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순노인이 춤을 배우다니
죽암 장석대
2007년 6월부터 10월에 있었던 일이다.
바람이라고 하면 더운 날씨에 모시적삼 소매 끝에 서며드는 선선한 산들바람이면 오죽 좋겠나마는,
옛날 거세게 불었던 복부인의 치맛 바람도 아니고, 자유부인과 같은 춤바람이 났었으니 이 늙은이
망령이 난 게 아닌가. 그것도 우리 할망구 모르게 엉큼스럽게 생판 모르는 남의 여자를 안고 "스로우
스로우 퀵퀵" 하며 돌개바람을 일으켰으니 최후의 발악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라에서 권장하는 춤을 배웠으니 나도 할 말은 있을 것 같다.
사교춤을 배우게 된 동기부터 설명해야 겠다. 한국 건강보험공단에서 부산 지역 노인들의 노인병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인들이 운동부족
으로 생긴 관절염, 담 결림, 하체 쇠약 등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병으로 노인들이 한방병원에 가서
침을 맞거나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의사의 처방으로 약을 사가는 것이 고작 5천원에 불
과 하지만, 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의료비는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서 조기 검진을 독려할 뿐만 아니라 [어르신 건강운동교실]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노인들에게 요가나 건강 체조를 수개월 가르친 결과 병원에 드나드는 노인들의 발걸음을
18% 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어느 운동보다 선호하는 운동은 사교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기도 각 지역 경로당에 사교댄스 교사를 채용해서 춤을 가르쳐도 남는 장사라는 보험
공단의 주장이었다. 한편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 약산마을은 60% 이상이 호남사람들인데, 얼마나 단결력이 있는지 고
양시 360여 개소 경로당 중 제일 우수한 경로당으로 꼽히는 마을이다. '07년 6월 초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사교춤을 강력히 권장하였다. 그리고 약산마을 어르신들이 먼저 배워
서 고양시 지역 경로당 노인들에게 춤 솜씨를 보여 너도 너도 배우겠다는 의욕을 북돋아 주고, 10
월에 있을 "경기도 어르신 장기 자랑"에 출전 할 연습을 독촉하는 것이 었다.
약산마을 노인들이 공짜로 배우는 춤이라 너도나도 배우겠다고 나섰지만, 할머니 지원 자는 넘쳐나
는데 반해 할아버지의 지원자는 4~5명에 불과해서 장기자랑에 나가려면 적어도 12쌍을 짜내야 하
니, 여자들이 남자 춤을 배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남자들이 턱없이 모자라니 나에게도 춤을 배울 것
을 권유했으나 이제 와서 늙은이가 무슨 춤을 배우나 하며 끝내 사양해 오다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슬그머니 군침이 돌았다. 게다가 옛날 직장생활에서 가끔 카바레에 들려 춤을 출 때면 뒷 구석에 앉
아 동료의 옷이나 챙겨주는 초라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지루박인가 표주박인가 하는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키와 나이를 감안해서 파트너를 정하다보니 나의 파트너는 전라도 토박이 말씨의 할머니를 차지했
다. 이 할머니가 75세 쯤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꼭 12살 아래 말띠인 65세라고 했
다. 그러니까 말과 말이 광야를 달리는 주행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너울너울 춤을 배우는 괴상한
인연이 되었었다. 춤을 배우는 동안 다른 할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나의 파트너 할머니의
인생 여정은 기구했다.
23세에 결혼해서 37세에 남편을 잃었고 홀로 3남매를 키워왔으니, 그 험난했던 가시밭길을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65세 나이답지 않게 폭삭 늙어버린 주름살에는 남편 없는 서러움과 온갖
시련이 배어 있었다. 손을 잡아 보면 더덕 같이 거칠고 손마디는 거칠어서 남자 노동자의 손마디
같았다. 아직도 어느 빌딩에서 청소부로 나가고 있다니, 억척스럽다 하기보다 측은한 마음이 드는
할머니였다. 그러나 이 할머니의 말솜씨는 청산유수요, 노는 폼이 범상치 않았다.
어느 개그맨을 뺨칠 정도였고, 트위스트춤 솜씨는 트위스트 김은 저리 가라다.
바가지를 등에 업고 곱싸춤을 출 때면 배꼽이 튀어 나올 정도였고 ,웃다 못해 눈물까지 나왔었다.
춤으로 남을 웃기며 외로움을 달래고 남편 없는 서러운 한을 풀어온 여인이 아니었나 싶었다.
무말랭이 같은 얼굴의 할머니는 가슴 속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해소해서 기쁨으로 전환하는 일종
의 카타르시스(Catharsis)인가 싶어 눈물이 헤픈 나는 코끝이 찡해 옴을 느낄 때가 있었다.
이 할머니는 춤을 배우는 데도 오히려 나를 리더했다.
음악에 맞지 않게 발 따로 손 따로 허우적대는 이 늙은이의 동작이 못 마땅한 모양이다.
자기도 춤 자세가 별로인데 말이다.
"긍께, 요 6박자 찌루박 말이시, 기본 동작 백 번 천 번 허고 또 허야 제라”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띠동갑을 지도하려 든다.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청소하러 다니지 말고 열심히 연습이나 하세요”
"워메 참말로, 워쩔라고 고런 소리 허신 당가”
“아니 그만큼 고생했으면 3남매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살면서 춤이나 배우지요”
“긍께 머시냐, 쩌그 새끼도 믹여 살리기 바쁜디, 내꺼징 놀면 쓰간디. 나 병날 때 꺼징 해야 제라“
지루박춤을 배우다가 부루스춤을 또 배운다.
왼 손은 여자의 손을 치켜 잡고 바른 손은 여자의 어깨 등에 대고, 스로우 스로우 퀵 퀵 하며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니, 지루박춤보다 배우기가 쉬웠다. 여자의 배와 남자의 배사이를 주먹 하나만큼
띄우라고 한다. 누구 못지않게 짓궂은 나는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 나오도록 가끔 장난을 쳐 본다.
아주머니를 아예 끌어 안다시피 다가 서면 말 많은 아주머니는 빠끔히 쳐다보며 그냥 있을 리 없다.
“워메 징허고 징혀라"
남이 들을까 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원래 부루스 춤은 다정한 여인들 끼리 추는 춤이 아닌 가요”하면
“허고 말고라, 허지만 나그 댁의 연인이 아닝께” 하며 웃기도 하였다.
아무튼 말띠끼리 한 번 잘 만난 것 같았다.
춤도 춤이려니와 전라도 사투리에 매료되어 춤을 배우는 지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는지는 모르지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부루스 춤의 폼이 가관치도 않았다.
부루스춤은 꼿꼿이 서서 사뿐 사뿐히 걸어야 하는데, 트위스춤이 몸에 배어 있는지 오리궁둥이처럼
실룩실룩하며 추고 있으니, 댄싱교사가 아무리 지적해도 그 버릇을 잠재우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이들도 6개월은 배워야 한다는데, 이렇게 배워가지고는 1년을 배워도 다 못 배울 것
같았고, 이 춤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겠다고 땀을 찔찔 흘리는지 몰랐다.
1주일에 4시간씩 배운 지 3개월이 지난 9월 중순이었다.
고양시에서 주최하고 건강 보험공단에서 후원하는 "노인의 날" 행사가 일산 '천년 웨딩홀'에서
있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10월에 있을 '경기도 어르신 장기자랑'의 좋은 리허설 기회라며 남자들
은 검정 바지와 검정 T샤쓰를 사 주었고, 어디서 빌려 왔는지 여자들은 은색이 번쩍이는 분홍색 댄
싱 드레스를 준비해 왔었다.
그런데 열흘 쯤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나의 동갑 파트너는 친정어머니 병간하기 위해 고향에 가 있었고, 노인의 날에 300명의 좌석을 준
비하다보니 무대가 좁아져서 주루박춤 5쌍, 부루스춤 5쌍씩 나누어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의상을 입고 맹연습을 했고 난생 처음 무대에서 춤을 추어 많은
박수를 받았었다.
드디어 10월 어느 날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청 대강당에서 "경기도 어르신 장기자랑대회"날이 왔다.
나의 말띠 동갑 파트너가 뒤늦게 오는 바람에 더욱 열심히 연습해야 했고, 당일 우리 차례 직전까지
장안구청 뒷 뜰에서 연습도 했다.
비로소 우리는 서치라이트가 번쩍이는 무대에 섰고, 음악에 맞춰 지루박춤을 춘 다음 연이어 부루
스춤을 추는데, 이 할머니의 궁둥이는 오리궁둥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중 속에서 박수가 터져나오고 웃음소리가 들려나와서 나는 당황하여 파트너를 질
질 끌고 다니다 시피했다. 그것도 끝날무렵이여서 다행이었다. 춤이 끝난 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사회자가 나와 나의 파트너를 불러 세웠다.
사회자가 할머니에게 마이크를 들이 데며 "할머니, 춤을 그렇게 잘 추십니까?" 물으니
"워찌 그런당가" "죄송하지만 할머니의 엉덩이춤이 대단하십니다."
"워메 나그 그렇콤 추었 당가" 하고는 도망가버렸다.
관객들이 박수를 열나게 치며 웃어댔다.
이렇게 해서 할머니의 오리궁덩이 덕택인지 2등을 했고, 화성경로당이 춘 농악놀이가 건전하다
하여 1등을 차지했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팔자에 없는 춤을 배웠으나 그때의 설익은 춤솜씨 때문에 콜라텍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었다. 그러나 6,70대 황혼기 인생이라도 사교춤을 배우라고 권하
고싶다. 왜냐하면 여자들과 부대끼다보니 우슨 마음이 젊어진다.
목욕과 이발을 자주하게 되고, 옷가지 하나라도 신경 쓰게 된다.
여자들은 담배냄새에 질색이니 자연히 금연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내성적인 성격이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 사진:뒷줄 왼쪽부터 3번째 글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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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늙어서 창작하지 못하고 옛날에 써 둔 작품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려놓으니 향해바랍니다.
아 대단하십니다 사교춤으로 춤대회에 나가셨다는 자체가
대단히신 겁니다 제가 그런세월로 15년을 허송세월로 보냈으니
댓글을 써봅니다. 사실 첫제 마음이 즐겁고 귀 눈 운동 매사가
즐거움을 맛볼수 있는 세상이라오. 이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