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그날의 대변란(大變亂)

[修菴 金徹重]

1950년 6월 25일 그날의 대변란(大變亂)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9·28 수복 직후부터 누구나가 불렀던 <6·25의 노래> 첫 구절이다. 겨레의 최대 비극의 날인 1950년 6월 25일. 그 날은 삼국시대 이래 또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일요일인 이날 나는 하숙집에 있었는데 점심 때쯤에 고창이 고향인 기계과 학생 송 아무개(이름을 잊었음)가 시내에 나갔다 온다며 들려서 아무래도 무슨 사단이 났는지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시내의 네거리마다 헌병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고 “모든 휴가 장병들은 지금 즉시 귀대하라”는 가두방송차가 시내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이미 38선이 무너지고 남북간에 전쟁이 벌어졌음을 방송 중이고 계엄령이 내려졌는데도 우리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가정집에 라디오가 설치된 집이 5분의1에도 미치지 않은 때였다. 송아무개는 고창중학교에서 민학련 활동을 하다가 퇴학을 당하여 공업학교로 편입학하여 온 학생으로 그 동생과 같이 우리 하숙집과 멀지 않은 농림학교 옆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가끔 우리 하숙집에 놀러오곤 하는 학생이다.

   한경호와 송아무개 우리 셋은 서로 터놓고 말은 안하지만 이심전심으로 좌경적임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심하게 “그래!” 하고 말았다. 그 무렵 38선을 경계로 국군과 북한군의 충돌이 가끔 있었고 황해도 옹진지구에서는 한 때 밀리고 밀고 하는 국지적 전투도 벌어져 양쪽에 모두 희생자도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뭐. 그런 정도의 충돌이겠거니.’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하숙생들도 동아일보 한 부를 넷이서 합자로 보고 있었는데 그날 새벽에 인민군들이 탱크를 앞세워 전면적인 기습으로 처들어온 이 엄청난 전란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방송국 아래쪽에 사는 전기과 이아무개 학생이(이 사람 이름도 잊었음) 오후에 광석라디오를 가지고 와서 상황을 들려주며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의 전역에서 처들어오고 있음을 들려 주어서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당시 전기과 학생들 중에는 광석을 이용하여 장난감 같은 광석라디오를 간단하게 조립하여 레시버로 KBS 방송을 듣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에 한경호와 나는 좀이 쑤셔서 시내 중심가로 나가 보았는데 거리는 온통 헌병들이 교통을 정리하고 군용차마다 군가를 부르는 군인들을 가득 싣고 끊임없이 북으로 달려가고 있어 분위기가 평시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니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민군들이 대대적으로 남침하여 온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혹 국군이 반격에 나서 인민군들을 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하고 또는 그게 아니고 실은 국군이 밀리고 있다고도 하여 정확한 상항은 알 수가 없었으나 그때 라디오 방송은 용감한 우리 국군이 괴뢰군들을 물리치며 북으로 진격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맡은 바 생업에 종사하라는 내용으로 계속 보도하였다. 또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은 일치감치 보따리를 싸 수원으로 내려와 있으면서도 서울을 끝까지 사수할 것이니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계속 녹음된 방송을 틀어 국민을 기만하고 있었다.

   3~4일이 지나니 모든 기차는 군인과 군수품 등을 수송하느라 통학차가 끊어져버려 학교 교실은 학생들이 반절 정도로 줄었으며 수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때 작문을 담당한 채규담 선생님이 부안에 언제 가느냐고 물어 토요일에 간다니까 내일 교무실로 들리라 하여 다음 날 갔더니 편지 한통을 주면서 신석정 선생님께 잘 전하라 하였다. 나는 피난민으로 초만원인 기차 화물칸을 타고 신태인에서 내려 부안에 왔으며 일요일에 선은동 청구원으로 선생님을 찾아뵙고 편지를 전했더니 선생님은 편지를 읽어보시고 아무 말 없이 태워버리셨다. 나는 그 내용이 조금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하여 답장을 주실랍니까? 하였더니 잘 받았다고만 하라 하셨다. 그때 선생님은 배탈이 나셔서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고 계셨었다. 후에 들으니 그 채선생은 인공(人共)때(인민공화국의 약칭) 열성적으로 부역을 하여 수복 후 우익진영으로부터 학살 되었다는 풍문이었다.

   그때 우리집은 부모님께서는 모산에 사시고 형님과 동생들은 옹정 샛터에 그대로 살았으므로 나는 모산의 부모님과 형님을 뵙고는 다시 이리로 와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7월 초부터는 서울말씨의 피난민들이 이리에 물밀 듯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우리 하숙집 과수원의 올복숭아가 막 익어 따기 시작하였는데 서울말씨의 피난민들이 사먹으러 몰려와 우리 하숙생들이 주인을 도와 따서 팔기도 하였다. 이때 하숙생 중 정읍학생 숙질간은 집으로 가버리고 한경호와 나만 남았는데 우리 둘은 서로 말은 안했지만 이심전심으로 인민군들이 어서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그들이 오면 그 뒤를 따라서 의기양양 부안으로 갈 심산이었으니 전쟁을 무슨 구경거리 여행쯤으로 여긴 물정 모르는 순진한 학생들이었다.

  어느 날 교련시간인데 배속장교가 시내 중학교 배속장교회의에 가고 없어서 자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2층에서 우연히 교문 쪽을 보니 배속장교가 헐레벌떡 교문 안으로 들어오면서 교문의 보초더러 큰소리로 “야! 5·6학년은 한 사람도 하교시키지 마라! 그리고 지금 운동장으로 모두 모이라고 해!” 하며 황망히 들어왔다. 그래서 같은 반 김순철군에게 이 말을 전하며 “이것이 아무래도 수상하니 우리 도망하자” 하여 둘이서 학교 뒤 선생님들 사택을 이용하여 간신히 학교 밖으로 탈출하였다. 공업학교 뒤 일대가 복숭아 과수원인데 그곳을 이리저리 도망하여 하숙집으로 온 것이다.

  그때 5·6학년 학생으로 착실하게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그대로 학병으로 나가서 겨우 총 쏘는 방법만 익혀 저 유명한 포항전투에 투입되어 대부분이 전사하였으니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한다면 나와 순철이는 아슬아슬하게 탈출을 한 것이다. 그때 이리 시내 중학교는 이리공업학교, 이리농림학교, 이리남성중학교 뿐이었는데 그날 5·6학년들이 농림학교에 집결하였다가 석양에 트럭에 분승하여 학도호국단가를 부르며 금마 쪽으로 지나가는 소리를 하숙집에 숨어서 듣고 있는 그때의 착잡하고 비굴한 내 심정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이때 전라북도에서만도 40여 개 중학교에서 3천여 명의 학생들이 반강제로 끌려가 포항전투에서 많은 학생들이 전사하고 살아 돌아온 학생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내 평생의 금란지우(金蘭之友)인 이갑수(李甲洙) 교장은 그때 전주에서 기차통학을 하였는데 통학차가 끊어져 집에 있다가 7월 10일경에 모든 중학교의 5·6학년 남학생들은 전주북중학교 교정으로 오후 2시까지 빠짐없이 모이라는 가두방송을 듣고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소식도 궁금하고 하여 나갔다고 한다. 이때 그 어머니께서 난리 중에는 만일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잘 지녔다가 위급할 때 사용하라며 금가락지 한 쌍을 쥐어주었다는 것이다. 전주북중학교에 모인 각 학교 5·6학년 학생들을 배속장교들이 인솔하고 기차에 실려 순천여자중학교로 집결 다음 날부터 총 쏘는 연습 등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이갑수는 배탈이 났다고 핑계하고 있다가 교관에게 금가락지 한짝을 쥐어주며 배가 몹시 아프니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여 탈출에 성공하고 다른 친구 두 사람과 돌아오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려 나머지 한 짝으로 위기를 벗어났었는데 전주가 이미 인민군에게 점령되어 장수 산서면의 외가에서 그 친구와 같이 6·25를 보내고 9·28 수복 때 UN군의 뒤를 따라 집으로 왔다고 한다. 후에 그는 대학졸업 후 군복무를 제대로 마치고 평생을 교직에 있다가 정년 후로는 사진작가로 활동을 하며 노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7월 12~13일 쯤의 어느 날인가 그 날이 하숙집 논의 김매는 날이어서 우리는 그 일을 도와주고 막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비행기 두 대가 이리역 상공을 지나가고 있었다. 웬 비행기일까 하고 막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비행기에서 검은 물체가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벼락치는 소리로 한바탕 폭탄이 뻥뻥하고 바로 내 머리 위에서 터지는 것 같았다. “아! 폭격이다!” 하며 나는 정신없이 무작정 달아났는데 앞에 무엇과 탁 부딪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문 쪽으로 달아난다는 것이 방송국 쪽으로 달려가다 울타리에 부닥친 것이다. 길을 고쳐잡고 대문 밖으로 나와 시내를 벗어나 팔봉 금마 쪽으로 달아나면서 보니 이리역 쪽에서 검은 연기가 시꺼멓게 솟아 하늘을 덮고 기차의 기적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 길게 울리고 있었으며 시내로부터 허겁지겁 도망하여 오는 사람들이 길을 꽉 메워오고 있었다. 내복바람인 여인, 런닝에 팬티만 입은 남자, 어린애기를 보듬은 어머니, 늙은 할아버지의 팔을 끼고 오는 사람,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사람 등이 그저 앞만 보고 시내를 벗어나고자 도망쳐오는 속에 나도 끼어 시내를 벗어나 어느 농가 옆 밭두렁 가에 이르렀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비행기 4대가 쌩하며 머리 위로 지나간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옆 밭두렁 밑에 엎드려 있었는데 비행기가 이리 시내를 종횡으로 가르며 몇 바퀴를 돌더니 어디로인지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6·25 때 내가 처음으로 겪은 폭격이요 제트전투기인데 사람들이 호주비행기라고 불렀던 그 비행기였다. 이것이 미 공군기에 의하여 폭탄 50여 발을 떨어뜨려 이리역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들어 400여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을 폭사시킨 이리역 오폭 사건이다. 그 후에 떠도는 말로는 인민군들이 조치원까지 내려왔으므로 이리가 조치원역인 줄 잘못 알고 오폭했다는 설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폭격을 피하여 동서남북 야외로 나왔는데 당시에는 누구나 북한 측의 비행기가 폭격을 한 것으로 알았고 그 제트기들도 처음 보는 비행기여서 누구나 북한 비행기로 알았으니 두려움으로 앞날이 막막하였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들어 나는 경호를 찾았으며 경호와 함께 하숙집의 네 식구들도 근처에서 모두 찾아 밭두렁 가에 함께 있었으나 석양이 되어도 무서워서 시내의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가 어두워진 뒤에서야 가슴을 조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변전소도 폭격을 당하여 그 번화했던 이리 시내 어디에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으며 쥐죽은 듯이 조용한 캄캄한 죽음의 도시가 되어 정말로 긴장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밤이었다.

   다음 날 앞집의 하숙생 순철이도 서둘러 부안으로 가버렸는데 한경호와 나는 용기를 내어 이리역에 가보았다. 산산이 파괴된 역사며 기관고(汽管庫 :기관차 차고) 그리고 파괴되어 드러누운 기관차, 엿가락처럼 구부러지고 늘어진 선로와 여기저기 폭탄이 떨어져 패인 구덩이들이 처참하였는데 그보다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것은 아직도 수습 중인 시체들이었다. 온전한 시체는 수습이 바로 되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팔다리며 찢겨진 시신들에 엉키어 울부짖는 유족들의 울음은 아비규환의 지옥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 처절한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경호와 나는 쫓기 듯 와버렸다. 전쟁의 엄청난 파괴와 비참함의 생생한 현장을 난생 처음으로 목격한 그날 나는 참혹하고 역겨운 그 시신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어 한동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리역이 크게 폭격당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몇 날이 지난 후 부안의 가족들도 알고는 오늘이나 올까 내일이나 올까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무슨 사단이 난 것 아닌가 하고 우리 형님과 경호의 숙부 칠석(七錫) 씨가 자전거로 이리에 와서 방송국 옆 과수원의 하숙집을 물어물어 찾아 오셨다. 그래서 이 난리 통에 서로 무사하기를 빌며 하숙집 주인 윤씨 내외와 기약 없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부안 집으로 돌아와 인민공화국 세상을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