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서 배운 철학 (2007.9 라디오 여성시대 방송)
후끈 달아오른 대지가 멱을 감을 빗물 한 모금 찾지도 못한 채 아스팔트 위에서 신음하고 있다. 나들이 나온 바람은 어느 산골짝 계곡 사이를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는지 아파트 알뜰장 아파트 숲 사이로는 그 흔한 바람 한 점 없었다. 조갈이 난 내 가슴팍이 헉헉거리며 물을 달라 아우성이다. 나는 감당 못할 더위에 못 이겨 서둘러 가지고 온 얼음 물통 마개를 열었다. 전혀 녹을 것 같지 않던 물통의 얼음물이 언제 백기를 들었는지 물통 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텐트 철 기둥에 기대 물을 한 모금 넘기려는 찰나, 뜨거워진 철 기둥의 열기가 내 어깨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나는 얼른 기댔던 몸을 세웠다.
아침에 일을 나올 때는 저마다 대박을 꿈꾸며 집을 나온 상인이지만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다. 더위에 지친 알뜰 장에는 상인들만 부산하게 움직일 뿐 파리조차 더위를 피해 숨어버렸는지 윙윙거리는 소리조차 없었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땡볕을 텐트는 온몸으로 그 빛을 막아내고 있지만 텐트를 뚫고 비수처럼 찌르는 열기의 칼날 앞에는 도무지 장사가 없다.
후끈한 열기가 내 등허리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저마다 의욕을 가지고 시작을 한 하루였지만 점심이 지나고 한낮이 되어가도록 장을 보러 나오는 손님들이 없자 상인들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몇몇 상인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그때였다.
침체한 알뜰 장에 일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도넛사장님이셨다.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시는 그분은 오늘 처음 우리 장에 오신 분이었는데 간판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춤추는 도넛! 심봉사도 눈을 뜨다.’
보통의 도넛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절대 떠들지를 않는다. 그저 사가면 사가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하는 게 보통이었다. 어떤 도넛 사장님에게 왜 호객행위를 왜 하지 않느냐고 내가 물었는데 그분 하시는 말씀이 맛을 보라고 내 놓으면 아이들이 다 집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도넛을 잘라 내 놓고 종일 호객행위를 하시는 것이었다.
“맛있는 도넛이 왔습니다. 맛 좀 보고 가세요. 방금 구워낸 따끈따끈한 도너츠가 왔습니다.”
손님이 오셔서 물건을 사는 중에도 그분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있기에 저토록 물건 자랑을 크게 하시는가 싶어 지나가던 손님들의 발길이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맛을 보신 분 열 명 중 아홉 명은 도넛을 사가셨으니 참으로 대단했다.
알뜰 장에서 그래도 시식이라면 내가 최고라고 자부할 만큼 손님들에게 철저한 나지만 이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분의 능수능란한 언변에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외칠 수 없었다.
밤이 이슥했을 때 도넛 사장님께서 나에게 오셨다.
“뻥 사장님 이것 좀 드세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에고 뭘 이런 걸 다 주시고 그러십니까? 아무튼 잘 먹겠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오늘 도넛만 대박인 것 같습니다. 하하”
나도 뻥튀기 한 봉지를 답례로 드렸다.
“아니에요. 뻥 사장님도 참 대단하시던 걸요. 사장님께서 손님들에게 뻥튀기를 나눠주면 우리 도넛 가게에서는 절대 시식을 하지 않고 그냥 가더라고요. 시식을 시켜주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보통 도넛장사 하시는 분들은 사장님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던데 참 대단하십니다.”
“우리는 체인점인데 그렇게 떠들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어요. 아마 시식을 시킨 재료 값만 하더라도 아마 오만 원어치는 될 겁니다.”
집에 와서 그분이 주신 도넛을 아내와 함께 먹었는데 아내도 다른 도넛과 특별히 다른 맛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은 대박이고 나는 쪽박인 하루였다.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십오 년은 더 많으신 분이 저렇듯 삶을 처절하게 사시는 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던가? 그저 장사가 잘되니 내가 잘해서 잘되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그 이상의 장사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내가 도전을 했었던가?
사람이 무슨 일이든 그 일이 너무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기게 마련이다. 초심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그저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방편으로 모든 사고가 옮겨간다.
그러다 보면 장사가 안 되는 것이고 결국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번뇌의 길모퉁이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정신이 없어도 내 마음 밭의 고요는 언제나 처음처럼 잔잔한 바다 같아야 하거늘 나는 파도가 되어 내 의지의 가장 미약한 나락의 끝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다시금 내 좌우명 ‘열심히 일하는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를 새겨보며 오늘 땡볕에서 배운 장사 철학을 곰곰이 곱씹어 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