진리’
‘틀림없는’ ‘보증하는’, 그런 뜻이 포함되어있죠. 우리가 도장을 찍는
다, 서명날인 하잖아요. 그러면 보증하잖아요. 증거가 되구요. 그래서 요 인
(印)자는 세상의 진리의 도장, 그런 말입니다. 진리의 도장을 설한다.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라!
我本立誓願(아본립서원)은 欲令一切衆(욕령일체중)으로 如我等無
異(여아등무이)라
내가 본래 서원을 세운 것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똑 같아서 평등하고
다름이 없게 하는 것이라!
참 좋은 말입니다.
내가 본래 어떤 서원을 세웠느냐?
서원에 나오죠.
욕령일체중(欲令一切衆)으로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똑 같아서 평등해서 하나도 다름이 없게 하는 것,
이게 내 서원이다 이거여!
참 얼마나 멋진 서원입니까? 아 근사한 서원이에요. 부처님 당신이 인간으로
이르러갈 수 있는 최고의 인격자가 되었으니까 부처님 서원은 뭐냐? 다른 모
든 것보다도 나 같이만 되어라, 이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 같이만 되어라. 이게 내 서원이다 이거예요.
그것을 서원을 세웠어요.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라, 나와 같아져서 평등하고 다름이 없게 하라.
라고 하는 것, 이게 내 소원이다.
如我昔所願(여아석소원)을 今者已滿足(금자이만족)하니
나의 이 소원을 지금에 이미 만족했으니
化一切衆生(화일체중생)하야 皆令入佛道(개령입불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해서 다 하여금 불도에 들게 함이니라.
금자이만족(今者已滿足)하니,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그 소원을 이미 만족했다, 이말입니다.
다 불도에 들어가게 했다. 이 뒤에 엄청난 말씀이 이야기가 됩니다.
전부 불도에 들게 했다, 전부 부처로 살게 했다.
부처님 소원이 모든 중생이 부처되게 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모든 중생이 전
부 부처다 하면 그러면 부처되면 만족한 거예요.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전부 부처다.’라고 인가를 다 하고 수기를 다해줍니
다. 저 앞에서도 있었듯이 뒤에 더욱 많이 반복해서 나오게 되는 거죠.
부처님의 소원, 그것은 곧 ‘우리가 부처되는 일이다.’
부처되는 것은 어떻게 해서 부처가 되느냐?
부처인 줄 알고 살면 돼. 부처인 줄 알고 살면.
부처인 줄 알고 살면 그 뿐이라구요. 달리 꾸미고 다듬고 해서 부처되는 것
은 아닙니다. 그런 부처는 가짜 부처야. 예를 들어서 수행을 해서 꾸며서 다
듬어서 시간이 걸려서 이렇게 되는 부처도 있어요. 그렇게 되는 부처는 가짜
부처야. 그것은 또 시간이 지나면 허물어져, 그건. 왜냐? 조작했으니까. 조
작한 것은 틀림없이 시간이 지나면 그 조작이 변하니까 그건 가짜 부처다.
진짜 부처는 뭐냐?
지금 이대로, 지금 이대로가 그대로가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인 줄 우리
가 아는 것. 그것은 진짜 부처야. 이것은 조작이 없거든요.
다듬은 것이 아니고, 꾸민 것이 아니고, 조작한 게 아니고,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고, 그걸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은 엄청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그랬죠. 기독교에서 예를 들어서 ‘네가 하나님이다.’하면 기
절할 이야기다 이거야. 불교 법화경에 와서는 뭐냐? ‘부처다.’하는 그 이
야기니까 얼마나 엄청난 소리냐? 지금 우리가 자주 들으니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면서 참 신심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 꼼짝하지마라. 넌 그대로 부처야! 지금! 그대로 부처야! 아무 것도 의심
하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어지간히 신심있는 사람은 기절할 겁니다.
기절초풍할 거예요. 그런 이야기예요. 이 법화경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법화경에서 우리들 자신이 현저히 ‘우리가 부처다!’란 사실 대해서 확신
이 가야돼! 확신이!
지금 시기, 질투, 무슨 사기성도 있고, 남 비방하고, 남 잘 되면 배아프고
그런데 어째서 그게 부처냐? 남이 잘 되어서 배 아프면 그 배 아픈 대로 부
처예요. (일동 웃음) 배 아픈 대로 부처 라구요. 아 참말 이에요. 그건 틀림
없어요. 이 법화경은 그런 말입니다. 부처 앞에서 손 한번 들어도 이미 부처
를 이루었다 그랬어.
저 앞에서 뭐라고 그랬어요? 한 게송 하나만 공부해도 불도를 이루었다 그랬
잖아요? 그게 뭔 소리여? 게송 하나 공부해가지고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조작된 부처, 수행을 통해서 이뤄진 부처라면요 게송 하나 가지고 부처
되겠어요? 어림도 없는 거예요. 손 한번 들어서 부처 되겠습니까? 절 한번
한다고 부처 되겠습니까? 여기 뒤에 전부 그런 이야기나와요. 절 한번 한다
고 부처 될 까닭이 없어.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모래를 쌓아 놓고 부처라고 절한다고 부처될 까닭이 없
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 뒤에 금방 또 나오지만, 산란한 마음으로, 정성어
린 마음으로 하면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장난끼 있고 산란한 마음으로 불탑
에 들어가서 한 바퀴 돈다든지, 절을 한다든지, 손을 흔든다든지 아니면 농
담 삼아 아이들이 스님 지나가면 뭐라고 하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걸로 부처다, 이거예요. 산란한 마음으로, 장난기 있는 마음으로 ‘나무
아미타불’ 한번만 해도 그대로 부처다.
그러면 조작된 부처라면 조작된 그런 이야기는 될 수가 없습니다. 될 수가
없어요. 현재 이대로 부처라는 것입니다. 배 아프면 배 아픈 대로 부처요,
질투하면 질투하는 대로 부처예요. 시기하면 시기하는 대로 부처예요.
그런 줄 알아야 돼요. 그래서 법화경은 엄청난 경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해가 잘 안 되죠? 엄청난 경이란 말이 그 말입니다, 바로.
지금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과 팔만 사천 번뇌로 뒤덮여 있는데 나보고
부처라니 그거 엄청나서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오천 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거예요.
그게 용납이 안 되니까 그게 그런 말이라. 그런 이야기는 듣고 나간 건 아니
지마는 상징적으로 그것이 소승들에게는 용납이 안 된다.
저건 우리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하고 나간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말이죠, 온갖 시기, 질투, 사기성, 남 헐뜯는 남의
말 막 하면 재미있고 하는, 아 이런 사람을 부처라고 한다면 이 엄청난 이야기
아닙니까?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이대로 부처예요. 그대로 부처예요.
하나도 바꾸지 아니한 그 상태대로 부처입니다.
흙이면 흙인 대로 부처요, 대지면 대지대로 부처요, 어디 병이 들어있으면
병이 들어 있는 대로 부처요, 고통스러우면 ‘아야, 아야!’하는 대로 부처
요, 고통스런 그대로 부처예요. 그것을 여기서는 아주 엄청난 이야기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오천 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바로 그거 하나 알려고 바로 부처로 살아야 되고, 부처로 사는 그
이치 때문에 우리가 모든 방편을 다 동원한다 이거예요. 결국은 모든 방편을
다 동원해서 바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한다 하는 것입니다.
삼독 온갖 악한 팔만 사천 있는 그대로 부처다.
오늘은 이 좋은 날 전부 부처가 되어서 돌아가는 거예요.
부처가 되어서 돌아가는 거예요.
‘아이고 나는 못났는데...‘ 못 났으면 못 난 대로 부처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법화경 공부는 최소한도 그런 차원입니다, 그런 차원.
그래서 이 좋은 날은 부처가 되어서 돌아가지 어디 달리 다른 길이 없습니
다. 그래서 여기 부처님의 설법이 79번 보면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라
我本立誓願(아본립서원)은
내 소원이 본래
欲令一切衆(욕령일체중)으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如我等無異(여아등무이)라
나와 똑같이 하여 다름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如我昔所願(여아석소원)을
나와 같은 옛날의 그 원하는 바를
今者已滿足(금자이만족)하니
지금에 만족했으니,
그 만족했다는 게 뭐여?
化一切衆生(화일체중생)하야
일체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皆令入佛道(개령입불도)니라
다 불도에 들어가게 하였음이니라.
모든 분들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 주고 내가, 또 그것을 깨닫게 해주
고, 열어주고, 보여주고, 그 속의 부처의 방에 들어가게 해 주는 것.
이미 들어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게 부처님의 소원이야.
그래서 여기서 만족했다고 하는 것이고, 그리고 법화경에서 부처되는 것,
천하에 부처되기 쉬운 가르침이 법화경이야. 산란한 마음으로, 속에는 온갖
잡스런 생각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나무 불’한 번만 고개 숙여도 그걸로
O.K, 그걸로 부처다 이거예요.
이런 말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이런 이야기는 없어요. 그렇게 간단한 부처
되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왜 그렇게 간단하냐?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그래.
본래 우리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부처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한 겁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편입니다. 사실은.
뭐 ‘나무 불’ 한다고 부처고, 안 한다고 부처 아니겠어요?
안 해도 부처야. 그러나 ‘나무 불’하면 이미 부처다, 라고 하는 말, 그건
하나의 방편을 이야기하는 거죠. 안 해도 부처야 사실은.
부처님 비방해도 부처님이고 좋아해도 부처님이고,
‘나무 불’ 해도 부처님이고 안 ‘나무 불’해도 부처님이야.
그건 누가 어떻게 말리지도 못한다구요. 부처님도 못 말리고, 나도 못 말리
고,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사실입니다.
뭐라고 했어요?
유차일사실(唯此一事實),
오직 이것 하나만은 진실이다.
이것 하나뿐이다 이거예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랬어요.
그 다음 뭐라고 했죠?
餘二則非眞(여이즉비진)이라
나머지가 있다면 그건 진짜가 아니다.
이것만은 진짜야. 그 외 다른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전부 가짜이니까 전부 여러분들은 부처님이야. 지금 부족함도 많고, 못난 것
도 많고, 중생의 온갖 허물, 모순, 그저 허물 덩어리, 모순 덩어리, 입만 벌
렸다 하면 허물이요, 입만 벌렸다 하면 모순이고, 움직였다 하면 허물이고,
움직였다 하면 모순이고, 움직였다 하면 그저 죄업이고, 그런 대로, 그 모습
그대로 부처야.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것 참 너무 중요한 이야기이고, 이것은 부처님이 하
고 싶었던 이야기야.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고, ‘부처’는 불교의 궁극적 이
야기입니다. 궁극적인 이야기.
유차일사실(唯此一事實) 餘二則非眞(여이즉비진)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처님 소원이 만족한 이 대목,
我本立誓願(아본립서원)은
내 소원이 본래
欲令一切衆(욕령일체중)으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如我等無異(여아등무이)라
나와 똑같이 하여 다름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如我昔所願(여아석소원)을
나와 같은 옛날의 그 원하는 바를
今者已滿足(금자이만족)하니
지금에 만족했으니,
化一切衆生(화일체중생)하야
일체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皆令入佛道(개령입불도)니라
다 불도에 들어가게 하였음이니라.
여기 까지 오늘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내가 자주 언급했던, 손 한번만 들어도 이미 불도를 이루었
다, 고개 한번 끄덕여도 불도를 이루었다, ‘나무 불’염불 한번해도 불도를
이루었다 하는 그런 것들을 죽 이렇게 나열하는 그런 시간이 되겠습니다.
덕유산의 일출 사진 : 지리산 님
염화실 http://cafe.daum.net/yumhwasil
|
첫댓글 고맙습니다 _()()()_
十方佛土中에 唯有一乘法이요 無二亦無三이니 除佛方便說이니라... 시방 세계 가운데 오직 일승법만 있고, 둘(성문·연각)도 없고 셋(성문·연각·보살)도 없으니 방편을 설한 것은 제 하느니라... 明星華님! 수고하셨습니다.._()()()_
만행하고 돌아오신 님을 뵈니 가슴이 벅찹니다... ^^*
我本立誓願은 欲令一切衆으로 如我等無異라... 내 소원이 본래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똑같이 하여 다름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明星華님! 고맙습니다... _()()()_
明星華님 !반갑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우리가 부처로 살자! 부처니까 부처로 살자!..............명성화님 반갑습니다. 어쩐지 많이 울고 싶은 날이네요. 울고나면 다시 말갛게 평화로와질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로 살자! 부처니까 부처로 살자! 모든 부처님께 참회하며 지심으로 귀명례합니다.
음식을 아끼고 안 주는 것보다도 법을 아끼고 안 주는 것이 훨씬 더 죄가 큽니다.. 明星華님, 큰스님 법음을 이렇듯 아름답게 실어 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법을 전하는데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보살님 _()()()_
감사합니다_()_
_()()()_
명성화님 고맙습니다...._()()()_
明星華님 고맙습니다,,,_()()()_
_()()()_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이역무삼(無二亦無三), 시방불토중(十方佛土中)에 유유일승법(唯有一乘法)......
법을 아끼고 안 주는 것이 훨씬 더 죄............
如我昔所願(여아석소원)을 今者已滿足(금자이만족)하니
나의 이 소원을 지금에 이미 만족했으니
化一切衆生(화일체중생)하야 皆令入佛道(개령입불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해서 다 하여금 불도에 들게 함이니라.
來世成佛道
;來世는 來生나 죽은 뒤가 절대 아니고 현 시간의 다음 시간을 의미
불자가 마음이 청정하고 부드럽고 영리하며 한량 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깊고 묘한 도를 행하면 그를 위하여 대승경을 설하노니 이들은 오는 시간에 ,來世에 부처를 이룬다
--총체적 수기
得佛=來世 成佛道
부처님의 게송 하나만 들어도 皆成佛無疑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唯此一事實 餘二卽非眞
我本立誓願 欲令一切衆 如我等無異
如我昔所願 今者已滿足 化一切衆生 皆令入佛道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