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도리
김 덕 호
‘하필 내가 왜?’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윤서희는 그 중에서도 호된 시집살이로 가슴 속에 쌓인 불덩이를 시댁을 향해 조준했다.
시누이와 시어머니에게는 분노의 화살을 쏘았다.
그녀는 그동안 짓밟히고 찔려온 세월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이 벌렁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힌 그 사람들은 암이 안 걸리고 바르게 열심히 살려는 사람이 암에 걸리는지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간암 진단을 받은 지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그랬다. 앞으로 3개월 남짓 남았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지금쯤은 삶을 마무리하기에도
촉박한데 왜 감정조절이 안되는지 서희 자신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젠 분노의 주기가 뜸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암 선고는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계속 짓눌렀다.
암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많이 접해왔다.
그러기에 면역증강과 표적치료 못지않게 감정치료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서희는 처음에 암을 부인하다가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 뒤에야 인정했다.
오히려 증오심은 더해졌다.
그럴수록 자신의 간이 더 멍들고 있음을 느끼고 자제하려고 애를 썼다.
그나마 얼마간 억눌렀던 화가 전화 한 통화로 다시금 타올랐다.
간밤 늦은 잠을 청하려고 병실에 누웠는데 폰이 울렸다.
둘째 시누이였다. 남편과 관련된 일로 상의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서희는 입원 차 서울서 먼 길을 내려온 데다 기본검사와
향후 자연치유프로그램 상담을 받다보니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그녀는 암 치료차 내려온 환자에게 위로는커녕 전처럼 또 속을 뒤집어 놓았다.
남편과 아들이 죽고 없으니까 무시하는 말투로 상처를 줬다.
둘째가 시댁을 좌지우지 했다. 예의나 배려 따위는 아예 없는 독특한 성격의 인간이었다.
서희는 닭 울음소리에 뒤늦은 새벽잠에서 깼다.
짙게 낀 안개를 뚫고 장수마을 쪽에서 불어오는
아카시아 꽃향기와 새소리가 그나마 가슴을 식혀주었다.
‘이제 살만 한데.’
서희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내노라 할 만큼 사업도 성공했다.
자식도 남부럽지 않게 키웠고 시댁까지 먹여 살렸다.
가족을 사고로 보내고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남편이 저지른 도박과 사기에 말려든 부채를 갚느라고 남들처럼 중년의 즐거움도 모르고 살아왔다.
남은 건 몹쓸 병이라니 허탈했다.
어려울 때마다 기도의 위력을 경험했으면서도 이번만은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속이 답답해 병원 뒤 메뚜기 길을 따라 희망봉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당원을 돌아 장수마을을 내려오다가 길옆에 정안정이라고 부르는 정자 마루에 걸터앉았다.
인생을 안개에 비유한 글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우울해졌다.
짧고 허무한 삶인데도 느지막이 의문의 보따리는 왜 그리 커지는지?
요 며칠간은 근심보따리 몇 개가 머리를 눌렀다.
‘반복되는 약물치료와 색전술을 잘 버텨낼까?
자연치유프로그램이 과연 내게도 효과가 있을까?
얼마를 더 살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진행된 암이라서 치료확률은 있을까?’
답을 모르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앞이 캄캄했다. ‘절망의 벽을 뛰어넘을 방법이 없을까?’
서희는 강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엄습해왔다.
‘아, 이래서 환자들이 심리적 공황상태로 자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되나보다.’
딸과 친정 동생들이 자주 전화를 주고 힘내라고 하지만 아직 일어날 용기가 없었다.
육십부터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암과 투병하면서 홀로서기를 한다는 게 쉽질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천년만년 살 것 같았던 자신의 모습이
작은 풀벌레보다 못한 존재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도 서운하고 서러웠다.
왕따가 되는 기분이었다. 계속 절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면 최소한의 생명 연장은 될 것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그러기 위해서 여기까지 내려온 게 아닌가?
자연치유센터 마무리 공사를 둘러보고 타운 내 솔숲 앞을 지나던
조진우 박사의 눈에 환자복 차림을 한 여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머리숱이 그리 많지 않은 밤색 웨이브 머리 스타일과
작은 두상을 한 왜소한 체격으로 보아 어딘가 눈에 익은 듯 했다.
그녀는 뙤약볕을 피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상념에 잠겨있었다.
고개 숙여 기도하는 뒷모습을 봐서 어제 서울에서 내려온 간암 환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혹시 윤서희 씨?” 그녀의 등 뒤에서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네에, 윤서흰데요.” 서희는 고개를 돌려 평복차림의 그를 보고는
금방 누군지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벤치로 다가갔다.
“윤서희 씨, 제가 누군지 아세요?”
그가 퍼즐씩 질문을 하려고 하자 서희는 대뜸 반말을 내뱉었다.
“성곡 촌놈! 차돌이?” 야무지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서희의 본성이 금방 튀어나온 건 전혀 뜻밖이었다.
“어제 입원한 환자가 넌 줄 몰랐어. 이름이 똑같아서. 혹시나 했지만.”
그가 머뭇거리며 말을 했다.
“차돌아, 내가 와서 실망했니? 반갑지 않은 말툰데.”
서희가 장난기 어린 말투로 긁었다.
“아냐, 왜 반갑지 않겠어?” 그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둘은 중3 겨울 방학 때 헤어지고 50년 세월이 지나 처음 만났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는 가슴을 안고 묘한 감정으로 만났던
소년과 소녀가 환갑이 지나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지자 그동안 서로 이름을 불러보지 못해
편하게 말을 놓기도 어정쩡하고 듣기도 어색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묘한 감정이 되살아나고 무엇엔가 사로잡히는 듯했다.
진우는 철없던 시절에 좋아했던 여자 친구를 갑자기 병원에서 만났으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분간이 안가고 몹시 당황했다.
헤어진 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소식 없이 지내다가 만났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성곡 이야기에 금방 학창시절로 돌아가 친해졌다.
“성곡에서 놀은 거 기억나?”
“그럼.”
그는 서희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녀는 미모의 윤곽은 남아있었다.
“사춘기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촌놈 차돌이!” 갑자기 그녀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야, 너 그 말 농담이지?” 진우는 당황해서 말했다 .그러나 곧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오호호…….촌놈이 모르더라고. 하긴 그 나이에 뭘 알겠어?”
“너, 그 말 거짓말이지?”
“ 거짓말로 들려?” 서희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차돌아! 나, 간암말긴데. 이젠 죽기 전에 할 말 다해야 갰어.”
“죽긴 누구 맘대로 죽는다고 그래. 여긴 내 병원이야. 넌, 내 허락 없인 못 죽어.
이젠 내가 너의 손을 꼭 잡아주고 놓지 않을 거야.”
“……. 절망에 빠진 간암 말기환자에게 정말 마음에 드는 말이네.”
서희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 그거 몰랐지?”
“뭘?”
“내가 널 짝사랑한 거?” 그가 농담처럼 말하자,
“뭔 말이야, 그게?” 서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땜에 엄마한테 되게 혼났어.”
“왜?”
“밤을 새워 네게 줄 연애편질 썼지, 그걸 바지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잊고 지내다가
그만 빨래하던 엄마한테 들켜버렸어,”
“그래서?”
“엄마가 나를 우물가로 불러서 갔더니 그 편질 꺼내들고 흔들면서
공분 안하고 이게 뭐냐며 종아리를 때리고 우시는데 되게 혼났어.”
“정말?”
“응, 울면서 무릎 꿇고 앉아 싹싹 빌었어. 다신 연애편지 안 쓴다고.”
“호호호…….바보야! 그럼 편지대신 말로하지.”
“난, 촌놈이었잖아.”
“너, 그거 기억나니? ‘
“뭐?”
“마지막 헤어질 때 내가 준 목도리.”
서희는 대구로 가기 전날 진우에게 털목도리를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
“이건 내 맘이야, 나 잊으면 안 돼.”
서희는 진우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었다.
그래서 밤색 털실로 목도리 하나를 떴다.
진우가 이 목도리를 받으면 자기의 마음을 알아 줄 것이라 믿었다.
“목도리?”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하자,
“그래. 넌, 몰랐겠지만 그게 사랑의 표현이었어. 방학 내내 뜨개질만 했지. 내 첫사랑에게 주는 거니까.”
“그래?”
“넌, 그걸 버렸겠지만, 난, 힘들 때마다 내가 한 소년에게 준 목도리를 생각하면 참고 견딜 수가 있었어.”
“그랬구나.”
“넌, 그 목도리 기억도 안 나지.”
“글쎄?”
“하긴, 너같이 둔한 애가 그걸 기억하겠니. 벌써 50년 전 일인데.”
서희는 생각했다. 바쁜 세상에 50년 전에 준 목도리를 어찌 기억하겠는가?
설사 보관을 했더라도 이사를 다니면서 옛날에 버렸을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외조부도 세상 뜨고 서희는 이제 대구 가면 성곡에 다신 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에게 기념이 될 만한 목도리 선물을 주고 싶어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했다.
뜨개질이 익숙지 않아 느리게 뜨는데도 대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상처투성이였다.
뜻대로 잘 안될 때는 외숙모에게 배우기도 하고 집중하다보면 끼니를 거를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기도 하고 얼음으로 살갗을 문질렀다.
주는 마음에 이토록 힘이 생긴다는 걸 알고 서희 자신도 놀랐다.
고생한 보람으로 목도리가 완성되자, 그녀는 흰색 실로 하단에 영문 ‘JS’라고 수를 놓았다.
두 사람 이름 중간자 이니셜이었다.
진우가 ‘JS' 라고 수놓은 걸 보았을까?
목도리는 그렇다 치고 안 웃던 웃음이 생긴 게 서희에겐 너무나 신기했다.
투병으로 웃음이 아예 없어졌다.
웃음은커녕 자신이 암에 걸리도록 못살게 굴고 스트레스를 준 시댁가족을 복수하고 싶었었다.
그러던 서희가 아주 자연스레 웃음을 터뜨린 건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고 있다는 징조였다.
“간암이라고 다 죽는 건 아냐, 마음 굳게 먹어,” 조 박사가 말하자,
“좋은 일만 생각해야 되는데 자꾸 후회할 일들이 더 많이 떠올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두려워,
때론 콱 죽고 싶지만 이렇게 됐으니 멋지게 죽고 싶어.”
서희가 고뇌에 차서 말했다. 다행히 서희는 이제 분노의 감정을 내려놓고
우울한 중에도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고 있었다.
“야, 죽긴 왜 죽어? 이번엔 내가 너한테 진 빚을 갚아야 할 차례야.”
진우는 사춘기시절에 복잡한 가정환경 때문에 힘들어 했다.
서희는 그때마다 진우를 다독거려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에게 서희는 믿고 의지할 유일한 이성 친구였다. 그에게 서희는 삶의 전부였다.
“저기 병원 뒤 등산로 보이지?”조 박사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거긴 산을 깎은 절개진데.”
“저 위가 등산로야, 저 등산로를 따라가면 희망봉 정상까지 갈수 있어.”
“희망봉?”
“응. 환자분들이 그렇게 불러.”
“왜 희망봉이야?”
“환자분들이 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소백산을 바라보면 삶의 희망이 보인데.”
“정말? 올라가는데 힘들지 않을까?”
“죽는 거 보담 쉽지. 오늘부턴 저 등산로 이름은 서희길이야. 하루 두 번씩 꼭 올라가렴.”
“그럼, 저 등산로는 내꺼네. 호호호.......”
“부지런히 등산해서 병 나으면 너 줄게.” 조 박사가 빙그레 웃으며 농담을 했다.
그는 3개월 남은 시한부 옛 친구에게 의사로서 심각한 이야긴 하기 싫었다.
“빨리 병이 나아서 너한테 통행세 받아야겠네. 오호호…….”
서희는 소녀처럼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그의 말 한마디는 그녀의 마음을 평정심으로 돌려놓았다.
진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당원쪽 오솔길을 걸어갔다.
그를 바라보며 서희는 중얼거렸다.
“난 할머니가 됐는데 재는 아직도 소년이야.”
병원 본관 뒤, 산을 60도로 깎아 놓은 언덕 위에 오솔길이 나 있다.
환자들은 이 길을 ‘메뚜기길’이라고 불렀다.
서희는 등산로 이름이 이상해 같은 병실 환우들에게 물어봤더니 210호 환자 때문이라고 했다.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진 64세의 이상철은 폐암 말기 환자로 분당 사람이었다.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3개월 시한부 환자로 남은 시간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
어느 날,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산의
절개 지 위로 지프차가 올라가는 것을 우연히 보고 마음이 끌렸다.
같은 병실의 문응구도 절개지 위의 오솔길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튿날 그는 아침을 먹고 그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말기 폐암 환자라 산을 올라가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다.
300미터 거리를 반나절이나 걸려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갔다.
그는 이당원 뒷산의 정상을 스스로 ‘희망봉’이라고 불렀다.
그 날 이후 그는 식사시간 이외에는 병실에 없었다.
늘 산이나 병원 부근의 언덕에 올라갔다.
중키에 홀쭉한 사람으로 병실에서 밥만 한술 뚝 뜨고는 없어졌다.
도로와 다리 밑이나 내줄리 동네 그리고 장수마을 힐링숲도 누볐다.
금방 이당로에서 봤는데 어느새 타운 입구에 가있었다.
그는 마치 메뚜기 같아 어디로 뛸지 가름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식사시간이면 항상 정확히 병실로 와서 밥을 챙겨 먹었다.
검은 운동모자를 학생처럼 삐딱하게 쓰고 등산화를 군화처럼 졸라매고 다녔다.
3개월 시한부 폐암 환자가 벌써 3년째 죽지도 않고 이렇게 제집처럼 편안한 병원생활을 해왔다.
가족들이 분당으로 올라가자고 아무리 졸라도 말없이 산으로 내 빼버렸다.
그는 병원에 명물이며 전설이었다.
대머리 변중태와 한때 친했으나 최근 외톨이로 지내왔다.
하루 종일 병원 밖으로 맴도는 그는 환우들의 심부름꾼이었다.
입원한 환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동네 일대를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는 사람이었다.
병원 직원들 몰래 골초 할머니의 담배 심부름을 해 주는 사람도 그였다.
병원 일을 모두 꿰뚫고 있는 간호과장도
할머니의 담배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이 그라는 것은 모르는 것 같았다.
환자들은 자기네들끼리의 동병상련의 끈끈한 의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서희는 창문을 열어놓고 아침공기를 마셨으나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아침식사 후 조 박사가 말한 메뚜기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 후 체력이 쇠약해 산을 올라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다행이 아침에 나온 된장국이 입에 맞아 오랜만에 밥을 달게 먹을 수가 있었다.
힘이 들어 절개 지 옆에 설치한 하얀 밧줄을 두 손으로 잡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빨간 러닝셔츠에 환자복 하의를 입은
어떤 사내가 등산로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 따먹고 있었다.
바로 메뚜기였다.
잽싸게 딸기를 한 주먹씩 따서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그가 정말 3개월 시한부 폐암 환자였단 말인가?
서희는 믿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서희에게 히죽거리며 말했다.
“잘해 보셔.”
“안녕하세요.”
서희가 헐떡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묘한 동료의식을 느꼈다.
그는 3년 전 폐암 말기 환자로 이곳에 와서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자기도 간암말기 환자로 이곳에 와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 않는가?
서희는 그가 무척 위대하게 보였다.
그는 이곳의 모델이었다.
“서울서 온 간암 환자구먼. 댁은 지금 밧줄을 잡고 산을 올라가지만 난,
삼년 전에 네 발로 기어서 올라갔다오.
끼니 거르지 말고 하루에 두 번씩만 희망봉에 올라가셔. 그 럼 안 죽어요.
내가 바로 증인이지. 흐흐흐…….”
“아침 된장국이 맛있던데요.” 마치 친정어머니의 솜씨 같아 서희는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저기 보이죠?”
“어디요?” 그는 병원 본관 뒤편을 가리켰다.
울타리 속에 많은 단지가 있었다.
기둥 옆에 심은 호박이 울타리를 따라 덩굴을 뻗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게 전부 된장 단지요.”
“병원에 무슨 된장 단지?”
“여긴 병원에서 직접 된장 담가 먹어요.
쌀도 요 앞 논에서 나는 걸로 먹고 무공해 야채 밭도 있어요.
약초밭에서는 원예치료도 해요.
아마 병원농장을 만들어 놓은 데는 여기밖에 없을 거요.”
“그래서 아침밥이 맛이 있었구나.”
“이유는 또 있지요. 여긴, 청정 지역이죠.
이곳은 사람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자연 치유센터가 있죠.
먹고 자고 치료받는 모든 과정이 자연치유 프로그램 속에서 이루어져요.
난, 원장님이 쏟는 정성을 봐서라도 서울 안 가요. 수고 하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서희는 그 날 희망봉까지 기어서 올라갔다. 정상에서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여기는 돈이나 명예가 아닌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승부를 해야 하는 곳, 더 이상 물러 날 곳은 없었다.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온 몸에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메뚜기가 이 길을 자기 길로 만들었다면
서희도 이 길은 반드시 ‘서희길’로 만들겠다고 다짐을 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처음으로 캄캄한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볼 수가 있었다.
스쳐가는 산들 바람에 밤꽃 향기가 서희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병원에서 이당원으로 올라가는 길옆 공터에는 서른 개의 벌통이 두 줄로 놓여 있었다.
마침 아카시아 꿀을 뜨려는 참이었다.
아카시아 꽃이 지고 나서 뜨는 꿀이 아카시아 꿀이다.
환자들이 말하기를 병원에서 벌을 친다고 했다.
병원 뜰에 양봉이라니 서울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녀는 이런 목가적인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바람이 불자 이당원으로 가는 오솔길 위로 이팝나무 꽃잎이 이밥처럼 날리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조 박사가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카시아 꿀, 서희는 소녀시절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너, 이거 먹어 볼래?”
“뭔데?”
“아카시아 꿀인데, 너 주려고 가져왔어.”
진우는 서희에게 노란 옥수수 빵과 작은 꿀 병을 내밀었다.
서희는 옥수수 빵을 꿀에 찍어 먹어 보았다.
입안에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을 했다.
“너, 이거 어른 몰래 가져왔지?”
“응. “
소년 진우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익살맞게 웃었다.
그 소년이 세월이 지나 이젠 주치의가 되어 타일렀다.
“당뇨가 조절되면 또 그렇게 하자. 넌, 내 허락 없이는 못 죽어.”
“그래, 난 안 죽을 거야.”
아침까지만 해도 우울증이 심해 목숨에 미련이 없었다.
이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다시금 생겼다.
멀리 소백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저리가, 비켜. 여긴 내 자리야.”
환의를 입은 한 할머니가 한손은 담배, 다른 손은 부채를 들고 서희 무릎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서희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앞일을 걱정하면서 소백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3개월 시한이 어제였다. 이젠 덤으로 사는 삶이다. 그래도 감사하다.
좀 더 강화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자.’ 서희는 스스로 달래며 이를 악물었다.
합창을 하던 매미들이 잠잠해지자 까치 한 쌍이 갈참나무 위 둥지를 드나들며 새 생명을 키우느라 부지런을 떨었다.
순간 서희에겐 길조로 느껴졌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담배골초 영자 할머니였다.
여긴 자기가 담배 피우는 장소이니 저쪽으로 가서 앉으라는 것이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인데도 마음껏 담배를 피우고 항상 즐겁게 산다고 했다.
칠순에 아직까지도 웃을 때에는 매력이 있었다.
서희가 자리를 옮겨 앉아 다시 생각에 잠기자,
“이거 먹어.” 하면서 하얀 박하사탕을 내밀었다.
서희가 흠칫하며 얼굴을 돌리자 어느새 박하사탕이 입속에 들어와 있었다.
입속 가득히 달콤한 박하 향기가 찼다.
“생각 많이 하면 빨리 죽어.”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맛있게 담배를 피웠다.
언젠가 조 박사가 자기 호주머니 속에 사탕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환우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탕을 준다고 했다.
그녀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시댁 가족들은 뺏어가려고만 했지 사탕하나 먹으라고 조건 없이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욕을 먹는 할머니는 처음 만난 사람 입속에 사탕을 넣어 주었다.
차라리 시댁에게 빼앗긴 그 많은 돈을 할머니 같이 아무 욕심 없는 환자나
그를 돌보는 이 병원에나 주었다면 고맙다는 소리나 듣지,
하고 잘못된 삶이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 조 박사는 서울에서 대학 교수로서 교육, 진료, 집필로 아주 바쁘게 지냈다.
그는 나이가 들자 영주시 안정면 내줄리 일대, 오만평의 부지 위에 급성기 병원과 요양병원, 한방병원과
요양시설을 세워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는 이곳에 본(本)치료 이론을 실용화한 자연치유센터와 실버시설
그리고 연구소와 호스피스 개념의 병원을 세워 복합 의료타운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의료 가문의 그는, 선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곳에서 실현해 왔다.
아무리 사업 확장을 해도 고객중심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특히 난치병 연구는 의료계의 최대 과제요 그중에 암이 단연 우선순위다.
암환자에 대한 별도의 컨퍼런스가 주마다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양담당 내과와 한방과, 정신건강의학과와 재활의학과 외에도
간호, 영양, 심리, 복지, 종교 전문인들이 동석해 증례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 중 306호실 윤서희 환자의 경과가 돋보였다.
“얼마 전 서울 가서 시술한 간동맥화학색전술은 아주 수월하게 견디시는 걸 보면
우리의 통합치료법이 먹힌다는 얘기죠?
GOT, GPT 율과 알부민, 글로불린 율, 혈당과 암모니아와 아르기닌의 혈중 수치도 잘 유지됩니다.”
내과의 소견이였다.
“감정치료, 면역증강, 자연치유프로그램 실천의 세 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죠.
감정실금과 감정감각은 정상에 가까워졌어요.
뜸술, 도인안교, 사암침으로 면역증강에 집중하고 간독성이 없는 발효약제도 병행하죠.
디톡스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연과의 친화력을 높이고 있어 감정이나 면역 효과가 매우 커요.”
한방과 발표에 이어 간호과, 영양과…,
각과별로 유의성 있는 발표 후 조 박사의 인사말로 회의를 마쳤다.
“접근 방법이 좋네요.
다만 환자에 대한 경외심을 우리가 갖지 않으면 누가 갖겠습니까?
다들 수고하셨어요.”
간호과에서 서희 생일 파티를 열었다.
희망적인 검사결과를 들은 서희는 안도감이 들어 하늘을 나는 듯 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얼마 전 대상포진과 감기를 교대로 앓는 바람에 걱정하셨죠?
제 불찰 이예요. 체온관리 잘 할게요.”
서희는 양손으로 자기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조 박사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내 집 같은 영주시립요양병원에서 전,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의 손길로, 식어가던 심장온도를 되돌렸고 전인치료로 희망을 되찾았죠.용하다는 소문만 듣고 내려왔는데 정말 그래요.무엇보다 보고싶었던 옛친구를 만난 것이 가장 기뻐요....”
서희가 낭랑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병상일기를 낭독하는 동안
딸과 동생들은 물론 참석자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
이튿날 조 박사는 머리를 식히려고 정안정으로 올라갔다.
늦장마로 밤새 장대비가 내리는데 서희 남동생과 밤늦도록 자리를 같이 했더니 머리가 지근거렸다.
그는 서희와 진우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했다.
누나가 마지막 생일이 될지 몰라 일부러 왔다는 그는 목회자가 되어 있었다.
어릴 적 힘들 때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이들의 따스한 손을 추억하면서 걸었다.
정안정에는 환의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서희였다.
생일선물로 조 박사가 준 큼직한 순금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어제 담당 간호사가 말하기를 서희는 메뚜기처럼 아침저녁으로 희망봉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그는 슬며시 정자 마루에 걸터앉았다.
“암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 라고 네가 말한 의미를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아.”
나지막이 말을 건네던 서희가 갑자기자기 옆으로 다가오는 닭을 보고 소리쳤다.
“어머, 진우야! 저 닭 좀 봐.”
“저 닭은 동네에 내놓고 기르는 놈들이야.
타운이 넓어서 동네와 떨어져 있는데도 여기까지 와.” 그가 말했다.
벼슬이 붉고 목덜미가 두툼해 털목도리를 두른 듯한
덩치 큰 수탉 한 마리와 통통하게 살이 찐 암탉 세 마리가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서희 앞을 지나고 있었다.
“너 좋아 하나봐.” 진우가 수탉을 가리키며 말하자,
“너, 내가 좋니?” 서희가 웃으며 닭에게 말했다.
“저 봐, 수탉이 너 옆을 지나면서 편하게 쪼아 먹고 있잖아.”
“진우야, 오랜만에 우리 닭서리 한번 할래?”
느닷없이 서희가 닭 잡아 달라는 귓속말에 그는 문득
어릴 적 정월대보름날 이장네 집에서 서희와 닭서리를 한 기억이 떠올랐다.
대보름날 친구들이 모였다.
하루 종일 신나게 전통놀이를 하고 나니까
흘린 땀에 옷이 젖어 오슬오슬 한기가 들었다.
지치고 허기졌다. 주마산 너머로 해가 떨어지려고 했다.
“야, 니들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가관이야.”
서희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말을 던졌다. 달이 뜨면 쥐불놀이를 할 참이었다.
서희는 진우가 어제 밤에 닭서리를 주도하다가 들킨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잘사는 이장 댁이라도 장난삼아 닭 한 마리면 되는데,
두 마리를 잡다가 들켜 일을 그르친 것이다.
어머니에게 경을 치고 닭 값을 물어 줘야 했다.
그렇게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둘이
50년 동안 싸두었던 웃음보따리를 풀었다.
산에서 미끄러져 다쳤을 때 상처를 싸매주면서 지었던 웃음,
아프면서도 행복했던 미소를 떠올렸다.
아무리 긴 세월동안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지내왔다 해도
가슴과 머리에 박혀있는 좋은 추억은 조그마한 계기만 있어도 금방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진우가 야뇨증으로 키를 덮어쓰고 서희네 외가에
소금 꾸러갔던 얘기를 꺼낸 것도 웃음을 통한 회상치료였다.
둘은 현실을 잊고 소년, 소녀로 되돌아가 마음껏 웃었다.
서희가 분노와 절망이 교대로 밀물처럼 몰려와 우울증에 빠졌을 때
진우가 회상치료에 대한 효과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대상포진이 깔끔하게 낫진 않았지만 추석이 지나
주일을 이용해 추억의 장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전부터 서희는 그에게 성곡에 가자고 졸랐다. 소녀시절 방학을 보냈던 곳을 둘러보기를 학수고대했다.
특별히 기억나는 곳에서 그때의 장면을 재현하고 오랜만에 외가의 묘도 살피고 싶었던 것이다.
서희의 몸 상태와 조 박사의 스케줄을 맞추느라 오늘에서야 겨우 가게 됐다.
암환자의 앞날은 불투명하므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둘은 주마산에서 연을 날리고 썰매 타고 빙수골에서 가제 잡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농로포장 외에는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동글산에서 내려다본 진우네 집과 교회도 동네도 모두 그대로였다.
“진우야, 모두 그대로인데 우린 그동안 많이 변했지?
난 암환자이고 넌, 내 주치의가 되고….” 서희가 갑자기 울적해하며 말했다.
“아냐, 우린 변치 않았어. 그대로야.” 그는 재빨리 서희를 달랬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교회 연극발표회에서 우리가 주인공이였잖아?”
“그 후에 친해졌지. 참, 오늘 예배 시에 감사의 눈물이 나 혼났어,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이었는지 몰라.
다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어. 너와의 만남이 축복이야.
암 때문에 다시 만난 거잖아.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고마워, 진우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우정이 얼마나 귀한지를 느꼈다.
둘의 우정이 그 뿌리가 얕은 줄 알았는데 긴 세월을 거쳐 오히려 튼튼해져있음을 알았다.
지금은 삶의 꼭지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느낀 서희는 다짐했다.
건강을 되찾으면 이젠 우정을 기초로 남을 돌아보는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퇴원날짜를 잡아놓으면 감기나 배탈이 나서 몇 번 미루다가
단풍놀이도 제대로 못한 채 일교차가 심한 겨울을 맞았다.
한창 치유프로그램에 재미를 붙이는데 기일과 연말을 앞두고 퇴원해야 했다.
딸이 퇴원수속을 밟는 동안 서희는 진우와 함께 인애가 타운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풍기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둘은 겨울 산행 기억을 떠올리면서 장수마을과 이당원 힐링숲길을 따라 올라갔다.
솔가지와 산수유가지가 사이좋게 맞닿아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마치 산수유나무가 추울까봐 소나무 자신의 푸른 잎을 둘러 목도리로 감싸주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고목 산수유도 거뜬히 나목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산수유나무를 뚫어지라 바라보던 서희가 낮게 쳐진 잔가지 하나를 잡았다.
끝에 달려있는 녹두 알만한 몽우리를 따려고 했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단단하게 붙어있어 안 떨어지네.”
그녀는 벌레집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진우가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꽃눈이라고 했다.
꽃눈도 살기 위해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저토록 버티는데
서희는 쉽게 자신을 혹사시키고 포기하려던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았다.
꽃눈 속에도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생명은 태어나고 존재한다는 걸 자연 속에서 느꼈다.
나목 앞에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가치를 깨닫고,
꼭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용기가 자신도 모르게 솟구쳐 올랐다.
“고목이지만 봄이 오기를 기다리잖아.” 그가 말하자,
“내년 봄에 이 산수유나무꽃을 내가 볼 수가 있을까?”
그녀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여기에 입원한 이들의 평균연령이 구순에 가까워.
그들에 비하면 넌 아직 어린애야!” 그가 놀리며 장난을 쳤다.
“여기, 어른들은 봄이면 여전히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
이 산수유나무를 백세목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화신같이 여겨.” 그가 말했다.
“백세목?” 서희가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나무 나이가 백육세야, 광주에서 온 어르신과 동갑이지.”
“어휴, 그렇게 나이가 많아?” 갑자기 서희가 산수유나무를 꼭 껴안으며,
“꼭, 이겨낼 거야. 이 나무처럼 나도 내년 봄까지 살아남아 생명의 꽃을 피울 거야.”
극복이라는 희망봉을 향한 굳은 의지로 차있었다.
서희는 코트 주머니를 뒤졌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영양사가 장수마을 철길 옆 정자 앞에서 꾸러미 하나를 서희에게 내밀었다.
보자기를 풀어보았다.
“먹을 것을 골고루도 쌌네. 책도 있고. 이건 또 뭐야?”
금빛 포장지 속에 꼬깃꼬깃 접혀있는 건 사진첩이었다.
병상생활 중 찍은 사진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걸 본 서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꾸러미를 딸에게 주고는 등산로를 따라 타운입구까지 걸어오는 동안 상념에 잠겼다.
입구 표지 석 앞에 섰다.
가죽장갑을 벗고 양손으로 그 위에 얇게 쌓인 눈을 쓸어내렸다.
‘人’ ‘愛’ ‘家’
사람을 사랑하는 집, 그녀는 이곳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친 곳이기에 더 고마웠다.
손바닥으로 글자를 하나씩 닦았다. 검지로 글자 획을 따라 그어 나갔다.
그리고 머리를 돌 윗면에 붙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딸이 서희를 껴안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뒤에서 눈시울을 붉힌 조 박사는 암은 예측하기가 어려우므로
마지막 이별이 되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들었다.
눈송이가 굵어지며 새털 같은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해가 짧은 초겨울 오후라 어둠이 금세 내리고 도로사정이 어떨지 몰라 빨리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둘은 작별이 아쉬운 듯 두 손을 꼭 잡고 놓을 줄 몰랐다.
서희가 먼저 고맙다고, 건강 조심하라고 작별인사를 하자, 진우는 치료수칙을 잘 지키라고 말했다.
서희가 승용차 앞으로 다가가자 두 사람은 다시금 눈을 맞추었다.
둘의 우정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희가 뒷좌석에 앉으려는데 조 박사가 차문을 두드리며 차에서 내리라고 손짓했다.
차에서 내리자 사방에서 불어오는 세찬 눈바람에 자색 롱코트 자락이 탁탁하고 소리를 냈다.
갑자기 조 박사는 자신의 목에 매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서희 목에 매 주었다.
“환자는 목이 따듯해야 해. 안 그러면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은 암에 치명적이거든.”
그리고 어서 차에 타라고 손짓을 했다. 서희가 차에 오르며, ‘고마워“ 하고 말하자 그는
“눈길 미끄러워. 조심해 가.” 하며 손을 흔들었다.
승용차가 전용도로에 오르자 서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눈에 덮인 병원 언덕길을 진우가 혼자서 터벅터벅 올라가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가 목에 매주고 간 목도리에는 아직도 그의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었다.
서희가 탄 승용차는 죽령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돌개바람 사이로 두껍게 눈 쌓인 고속도로를 조심스레 달리고 있었다.
히터가 따뜻해지자 서희는 코트를 벗어 옆자리에 접어 두었다.
그리고 목도리를 풀어서 손에 들었다.
그런데 이 낡은 고동색 목도리! 아무래도 눈에 익었다. 그녀는 찬찬히 살펴보았다.
밤색 털실로 뜬 목도리. 군데군데 실밥이 조금씩 헤지고 때가 묻은,
조금은 서툰 솜씨로 뜬 목도리. 끝을 뒤집자 흰색실로 ‘JS' 라고 새겨 놓은 영문 이니셜이 보였다.
서희는 갑자기 ‘어머나!’ 하며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다니….’
한 소녀가 좋아했던 소년에게 주었던 목도리를 50년 동안 간직하며 매온 친구가 있었다.
갑자기 전신에 엔도르핀이 돌았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큰 울림이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방망이질 했다.
이렇게 듬직하고 믿음직한 남자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전에도 우직하고 미련하더니 아직도 진우는 세파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순진한 소년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서희는 지난 50년 동안 열두 번도 더 이사를 했다.
이 까짓것 헌 목도리는 백번도 더 버렸을 것이다.
50년 전, 서희는 겨울 방학이 끝나고 대구로 가기전날 진우와 만났다.
그리고 이 목도리를 목에 매주며,
“사람은 목이 따뜻해야 해” 하고 말했다.
그리고 서희가, “너, 나 잊으면 안 돼.” 하고 말하자,
진우는 “나중 다시 만날 때 까지 꼭 간직할게.”
하고 대답했었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운전 중인 딸이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러나 서희는 흐느끼기만 했다.
사람은 누구와 인연 짓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녀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인간관계를 잊고 살았었다.
잘못된 사람들과의 악연으로 증오와 분노 때문에 암에 걸렸다.
그런데 진우가 말했다.
“넌, 내 허락 없이 못 죽어.”
‘그래, 난 절대로 안 죽을 거야.’
그녀는 두 손으로 목도리를 꼭 쥐고 중얼거렸다.
이번에 올라가면 사업을 전부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내려와 여생을 보낼 요량이었다.
오늘도 어디로 뛸지 아무도 모르는 메뚜기처럼 말이다. 끝
목도리를 읽고 여러가지 감정과 희망과 깨달음과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누구랑 통화를 하게 되었다
통화를 하다가 끊어져서 좋은 휴대폰을 가지라고 핀잔을 주니
그 남자 왈 강원도를 가는데 경치가 너무 좋은데 옆에 내가 있었으면 금상첨화란다. 겁도 없이
그래서 내가 "목도리"를 읽어 보라고 권유를 했다
목도리를 읽고 나서 눈오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위해 옆에 타던지 말던지라고 ㅋ ㅋ ㅋ
그 남자도 소명의식이 있고 종교도 같고 나이도 비슷하고 마음씨도 넓다
그런데 작가님 만큼 매력은 없는데 어쩜 좋다우 ㅎ ㅎ ㅎ ㅎ
저런요.강원도 그것도 눈오는 날 .이미 감성이 풍부하고 매력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이군요.기스를 북쪽으로 틀었더라면 더 좋았겠는데요.
소설 "목도리"는 나에게 깊은 생각과 인생의 대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
그래 나도 늦어지만 우아하고 고상한 우정의 소유자가 되겠다고(장기목표중 하나)
그래서 아침에 부산에 아는 관장에게 겸사 겸사 통화를 하다가
자기 팀장을 내가 베리베리 좋아하고 아가페의 사랑을 한다고
전해달라면서"목도리"소설을 선전했다
내가 주인공이니 읽어보라고
그러면서 나의 상대자는 팀장을 하겠다고 하니 꼭 전하겠단다
아침부터 한바탕 웃고 나니 엔돌핀이 팍팍
내일도 기대가 된다
수업시간은 목도리로 마감을 해야겠구먼
멀리서도 관심법으로 에벤에셀님의 생각이 느껴져오네요.
아는 교수의 추천으로 "목도리"를 읽었다
아름답다.
따스했다.
감동받았다.
깨달았다.
실천하고 싶었다.
나도 실천할꺼리를 찾던 중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육체를 위하여는 웰빙음식을 만들어서 나누어주고
정신을 위해서는 간구와 기도로
그런데 대상자를 물색중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의 즐거움을 혼자 생각하면서
소리없이 피식 웃어본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따스한 글을 기대하면서
행복하소
그래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실천해보세요 박수쳐 드릴게요. 필리아님
존경하는 교수님이 추천했는데 시험기간이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이제 읽었다
갑자기 옛애인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우정으로 연결되지 못함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작가님 따뜻한 사람인 것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애제자님도 아름다운 옛우정을 회복시키기를 기원하며 박수보냅니다.
인기짱이시며,
따스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교수님이 추천해서요
시험기간이라 이제 읽어봐서요
아름다워요, 남자 주인공 같은 사람이 이세상에 존재할까요
존재한다면 너무나 행복한 여자 주인의 병은 완치될 것같아요
희망사항이겠지요.
작가님이 남자분이신데 어떻게 이런 따쓰한 소설을 ~
그렇겠지요? 분명 어디선가 이런 남자주인공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살맛나는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것이 아닐까요? 에스필님
솔직빼면 시체인 교수님이 추천하였습니다.
시험기간이라 이제서야 읽었다
혹시 주인공이 ~ ㅎ ㅎ ㅎ ㅎ
부럽다. 이성간의 우정, 가능할까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가슴은 뭉클했다.
따스한 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가슴뭉클하지 않아도 이성간의 우정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번 시도해 보세요. 몰라님.
교수님이 추천해서요
갑자기 첫사랑이 생각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보게 하네요
늦었지만 사랑을 우정으로 만들어볼까나
시험이 끝나 홀가분한 기분에 일탈을 하고 싶어지네요
아름다운 글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우정으로, 우정을 사랑으로 얼마든지 바꿀수 있겠죠. 마음의 기준 문제이겠죠. 젤라님
올해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목도리" 말만 들어도 따스하지요
내년에 나도 목도리처럼
따스한 사람,
행복한 사람,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사람,
배려하는 사람
경청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목도리"를 통하여 지난 날 나의 삶을 되돌아 본다
깨달음과 실천만이 내년에랑
한의사님 대단해요
그러세요. 마음의 목도리로 체온도 높이시고 우정의 온도도 높이시고 사랑의 온도도 높이세요. 그러나 지구온도는 쫌 생각해 보고요. 예수비스무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