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집 제2권 / 묘지명(墓誌銘) 병서(幷序)
정숙옹주(靜淑翁主)의 묘지명
만력(萬曆) 계유년(1573, 선조 6) 2월 8일에 정숙옹주(靜淑翁主)가 죽으니, 수(壽) 81세였다. 부음을 듣고는 상이 조시(朝市)를 정지시키는 한편, 조문(弔問)과 치제(致祭)와 부의(賦儀)를 행하게 하였다. 4월 21일에 예법에 따라 경기(京畿) 안산(安山)에 장례를 치렀으니, 그곳은 부마(駙馬)의 묘소가 있는 곳이었다.
옹주는 성종대왕(成宗大王)의 막내딸이었다. 모친인 숙의(淑儀)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동지중추부사 홍일장(洪逸章)의 측실 소생으로서, 후궁(後宮)에 선발되어 들어간 뒤 홍치(弘治) 계축년(1493, 성종24)에 옹주를 낳았다.
옹주는 계해년(1503, 연산군 9)에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에게 출가하였는데, 매사에 공경하고 화목하게 하여 부도(婦道)를 제대로 행했던바, 시인(詩人)이 이에 대해서 일찍이 아름답게 꾸민 노래가 있다 하더라도 감히 이를 능가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정덕(正德) 병자년(1516, 중종 11)에 영평(鈴平)의 죽음을 곡(哭)한 뒤로 58년의 세월을 과부로 지내는 동안, 마음을 극진히 하여 제사를 올리기를 하루같이 하였다. 이는 옹주의 성품이 또 천성적으로 성효(誠孝)스러운 까닭에 추모하는 마음이 절로 가슴속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었는데, 말을 할 때면 공검(恭儉)과 자후(慈厚)를 항상 일컫는 등 집안의 분위기를 항상 편안하게 유지하였다.
아들이 없었으므로, 영평의 조카인 윤지함(尹之諴)을 후사로 삼았다. 윤지함은 참판 남세웅(南世雄)의 딸에게 장가들었고, 가정(嘉靖) 병오년(1546, 명종1)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그러나 정미년(1547)에 먼저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의 아들인 윤엄(尹儼)이 실로 이번의 상(喪)을 주관하였다.
윤엄은 참판 김주(金澍)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며, 갑자년(1564, 명종19)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융경(隆慶) 임신년(1572, 선조5)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윤엄은 5남 1녀를 두었다. 아들 윤민철(尹民哲)은 첨정(僉正) 이유근(李惟謹)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며, 그다음 윤민준(尹民俊), 윤민헌(尹民獻), 윤민일(尹民逸), 윤민정(尹民程)은 모두 어리다. 딸은 진사 황혁(黃赫)에게 출가하였다.
대저 옹주는 천승(千乘) 제후(諸侯)의 딸로 태어나 부귀를 누리며 자라났는데, 인사(人事)로 말하면 아무나 행하기 어려운 예법의 행동을 끝까지 견지하였고, 천도(天道)로 말하면 아무나 누리기 어려운 장수(長壽)의 복을 향유하였다.
옹주가 비록 불행히도 일찍 홀몸이 되었다고는 하나, 자신이 오랜 수명을 누렸을 뿐만이 아니라, 과거에 급제하는 영광이 집안 후손들에게서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경사는 앞으로도 또 끊이지 않고 이어질 전망이다. 이렇듯 수명과 복을 성대하게 받게 된 것은, 그동안 예법에 맞는 행동을 제대로 견지하여 계속 덕을 쌓아 온 필연적인 결과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아름다운 일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수리라 이름한 산 / 修理之山
남쪽을 향한 언덕 / 其原面陽
어찌 감히 이를 보고 공경치 않으리요 / 曷敢不敬
우리 옹주 여기에 잠들어 계시나니 / 翁主攸藏
[주01] 수리(修理) : 안산(安山) 동쪽 1리(里) 지점에 있는 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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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靜淑翁主墓誌銘
萬曆癸酉二月八日。靜淑翁主卒。享年八十有一。訃聞。上爲之輟朝市。使弔祭賻贈有加。越四月二十一日。以禮葬于京畿之安山。從駙馬塋所也。翁主。成宗大王季女。母淑儀南陽洪氏。以同樞逸童側出。選入後宮。弘治癸丑。翁主生。癸亥。下嫁鈴平尉尹燮。能敬且和。以執婦道。風人所美。無以踰焉。正德丙子。哭鈴平。居寡五十八年。盡心祭祀如一日。性又誠孝。追慕所生。言則必稱恭儉慈厚。家中晏如也。無子。鈴平猶子之諴爲後。之諴娶參判南世雄女。嘉靖丙午生員。丁未。先逝。其男儼。實主今喪。儼娶參判金澍女。甲子進士隆慶壬申及第。有五男一女。男曰民哲。娶僉正李惟謹女。曰民俊,民獻,民逸,民程。皆幼。女爲進士黃赫妻。夫以千乘之女。生而貴富。以人事則執禮行也難。以天道則享壽禧也鮮。翁主雖不幸早寡。而身得高年。儒科之榮。繼出於家。又將有未已者。豈非向者能禮行之積。有以致壽禧之盛如是也歟。嗚呼懿哉。銘曰。
修理之山。其原面陽。曷敢不敬。翁主攸藏。<끝>
簡易文集卷之二 / 墓誌 銘幷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