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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쉐코)는 특히 신앙의 소속을 밝히는 것이 예의인 것 같습니다.
왠지 가족적인 분위기라서 그런가? 싶습니다.
미흡하고 또 실례의 말씀들을 이해하시고 읽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책임질 것이 있을시는 변명을 해 올릴 것이며, 잘못이 있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감리교에서
청주출신 45년생(호적46) 이 상규(李 相圭)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성결교단에서 낳고, 자란 후 그곳에서 결혼식까지 치렀습니다만, 동생이 어떤 연유로
하여금 감리교 전도사가 되는 바람에 나도 감리교로 이적을 하게 되었고, 동생의 소개로 아주 작은 開拓(개척)교회를 소개받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80년도이고 이때는 성경에 대하여는 거의(?)였습니다.
그 개척교회는 2층에 5백만원짜리 전세로 있었습니다. 그런대 이때 단임 목사가 이전하고 싶다는 말 딱 한마디하고는 독단적으로 2천만원짜리 공장을 계약하고는 그리고 바로 이전해 버렸습니다.
이때 공장건물은 교회본당으로, 공장장과 공원들이 자던 방(4개)들은 사택으로, 사용을 했습니다. 그중에 안방은 살림집이었기에 대청도 있고 하여 목사님사택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돈을 충당키 위해 내차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서울서 모셔온 부흥강사는 성경도 잘 풀었고, 또 말끝마다 아멘을 강조했습니다. 이때 복음성가 ‘내게 강같은 평화’또 ‘주의이름을 부르는 자는....오!~ 주예수, 오!~ 주예수 ’를 참으로 많이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현란한 말솜씨로 입신도 경험케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애석하게 힘을 써도 입신은 그만 불발되고 말았습니다.
부흥강사의 말씀의 내용과 목적인즉, 마리아는 시집가려고 혼숫감으로 장만한 고가의 향수를 주님께 아낌없이 깨뜨려 쏟아 부었고, 또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위하여 별미를 가져다 받쳤으니,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기 위하여는 물질을 힘껏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막바로 약정헌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약정을 하라기에 내 동생과 그리고 동생과 신학교동기인 우리 단임 목사님 체면도 있고, 또 성경말씀을 풀 때마다 아멘을 쎄게 그리고 연발을 한 터라서, 단칸방 쥐꼬리만한 전세금이 하나님 앞에 양심이 찔려 이를 빼서 바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목사는 우리의 그 전셋돈을 받아내기 위해 오갈대가 없는 것을 알고는 교회의 아주 작은 방 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헌금이 하늘나라에서 되돌려 받을 것 같은 마음이 들질 않았습니다. 하여 새벽기도 때마다 울며 기도하기를 “하나님아버지~ 그 돈 하늘나라에서 안주셔도 좋으니 제 정성을 보시고 성경이나 좀 열어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이 땅에서 말씀에 실패하면 곧 하늘나라도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제발 성경 좀 열어 주시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우는 것도 간곡하게 우니 허리가 다 아프더군요.^^
우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님을 그때에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방이 좁아 텔레비전을 걷어치우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TV는 家寶요 정보수단의 첨단 이었습니다. 티비를 치웠다하니 직장에서는 퇴보적인 사람으로 취급당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연히 디도서 3장 9,10절이 눈에 들어오기를, 율법은 무익하며 이단이라고 읽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
아~하~ 이것이 율법이요, 이곳이 무당집이로구나.. 하는 마음이 강하게 요동치는 것이었습니다.(장/감/성님들 미안합니다.^^) 이에 떠나야 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나서, 하루는 아내를 불러놓고 결딴을 냈습니다. “여보! 미안하오, 여기를 또 떠나야 하겠소, 그런데 이제는 밤이슬 하나 피할 곳도 없으니 이혼을 하고 아이들(세 살짜리. 한 살짜리)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던지, 아니면 길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나와 같이 가겠소? 라고 하니,
아내 왈,
“나는 시집온 이상 이집에서 뼈를 묻겠습니다.” 라고 당차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아내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에게 잘해주는 편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는 잘해줘야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가 않습니다. 이로 보면 참으로 못된 인간이지요, 그렇다고 그렇게 까지 심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번도 없었던 부업거리가 생겨서 일 년치 사글세와 이사비용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겐 참으로 신기한 이적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이사(移徙)간 그곳은 산 밑에 할머니만 혼자 사는 집에 방 한 칸을 얻었으며, 천장은 쥐 오줌으로 갈라져 있어 저녁에는 실지로 쥐가 방바닥에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때 형님은 동생이 티비도 없이 지내는 것이 안타가워 한 대를 보내주셨지만 나는 또 남을 주고 성경만 열심히 보았습니다. 나 때문에 우리 두 아이들은 장성하도록 티비를 못보고 자랐습니다.
일명 구원파로
아내의 주선으로 일명구원파로 알려진 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이때가 1981년도 초였습니다.
그곳은 初 信者가 구원교통이 끝나면 그는 구름을 탄 것처럼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에겐 구원상담을 안 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중심형제에게 물어보니 나는 율법을 초월하였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여 1년에 한번 치르는 수양회(희문고등학교)에서 침례도 받았고, 그리고 새마을금고를 설립함에 있어서도 운영진자리도 내주었습니다.
여기 구원파에서의 얻은 수확이라면, 죄 사함에 있어서 자신의 죄를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아주 훌륭한 요령이었습니다. 그러한 공식을 두고 그런 방향으로 계속 심사숙고하니 내속에 죄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이에 비례적으로 기쁘기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44:22>
나는 이곳에서는 드러나지 않게 율법을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무언가 마음이 무겁고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의 구원론은 양면성이 결여되어 한쪽으로 치우친 편벽된 구원론이라서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과거와 미래의 죄까지 다 지고 갔으니 앞으로 어떤 허물도 죄로성립될 수 없다는 論理인 것입니다. 이는 한쪽으로는 맞는 말이며 다른 한쪽으로는 틀린 것입니다. 죄의 종류와 구원의 다양성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구원의 총론편 참조요)
이 구원의 총론은 저도 그곳을 나온 뒤에 구원관이 깨달아 기술한 것입니다만, 나는 그때만 해도 구원관이 밝지 못하여 그곳의 구원관이 무엇인가 다소 잘못 됐다는 것을 어렴픗 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곳을 그만 뒤로하고 나오게 된 동기는,
므나의 비유<눅19;15~27>에 있어서, 주님이 친히 세운 열종들 중에 결국 두 명만 성공했고 하나는 탈락하고 나머지 일곱은 거론도 없음을 볼 때 이는 아니다 싶은 마음과, 또 열 처녀비유에서도 다섯은 탈락되는 것들이라 던지, 또 야고보도 심판을 받는다 했거늘 그들은 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지와, 그리고 그곳을 나오게 된 결정적 요인은, 중심 형제를 위시로 한 믿음이 깊다는 형제들이 십일조를 암암리로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그 막대한 돈이 세모로 들어간다는 풍문이...)
이에 나는 중심형제에게 이르기를, “내가 율법을 버리고 이곳으로 올 때는 당신들이 율법을 불법으로 인정 하더니, 이제는 그 불법을 님들이 범하는 것입니까??”라고 반박을하니, 그 중심형제가 말하기를, “자기와 같이 서울 삼각지로 가서 권신찬목사님께 심판(판결)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나는 거절하기를, “당신도 성경이 있고 분별력이 있을 터인데 왜 굳이 그분에게까지 가서 판결을 받아야만 하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하고는 그곳을 떠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단독으로 있던[평신도 복음 선교회]가 그해에 기독교로 가입하여 연합해
버렸습니다. 하여 이참 저참으로 그곳을 나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지방)교회
나로서는 실망이 컸습니다.
이제 갈 곳도 없거니와 속으로 생각하기를, 다시는 교회당을 나가지 말고 집에서 성경을 보며 예배를 드리자, 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번개처럼 뇌를 스치는 것은, 이 세상어딘가는 성경과 보다 일치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가 있을 터이니 한번만 더 찾아보자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도 없으면 종전에 다짐한대로 집에서 식구들 까지만 예배를 드리자 이었습니다.
토요일 날 직장에서 퇴근하여 교회를 찾아 나서려니 돌띵이 같은 두 아들 놈들이 엄마를 힘들게 하기에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는 막내를 자전거에 태우고 시내를 돌아보려 나왔습니다. 마침 2층 유리창에[청주교회 집회소]라는 썬팅이 눈에 들어오기에 가까이 가서 둘러보니 간판도 교파가 적혀있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회소라는 말이 마음에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그래 이거다”싶어서 문을 열어보니 토요일인데도 문이 열려있고, 안에는 정복을 갖춰 입은 공군중사가 밀대로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내일 예배(집회)를 보느냐로 시작하여 염탐이나 하듯 이것저것 물어보니, 그는 대답 한 자락 끝날 때 마다 부드럽게“오~ 주예수여~~”를 연신 외쳤습니다. 이는 마치 내가 들어서니 주님이 보낸 줄로 간주하여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듯이 들렸습니다. 이해가 되나 그러나 이를 연발로 외쳐대니까 좀 이상했습니다.
이튼 날 일요일이라 집회에 참석하니 이때는 모두가 다 큰소리로 “오~ 주예수여~~”를 크게 연신 외쳐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저 관망만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집회 내용이나 상황 등이 자세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구원파를 박차고 나왔기에 흥분했던 탓이랄까??...
어언 집회가 끝나고 상호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차로 중심형제가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하기에 따라갔고, 이때도 여러 명이 같이 갔었습니다.
다과와 차를 내오기에 이를 먹고 나니 나에게 무언가를 듣고 싶은 눈치 같아서 내가 한다는 소리는, 진리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대뜸 “형제님, 여기는 불자들이 말끝마다 합장하며 나무아비타불, 나무아비타불 하는 것처럼, 왜 오 주예수여를 연발하시는 것입니까? 선입감이 영 안 좋은 데요. 라고 하니, 그 형제는 <행9;14>을 열어 보여줬습니다.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나는 그 구절을 보는 순간 내 영혼이 충격을 받아 그 무엇인가 모를 것들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허망한 느낌과, 동시에 내속에서 탄식의 절규는,
“아~~ 나는 지금까지 주의 이름 밖의 사람이었구나.”하고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부끄럽고 창피해 사람들을 등지고 벽을 향해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거기서는 주의 이름에 대하여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빨려들어 갔었습니다.
이제 글이 너무나 길어 끝을 맺어야 하겠군요.
마지막으로 지방교회를 그만두게 된 사연을 간단하게 올립니다.
1981년도 11월 말에 구원파를 나와 1982년도는 거의 (지방)교회에서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때는 집회 때 모든 지체들이 돌아가며 간증(신원)할 때 “오~주예수여~~”를 외친 후 막바로 “이 상수형제님이 들려주신 오늘의 메시지는....”이렇게 말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정(집)교회로 안착
이것이 속이상해 집회에 참석하질 않으니, 지금은 돌아가셔서 없는 형제입니다만 그 형제가 우리 집과 가까운 관계로 찾아와 이유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에 “왜 거룩하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회수와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횟수가 같습니까.”이고 또 다른 결정적 이유는 곧 휴거문제였습니다.
이 상수형제님의 휴거론은 생활가운데서 이기는 자들이 환란전에 들림(휴거)받는다고 가르치기에 이를 단서로 그곳을 그만두었습니다. 이에 저의 휴거론은, 주의이름을 부름으로 환란후에 들림을 받는다. 입니다.
저를 주님의 이름을 영접케한 (지방)교회에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반면 이 상수형제님의 메시지는 오류도 있어 조심해야할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루한 글, 감사합니다.
<행7:59> 그들이 스테판을 돌로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말하기를
"주 예수여, 나의 영을 받아 주소서." 하고
7:60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이 말을 하고 잠드니라.<한킹>.
추신;
지금 게시한 ‘향유’는 1982년도에 깨달았습니다.
나름대로 여러 말씀들이 풀어졌습니다. 그때마다 너무 좋아 밤잠을 약 서너 달씩 못자니 저의 아내는 이에 놀라 신경과에서 약을 지어왔고, 그로부터 약을 약 5년 동안이나 복용도 했었습니다만 그래도 정신적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에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의 모든 답은 주의 이름입니다.
첫댓글 형제님의 신앙 여정의 글을 인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의 인식이 더욱 깊어짐을 감사합니다.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계 3:8) -아멘-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십자가가 그 최종 목적지인 교회로 우리를 이끔에 대한 인식은 제게 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형제님의 마지막 결론의 글에서 "성경의 모든 답은 주의 이름입니다." 를 묵상하다가 (마 18: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교회)...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목적이 주님 이름 안에 있음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형제님과의 귀한 만남속에서 저의 인식의 지평이 넓혀지게 됨을 주(主)께 감사드립니다. 형제님의 삶속에서 믿음과 노정의 과정을 통과해 하나님의 계획과 최종 목적지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으로 이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크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우리를 당신의 이름안으로 깊이 이끄소서~~
감리교를 읽으면서 저도 옛날일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금방 갓결혼한 전도사 부부였는데 교회에서 부흥강사를 불러서 집회를 하였습니다..그부훙강사가 교회에 헌금하는것에 대해 성경을 인용을 해가면서 설교를 하니 도저히 헌금을 안하고는 견딜수 없게 만들었지요..그래서 그만 집도 없는 전도사 부부가 결혼예물로 받은것과 바칠수 있는것들을 몽땅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때 엄마가 나중에 저젊은 부부가 시험들지 않을까 걱정을 하시더군요..고딩2년때 였으니 아주 오래되었네요.
간결하면서도 재밋게 적어주셨습니다..이상수형제의 휴거론은 이기는자들이 환난전 휴거라 하셨는데 전 그말에 공감이 갔구요..전 환난통과론자이지만 중간이지 후는 아닙니다..^^ 모두 인정합니다..사실 이모든것은 그때 가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살전5:2절에서 의미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이 비밀스럽게 감취어져 있다가 아무도 알지 못하게 온다는것으로 ..(마태24:42-44,계 3:3) 이해 하기때문에 그래서 전 이런점은 별로 문제삼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부르지저님이 나누어주시는 이러한 귀한 간증을 우리모두 주님의 사랑으로 감싸이길 바랍니다..수고하셨습니다..^^
^^ 헤세드님, 말다툼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심스레 한 말씀드립니다.^^
휴거론은 재림론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재림론만은 싫건 좋건 꼭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이며, 동시에 바른 재림관이 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휴거는 대 환란 후에 일어난다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르지저님...좋은 간증 잘 보았습니다.
형제님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이름(the Name)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 바로 [주 예수 ] 이십니다.
아멘...
아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은 곧 "예수"입니다.
감리교에 계셨다니 반갑습니다.
어느 종파든 문제는 있을것입니다. 인간(짐승)이었던 저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주님의 자녀가 됬으니 주님의 자녀로서 교제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가정사역에 계신다니 그 심경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저희도 가정에서 6년이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가 더 돈독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comelord님,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도 젖동생이 목사입니다만 신앙은 서로 다르게 가고있습니다.
먼저 저를 이해해 주시니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같이 연구하여 다만 한치의 오차라도 좁혀나가 주님앞에 서기를 기도드립니다.
부르지저 형제님을 인터넷을 통해 알고 지낸지가 벌써 수년인데,
이런 진솔한 간증은 이곳에서 풀어 놓으셨네요.
간증 잘 들었습니다.^^
쉐카이나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나 봅니다.
이른바 구원파 교회와 지방교회는 교회 광고와 전도를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저는 여태까지 오프 라인에서 한번도 그분들을 만난 적도 없고 교회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교회 홈페이지도 찾을 수 없네요..읍면 정도의 동네 규모에는 구원파 교회와 지방교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유독 기독 카페에서는 구원파 교회와 지방교회가 자주 이슈화 됨을 봅니다.
구원파 이요한 계열 교회당은 2013년2월 현재 한국 내에만 약 200 여 곳이 있습니다.
'부르지저'님, 님의 본글을 읽고, 댓글까지도 잘 읽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휴거는 대 환란 후에 일어난다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다'는 곳이 어딘지요? 그 章과 節을 알고 싶습니다. [쪽지로라도 알려만 주십시오. 변론은 저도 사양하겠습니다.]
부르지저님의 흔적을 온라인 여러 곳에서 봅니다만 이런 간증은 처음이네요... 잘 봤습니다.
글을 잘 읽었습니다..주의이름,이란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앞으로도 좋은 말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한 간증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소중한 이름이요 존재이십니다. 아멘~!
샬롬!! 그동안 한 마디로...참 험악한 삶을 사셨내요...
부르지저님 간증을 오늘 다시 읽었네요.
그동안 이곳에서 구원파 이야기도, 지방교회 이야기도 많이 깊게 나온 후에라 부르지저님의간증을 읽으니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웃음도나고, 재밋고, 은혜스럽기도 합니다.
전세금 바친것에대한 기도를, 돈 돌려받지 않아도 좋으니 말씀을 열어달라는 기도는 참으로 훌륭한 기도인데
어떻게 그런기도를 할수있었는지 그지혜와 갈망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지방교회에 대하연 이곳에서 많이 알게되었구 단점도 들었으나 이곳에서 글쓰신 지방교인들은
훌륭한 크리스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주예수여와 이상수형제님 이름이 동일한횟수로 불리우는건 얼마든지 고칠수 있는거고, 고칠수 있을텐데
왜 안 고치는지 모르겠구만요.
그리구 휴거론이 다르다는것은 다른말씀들을 해석하는데도 많은 차이가 나는가 봅니다.
많은 차이가 날것 같긴 합니다. 제생각에도.
저는 가끔 오늘도 주 예수여를 나지막하게 불렀습니다.
아직은 주여~ 라 부르는게 더 친근감이 있지만, 주 예수여~ 라고 그 이름을 부르는것은 성경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먼저주일저녁 티비에서 보니까 월드비젼교회 젊은목사님이 설교끝난후 통성기도를 시작하면서
주여 라고 삼창을 안하고 예수여~ 라고 크게 삼창을 하길래 신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