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부 지역은 인생에서 꼭 한 번쯤 여행해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 미국에서 가장 순수하고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지역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규모만으로도 경이와 감동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더구나 첨단 기술과 세련된 문명을 누리며 한곳에 자리 잡고 안정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아무도 손대지 못한 이 처녀의 광야는 끊임없는 이동과 개척의 욕구를 자극하기까지 한다. 그래서일까, 미국 건국을 전후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서부 영화는 애리조나와 그랜드캐니언이 중심 무대로 나온다.
‘1990년대 로드 무비의 전형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폭력과 긴장감의 미학이 영화적 색조와 조화를 이룬 걸작으로 찬사받았다.
가정주부인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루이스(수잔 서랜던)가 일상이 무료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모처럼 나선 여행길. 해방감에 들뜬 델마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모르는 남자와 춤을 추지만 남자는 곧 치한으로 돌변하고, 델마를 구하려던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총을 쏴 남자를 살해한다. 더구나 건달 청년에게 가진 돈을 모두 빼앗기는 바람에 둘은 솜씨 좋은 강도로까지 전락하고 만다.
평범한 두 여인의 즐거운 여행은 이처럼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공포의 도주라는 극한 상황에 빠져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의 긴 여로가 된다.
강력범으로 수배된 두 사람은 영화사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경찰의 추격 신을 연출하며 그랜드캐니언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되고, 그곳에서 허공으로 질주해 날아오르며 끝을 맺는다.
미국 남부의 아칸소에서 출발한 두 여자의 영화 속 여정은 오클라호마와 뉴멕시코를 거쳐 애리조나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는 이들의 행로. 대부분의 서부극이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데 반해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부박한 도시에서 웅장한 자연으로 향하고 있다.
또 개인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현대사회가 강제된 규범을 따를 수 없거나 혹은 예기치 않게 벗어나는 소수자에게 얼마나 냉혹하고 폭력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허용된 가치를 옹호하며 살아갈 뿐, 스스로의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데 점점 무력해지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중반부터 나타나는 사막과 광야, 협곡들은 애리조나 주의 모뉴먼트 밸리와 그랜드캐니언이다. 우리에게 ‘애리조나 카우보이’라는 영화와 노래로 친근한 이곳은 아메리카 대륙의 진정한 주인이던 인디언들의 영혼이 깃든 신비의 땅이다. 인디언어로 ‘작은 샘’을 뜻하는 애리조나는 사람 키보다 커다란 선인장과 붉은 바위의 기묘한 모습을 담은 사진 등으로 익숙하고, 그중에서 건조한 콜로라도 고원에 형성된 협곡을 일컫는 그랜드캐니언은 특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지질학의 보고’이자 그 자체로 자연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그랜드캐니언은 지금으로부터 수억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바다가 융기하면서 형성된 콜로라도 고원에 로키 산맥에서 발원한 콜로라도 강이 흐르며 침식을 거듭해 생겨난 협곡이다.
그랜드캐니언은 일반적으로 붉은색을 띠는 바위 협곡의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빛깔은 시간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해 믿기지 않을 만큼 신비로운 기운을 선사한다. 특히 오랫동안 바닷속에서 켜켜이 쌓여 있던 수평의 퇴적암층은 갈색, 회색, 초록색, 분홍색 등 저마다 독특한 고유 색깔을 띠고 있어 천차만별의 조화를 이룬다.
그랜드캐니언의 협곡은 총 446km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길기에 여행자는 여러 전망대 가운데 몇 곳에서 경관을 조망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중 사우스 림은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를 중심으로 서쪽은 허미츠 레스트, 동쪽은 데저트 뷰로 나뉘며 특히 마더 포인트는 주차장에서 불과 1분 거리에 있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비행기를 타거나 트레킹 코스를 따라 직접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가는 사람도 많다.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거대한 용이 꿈틀대는 듯 흐르는 콜로라도 강과 기기묘묘하게 깎인 암벽 등 구석구석을 내려다보는 것이나, 경사면을 타고 길을 내려가 콜로라도 강가에서 가파르게 깎인 협곡의 거대한 웅장함을 올려다보는 것은 모두 이곳 그랜드캐니언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비좁은 생활 공간을 벗어나 사막과 광야, 협곡 등을 달리며 대자연의 장쾌함을 보여주다가 끝내 허공으로 질주해버린 두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델마와 루이스>. 그들이 삶의 종착지로 삼아 새처럼 날아오른 그곳 그랜드캐니언의 벼랑 끝에서 우리는 사회 속의 옹색한 삶에서 벗어나 무한대에 이르는 자유 혹은 고독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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