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무겁고 비싼 물건을 누가 사서 들고 다닐까?’ 1990년대 중반 휴대전화기가 첫선을 보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을 날려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동시에 휴대전화기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지금은 인구 1인당 1대라는 놀라운 보급률에 도달했다.
원래 내구성 소비재는 기술혁신과 대량생산의 시류를 한 번 타면 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또 대부분은 초기엔 다른 용도로 개발돼 특정분야에서만 사용되다가 결국 폭넓게 대중화되는 수순을 밟았다. 휴대전화는 군용에서 민수용으로 발전했고, 음식점의 전유물이던 냉장고는 이제 모든 가정의 부엌을 점령했다. 커피숍의 전유물인 커피메이커마저 우리의 주방을 파고들고 있다. 고성능 사진관 카메라는 디지털로 바뀌어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고 대형 전산센터에나 있을 법한 고성능 컴퓨터는 모두의 책상 위를 뒤덮더니 이제는 아예 반으로 접혀 가방 속에 들어갔다. 아마도 지능형 로봇이 우리 주변을 서성이고 가정용 첨단 의료장비가 원격진료와 연계돼 가정의 주치의로 수고할 날도 그리 머지않은 듯하다.여기에 오늘날 소비재의 혁신을 가져올 또 한 가지 중대한 상황 변화가 있다. 즉 미국발 금융위기로 풀린 막대한 돈뭉치를 회수하고 물가를 누르기 위해 각국 정부가 자본의 물꼬를 똑똑한 신성장산업 쪽에 돌리고자 끙끙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를 아껴 써야만 한다는 대의명분 앞에 기성산업의 녹색화와 새로운 녹색산업의 등극은 이제 인류에게 선택이 아닌 사명이 된 셈이다. 앞으로 더 많은 신흥국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리고 자동차가 늘어나고 가전제품이 집 구석구석을 빼곡히 메우다보면 세계의 에너지 소비가 어디까지 늘어날지 도저히 가늠이 잘 안 된다. 결국 에너지 가격 상승은 첨예한 경기고비마다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으니 에너지 절감기술은 어쩌면 인류가 반드시 개가를 이뤄야 할 필연의 주제가 되었다.이런 배경에 따라 증시에서 이들 산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성장성에 후한 점수를 매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은 과거에 새롭게 떠오른 소비재나 가슴 설레는 신기술주의 주가 흐름을 볼 때 대부분 그 도입 초기에 성장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사정없이 오른 뒤 어느 순간 가치부담을 느끼면서 일정한 중간 조정 과정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다. 이러한 조정을 딛고 몸통 주가의 상승을 만들어야 한 시대의 진짜배기 주도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시장의 무게중심을 ‘녹색’에 둬야 한다는 데는 백 번 동의한다. 하지만 녹색주 혹은 신기술 성장주가 너무 쉬지 않고 과열되면 잠깐 ‘적색 경고등’이 켜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자는 얘기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