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4. 14. Puggalavaggo
[사람 품](A4:131-140) 중에서,
saṃyojana-sutta[족쇄 경](A4:131)
(초불 앙굿따라니까야 2권 318-323쪽)
[PTS : A ii pp 133-134.]
‘‘Cattārome, bhikkhave,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Katame cattāro?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Idha,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들도 제거하지 못했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다.
‘‘Idha pana,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은 제거하였지만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은 제거하지 못했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다.
‘‘Idha pana,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은 제거하였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였지만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은 제거하지 못했다.
‘‘Idha pana,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였다.
‘‘Katamassa,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는가?
Sakadāgāmissa. Imassa kho,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비구들이여, 일래자인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다.
‘‘Katamassa,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은 제거하였지만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은 제거하지 못했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는가?
Uddhaṃsotassa akaniṭṭhagāmino. Imassa kho,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비구들이여,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이르는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은 제거하였지만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은 제거하지 못했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지 못했다.
‘‘Katamassa,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였지만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은 제거하지 못했는가?
Antarāparinibbāyissa. Imassa kho,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비구들이여,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였지만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은 제거하지 못했다.
‘‘Katamassa,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였는가?
Arahato. Imassa kho, bhikkhave,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upapatti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paṭilābh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비구들이여, 아라한인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도 제거하였고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얻게 하는 [조건의] 족쇄들도 제거하였다.
Ime kho, bhikkhave, cattāro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nti.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댓글 일래자/불환자1/ 불환자2/아라한
불환자(=불래)는 대략 5종류의 불환자가 설해지고요, 아라한은 크게는 2종류(혜해탈자와 두 길로 해탈자)로 설해지고 '두 길로 해탈자(=양분해탈자)'는 다시 육신통자(=8해탈자)와 삼명자로 구분되어 설해짐.
<쌍요자나(결박)와 쌍윳따(상응)>의 둘은 '같은 상황에서의 구별'임
그러한 측면을 볼 수 있는 경문이 <대념처경>에서 볼 수 있음. 법념처의 '6근과 6경'(=육내외입처)에서 '6식의 연기'를 설하면 '상윳따(상응)을 설명하는 것이고, '6근과 6경'(=육내외입처)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쌍요자나(결박)의 생겨남과 사라짐'을 설하면 '팔사도와 팔정도'를 언급하는 것임, 즉 '사견과 정견'을 설하는 것인데, 10가지 쌍요자나에서 앞의 둘은 '견(見)이며 동시에 쌍요자나(결박)'이고 나머지 8개는 '순수한 쌍요자나'임.
12연기의 9번째 지분에 나오는 네 가지 우빠다나(취)에 대응하는 것이 오하분결에서 빠띠가(적의)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상요자나가 맞는지요?
'취' 자체가 쌍요자나와 관련되어 설해지는 경문을 별도로 고려하시지 마시고,
12연기의 제법들은 모두 '쌍요자나'임을 고려하셔야 됨.
이 점이 매우 어렵지만.............연기(쌍윳따의 상황에서)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에서....정확한 의미의 이 것은 전부 쌍요자나임. 이 설명은 진짜 난해함. 이 설명을 이해하시면 '팔정도와 팔사도의 전문가'가 되심.
탐진치-------에서 '치'의 다른 이름이 '무명'임. 그 무명에서 연기된 '땅하(애, 갈애)'와 그 '땅하'에서 연기된 '욕탐(잔다라가)'임.
결국 12연기의 제법들은 '쌍요자나'이면서 동시에 '결박하는 것들'임. 그러한 것들을 나열한 것임을 이해하시게 되시면.................12연기의 다른 이름이 '사도'라는 경설을 이해하시게 되심. 나아가 팔정도가 왜 중도인가를 이해 하시게 되심.
오하분결이라는 쌍요자나는 <명색에서 식(識)이 연기되는 방향>과 관련된 쌍요자나이고,
오상분결이라는 쌍요자나는 <식(識)에서 명색이 연기되는 방향>과 관련된 쌍요자나임.
오하분결은 안으로/ 사마타/ 심해탈/ (딴하)와 대응되고,
오상분결은 밖으로/ 위빠사나/ 혜해탈/ (무명)과 대응되는 것이 맞는지요?
'사띠, 반야, 위빠사나'는 반듯이 <안으로 밖으로>이고, 사마타는 오직 <안으로> 뿐임.
땅하(애, 갈애)와 관련된 해탈은 '심해탈;이 아니고 '두 길로 해탈'임.
예, 사띠 등등이, 내로 외로 두겹이 있는 것과 관련이 되는 것 같네요..
쌍요자나에서는 <양자의 중간에서 '결박하는 것'>이 언급됨.
그 '결박하는 것'은 (1)대표적으로는 '탐진치'임. (2)본질적으로는 '욕(欲, 찬다)'이며, (3)현실적으로는 '땅하(愛, 갈애)'이고, (4)쌍요자나설 전반적으로 '욕탐(慾貪, 찬다라가)'임.
쌍요자나에서는 <양자 중에서 한 쪽이 '반듯이 법(담마)'이라는 점, 즉 '결박의 대상이 되는 법(담마)'>이라는 점을 매우 조심해야 함. 그래서 <대념처경>의 '법념처'에서 쌍요자나가 거론되는 것이고, 수행의 과위를 '쌍요자나를 제거한 숫자'로써 측정할 수 있는 것임.
결국 신수심법에서 <심과 법의 관계>에서 중간에 위치한 '무명이나 땅하'를 제거함으로써 쌍요자나는 풀어지고 '그러한 제거의 수준'이 '해탈의 수준'이라는 말.
상요자나를 풀기에 앞서 상요자를 본다는 자체가 이미 벌써 보통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분들이 '연기'를 어려워 하는 이유는,
<명색에서 식(識)이 연기되는 방향>과 관련된 <육육법(=애지연기)>과 <식(識)에서 명색이 연기되는 방향>과 관련된 <12연기>로 크게 구분하여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쌍윳따(상응)를 이해하지 못하면 쌍요자나(결박)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 결국 쌍요자나(결박)는 쌍윳따(상응)에서 '중간에 위치한 것'을 찾아내는 것을 말함.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보아도 어렵습니다.
오개와 칠각지의 관계에 대해 혹시 정리하신 바가 있으신지요?
게시판에 올린 글이 있고, <팔사도와 팔정도, 사견과 정견>처럼 <오개와 칠각지>는 '하나의 셋트'입니다.
오개는 다섯이고 칠각지는 일곱이라서 '좀 이상해' 보이지만, 경전에는 '오개'가 설해지면 거의 '칠각지'가 같이 설해집니다. '앎과 봄'에 관련한 경문을 보시면 가장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네 게시판 함 찾아볼게요..그런데 오개도 세번째 네번째 장애를 둘로 나누면 일곱이 되는 것 같습니다. 칠각지와 거의 정확하게 대응관계가 있는 것도 같고요..오개와 칠각지가 10과 14이 되는 경문을 올리신 것 본 기억이 있어서요..
안으로가 욕계나 오하분결에 대응되고, 밖으로가 색계/무색계나 오상분결에 대응된다면, 안으로는 거칠고 저열한 오온, 밖으로는 세밀하고 수승한 오온과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요?
까야에도 거친 이 육신과 대조되는, 의성신(마노 마야 까야)이라는 게 있으며,
느낌에서도 거친(세속적) 느낌에 대조되는, 수승한(비세속적) 느낌이 나오고,
마음에서도 저열함과 수승함이 대조되어 나오고,
법에서도 그러한 구분이 가능한 것 같은데요..
그릇을 만드는 과정도 처음에는 거칠게 모양을 잡고, 차츰차츰 세밀하고 부드럽게 다듬잖아요?
ajjhatta(아자따, ='안(쪽)의')는 '형용사'이어서 '결박'이라는 명사을 수식하는 용어이고, ajjhatam(아자땅, =안으로)은 '부사'여서 '동사나 동사의미'를 수식하는 용어이므로 서로 다른 표현임. 위에 언급된 대응관계는 잘 모르겠음.
쌍요자나의 종류는 엄청 많음. '아자따 쌍요자나(안쪽의 결박)'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설명이 없으므로 저도 궁금하기만 함. 보통은 '안따라 쌍요자나(중간의 쌍요자나)'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데, '안따라 쌍요자나'란 '12연기의 제법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됨. '아자따 쌍요자나'는 모르겠지만, '아자땅'과 관련된 쌍요자나는 '탐진치'를 지칭하는 표현인 것이 정확함.[=경문에 있음]
즉........<아자땅=탐진치, 안따라=12연기의 제법들, 바히다=명색>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