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에 [赤壁]에 부쳐』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에 있는 적벽에 대해 이발, 김창협, 송병선 등이 지은 한시.
개설
화순 적벽은 화순군 동복면·북면·이서면 3개 면의 경계점에 위치한 옹성산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는 60~80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적벽의 유래는 그 명승과 경관이 중국의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유명한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황주 양자강 강가에 있는 적벽을 방불케 한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중종 때의 명유(名儒)인 신재 최산두(崔山斗)가 기묘사화로 현재의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에 적거(謫居)하면서 동복 지역의 산천을 두루 거닐다가 이 승경을 보고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초옥 삼간인 물염정이 세워져 있으며, 석천 임억령(林億齡), 하서 김인후(金麟厚) 등이 이 승경을 시로 읊고,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또한 송병선 외에도 이흥발, 이발, 한준겸, 김창협, 민진원, 김수항 등 많은 문인들이 화순 적벽에 대해 시를 남겼다.
구성
이발(李潑)이 지은 시는 오언 절구 2수로 연(煙)과 천(天), 귀(歸)와 휘(暉)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김창협(金昌協)이 지은 시는 칠언 율시로 천(川), 연(煙), 현(懸), 선(仙)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송병선이 지은 시는 오언 율시로 안(顔), 한(閑), 환(寰), 환(還)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내용
「적벽에서 놀며(遊赤壁)」[2수] / 이발
방초후여전(芳草厚如氈)[방초 두터워 융단인 듯 하고]
청산원사연(靑山遠似煙)[청산은 아득하여 연기와 같네]
휴군금일취(携君今日醉)[그대와 함께 오늘 취하니]
만사신창천(萬事信蒼天)[만사를 오직 하늘에 맡긴다네]
암취도적벽(巖醉倒赤壁)[바위에 취해 적벽에 누웠다가]
어인득휴귀(漁人得携歸)[어부에게 살찐 고기 얻어 돌아가네]
유지위유모(惟之遺慈母)[오직 이것을 어머니께 드려서]
유가보춘휘(猶可報春暉)[봄볕 같은 은혜에 보답하리라]
「적벽에서 읊노라(赤壁題詠)」 / 김창협
연봉무수상청천(連峯無數上靑天)[무수한 산봉우리 푸른 하늘에 치솟고]
하유창랑일도천(下有滄浪一道川)[그 아래 푸른 물결 한 줄기 냇물이라네]
삭출층암류신귀(削出層巖類神鬼)[깎아지른 층층 바위 귀신의 모습이고]
결위공취사운연(結爲空翠似雲煙)[맺혀있는 산안개는 구름 연기 같구나]
송삼진향담중사(松杉盡向潭中寫)[소나무와 전나무 모두 못 속에 비춰있고]
일월의종석상현(日月疑從石上懸)[해와 달은 돌에 기대 달려있는 듯하네]
견설음애유소학(見說陰厓有巢鶴)[들으니 비탈 그늘에 학의 둥지 있다는데]
야심응몽우의선(夜深應夢羽衣仙)[깊은 밤 꿈엔 응당 신선을 만나리라]
「적벽에 부쳐(題赤壁)」 / 송병선
개정점지승(開亭占地勝)[경치 좋은 터 잡아 정자를 지으니]
운물미인안(雲物媚人顔)[아름다운 풍경이 미인의 얼굴이네]
강공화영사(江空花影瀉)[강물이 잠잠하여 꽃 그림자 비치고]
산정조성한(山靜鳥聲閑)[산조차 고요하니 새소리도 한가롭다]
고표류왕촉(高標留往躅)[높다란 나무 끝에는 옛 자취 남아있고]
유경출진환(幽境出塵寰)[그윽하고 조용하여 속세에서 벗어났네]
빙함유정사(憑檻悠情思)[난간마루에 기대어 옛정을 생각하니]
일사각망환(日斜却忘還)[해가 서산에 지도록 돌아갈 길 잊었네]
의의
적벽은 화순의 명소로 예전부터 중국의 적벽과 비견되어 많은 문인들의 방문하였던 곳이며, 이들이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남겼다. 이발의 시 2수는 아름다운 적벽의 정취와 함께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그려냈고, 김창협은 적벽의 아름다움을 신선이 사는 곳과 빗대어 도가적인 흥취를 풀어냈으며, 송병선은 적벽의 풍광을 통해 예전에 노닐던 감흥을 노래하였다. 전해지는 한시로는, 이발의 「적벽에서 놀며[遊赤壁]」, 김수항(金壽恒)의 「적벽에서 정적송과 더불어[與丁赤松酬赤壁]」, 김창협의 「적벽에서 읊노라[赤壁題詠]」, 민진원(閔鎭遠)의 「적벽에 부쳐[題赤壁]」, 강두운(姜斗運)의 「적벽강에 놀다[遊赤壁江上]」, 하윤구(河潤九)의 「적벽에서 읊다[赤壁題詠]」, 나경적(羅景績)의 「임술년 칠월 보름 적벽에서 놀며[壬戌七月旣望遊赤壁]」 등 많은 문인들의 작품이 있다. 이렇게 화순의 적벽을 읊은 시들은 문학 공간으로서의 적벽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주요한 작품 군(群)이라는 의의를 가다.
참고문헌
강동원 옮김, 『화순의 옛 시』(예원, 1991)
『화순 누정집』(화순 문화원, 1997)
『한국 지명 유래집』전라·제주편(국토 지리 정보원, 2010)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화순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2013년 10월, 지난 3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금단의 땅, 화순적벽 중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이 개방되었다. 두 적벽은 아무때나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적벽투어 홈페이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볼 수 있는 비경이다.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만 열리는 적벽투어다. 버스 타고 적벽의 비경을 즐겨보자.
적벽 낙화[赤壁 落花]놀이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적벽에서 매년 4월 초파일 밤에 용 형태의 건초에 불을 붙여 강물 위로 떨어뜨리는 민속놀이.
개설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보산리·창랑리 일대 명승지인 적벽은 크게 장항[노루목] 적벽, 보산 적벽, 물염 적벽, 창랑 적벽으로 구분된다. 그 중 장학리 노루목 적벽과 창랑 마을에서 4월 초파일에 장정들이 적벽 정상에 올라가 돌을 넣어 묶은 건초에 불을 붙여 강물 위로 던지며 낙화를 즐기는 불교적 성격의 민속놀이다. 강가에서는 밤하늘에 솟구치는 불꽃을 보며 꽹과리와 북, 징을 치며 흥을 돋우고 술을 마시며 즐긴다.
연원
화순 적벽의 낙화 놀이와 유사한 경북 안동 하회 마을의 낙화 놀이는 적벽부의 칠월 기망을 본떠 매년 7월 16일에 부용대를 적벽으로 생각하고 소나무와 뽕나무를 태운 가루를 섞어 만든 건초 자루에 불을 붙여 강물 위로 던지고 즐긴다.
놀이 도구 및 장소
화순군 이서면 장항리 적벽 정상에서 불을 붙인 쏘시개를 강물 위로 높이 던진다. 놀이 도구로는 산에서 베어 말린 건초를 묶어 적당한 돌을 넣어 만든 불쏘시개와 모닥불 등이다.
놀이 방법
노루목 낙화 놀이는 매년 4월 초파일 밤에 벌어진다. 10여 명의 장정이 지게를 짊어지고 노루목 적벽에 올라 불덩이를 던지고 꽃불을 날린다. 지게 안에는 꽃불을 피우려고 미리 작업해 놓은 불쏘시개가 있다. 소 먹이는 마초를 산에서 해다가 말려 놓고 기다란 잎을 던지기 좋게 만들어 마초를 묶어 한 단씩, 사람 팔뚝 크기로 길게 만든다. 그 건초 안에 돌을 넣고 묶는다. 무게가 있어 멀리 날아가는 것이다. 일설에는 그 불쏘시개 모양은 ‘용’형태를 만드는 것이라고도 한다. 적벽 아래에는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사는데 용 모양의 달집을 태워 던짐으로써 이무기를 달래고 복을 비는 의미도 있다. 적벽 정상에서 불덩이를 던지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절벽 위에서도 불덩이를 던질 만한 곳은 좁고 위험한 곳이어서 딱 한 사람이 그 자리를 찾아간다. 위험에 대비해서 허리의 끈을 가까운 소나무에 묶는다. 그러고 나서 불쏘시개에 불을 붙일 모닥불을 피운다. 나머지 장정들이 하나하나 불쏘시개를 전달하면 그것을 받아 모닥불에 불을 댕겨 강물 위로 멀리 던지는 것이다. 적벽 아래 불구경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론디[내려오는데] 얼마나 재미지겄어. 징 깽매기[꽹과리] 장구 치고, 연주를 얼마나 잘 헌지 몰라. 불 떨어진 거에 맞춰 따다다다 빨리 치기도 하고 춤추라고 장단 맞춰주고. [사람들] 박수 소리 고함 소리가 말도 못해. 기분이 좋제. 촌에 이런 귀경거리가 없어.”[글 김창헌 기자, 제보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정동오 77세]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불은 특성상 제액을 소멸시키는 정화력을 갖는다. 정월 대보름의 달집태우기와 큰 소리로 잡귀를 쫒는 폭죽과 쥐불놀이 불 넘기 등은 축귀와 풍농, 그리고 액을 물리치는 민속이지만 적벽 낙화놀이는 4월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 풍속과 달리 오락적인 놀이이다.
현황
적벽 낙화 놀이는 매년 4월 초파일 해가 진 뒤에 행해졌다.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고자 등을 밝히는 것처럼 낙화 놀이도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불교적인 성격을 갖는 민속 행사다.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낙화 놀이는 조선 말기에는 관료나 선비들의 풍류놀이가 되어 아무 때나 행해졌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에 다시 재현되었다. 적벽 낙화 놀이는 초파일 뿐만 아니라 추석과 같은 명절에도 간혹 행해지고, 1975년에 시작된 적벽 축제에서도 했다. 부처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가 지역의 관광 축제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동복댐 조성으로 장항 적벽 30m 정도가 물에 잠기고 마을이 수몰되어 주민들이 흩어지자 불쏘시개를 만드는 이도 던지는 이도 없어져 이 놀이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참고문헌
『우리 고장 전통 민속과 놀이』(전라남도 교육 연구원, 1994)
『마을 유래지』(화순군, 1995)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화순군·남도 민속 학회, 1998)
『전남 향토 문화 백과사전』(전라남도·전남 대학교 호남 문화 연구소, 2002)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시인묵객이 앞다퉈 다녀간 화순적벽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 7km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을 화순적벽이라 부른다. 화순적벽에는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이 있는데 통칭해서 화순적벽이라 부른다. 적벽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온 신재 최산두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이름 붙였다. 이후 호남을 대표하는 하서 김인후, 담양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금산에서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적벽을 찾았다. 석천 임억령은 적벽을 유람하고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남기기도 했다. 조선 후기 들어 실학자 홍대용과 정약용도 아버지를 따라 유람을 나섰고,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도 화순을 세 번이나 찾을 정도로 각별했다. 적벽투어에 참가하면 패용해야 하는 관광객 전용 이름표 |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포토존에서 본 보산적벽과 망향정
적벽은 오래전부터 시인묵객도 많이 찾았지만, 서민들의 휴식처이자 피서지였다. 적벽의 높은 절벽 위에서 짚불을 강으로 날리는 낙화놀이도 즐겼다. 가까운 담양에서도 사람이 몰려올 정도로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동복댐이 건설되기 전만 하더라도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1971년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5년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출입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댐이 들어서면서 적벽의 일부를 비롯해 인근 15개 마을도 수몰됐다. 지난해 10월 적벽이 개방되어 정확히 30년 만에 감격스러운 상봉을 하게 된 셈이다. 30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으니 적벽과 함께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남은 것은 당연하다.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 절경으로 이서면의 노루목적벽을 꼽는다.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아무때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반면,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으니 예약을 서두르자.
노루목적벽을 바라보는 탐방객
화순적벽 최고의 절경,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적벽투어는 화순 금호리조트 주차장에서 출발해 이서면 소재지를 지나 화순적벽 포토존과 보산적벽 위 망향정, 노루목적벽을 둘러본 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35인승 버스라 다소 비좁다 느꼈는데, 노루목적벽으로 가는 길에 버스가 들어서니 이내 수긍이 간다. 화순적벽 초소에서 화순적벽이 바라다보이는 망향정까지는 4.8km. 동복호의 절벽을 따라 비포장도로가 구불구불 휘어지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버스가 이런 길도 다니나 싶을 정도로 아찔함이 느껴진다. 차창 밖으로 동복호의 풍경이 조금씩 스칠 때쯤 동복호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 거북섬이 눈에 들어온다. 비록 차창으로 보는 풍경이지만 긴 목에 등갑을 지닌 거북의 모습 그대로다.
화순적벽의 첫 번째 포토존은 망향정이 있는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망향정에서 바라보는 웅장한 화순적벽보다 망향정을 이고 있는 보산적벽과 노루목적벽의 조화가 훨씬 더 멋지다. 포토존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 아쉬울 따름이다. 갈지자로 된 가파른 길을 한참 내려가야 망향정 입구에 닿는다. 망향정 주변에는 적벽동천과 적벽팔경이 새겨진 비석,
출처: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적벽 가는길 M/V 🎤김용임 노래 #화순적벽 (youtube.com)
2024-07-29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