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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휴식 장소인 논공휴게소 두 번째로 쉬었던 지리산휴게소 가사문학관의 피리 부는 목동 동상과 세심정 전시실의 그림. "백발이 비록 비슷하긴 하나, 나는 한가로운데 백로는 한가롭지 않다." 가사문학관에서 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일행들. 해설사는 해설이라기보다는 자기 도취에 빠져서 혼자 신명나고 즐겁게 한판 놀이를 즐겼다. 2층의 제2전시실 입구. 소쇄원 사진을 정면에 배치해놓았다. 가사문학관과 바로 붙어 있는 식영정. 김성원이 임억령을 위해 지어준 것이다. 식영정 현판과 시판 식영정에서 밑으로 바라보이는 부용당과 서하당 식영정을 둘러보는 일행들 서하당 소쇄원의 광풍각과 제월당. 벌써 수풀이 많이 우거졌다. 부실 복원공사로 다시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안까지 들어가보지는 못하였다. 소쇄원의 수선화 오곡문 광풍각 광풍각 대숲 점심을 먹은 절라도 식당. 돼지떡갈비로 먹었다. 예약을 해두었던 터라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매향석수라는 액자가 걸려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일행 송강정. 죽녹원과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송강정 송강시비와 송강정 필암서원에 도착하여 해설사와 인사를 나누는 일행 홍살문과 확연루 열심히 해설을 하고 듣고 있는 모습 필암서원 현판. 1662년 임인년에 사액되었다. 현판 오른쪽 상단 귀퉁이의 용 모양 인종이 하서에게 내린 묵죽도를 보관했던 경장각. 현판 글씨는 정조의 친필이다. 강당서 바라본 모습. 동서재와 경장각, 사당인 우동사, 계생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필암서원은 보통 서원에 비하면 구조가 독특하여 동서재와 강당의 위치가 바뀌었고 강당이 사당을 향해 있다. 이는 평지 서원이라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지리적 상황 때문이다. 서재와 경장각, 우동사와 계생비. 계생비. 다른 서원에는 보통 성생단에서 희생을 살피는데 이곳에서는 희생을 이곳에서 묶어서(繫牲) 살핀 모양이다. 특이하다. 계생비의 각자. 필암서원묘정이라는 글자가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이번에는 못 들어가본 우동사 확연루 확연루 현판 홍살문과 확연루 유물관에 전세되어 있는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1531년(중종 26) 실시한 과거에 급제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를 비롯한 7인이 1542년(중종 37) 즈음에 다시 모여 그린 것이다. 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상단 여백에 김인후의 초서로 쓴 제시(題詩)가 있다. 김인후의 제시는 아래와 같다. 당시 과거에 함께 급제한 선비들 衿珮當時一榜歡 십년 동안 과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科名先後十年間 조정 신하로 요로를 같이해 새로운 계는 아니나 朝端共路非新契 도성 아래 부서가 나뉘어 각기 반열이네 都下分司各末班 가는 곳마다 진면목 펴지 못해 隨處未開眞面目 한가함을 틈타 좋은 강산으로 향하네 偸閒須向好江山 서로 따라 잠시 세속 굴레 벗어나니 相從乍脫塵銜束 술잔 앞에 두고 우스개 소리 막지 마소 莫使尊前笑語闌. 그림 속 너른 언덕위에 그려진 인물은 모두 아홉 사람이다. 술시중을 드는 두 사람을 제외한 7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넷, 셋으로 마주보고 앉아 있다. 아래의 좌목이 이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나이순으로 정리하면 민기(閔箕, 1504∼1568), 남응운(南應雲, 1509∼1587), 이택(李澤, 1509∼1573), 이추(李樞, 생몰년미상), 김인후( 金仁厚, 1510∼1560), 윤옥(尹玉, 1511∼1584)이다. 한 사람은 박락으로 인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원본은 박물관으로 가고 이 그림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수묵세가라는 글자 아래 선비들의 서원에서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 하서가 세자시강원으로 있을 때 숙직 중이던 하서를 방문한 인종(이때는 아직 세자였다고 한다). 오른쪽 벽의 그림은 인종이 이때 하서에게 그려준 묵죽도라고 한다. 묵죽도만 잡은 모습. 아주 잘 그린 것 같지는 않다. 위의 전서는 나중에 써넣은 것으로 보인다. 유물관 바깥에 조성한 삼연루 이 어마어마하게 큰 자연석만 보더라도 이곳의 성역화 사업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오는 길 거창 휴게소. 마침 이곳에서 우리가 4층에서 공부할 때 2층에서 노래를 부르는 담수회 평생대학원이 타고 온 차가 보인다. 무려 3대나 된다. 아침에 출발했던 동아쇼핑 맞은 편에 도착하니 7시 반 가까이 되었다. 거의 일정대로 소화가 되고 별 차질이 없이 진행이 잘 되어서 다행이었다. 팔도식당에서 마무리. 이젠 거의 하나의 루틴이 되다시피 했다. 담수 평생대학원 일행 몇몇도 함께 식사를 하였다. |
첫댓글 답사여행 복습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