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참나무 숲으로 간 아이
매미들 울음소리
폭포처럼 쏟아지는
한여름 굴참나무 숲
한나절 내내
홀로 놀아 본 아이는 안다
사슴벌레가 좋아하는 단물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지지난해 겨울
폭설에 부러진 가지가 삭아져서
나무가 제 몸을 부러 벌레들에게 내준 자리
딱따구리 산새들이 굼벵이 찾느라
날선 부리로 톡톡 쪼아댄 생채기였음을
굴참나무가 느릿느릿한 생명의 속도로
제 몸 속에 쟁여 놓았던 비와 바람과 햇빛
숲 속의 모든 것들을 불러와
제 몸의 상처를 스스럼없이 덮는 것
이제사 아이는 안다
아프게 생채기가 나서야
누군가에게 단물이 될 수 있구나
누군가를 먹일 수가 있구나
굴참나무 오래된 숲
그 나무 아래 한나절
사슴벌레와 함께 낮잠을
실컷 자고 나온 아이는 안다
자신이 오래 전 그 나무 아래
한생을 묵었다가 떠난 풀벌레였다
풀벌레를 낼름 잡아 잡순 개구리였다
개구리를 날쌔게 채간 어치였다
온 숲 뒤흔들던 목탁새, 뻐꾸기였다
바람 햇빛 빗방울 이었다
굴참나무 발목을 덮었던 나뭇잎 갉아먹던 미물이거나 지렁이었다
사슴벌레가 기를 쓰고 빨아먹는 생채기
단물 이었다
이제사 아이는 안다
상처 입은 고라니 한 마리
제 가슴에 고개를 깊이 파묻어 잠들고 간 밤새 내내
하늘의 별들까지 굴참나무 아래로 내려와
오래 오래 그 자그마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갔음을.
< 김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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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참나무는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곡괭이를 만들면 쉬 부러져버리고
집 기둥으로 쓰면 벌레가 파먹어버려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그래도 단단한 열매를 맺어 배고픈 동물의 먹이가 되어 주기도 하고
두껍고 푹신푹신한 껍질로 너와집 지붕도 만들고
잘 부서지지 않고 오래 탄다고 숯으로 쓰였다
나도 누군가에 조금은 쓸모가 있을까 몰라 저 굴참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