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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경전연구회) 녹취20
夫如佛六通者는 不然하야 入色界不被色惑하며
부여불육통자 불연 입색계불피색혹
入聲界不被聲惑하며 入香界不被香惑하며
입성계불피성혹 입향계불피향혹
入味界不被味惑하며 入觸界不被觸惑하며 入法界不被法惑하니라
입미계불피미혹 입촉계불피촉혹 입법계불피법혹
所以로 達六種色聲香味觸法이 皆是空相이라
소이 달육종색성향미촉법 개시공상
不能繫縛此無依道人하야 雖是五蘊漏質이나 便是地行神通이니라
불능계박차무의도인 수시오온누질 편시지행신통
“대저 부처님의 육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물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물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소리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소리의 미혹함을 받지 않으며, 냄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냄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맛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맛의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감촉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감촉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법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법의 경계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이 여섯 가지가 모두 텅 비었음을 통달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무의도인을 속박할 수 없다. 비록 오온의 번뇌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바로 이것이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地行神通]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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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如佛六通者는 不然하야 入色界不被色惑하며
부여불육통자 불연 입색계불피색혹
대저 부처의 육통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아니해서 색계에 들어가되 색의 미혹을 입지 아니해.
入聲界不被聲惑하며 入香界不被香惑하며
입성계불피성혹 입향계불피향혹
소리를 듣더라도 소리의 미혹을 입지 아니해.“수처작주(隨處作主)한다” 이거야. 냄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냄새의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入味界不被味惑하며 入觸界不被觸惑하며入法界不被法惑하니라
입미계불피미혹 입촉계불피촉혹 입법계불피법혹
맛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맛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감촉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감촉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법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법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所以로 達六種色聲香味觸法이 皆是空相이라
소이 달육종색성향미촉법 개시공상
달육종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이 다 공상인줄을 알라. 깨닫고 통달하라.
不能繫縛此無依道人하야 雖是五蘊漏質이나 便是地行神通이니라
불능계박차무의도인 수시오온누질 편시지행신통
‘무의도인(無依道人)’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참 사람”그 사람을 계박, 묶을 수가 없어. 아무리 형무소에 가두고, 그 형무소를 또 큰 형무소에다가 또 가두고, 그 형무소를 또 더 큰 형무소에다 가두고 이렇게 해 놓는다 하더라도 이 무의도인은 마음대로 돌아다니니까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어! 구속도 안 당해! 불능계박차무의도인(不能繫縛此無依道人)! 그렇잖아요? 여기에 앉아 있어도 “뭐, 아이구! 니(너) 그런 소리, 외도 같은 소리 듣기 싫다”하고 딴 데 실컷 돌아다니고, 관세음보살이나 실컷 부르고 앉아 있으면 할 수가 없는 것 아니 예요. 그렇죠? 허허허~
혼자 관세음보살 부르고 있으면 부르고 있는 거지 뭐. 임제 스님 말씀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왜 그러하냐? 무의도인이 있어서 그렇다 이거야. 대단한 거죠. 그게! 불능계박차무의도인이야! 개개인의 무의도인은 누구도 속박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입니다.“수시오온누질(雖是五蘊漏質)이나”육신의 걸리적거리는 이 몸뚱이가 있지만“편시지행신통(便是地行神通)이니라”이것은 곧 이 몸뚱이를 가지고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을 부린다 이거야. 참, 기절할 이야기고 숨 막히는 이야기죠. 이게 진짜 신통이다 이거야. 지행신통! 이건 아마 팔만대장경 어디에도 없는 말 일거예요.
지행신통! 조금 있으면 스님들이 전부 지행신통으로 갈 거예요. 솔직하게 그보다 더 훌륭한 신통은 없어요. 웃을 일 있으면 웃고, 슬프면 슬퍼할 줄 아는 것. 큰 신통이야! 이건요 부처 아니라 우 부처도 이 이상이 없고, 조사 아니라 우 조사도 이 이상 없습니다. 그러면 됐잖아요. 우리는 절대 소심해 할 게 아니라 정말 당당하게 또 그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히 이런 능력의 소유자라고 하는 것. 이것으로서 당당하게 살아야 되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을 이해 시켜주는 게 제일 큰 복입니다. 이 이상 좋은 게 없으니까! 세상에 보물이 있다면 이 보다 더 훌륭한 보물은 없죠. 이러한 것을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는 아주 곱게 곱게 어떤 체계를 밟아 가면서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설명을 잘 하죠. 설화와 별별 이야기들을 곁들여서 하는데 여기는 정말 거칠죠. 당신이 이야기 하고 싶은 대로 막 해버리는 거예요. 직설적으로,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우리의 미혹을 깨우쳐주는 가르침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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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 삼계가 오직 마음이다
道流야 眞佛無形이요 眞法無相이라 儞祇麽幻化上頭에
도류 진불무형 진법무상 이지마환화상두
作模作樣하야 設求得者나 皆是野狐精魅요
작모작양 설구득자 개시야호정매
幷不是眞佛이니 是外道見解니라
병불시진불 시외도견해
夫如眞學道人은 幷不取佛하며 佛取菩薩羅漢하며
부여진학도인 병불취불 불취보살나한
不取三界殊勝하고 逈然獨脫하야 不與物拘니라
불취삼계수승 형연독탈 불여물구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참 부처는 형상이 없고 참된 법은 모양이 없다. 그대들은 그와 같은 변화로 나타난 허깨비에서 이런 모양을 짓고 저런 모양을 짓는구나. 설사 그런 것을 구하여 얻는다 하더라도 모두 여우의 혼령들이며 결코 참된 부처가 아니다. 이는 바로 외도의 견해인 것이다. 진정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부처마저도 취하지 않으며 보살과 나한도 취하지 않고 삼계의 뛰어난 경계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멀리 홀로 벗어나 사물에 전혀 구애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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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眞佛無形이요 眞法無相이라 儞祇麽幻化上頭에
도류 진불무형 진법무상 이지마환화상두
“삼계(三界)가 유심(唯心)” 우리가 흔히 들어온 이야기죠. 그대들의 환화(幻化), 이름이니 형상이니 이런 것들이 전부 환화죠. 허망한 것이고 환영과 같은 것이다.
作模作樣하야 設求得者나 皆是野狐精魅요
작모작양 설구득자 개시야호정매
환화위에 모양을 지어가면서“설구득자(設求得者)나”설사 구해서 얻은 것이 있으나“개시야호정매(皆是野狐精魅)요”모두다 여우나 도깨비들의 귀신이고
幷不是眞佛이니 是外道見解니라
병불시진불 시외도견해
아울러‘진불(眞佛)’야호라면 여우지. 그런데‘정매(精魅)’하면 죽은 여우의 귀신이다.“병불시진불(幷不是眞佛)이니”죽은 여우의 귀신, 바로 그런 것이지 진불이 아니다.“시외도견해(是外道見解)니라”이것은 외도의 견해다.
夫如眞學道人은 幷不取佛하며 佛取菩薩羅漢하며
부여진학도인 병불취불 불취보살나한
예컨대 참다운 학도인은 부처도 취하지 아니하며, 보살나한도 취하지 아니하며
不取三界殊勝하고 逈然獨脫하야 不與物拘니라
불취삼계수승 형연독탈 불여물구
삼계 수승한 것도 취하지 아니해.“형연독탈(逈然獨脫)하야”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멀리 홀로 벗어나서“불여물구(不與物拘)니라”사물과 어떤 외적인 조건 어떤 수승한 이론에도 구애 받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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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倒覆하야도 我更不疑하며 十方諸佛現前하야도
건곤도복 아갱불의 시방제불현전
無一念心喜하고 三塗地獄頓現하야도 無一念心怖하나니
무일념심희 삼도지옥돈현 무일념심포
緣何如此오 我見諸法空相일새 變卽有하고 不變卽無니라
연하여차 아견제법공상 변즉유 불변즉무
三界唯心이요 萬法唯識이니 所以로 夢幻空花를 何勞把捉가하니라
삼계유심 만법유식 소이 몽환공화 하로파착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해도 나는 더 이상 의혹하지 않는다.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앞에 나타난다 하여도 한 생각도 기쁜 마음이 없다. 삼악도의 지옥이 갑자기 나타난다 하여도 한 생각도 두려운 마음이 없다. 어째서 그런가. 나는 모든 법은 공한 모습이라 변화하면 곧 있고 변화하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본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은 오직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꿈이요, 환상이요, 헛꽃인 것을 무엇 때문에 수고로이 붙드려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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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倒覆하야도 我更不疑하며 十方諸佛現前하야도
건곤도복 아갱불의 시방제불현전
하늘과 땅이 뒤집어 진다하더라도 나는 이 사실에 대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 아니하고, 시방제불이 내 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실만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無一念心喜하고 三塗地獄頓現하야도 無一念心怖하나니
무일념심희 삼도지옥돈현 무일념심포
더 이상 기뻐하지 않는다. 참, 대단하다! 얼마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습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처럼 자신감이 있어야만 우리가 불법을 만난 보람이고 소득이죠. 무슨 본사 주지 열 번 정도하고, 총무원장 한 100번쯤하고, 종정 얼마나 한 것이 대단하고 자신감이 있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겁니다. 뭐요?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하더라도 이 사실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아갱불의(我更不疑)”시방제불이 현전한다 하더라도“무일념심희(無一念心喜)라”이 사실, 이것이 내가 기쁜 것이지 시방 제불이나 억만 부처가 내 앞에 나타나서 나를 칭송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다 이거야.
내가 방금 말한“참 나”에 대한 이 사실만이 소중할 뿐이다. “삼도지옥돈현(三塗地獄頓現)하야도”삼도 지옥은 화도ㆍ혈도ㆍ도도 그런 것이 있어요. 아주 흉악한 지옥이 삼도지옥인데 그것이 한꺼번에 다 나타나도“무일념심포(無一念心怖)하나니”무위진인, 참 나에 대한 이 사실, 보고 들을 줄 아는 이 능력 이 사실에 대해서만 내 소신이 확실하다면 한 생각도 두려워 할 것이 없나니
緣何如此오 我見諸法空相일새 變卽有하고 不變卽無니라
연하여차 아견제법공상 변즉유 불변즉무
어째서 이와 같은가? 내가 보니 모든 법은 공하기 때문이다. 육조단경에서도 그런 말 있죠?“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하고 풍고산상격(風鼓山相擊)이라도 진상적멸락(眞常寂滅樂)은 열반상여시(涅槃相如是)이다”겁화(劫火), 지구가 마지막에 성주괴공으로 돌아갈 때 불(劫火)이 일어난다고 그러죠. 그래서 바다 밑까지 다 태우는 거야. 다 태운다는 뜻이죠. 바다 밑까지 태운다는 것은 풍고산상(風鼓山相), 바람이 그냥 몰아쳐가지고 산과 산이 부딪히는 거야. 여름날 태풍보다 수 천 배 더 강한 그런 태풍이 몰아쳐서 여기 동양에 있는 산과 서양에 있는 산이 그냥 같이 몰아치는 그런 정도가 된다 하더라도 진상적멸락(眞常寂滅樂)은 열반상여시(涅槃相如是)라. 내가 보고 듣는 이 사실! 이 능력! 여기에 있어서는 요지부동이다 이거야. 요지부동이다. 그런 표현도 육조 스님이 하셨는데 다 같은 맥락이죠.“변즉유(變卽有)하고 불변즉무(不變卽無)니라”변하면 있고 변하지 아니한 것은 없는 것이니라.
三界唯心이요 萬法唯識이니 所以로 夢幻空花를 何勞把捉가하니라
삼계유심 만법유식 소이 몽환공화 하로파착
아, 제가 좋아하는 신심명! 꿈이요 환이요 헛꽃인 것을 어찌하여 수고로이 붙들려고 하는가.“몽환공화(夢幻空花) 하로파착(何勞把捉)”“득실시비(得失是非)일시방각(一時放却)”소득이 있느니 손실이 있느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을 일시에 놓아버려라. 다 놓아 버려라! 이렇게 툭 터져 버리면 오죽 좋겠습니까마는 중생의 사량분별로서도 자꾸 되 뇌이며 즐거워하고 감동하고, 야! 대단하다 바로 이것이구나! 내 살림살이구나! 이렇게 하므로 해서 또 그게 내 공부일수가 있다 구요. 어느 순간 툭 터져가지고 더 이상 손댈 것이 없으면 말할 나위가 없지마는 그렇지 못할 때는 이것도 그 나름대로 상당히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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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唯有道流의 目前現今聽法底人하야 入火不燒하며
유유도류 목전현금청법저인 입화불소
入水不溺하며 入三塗地獄호대 如遊園觀하며
입수불익 입삼도지옥 여유원관
入餓鬼畜生而不受報하나니 緣何如此오 無嫌底法일새니라
입아귀축생이불수보 연하여차 무혐저법
儞若愛聖憎凡하면 生死海裏沈浮하리니 煩惱由心故有라
이약애성증범 생사해리침부 번뇌유심고유
無心煩惱何拘리오 不勞分別取相하면 自然得道須臾니라
무심번뇌하구리 불노분별취상 자연득도수유
儞擬傍家波波地學得하면 於三祇劫中에 終歸生死하리니
이의방가파파지학득 어삼지겁중 종귀생사
不如無事하야 向叢林中하야 牀角頭交脚坐니라
불여무사 향총림중 상각두교각좌
“오직 도를 배우는 벗들의 눈앞에 법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삼악도의 지옥에 들어가도 마치 정원을 구경하며 노는 듯하고, 아귀 축생에 들어가도 그 업보를 받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만약 성인은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생사의 바다에 떴다 잠겼다 할 것이다. 번뇌는 마음을 말미암아서 생겨나는 것이니 마음이 없다면 번뇌기 어찌 사람을 구속하겠는가?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느라 헛수고하지 않으면 저절로 잠깐 사이에 도를 얻을 것이다. 그대들이 분주하게 옆 사람에게 배워서 얻으려 한다면 삼 아승지 겁 동안 애를 써도 결국은 생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아무런 일 없이 총림의 선상 구석에서 두 다리를 틀고 앉아 있느니만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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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有道流의 目前現今聽法底人하야 入火不燒하며
유유도류 목전현금청법저인 입화불소
위와 같은 맥락에서“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이런 표현을 했는데 항상 이것이죠. 그러니까 어떤 현상은 너무 변화무쌍하니까 거기에 끄달리지 말라. 아무리 나쁜 삼도지옥이나 아무리 좋은 극락세계나 화장세계, 법신 보신 화신의 경계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 현상이고 표현이고 의변지경(依變之境)이다. 무엇엔가 의지해서 변화시킨 하나의 경계다. 그것을 쫓아 갈 것이 아니고 그럼 뭐냐? 바로‘목전현금(目前現今)’지금 눈앞에서, 이 순간 청법저인(聽法底人)! “입화불소(入火不燒)하며”그것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入水不溺하며 入三塗地獄호대 如遊園觀하며
입수불익 입삼도지옥 여유원관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삼도지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마치 공원에 바람 쐬러 나가서 다니는 그런 기분이 되고
入餓鬼畜生而不受報하나니 緣何如此오 無嫌底法일새니라
입아귀축생이불수보 연하여차 무혐저법
아귀축생에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아귀 축생의 보호를 받지 아니해. 무슨 인연으로 그와 같으냐? “무혐저법(無嫌底法)일새니라” 좋고 싫어함이 없는 그런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야. 바로 이 한마음의 세계, 일심의 세계에서 진정한“나” 이것은 전부 나야. 화내는 나도 나고, 슬퍼하는 나도 나고, 기뻐하는 나도 나야. 또 어쩌다 염불하고 간경하고 참선해서 마음이 평정하게 된 조용한 그런 나 도 나야. 어느 것은 나고, 어느 것은 나 아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야. 무혐저법(無嫌底法)이야! 이 도리는 그냥“나” 일 뿐이라!
儞若愛聖憎凡하면 生死海裏沈浮하리니 煩惱由心故有라
이약애성증범 생사해리침부 번뇌유심고유
그대들이 만약에 성인의 경지를 사랑하고 범부를 미워하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떳다 잠겼다 할 것이다.“번뇌유심고유(煩惱由心故有)라”번뇌는 마음을 말미암아서 있는 것이다.
無心煩惱何拘리오 不勞分別取相하면 自然得道須臾니라
무심번뇌하구리 불노분별취상 자연득도수유
무심할 것 같으면 번뇌가 어디에 구속 되리오.“불노분별취(상不勞分別取相)하면”수고로이 분별을 해서 상을 취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자연득도수유(自然得道須臾)니라”순식간에 득도를 하게 된다.
儞擬傍家波波地學得하면 於三祇劫中에 終歸生死하리니
이의방가파파지학득 어삼지겁중 종귀생사
자기를 놔두고 그대가 옆집으로 옆집으로‘파파지(波波地)’분주하게 쫓아다니면서 배우려할 것 같으면“어삼지겁중(於三祇劫中)에”삼 아승 지겁 가운데“종귀생사(終歸生死)하리니”애를 쓰고 애를 써도 결국은 생사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不如無事하야 向叢林中하야 牀角頭交脚坐니라
불여무사 향총림중 상각두교각좌
일없는 거와 같지 못하다. 총림중을 향해서 좌선하는 평상위에서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모습,‘상각두(牀角頭)’라는 것은 좌선하는 평상이거든요. 우리가 결가부좌를 하던지 반가부좌를 하던지 그렇게 앉아라. 출가한 승려들이야 그것 밖에 볼 일이 더 있나? 총림중을 향해서 그냥 앉아봐라. 그것도 꼭 필요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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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 주객이 서로 만나다
道流야 如諸方有學人來하야 主客相見了하고
도류 여제방유학인래 주객상견료
便有一句子語하야 辨前頭善知識이라
편유일구자어 변전두선지식
被學人拈出箇機權語路하야 向善知識口角頭攛過하야
피학인염출개기권어로 향선지식구각두찬과
看儞識不識이어든 儞若識得是境이면 把得하야
간이식불식 이약식득시경 파득
便抛向坑子裏하나니라 學人이 便卽尋常然後에
편포향갱자리 학인 편즉심상연후
便索善知識語하나니 依前奪之하면
편색선지식어 의전탈지
學人云, 上智哉라 是大善知識이여하리니
학인운, 상지재 시대선지식
卽云, 儞大不識好惡로다하고 如善知識이 把出箇境塊子하야
즉운, 이대불식호오 여선지식 파출개경괴자
向學人面前弄하면 前人辨得하야 下下作主하야 不受境惑이라
향학인면전농 전인변득 하하작주 불수경혹
善知識이 便卽現半身에 學人便喝한대 善知識이
선지식 편즉현반신 학인편할 선지식
又入一切差別語路中擺撲하면 學人云, 不識好惡로다
우입일체차별어로중파박 학인운, 불식호오
老禿奴여하야 善知識이 歎曰, 眞正道流로다하니라
노독로 선지식 탄왈, 진정도류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예컨대 여러 곳에서 학인이 찾아왔을 때 주인과 객이 인사를 나눈 뒤 학인이 대뜸 한마디를 던져 앞에 있는 선지식을 알아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학인으로부터 한 가지[箇] 시험하는 말[機權語路]을 끄집어내어 선지식을 향해서 입씨름하는 말[口角頭]을 던져서,‘보십시오! 스님께서는 이걸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당하게 된다. 그때 선지식이 만약 시험하는 말이라는 것[是境]을 알면 그 말을 잡아서 곧바로 학인을 궁지로 몰아넣는다[구덩이에 던져 버린다]. 그때 학인은 곧 태도를 고치고 평상의 자세로 돌아간 뒤 곧 선지식의 말[가르침]을 찾는다. 그러면 선지식은 여전히 그를 부정해 버린다. 학인이 말하기를‘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큰 선지식입니다.’라고 한다. 그 선지식은 곧‘이 녀석은 도대체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구나’라고 한다.
또 선지식이 하나의 시험하는 말[境塊子]을 학인 앞에 내놓고 희롱하면 그 학인이 알아차리고 하나하나 주제를 지어서 경계에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다시 선지식이 곧 진심을 조금[半身] 드러내 보이면 학인은 곧바로“할!”하고 고함을 친다.
선지식이 다시 여러 가지 차별된 말로 시험해 보는데, 학인이‘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구나. 이 늙고 머리 깎은 중아.’하면 선지식은 찬탄하기를,‘진정으로 도를 배우는 벗이로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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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이 서로 만나다”그랬습니다. 이건 법거량의 한 예를 여기다 이야기를 해놨습니다. 조금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한데, 우리가 보통 사람들을 대했을 때 그 경우에 비추어서 이해하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참고로 주과 객이 만나다.“주객상견(主客相見)”이라고 했으니까 “거량의 한 예다” 이렇게 보면 돼요.
道流야 如諸方有學人來하야 主客相見了하고
도류 여제방유학인래 주객상견료
제방에서 학인들이 오면 주인과 객이 서로 본다 이거야. 선지식하고 찾아온 수행자하고 마주보게 되죠.
便有一句子語하야 辨前頭善知識이라
편유일구자어 변전두선지식
거기서 의례히 한마디 던지죠.“변전두선지식(辨前頭善知識)이라”앞에 있는 선지식을 가려낸다. 시험한다 이 말이야. 시험 삼아 던지는데
被學人拈出箇機權語路하야 向善知識口角頭攛過하야
피학인염출개기권어로 향선지식구각두찬과
학인이‘기권어로(機權語路)’어떤 상대에 맞춰서 저울질 해보는 말입니다. 한마디 턱~ 던져 보는 거야. 우정 해보는 말이지. 그걸 이제 집어내어 연출해서“향선지식구각두찬과(向善知識口角頭攛過)하야”선지식을 향해서‘구각두찬과(口角頭攛過)’입씨름을 한다 이 말입니다.
看儞識不識이어든 儞若識得是境이면 把得하야
간이식불식 이약식득시경 파득
입씨름으로 한번 던져서“간이식불식(看儞識不識)이어든”그 사람이 아는지 모르는지를 살펴봄을 입게 되거든 저 위에 있는‘피(被)’자를 여기다 새기죠. 그런 일을 당하게 되거든, 그러니까 학인이 와서 뭐라고 한마디 이렇게 시험 삼아 던져보는 그 말에 선지식이 어떻게 말을 하는가? 그 말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입게 되거든“이약식득시경(儞若識得是境)이면”그대들이 만약에(학인이 시험하는 그 말)알게 될 것 같으면 그 말을“파득(把得)하야”잡아서
便抛向坑子裏하나니라 學人이 便卽尋常然後에
편포향갱자리 학인 편즉심상연후
구덩이에 갖다 집어 던진다. 구덩이에다가 던져버린다는 말은 그 말을 따라가지 않고 그 말을 폐기처분한다 이 말입니다.“학인(學人) 편즉심상연후(便卽尋常然後)에”그럴 것 같으면 학인이 곧 심상한다.‘연후(然後)’가만히 있다 이 말이야.
便索善知識語하나니 依前奪之하면
편색선지식어 의전탈지
그런 뒤에 선지식의 말을 찾게 되나니“의전탈지(依前奪之)하면”그러면 바로 그 사람의 생각과 말을 빼앗아 버린다.
學人云, 上智哉라 是大善知識이여하리니
학인운, 상지재 시대선지식
학인이 말하기를“상지재(上智哉)라”아이구 대단하십니다. 지혜가 아주 높습니다. 라고 그렇게 한다 이거야. 그러면서 “상지재(上智哉)라 대선지식(大善知識)이여!”하나니
卽云, 儞大不識好惡로다하고 如善知識이 把出箇境塊子하야
즉운, 이대불식호오 여선지식 파출개경괴자
그때 곧 말하기를“이대불식호오(儞大不識好惡)로다하고”너무나 호오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하니라. 여기서 대(大)자는 <전혀> 호오를 알지 못한다. 예컨대 저 선지식이“파출개경괴자(把出箇境塊子)하야”어떤 한 가지 말, 이건 경계의 흙덩어리. 일개 경계의 흙덩어리라고 했으니까!“사자(獅子)는 교인(咬人)하고 한로축괴(漢盧逐塊)라”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무는데 삽살개는 그 돌을 쫓아가는 거지. 그런 경우 그런 흙덩어리를 잡아내서
向學人面前弄하면 前人辨得하야 下下作主하야 不受境惑이라
향학인면전농 전인변득 하하작주 불수경혹
학인의 면전을 향해가지고 놀린다 이 말이야. 희롱을 해서“전인변득(前人辨得)하야”학인이 그것을 알아가지고서“하하작주(下下作主)하야”낱낱이 주제를 지어서“불수경혹(不受境惑)이라”경계의 미혹을 받지 아니하며
善知識이 便卽現半身에 學人便喝한대 善知識이
선지식 편즉현반신 학인편할 선지식
선지식이 곧 진심을 조금(半身)나타내면“학인편할(學人便喝)한대”선지식이 뭔가 조금 보여 줄 듯하면 학인이 곧 할을 한다. 선지식이 또
又入一切差別語路中擺撲하면 學人云, 不識好惡로다
우입일체차별어로중파박 학인운, 불식호오
‘일체차별어로중(切差別語路中)’에 들어가서 두드리고 건드린다.‘파박(擺撲)’이라는 말은 두드리고 건드린다 이 말이야. 두드리고 건드릴 것 같으면 학인이 말하기를“불식호오(不識好惡)로다”아무것도 모르는 선지식이구나!
老禿奴여하야 善知識이 歎曰, 眞正道流로다하니라
노독로 선지식 탄왈, 진정도류
이 머리 깎은 늙은 종이여!‘노독로(老禿奴)’머리 깎은 종이다 이거야. 밥만 먹고 세월만 보냈다는 뜻으로 그 당시 늙은 독로라는 말을 썼습니다. 선지식이 찬탄하며 가로되“진정도류(眞正道流)로다하니라” 야, 대단한 도류구나! 이렇게 말하는 그런 거량의 예가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야기 해오던 것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데 이런 이야기가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14-15 귀신과 도깨비들”도 또 비슷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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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귀신과 도깨비들
如諸方善知識은 不辨邪正하야
여제방선지식 불변사정
學人이 來問菩提涅槃三身境智하면
학인 래문보리열반삼신경지
瞎老師가 便與他解說타가 被他學人罵著하고
할노사 편여타해설 피타학인매착
便把棒打他言無禮度하나니
편파봉타타언무례도
自是儞善知識無眼이라 不得瞋他로다
자시이선지식무안 부득진타
“제방의 여러 선지식들은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인이 찾아와서 보리와 열반과 삼신(三身)과 경계와 지혜 등을 묻는다. 눈이 먼 노사는 그에게 해설을 해 주다가 학인으로부터 힐난을 받게 되면 곧바로 몽둥이로 후려치면서‘이 예의와 법도도 모르는 놈아!’라고 한다. 그것은 스스로 그대들 선지식들이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 학인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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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諸方善知識은 不辨邪正하야
여제방선지식 불변사정
여제방선지식은 사와 정을 가리지 못해서
學人이 來問菩提涅槃三身境智하면
학인 래문보리열반삼신경지
보리와 열반 그리고 삼신경지, 이런 것을 물을 것 같으면
瞎老師가 便與他解說타가 被他學人罵著하고
할노사 편여타해설 피타학인매착
눈먼 노사가 그 사람에게 해설해 주다가“피타학인매착(被他學人罵著)하고”무슨 선지식이 그 따위 너절한 소리를 하느냐고 이렇게 꾸짖음을 당하고는
便把棒打他言無禮度하나니
편파봉타타언무례도
그 사람에게 한 방망이 치면서 선지식에게 예도가 없다! 너무 무례하다! 하는 짓이 그게 뭐냐고 그렇게 하게 된다 이거지.
自是儞善知識無眼이라 不得瞋他로다
자시이선지식무안 부득진타
그러고는 본래 그 선지식이 안목이 없어서 꾸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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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一般不識好惡禿奴하야 卽指東劃西하며 好晴好雨하며
유일반불식호오독노 즉지동획서 호청호우
好燈籠露柱하나니 儞看하라 眉毛有幾莖고 這箇具機緣에
호등롱로주 이간 미모유기경 자개구기연
學人不會하고 便卽心狂이라 如是之流는 總是野狐精魅魍魎이니
학인불회 편즉심광 여시지류 총시야호정매망양
被他好學人의 嗌嗌微笑하야 言瞎老禿奴여 惑亂他天下人이로다
피타호학인 익익미소 언할노독노 혹난타천하인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머리 깎은 중들이 있어서 동쪽을 가리키다 서쪽을 가리키고, 맑은 날을 좋아하다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며, 등롱(燈籠, 등불을 켜서 어둠을 밝히는 기구)과 노주(露柱, 법당의 드러난 둥근 기둥)를 좋아한다. 그대들은 잘 보아라! 눈썹에 털이 몇 개가 남아 있는가? 이 일에는 기연(機緣)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학인들은 알지 못하고 곧 미쳐버리는 것이다. 이런 무리들은 모조리 여우나 귀신 도깨비들이다. 그 좋은 학인들에게‘이 눈멀고 머리 깎은 늙은이가 온 천하 사람들을 미혹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구나’라는 비웃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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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一般不識好惡禿奴하야 卽指東劃西하며 好晴好雨하며
유일반불식호오독노 즉지동획서 호청호우
옳고 그른 것을 알지 못하는 머리 깎은 종이 있어서, 사실은 중이라는 뜻이 예요.“즉지동획서(卽指東劃西)하며”이리 가리키고 저리 가리킨다. 동을 가리키고 서를 긋는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선어(禪語)에서 흔히 잘 쓰는 말입니다. 그리고 “호청호우(好晴好雨)하며”맑은 것이 좋다 아니면 비 오는 날이 좋다. 가뭄에는 비가 오는 것이 좋죠. 또 오랜 장마에는 맑은 것이 좋죠. 지동획서, 호청호우라는 게 다 정해져 있지 않는 것. 그런 말입니다.
好燈籠露柱하나니 儞看하라 眉毛有幾莖고 這箇具機緣에
호등롱로주 이간 미모유기경 자개구기연
“호등롱로주(好燈籠露柱)하나니” 이건 이와 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등롱은 유정이라고도 하고 노주는 무정이라고도 하고, 등롱은 또 법당 안에 있는 것. 노주는 법당 밖에 있는 것. 등롱이 좋으니 노주가 맞느니 그런 별별 이야기가 많습니다. 주객을 말하는 것입니다.“이간(儞看)하라”그대는 잘 보라.“미모유기경(眉毛有幾莖)고”그렇게 해서 눈썹이 몇 개나 남아 있는가? 이건 삿된 법을 설할 것 같으면 눈썹이 빠진다하는 그런 속설이 있어요. 그렇게 삿된 법을 지동획서하고 호청호우하고 등롱로주, 등롱이 좋으니 노주가 좋으니 무슨 유식이 맞느니 이런 식으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방편으로 설해 놓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하고 그것을 정법이라고 그러다가는 눈썹이 몇 개나 남아 있겠는가? 이런 표현입니다.“자개구기연(這箇具機緣)에”이 기연을 갖춘 까닭에
學人不會하고 便卽心狂이라 如是之流는 總是野狐精魅魍魎이니
학인불회 편즉심광 여시지류 총시야호정매망양
학인이 알지 못하고서“편즉심광(便卽心狂)이라”학인의 마음이 그만 돌아버린다 이거야. 돌아버리게 되나니“여시지류(如是之流)는 총시야호정매망양(總是野狐精魅魍魎)이니”망령이요. 여우요. 또 귀신이요 도깨비이니
被他好學人의 嗌嗌微笑하야 言瞎老禿奴여 惑亂他天下人이로다
피타호학인 익익미소 언할노독노 혹난타천하인
저 멀쩡한 학인,‘호학인(好學人)’하면 아주 멀쩡한 학인의“익익미소(嗌嗌微笑)하야”낄낄거리고 웃게 되는 것을 입어서“언할노독노(言瞎老禿奴)여”이 눈멀고 머리 벗겨진 종이여.“혹난타천하인(惑亂他天下人)이로다”저 천하의 사람들은 전부 혹란하게, 미혹하게하고 어지럽게 하는 구나. 라는 그런 말은 당하게 된다는 듣게 된다하는 이런 말입니다. 이것도 역시 법거량의 어떤 사례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여기서 이렇게 한 예로서 이끌어다 놨습니다. 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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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 계율도 익히고 경론도 배웠다
道流야 出家兒는 且要學道니라 祇如山僧은 往日에
도류 출가아 차요학도 지여산승 왕일
曾向毘尼中留心하고 亦曾於經論尋討라가
증향비니중유심 역증어경론심토
後方知是濟世藥이며 表顯之說이라 遂乃一時抛却하고
후방지시제세약 표현지설 수내일시포각
卽訪道參禪하니라 後遇大善知識하야 方乃道眼分明하야
즉방도참선 후우대선지식 방내도안분명
始識得天下老和尙하야 知其邪正하니 不是娘生下便會요
시식득천하노화상 지기사정 불시낭생하편회
還是體究鍊磨하야 一朝自省하니라
환시체구연마 일조자성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난날 계율에 마음을 두기도 하였고, 경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나중에서야 그것들이 세간을 구제하는 약이며 겉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인 줄 알았다. 드디어 몽땅 다 버려 버리고 도에 대해서 묻고 선을 참구하였다.
그런 뒤에 큰 선지식을 만나 뵙고 나서야 마침내 도안(道眼)이 분명해져서, 비로소 천하의 노화상들이 삿된 지 바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안 것이 아니다. 깊이 연구하고 갈고 닦아서 어느 날 아침에 스스로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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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出家兒는 且要學道니라 祇如山僧은 往日에
도류 출가아 차요학도 지여산승 왕일
출가한 사람은 요컨대 도를 배워야 한다.“학선학도(學禪學道)”(예문:10-7 연야달다가 머리를 잃다 에서, 선을 배우고 도를 배운다고 하는 구나. 이름과 글귀를 잘못 알고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한다고 하는 구나. 선지식을 찾아가서 생각으로만 헤아리는 구나. 그렇게 잘못알지 말라.)에서는 안 된다면서 여기서는 또 이런 말을 했죠. 앞에서는 학선학도, 선을 배우거나 도를 배우는 것 다 엉터리다 그런 말 있었죠. 산승(山僧)은 왕일(往日)에
曾向毘尼中留心하고 亦曾於經論尋討라가
증향비니중유심 역증어경론심토
비니 가운데를 향해서 마음을 머물고“역증어경론심토(亦曾於經論尋討)라가”또한 일찍이 경론을 찾고 찾다가
後方知是濟世藥이며 表顯之說이라 遂乃一時抛却하고
후방지시제세약 표현지설 수내일시포각
뒤에 바야흐로 경이니 률이니 하는 것이 세상을 건지는 병에 따른 약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으며“표현지설(表顯之說)이라”말하자면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수내일시포각(遂乃一時抛却)하고”일시에 다 버려버렸다. 임제 스님은 교학 공부를 많이 했어요. 또 영가 스님도 본래 천태종에서 천태의 법맥을 이을 아주 촉망받는 그런 인물이었는데 육조 혜는 스님께 법맥을 받고 그만“일심을 깨닫는 것이 모두다.” 이렇게 알고는 그만 천태종에서 떠나버렸죠. 그래갖고 비방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기 임제 스님도 역시 경론을 찾고 또 비니중에 유심했다고 그러잖아요. 옛날 중국에서 총림의 법도가 제대로 섰을 때는 유론에 들어가지고 율사라고 따로 있었어요. 율사(律寺): 율하는 절, 강사(講寺): 강하는 절, 선사(禪寺):선하는 절, 염불하는 염불사가 따로 있고 그런 식으로 지금도 나누어져 있기도 하고 그래요. 옛날에 법도가 제대로 섰을 때는 모두가 계율을 한 7~8년 공부하고 그 다음에 경학을 공부하고 그런데 그런 절차를 이 스님이 다 밟았어요. 그러다가 여기에 자기 과거를 쭉 털어 놓는 그런 입장인데 그래서 수내일시포각(遂乃一時抛却)하고, 일시에 다 버리고는
卽訪道參禪하니라 後遇大善知識하야 方乃道眼分明하야
즉방도참선 후우대선지식 방내도안분명
‘방도참선(訪道參禪)이라’도를 묻고 참선을 했다.“후우대선지식(後遇大善知識)하야”뒤에 선지식을 만나가지고서 바야흐로“방내도안분명(方乃道眼分明)하야”도안이 분명해져서
始識得天下老和尙하야 知其邪正하니 不是娘生下便會요
시식득천하노화상 지기사정 불시낭생하편회
천하의 노화상을 다 잘 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지기사정(知其邪正)하니”어느 것이 삿된 선지식이고, 어느 것이 바른 선지식인줄 이제 알았으니“불시낭생하편회(不是娘生下便會)요”이것은 어머니에게서 곧 태어나자 말자 안 것이 아니고
還是體究鍊磨하야 一朝自省하니라
환시체구연마 일조자성
체구연마해서 얻었다 이 말이야. 아주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하고 연마해서 어느 날 아침에 스스로 살펴보게 되었다.“일조자성(一朝自省)” 참 그 말이 좋네요. 자기가 공부해온 그런 역사를 쭉 이렇게 소개를 했습니다. 이러한 것도 재수있으면 육조 스님같이 바로 눈을 뜰 수가 있지마는 3조 승찬 대사 같은 이들은 정말 부처 불(佛)자도 모르는 그런, 어려서 문둥병에 걸려가지고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그냥 계속 천대를 받고 동물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거지 생활로 살았죠. 얼굴과 몸이 형편없으니까!
우리 어릴 때만해도 문둥이 지나가면 사람취급 안 했어요. 돌 던지고 그랬거든요. 더 옛날 무지막지한 그런 시대는 더 했죠. 3조 승찬 스님은 평생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아! 내가 무슨 죄업으로 이런 몹쓸 문둥병에 걸렸는가?’해서 도승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분이 혜가 스님이라. 도승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거기 가서 내가 이 죄업을 참회나 하고 죽자하는 이런 생각이었어요. 마지막 선택으로서 혜가 스님을 찾아가서 죄업을 참회시켜달라고 하게 되었죠. 혜가 스님의 한마디에 깨달아 버렸지.
무슨 불교를 배우고, 천수경 외우고 반야심경 외우고 뭐 교리 외우고 이렇게 해가면서 깨달은 것이 아니거든요. 3조 승찬 대사가 그렇고, 육조 혜능 스님이 그렇고 그런 사례들이 사실 한 두 분이 아니죠. 여기 임제 스님은 어머니가 낳자마자 곧 안 것이 아니고, 체구해서 연마하다가 어느 날 아침 저절로 살펴보게 되었다. 깨달았다 이랬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랜 세월 연마체구(鍊磨體究)한다고 해서 깨닫는 조건이 되느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또 그것이 깨닫는 조건이 안 된다면 굳이 그것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고 밀쳐놓고 되는대로 살 일도 또한 아닌 거라. 그것을 말하자면 중도정견이라. 중도적으로 이해해야 되는 거지.
그러니까 열심히 정진한다고 깨닫는 조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최선의 방법이라. 그래서 이런 어록도 보고 경도 보고 기도도 하고 참선도 하는 거죠. 그렇다고 거기에 목매달고 그것이 전부다. 라고 집착하는 것도 그것도 중도적인 안목이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아! 임제 스님도 연마체구라는 말도 섰고, 또 유론도 공부했고, 경학도 많이 봤지 않느냐하는 이런 주장을 하면 꺼리가 되기는 해요. 되지마는 그렇게 또 치우칠 일은 아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임제록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_()()()_
이 순간 聽法底人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삼도지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마치 공원에 바람 쐬러 나가서 다니는 그런 기분이 되고... 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_()()()_
^^ _()()()_
還是體究鍊磨하야 一朝自省하니라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하고 연마해서 어느 날 아침에 스스로 살펴보게 되니라...一輪月님,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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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界唯心이요 萬法唯識이니 夢幻空花를 何勞把捉가...삼계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은 오직 의식이니, 꿈이요 환이요 헛꽃인 것을 어찌하여 수고로이 붙들려고 하는가...(삼라만상과 세상의 만류가 오직 마음 뿐...) 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_()()()_
참 나에 대한 이 사실! 보고 들을 줄 아는 이 능력!...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고 참된 법은 모양이 없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은 오직 의식이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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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갱불의(我更不疑) 무일념심포(無一念心怖) 번뇌유심고유(煩惱由心故有)/수시오온누질(雖是五蘊漏質) 편시지행신통(便是地行神通). 地行神通--- --- 오늘도 공부 잘하고 갑니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_()()()_
<無心>할 것 같으면 번뇌가 어디에 拘束 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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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界唯心 萬法唯識 所以 夢幻空花 何勞把捉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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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