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천 수도산(1316M), 양각산(1150M), 흰대미산(1018M)을 종주하다.
글 쓴 이 고 학 영
11월27일, 입동(立冬), 소설(小雪)을 지났으나 날씨는 포근하다. 뜰아래 내려서니 하현(下弦)달이 처마끝에 걸려 있다. 서둘러 준비하여 차에 오르니, 예상보다 많은 회원님(36)들이 참가 하셔서 안도의 숨을 내쉬다.
차례로 인사를 드리니, 처음 오신분도 여러명 계시고, 모처럼 산행에 동참하신 분도 계신다. 진행은 순조로와 30번 국도를 타고 성주 방향으로 달리니, 가로수는 거의 잎이 다지고 앙상한 가지로 서 있어 더욱 을씨년 스럽다.
10월의 그 화려한 옷들을 다 벗어 버리고, 홀가분한 나목(裸木)의 차림으로 겨울을 맞는구나...! 봄, 여름 잎 틔우고 우주를 담아, 가을에는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한줌의 재가 되니, 너를 보면 윤회(輪回)의 삶을 피부로 느끼노라...!
성주읍내의 성밖숲에 이르러 조식(朝食)을 드시니, 탁 트인 이천변(利川邊)과 대흥리, 백전리 들판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이천변 주위로 이어지는 500 여년의 해묵은 아람드리 노거수(老巨樹) 떡버들이, 앙상한 가지로 실체를 드러 내니 해묵은 년륜을 한 눈에 알아 보겠으며, 낙엽쌓인 공원을 산책 해보는 재미가 이만 저만 한게 아니다.
노거수 떡버들의 자연스러움에 비해, 주위의 조경들이 너무나 인공적인 가미가 심한것이 흠이라면 흠이라 하겠다. 얼마를 달렸을까? 성주댐 부근에 이르니, 도로는 구비구비 돌아들어 구절양장(九折羊腸) 이라...
차내에는 멀미를 호소하는 회원님도 계신다. 가을 가뭄이 심해서 인가? 댐에 저수율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수도산, 단지봉, 석항령 등 등 주위 산들의 수 많은 지류들이 한데 모여, 대가천(大伽川)으로 흘러 들어 성주댐에 잠시 머무르다가 가천면, 수륜면, 고령읍민들의 생활용수가 되고 있으니... 이름하여 무흘구곡(武屹九曲)이라...!
무흘구곡(武屹九谷)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선생의 발자취가 서린 곳으로,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대가천을 거슬러 오르며, 풍광이 빼어난 아홉곳을 골라 이름 붙이고, 노래를 남긴 그의 풍류가 깃들인 곳이다.
제1곡은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수륜면의 회연서원(檜淵書院)뒤 절벽 봉비암(鳳飛岩)에서, 제2곡 갓 말소의 절벽, 제3곡 무학동 배바위, 제4곡 영천동 선바위, 제5곡 영천동 사인암, 제6곡 유성리 옥류동, 제7곡 평촌리의 만월담, 제8곡 평촌리의 와룡암, 제9곡 수도리의 용소(龍沼) 까지 이어지는데, 그 펼쳐진 길이는 약 30KM에 이른다고 한다.
제1곡과 2곡은 금수면으로 우회 해서 거슬러 오르니 가 볼 수 없어 아쉽고, 댐을 지나 얼마를 더 나아가니 영천동의 선바위(立岩)는 계곡 왼쪽으로 벼랑끝에 서서 내려다 보니, 여름 한철 피서객들의 놀이터와 기념촬영의 모델이 되고 있어 계곡 내에서는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며, 사인암, 옥류동의 명소는 분별치 못하겠고, 평촌리의 만월담(滿月潭)은 계곡이 넓어있어 보는눈은 시원하나, 가을 가뭄으로 물이 말라 있어 만월담의 정경은 느낄 수 없구나...!
제8곡인 평촌리의 와룡암은 짐작만 될뿐, 계곡이 깊어있어 볼 수 없으며... 개울 건너 저만큼 산 아래는 무흘서제(武屹書齌)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으니...
인걸(人傑)은 간데 없고, 님의 자취만 남아 쓸쓸히 계시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드니... 님의 업적과 발자취는 영원 하여라...!
계곡의 아름다움이야 어찌 무흘구곡에만 있으리요...! 굽이쳐 흘러 내리는 시냇물이 주위의 풍광들과 어우러지니... 한폭의 동양화요, 대자연의 교향악 이로다...!
수도리 마을에 이르니 오전 9시45분이다. 산불예방에 사전 신고로 제지(制止)없이 오르니, 길은 순탄하나 포장으로 덮여 있어 예 스러움은 없어져 버렸다.
수도암(修道岩)으로 오르는 길은 수해복구로 말미암아 차를 위한 길이지, 사람을 위한 길은 더욱 아닌것 같고, 아름다운 자연의 상처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암자로 오를 수 록 경사는 가파르고, 아람드리 소나무와 전나무가 수도암의 역사와 전통을 말해 주고 계신다.
30 여분을 걸어 암자에 이르니, 도량내의 정갈함과 고즈넉함은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하다. 간간이 울려오는 목탁 소리가 산사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을 뿐, 달리 인적은 보이지 않는다.
동안거(冬安居:음력10월15일부터 3개월간)에 들어서 인가? 선방(禪房)쪽에도 사립문만 열려 있을뿐, 인기척은 느끼지 못하겠으며, 다만 댓돌 위에 흰 고무신이 놓여 있는 것으로 정진(精進)중임을 느끼겠다.
대적광전(大寂光殿)에서는 목탁소리가 울려 나오고, 회색 법복을 차려 입은 보살님 두어분이 정성물(精誠物)을 올리시니... 어느 가정의 제(祭)를 모시는가 보다.
수도암은 청암사와 마찬가지로 도선국사가 창건 했다고 하며, 창주 도선국사(創主 道詵國師)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어, 그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풍수의 원조이신 도선국사께서는 이곳 절터를 발견 하고는 하도 기뻐 사흘 밤낮을 춤 췄다 하시니 얼마만한 명당 터 인가를 짐작케 하며, 수도암터를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이라고 하여,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라 하신다.
조산격으로 멀리 바라다 보이는 가야산 상봉은 실을거는 끌게돌이 되고, 동서의 두탑은 베틀의 기둥이 되며, 대적광전 불상이 놓인 자리는 옥녀가 앉아서 베를 짜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라 하시니... 안타깝게도 시계(視界)가 흐려 가야산 상봉을 볼 수 없으니...
천 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천하의 도인들을 길러 내시고, 사바세계의 중생제도에 앞장서 오셨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없으리요...! 6.25사변 이후 거의 폐허나 다름 없었던 도량을 20 여년전에 법전 큰스님(현 조계종 종정)이 주석 하시면서, 그 규모를 일신하고 도량을 재정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시니...
법전 스님의 도력과 노력이 얼마만 했을까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작달막한 체구에 태산이 진좌 하신 듯... 그 명성과 법력이 사바세계에 여여 하도다.
대적광전은 높은 언덕위에 지어진 집이라, 그점을 고려 한듯 기둥들의 높이가 낮게 지어졌고, 정면3칸에 측면2칸의 맞배지붕이다. 단청의 색상이 바래져 있어,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멋도 풍기신다.
옆문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니,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제307호)이 연화좌대 위에서 위엄도 자비로움도 가득하며, 조각기법 또한 뛰어나 보는 이를 감탄케 하고, 그 크기가 어마어마 하여 석굴암의 본존불에 버금가는 크기라 하겠다.
이 큰 불상을 이곳에 옮기는데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니... 그 옛날 거창군 한 마을에서, 이 거대한 불상을 여러 장정들이 모여 옮기려 하였으나, 꿈적도 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는데, 홀연 한 도승이 나타나 번쩍들어 등에 업고는 단숨에 수도산까지 오는데, 그만 칡넝쿨에 걸려 넘어져 화가난 도승이 이곳 산신령을 불러 다시는 칡넝쿨이 나지않도록 명하니... 그 이후 절 주위에는 칡넝쿨이 없다 하신다.
경외심에 예배(禮拜)를 드리고 물러 나오니, 동서 두 탑(보물제297호)이 서로 다른 크기로 세워져 있으며, 동(東)탑의 1층 몸돌에는 사방으로 돋을 새김한 불상이 새겨져 있고, 두탑 모두 통일 신라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신다.
대적광전 오른쪽에는 조그마한 약광전이 있어, 석불좌상(보물제296호)이 한기 있는데, 마모가 너무심해 얼굴 모습이나 두손을 모으고 있는 부분이 선명하지 못하다. 안내판에는 원래 3형제의 불상이 있었는데, 김천 직지사의 삼성암에 한기를 모시고, 금오산 정상 약사암에 또 한기를 모시니... 이곳 부처님과 세분이 형제불로써 한날 한시에 방광(放光)을 하시어 영험이 특별하다 하시니...
수도산 자락에 고즈넉히 자리하여, 천하의 명당에 보물들을 간직 하시고, 이름난 도인들을 길러 내시니... 그 지세(地 勢)와 지덕(地德)이, 영원토록 무궁 무궁 하소서...!
갈길은 먼데... 산능성이를 따라 부지런히 오르니, 날씨는 따사로와 봄날이라 함이 좋겠다.
산행날에는 무엇보다 날씨 부조가 으뜸이라, 토양도 순하여 산행길이 순조롭다. 절 주위를 벗어나니 소나무는 거의 볼 수 없고, 갈참나무와 철쭉나무들이 지천이다.
잎떨어진 앙상한 나목들이 키재기라도 하는 것인가? 갓 떨어져 쌓인 낙엽을 밟으며... 바시락 거리는 갈색의 낙엽들을 밟으며... 산 오르는 재미를 님들은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오르는 중간 중간 휴식도 취해가며, 가져온 과일들을 입가심으로 나눠들 드시니... 인심도 좋을시고...!
산(山) 인심이야 언제나 넘쳐 나는것이라...! 남여상열지사(男女相悅之事)라고, 음담패설(淫談悖說)은 언제 어디서라도 웃고 즐기는데는 최고라...!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고 내뱉는 말이, 온 산을 떠들썩 하게 하는구나...!
웃고, 희희덕 거리는 가운데 생활속에서 쌓인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이라...! 하도 많이 웃어, 이제 배가 다 아프다.
다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정상으로 향하니, 이정표는 500 여미터 전방이라 표시되어 있다. 정상에 돌탑이 저만큼 보이고, 경사는 가파른데, 칠순의 노익장 정명돌 회원님은 여여히 오르시니... 그 정성과 인내가 존경스러우며, 모처럼 참석한 K양은 오늘따라 힘들어 하시니... 산행은 쉬지않고 정기적으로 하는것이 중요함을 일깨워 주신다.
오를 수 록 시야는 넓어져서 청암사 주위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동쪽 방향에는 단지봉, 좌일곡령, 석항령 주위까지는 보이나 더 이상은 시야가 흐리다. 수도암 부근에만 약간의 소나무가 보일뿐, 그 외에는 모두가 낙엽수들인가? 발가벗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어지럽게 팔을 벌리고 나열해 있으니...
하늘의 구령인가? 대자연의 질서는 볼 수 록 신비하다. 수도산(1316M) 정상에 이르니, 돌탑이 한기 있는데... 그 높이가 3미터 정도는 돼 보이니, 정상은 3미터를 더하여 기록 하는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주위의 산세를 조망하니... 남쪽으로는 양각산, 흰대미산(1018M), 보해산(912M)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단지봉(1327M), 두리봉(1133M) 까지는 짐작 하겠으나, 그 이상은 시계(視界)가 흐려 짐작 할 수 없고, 서북 방향으로는 봉산(902M), 국사봉(875M) 까지는 짐작이 가나, 백두대간의 모습은 분간키 어렵다.
백두대간상의 대덕산(1291M) 부근에서 흘러나온 수도지맥은 가야산 부근의 두리봉(1133M), 가조의 비계산(1130M), 합천의 만대산(688M)을 거쳐 낙동강에 그 맥을 떨구고 있으며, 북쪽 방향으로는 삼방산(864M), 염속봉산(870M)을 거쳐 구미 금오산 까지 이어지니... 합천, 고령, 성주, 구미까지 4개의 고을 주민들을 품 너르게 끌어 안으니...
이고장 인걸(人傑)들의 요람이 되고 있습니다. 황강과 대가천, 우가천, 감천 등 등 수 많은 지류들이 모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니... 산천의 경계는 뛰어나고 수려(秀麗)하여, 이고장 인심의 터전이 되고 있어라...!
아~아~ 초겨울의 낙엽진 산하(山河)의 아름다운 모습들이여...! 우리와 더불어 함께 하지못한 님들의 아쉬움이 얼마만 하실꼬...? 이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아서, 님들에게 보여 드리리라...!
머무르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갈길이 멀다하여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능선길로 내려가니, 양각산 가는길은 따사롭기 그지 없다. 산행길은 낙엽으로 덮여 있어, 발밑의 감촉이 감미롭고, 간간이 바위 절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기 이를데 없어,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외치는 한마디가 이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자고 하신다...
능선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등산로 주위로는 떡갈나무, 갈참나무, 철쭉, 진달래 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자세히 보니 철쭉은 싹눈이 입을 다문채 겨울맞을 채비를 하느라 단단하기 이를데 없다.
가을은 겨울을 잉태하고, 겨울은 봄을 잉태하고 있다드니... 겨울 나목에서 충분히 느끼겠다. 양각산 근처에 이르니 두개의 봉우리가 일정한 간격에 뾰족이 솟아 있어, 소뿔마냥 솟아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겠도다.
정상에 오르니 주위경치를 조망하기는 좋으나, 올려다 보는 경치와 마찬가지로 여럿이 머물기는 협소하다. 정상 표석이 하도 작아 얼른 구별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며, 그 옆에 양각산에 대한 내력을 새겨놓은 작은 빗돌이 있어, 너무 작아 읽어보기도 쉽지 않다.
온길을 되돌아 보니 수도산 정상은 가물 가물하고, 이어지는 능선길과 가야산 방향으로는 단지봉, 두리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서둘러 흰대미산 방향으로 나아가다.
점심시간도 늦어 있고 시장끼도 더하여, 10 여분을 더 내려와 양지바른 곳을 찾아 모두들 점심을 드신다. 수북이 쌓인 낙엽더미위에 앉으니, 편안키도 하거니와 오늘따라 가져온 깔개도 소용 없구나...!
가져온 밥반찬이 하도 많아 어느것을 먼저 먹어야 할지... 맛 좋은 김장김치에, 씀바귀김치, 무우오각지 무침, 김무침, 땅콩조림 등 등, 돼지고기에 상추쌈까지 곁들이니, 한번씩 손가기도 바쁘구나...!
게다가, 식후 디저트로 밀감, 배, 사과, 단감 등 등, 황재덕 회원님은 커피까지 주문 받아 나눠드시니... 늦가을 초겨울의 따사로운 햇볕이, 우리네 산(山)인심과 어우러지니 온 몸에 열기가 후끈 후끈 할 정도다.
웃음꽃이 만발하여 산천의 적막을 깨뜨린다. 흰대미산(1018M) 가는 길은 평탄하여 걷기도 쉽거니와,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를 보충한 뒤라 더욱 힘이 솟는다. 간간히 산행객들도 있어, 대구에서 오신분도 있고, 거창, 김천에서 오신분도 계시며, 심지어는 멀리 광주에서 오신 분들도 계신다. 반갑습니다... 산인사도 서로 나누며 웃는 얼굴로 마주하니, 벗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해서는 산행길도 한고비 넘겨있고, 몸과 마음도 충분히 고산 기후에 적응하여 진행속도가 일사불란(一絲不亂)하다.
40 여분을 진행하니 흰대미산 정상이 우뚝 솟아 보이는데, 바위덤으로 보이나 흰대미산의 의미를 쉽게 느끼지 못하겠다. 흰덤이산이, 흰대미산으로 부르게됀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정상에 오르니... 쉬어 갈 자리이지, 머무를 자리는 못 되겠다.
두개의 뿔이 아름답게 솟아 있는 양각산(兩角山)을 배경으로, 모처럼 단체촬영을 해드리다. 김~치~, 차~알~깍, 함박 웃음으로 모두가 꽃송이처럼 아름답다. 선계(仙界)가 따로 없고... 선남선녀(仙男仙女)가 따로 없네...! 흰대미산이 선계요! 님들이 바로 선남선녀라...!
서둘러 하산하여 우량동으로 향하니... 하산길은 가파르고, 소나무 숲이 많아서 인가, 해묵은 갈비가 푹신 푹신하여 걷기는 편안하나 미끄러워 조심스럽고, 가을 가뭄이 심한 탓으로 줄지어 내려오니 먼지가 많이 일어난다.
산행 경험이 많아서 인가? 진행이 순조롭고, 순풍에 돛을 달고 나아 가는 듯 하구나...! 갈림길에서 우량동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 그만 왼쪽 방향의 가북면 중촌리 심방골로 빠져 버렸으니... 예정됀 하산 지점과는 반대 방향이 아닌가?
수도산, 양각산, 흰대미산의 종주도 순조롭고 날씨도 포근하여, 예정시간 보다 빠르게 진행 되었으니...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陶醉)해서 인가? 중촌리 까지 약 2KM 정도 걸어나와, 마을 회관 앞에서 1시간 40 여분을 기다려 차가 당도 하니...
종일토록 좋던 기분이 아쉽기만 하구려... 어둠속에서, 준비해온 오징어 두부 찌개를 끓여 하산주와 곁들여 드시니... 입으로 들어 가는지... 코로 들어 가는지, 분간키 어렵구나...!
아~아~ 오늘따라 우리 님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여서, 내 사랑이 듬뿍든 철늦은 감홍시를 선물로 대접 하노니... 따뜻이 드시고 심신(心身)을 녹이소서...!
단기 4338년(서기2005년) 11월 27일
김천 수도산(1316M), 양각산(1150M), 흰대미산(1018M)을 종주하다.
첫댓글 종주 못한게 영~아쉽기만 하네요....함께한 회원님들꼐 혹여 폐 끼치는게 아닌가 해서.....^^* 잘 할수 있도록 노력 할께요~~~~*^^*
종주한것과 안한것 비슷한데 가급적 앞으로 A코소로 전환해야될것 같으이.
구슬님,예림님 정도면 항상 A 코스 하고도 남심더... 다음엔 꼭 ! 꼭 ! 꼭 ! 종주 합시더...! 점심때 제일로 생각납디더...
오머~ 고마우셔라....^^ 역~씨 회장님 뿐이씨라니까....ㅎㅎㅎㅎㅎ(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