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사도행전 2장 1-4절.
제목 : 성령의 나타나심.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고 그것을 자기의 결정에 맞추어 실천할 때까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 치더라도 대략적으로 18세 정도 되면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 세상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차이에 따라서 그 시기가 좀 빨라질 수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늦는 사람도 있으며, 그 시기가 아주 늦게 찾아올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20세를 성년으로 여겨 그때부터는 자기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다고듯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태어나자 약 20년 동안의 세월이 지난 뒤 비로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으며, 자기의 결정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며 그 시기가 빨리 찾아올 수도 있으며, 또한 늦게 올 수도 있는 개개인의 영향과 성향에 따라 차이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제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기에는 각자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의 본문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뒤에 각자의 생활에 적용해 나가는 것이 성경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의 인물 중에서 몇 사람이 성령을 받고 난 뒤의 삶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보면서 은혜를 나누면서 성령을 받는지가, 즉 성령의 나타나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면서 우리들에게도 성령의 나타나심이 수시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들이 살펴볼 인물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전혀 믿음을 가지지 못한 채, 오히려 우상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아예 하나님에 대하여는 생각조차는커녕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들어보지도 못한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에서 부르심을 받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었으며, 어느 순간에는 자기 생각이 들어가 무려 1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독자 이삭을 바친 뒤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아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무려 40-50년의 기나긴 세월이 걸려서 인정을 받고 지금도 많은 신앙인들에게 가장 따르고 싶은 성경 인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살펴볼 인물은 모세입니다. 그는 비록 어머니 젖을 먹던 시기인 4-5년간만 어머니의 품에서 자랐지만, 그는 무엇보다 어머니로부터 신앙교육을 잘 받고 애굽의 궁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젠 자기의 길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어보였지만, 살인자의 누명으로 인해 광야로 쫓기는 신세 가운데 떨기나무에 불 붙은 광경을 보았지만 타지 않는 나무를 보고 하나님을 만난 뒤, 그의 삶은 도망자의 신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는 지도자로 우뚝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었던 계기가 출애굽기 3장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서 만난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어서 요단 강가 앞까지 40여년을 이끌어 왔습니다.
왕 중의 왕이라고 불리는 다윗 역시 성령을 나타나기 전의 삶과 나타나고 난 뒤의 다윗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어릴적부터 신앙을 가진 그였지만 그때에는 자기가 맡은 일에만 충성을 하였지만,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뒤의 그의 삶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뒤 다윗은 귀신에 사로잡힌 사울 왕을 악기연주로 귀신을 쫓아내었는가 하면, 그 누구도 상대하지 못했던 골리앗도 자기가 흔히 손에 가지고 있었던 물매돌로 쳐 죽인 것과, 다윗이 통치하던 그 시기에는 전쟁에서도 백전백승하여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며, 시편에 나오는 수많은 다윗의 시를 보면 그렇게 감성이 풍부하고 멋진 시들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복음성가 중에는 시편의 내용을 그대로 가사화시켜 복음송으로 지금껏 우리들의 입에서 불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역시 사도행전 2장의 사건 전과 사건 후의 베드로의 삶은 천지차이가 날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전의 삶은 자기의 성질인 다혈질로 많은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주님이 잡힌 뒤에는 주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성령받고 난 뒤의 베드로의 사역이 적힌 시도행전 전반부인 10장까지의 사역을 보면, 마치 주님이 행하였던 기적과 이적과 비슷한 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 4장의 경우는 무식한 베드로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그 당시 최고의 엘리트의 앞에서 담대히 전하는 말씀을 보면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입에서 나올 것이냐 하는 의문마저 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경우를 보면 16살의 어린 나이에 믿음을 선물로 받고 이때껏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내가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의 나와 알고 난 뒤의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의 저는 하나의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조그만한 말이나 행동에서 내 뜻과 맞지 않으면 바로 열부터 나서 그무엇도 보지 않고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그로인하여 가장 평안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마저도 불화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가정에는 참다운 웃음조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남의 탓이고 남이 잘못된 것이라고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라는 것을 저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괴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의 나는 전혀 바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이 사실이다는 것을 이제는 제 스스로 받아들이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로힌해 가정은 점점 하나가 되어가며 서로를 더 생각하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괴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그 시기가 저에게는 성령의 깊은 체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그 시기가 없었더라면 먼저 첫째 나를 어떻게 되었었는지, 가정은 또한 어떻게 되었을는지 생각하지도 싫습니다. 그러므로 저에게는 이 시기,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인 시기가 나에게는 성령의 나타나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나타나시는 방법과 시기는 다르다 하더라도 그 시가 뒤의 삶은 모두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으며, 모세가 그러했으며, 다윗과 베드로가 그러했으며, 저도 이 시기 뒤의 삶은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식어질 때에는 그 시기를 생각해 내어서 그 전의 나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고백하며 묵상하면서 그 성령의 강력하게 임하는 역사가 또다시 임하셔서 우리가 늘 성령의 나타나심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성도들이 되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