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중앙대생 오경운이 백혈병으로 숨져가는 애인 그려
1971년 취입, <아리랑> 버금가는 국민애창곡으로 히트
(1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예 예 예 예예예 예 예 예 예예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2절)
멀리 떠나버린 못잊을 님이여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밤마다 그리는 보고싶은 내 사랑아
예 예 예 예예예 예 예 예 예예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소재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아무래도 사랑이다. 특히 대중가요가 그렇다. 웬만한 유행가엔 ‘사랑’이란 단어가 곧 잘 등장한다. ‘사랑’이 빠지면 안 될 정도로 단골가사가 됐다.
대중가요 <사랑해>는 가사 처음부터 ‘사랑해’로 시작해 ‘사랑해’로 끝난다. 사랑의 종류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노래에선 연인과의 가슴 아픈 사랑이 바탕에 깔려있다. 각종 모임에서 부부나 애인끼리 노래를 부를 땐 이 노래가 으뜸곡으로 불린다. 슬로우 록풍의 4분의 4박자로 부르기가 비교적 쉽고 내용도 함께 부르기에 좋은 까닭이다. 대중들 앞에서 서로 사랑한다는 뜻을 은근히 전하기 안성맞춤이라서 그럴까.
오경운 작사, 변혁 작곡, 라나 에 로스포 노래의 <사랑해>가 세상에 본격 알려진 건 1971년부터다. 라나 에 로스포가 1970년 말 취입, 이듬해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노래가 불리기 시작한 건 그보다 앞선 1969년. 작사가, 작곡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대학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학생들 모임에서 애창되고 있었다. 물론 노래를 취입한 가수도 그 때까지만 해도 없었다. <사랑해>가 처음엔 라나 에 로스포가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가요가 아니란 얘기다. 라나 에 로스포는 이탈리아말로 ‘개구리와 두꺼비’란 뜻의 남녀혼성듀엣 이름이다.
<사랑해>가 작사·작곡가 미상으로 대학가에서 불리자 통기타 가수들도 노래가 좋다며 무대공연에서 자주 불렀다. 이때 은희와 라나 에 로스포를 결성한 한민이 서둘러 노래 만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전국을 수소문해서 찾은 작사가와 작곡가는 둘 다 대학생이었다.
작사는 중앙대학교 학생이었던 오경운, 작곡은 서강대생이었던 변혁이 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어떤 연유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을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다. 작사가 오경운이 백혈병으로 숨져 가는 자신의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노랫말을 지었고 이 사연을 전해들은 변혁이 군복무 중 여기에 곡을 붙인 노래다. 노랫말을 잘 새겨보면 병으로 가버린 애인과의 아픈 이별이 구구절절 묻어난다. 1절 가사 중간(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과 2절 가사 중간(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밤마다 그리는 보고 싶은 내 사랑아)이 그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그립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드러나 있다.
대학가에서만 알려졌던 <사랑해>가 라나 에 로스포의 취입으로 음반이 돼 나오고 노래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국 젊은이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하루아침에 히트곡이 된 건 말할 것 없다. 같은 대학생 입장에서 슬픈 사연에 동감했고 아픈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라 남녀만남에서 인기곡 1순위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더욱이 남진, 나훈아 등 트로트풍 가수들 노래에 익숙했었던 그 때 젊은이들에게 슬로우 록 리듬인 <사랑해>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섰던 것도 히트요소가 됐다. 그 중에서도 남녀간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사랑해>는 제3공화국의 규격화되고 굳어있는 사회분위기를 잠시나마 잊게 해줘 인기를 얻었다는 평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노래에 얽힌 또 다른 사연으론 1971년 최고히트곡이 되기까지 방송관계자들의 도움이 컸다는 점이다. 당시 TBC(동양방송) 가요프로그램 PD였던 임광호씨와 여자학사가수로 인기를 얻었던 김상희 씨의 남편(MBC PD 유훈근) 등이 적극 밀어준 것이다. 다른 가요들도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전파를 타지 않으면 쉽게 히트하기 어려운 터라 방송사 사람들 지원은 <사랑해>가 히트곡이 되는데 큰 힘이 됐다.
이와 함께 <사랑해>가 시대흐름을 잘 타 국민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노래취입 이듬해인 1972년 8월 30일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던 날 이 노래가 불린 것이다. 우리측 이범석 수석대표와 북측 김태희 대표단장이 <사랑해>를 부르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돼 빅뉴스가 됐다. 이념과 체제가 배제된 가요인데다 남북이 사랑하는 애인처럼 헤어져선 안 된다는 긍정적인 뜻을 담고 있어 양쪽 대표가 이 노래를 함께 부른 것. 남북대표가 손을 맞잡고 유행가를 합창한 건 남북분단 후 처음이자 마지막 있은 대사건으로 기록되는 감동적 장면이기도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라나 에 로스포는 청와대로 초청 받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참 좋은 노래를 부른다. 어둡고 침침한 노래보다 온 국민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이런 노래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칭찬을 받아 한동안 화제가 됐다.
20대 나이에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연가를 만든 두 주인공은 나이 60줄의 지금은 어디서 뭘 하며 지내는지, 또 애인을 병으로 보낸 뒤의 일은 어떠했는지 후일담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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