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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입니다... <드디어 영국 히드로 공항>
5월 5일 아침 현지시간 오전 7시 53분. 드디어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어젯밤에 5일만에 처음으로 좀 잤더니 몸이 한결 좋아지고 정신도 좀 든다. 여행준비를 너무 후반부에 내쳐서 한 게 후회된다. 마지막 일주일은 쉬면서 몸을 좀 만들어서 와야 하는 것을.
짐싸면서 두 사람 중 한사람의 배낭이 공항에서 사라져 버리는 사고를 너무 많이 상상했었다. 왜 종종 그런 사고가 있다지 않은가. 그래서 약품과 같은 중요한 것들은 양쪽에 한 뭉치씩 넣었는데 무사히 모든 짐이 도착했다.
김포공항에서 짐부치기 직전에 두터운 스카치 테이프로 미라 감듯 감아놓길 잘한 것 같다. 곱게 다뤄지지는 못한 듯, 여러 번 묶어놓았던 침낭도 한쪽 끈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여러 번 여며놓지 않았으면 이것저것 분실될 뻔했다.
우리 둘과 지영이네 세 명 해서 모두 다섯 명은 다들 만만치 않은 배낭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진작가인 추영호씨는 사진장비와 100만원 어치나 된다는 각종 필름들로 가득 채워온 산타할아버지 같은 망태기를 번쩍 들고 앞장을 선다. 우리도 큰 숨을 한번 쉬고 당당히 배낭을 매려는데
휘청, 꽁꽁 눌러 싼 배낭의 무게가 주체하기 어렵다. 우리자매보다 더 큰 짐을 짊어 맨 자그마한 체구의 한혜진언니는 담담히 지하철을 찾아가는데, 나와 지현이는 앞으로 이걸 매고 어찌 다니나 눈앞이 다 깜깜하다. 뺄 건 다 뺐는데 왜이리 무거운지.
그때 구원군처럼 눈앞에 보이는 공항용 카트. 지하철역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 지 모르지만 일단 공항 벗어날 때까지는 싣고 가보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팜플릿이 잔뜩 꽂혀있는 곳이 있어 버스노선도와 런던의 문화행사 안내표 등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추려 골랐다. 한글이 하나도 없는 팜플릿을 보니, 영국에 온 게 실감난다.
한참을 표지판 따라 걷고 무빙벨트도 타고 해서 지하철표 사는 입구까지 왔다. 요금표를 보니 우리나라 전철의 구역에 해당하는 ZONE이라는 게 있나보다. 어떤 표를 사는 게 가장 이익일까. 고심 끝에 출근시간 끝나기를 기다려(그 이후에만 쓸 수 있는 표가 싸다) 버스와 경전철도 탈 수 있는 6존 ONE DAY TICKET을 끊었다.
그런데 지하철 타는 입구를 잘 몰라서 다시 공항방면으로 가는 무빙벨트에 잘못 올라서고 말았다. 한 5미터 정도 실려 가다가 일행이 모두 배낭을 매고 벨트 위에서 만화에서처럼 거꾸로 뛰어오는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드디어 민박집이 있는 lambeth north역으로 향하는 전철에 올랐다. 반대편 줄 사람과 무릎이 거의 닿을 정도로 마주보고 앉게 되는 전철은, 바깥 풍경도 보이고 참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전철이었다. 회색의 나라라더니 광고판 대신 창 밖으로 동화 같은 집들의 풍경이 펼쳐지고 날씨도 의외로 맑아 기분까지 따라서 좋아지는 듯 하다.
지하철 안이 밝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찾았다. 손잡이 대신 있는 가로봉과 세로봉이 유치원 교실처럼 밝은 파란색과 노란색의 원색이고, 좌석의 팔걸이와 창문 손잡이는 빨간색이었다. 좌석 시트도 단색이 아니라 잔 체크무늬가 있었다. 노선도는 어디서나 볼 수 있게 전철 내부 곳곳에 붙어 있었다. 큼지막하게.
우리 나라 지하철 안은 왜 회색과 초록 일색인지.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지하철 관계자들에게 세계 지하철 탐방을 한 번 시켜보면 좋겠다.
<영국 땅에 내딛는 첫걸음>
드디어 빨간 이층버스가 오가는 영국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시원한 바람과 고상한 건물들. 예쁜 성당이 우리를 맞아준다.
성당 옆 커다란 광고전광판에 누드에 가까운 VOGUE 사이트 광고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어, 예술의 자유를 우리보다 넓게 인정하고 있는 유럽에 온 것이 실감났다.
우리가 예약을 해 두었던 워털루 하우스라는 민박집으로 지영이네 일행도 함께 가기로 했다.
china walk라는 거리에 있는 낡은 아파트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생전처음 맡아보는 고양이오줌 냄새로 가득해서, 민박집 안 상황까지 염려스러웠는데 다행히 두 명의 유학생 남자분들이 깔끔하게 관리하고 계셨다.
간단히 런던의 볼만한 곳과 길에 대한 안내를 듣고 짐을 푼 뒤 첫 목적지인 대영박물관을 향해 길을 나섰다.
누드광고아래서 수줍은 일행 지영
<그리스의 향기에 흠뻑 취하는 대영박물관>
tottenham court road 전철역에 내려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1시쯤 대영박물관에 들어섰다. 상설전시관 입장은 무료이지만 특별전은 유료였다.
우리가 간 날은 Burma미술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입구의 포스터가 상당히 볼만해 보였고 학생할인도 된다고 해서 2파운드씩 내고 일단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썰렁해도 썰렁해도 이렇게 썰렁할 수 있을까. 명색이 대영박물관에서 하는 특별전이면, 규모 면에서나 전시품의 질 면에서나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손바닥만한 전시관에 겨우 스물 몇 개의 전시품뿐이고, 서구인들의 눈에는 불상이나 항아리의 문양이 신기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우리나라나 중국의 미술품에서 익히 보던 것들이라 새로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미얀마인들을 닮아 코가 큰 불상과, 섬세한 문양의 그릇들은 볼만했다.
온통 황금빛 세공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불단을 보며, 어느 나라나 종교가 참뜻을 잃고 변질되면 사치의 극으로 치닫는 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멋진 BURMA특별전 포스터 -속지 말자 화장발!
전시 방법에 있어서 좋았던 점은, 미술품 사이사이 바리를 들고 일렬로 걸어가는 붉은 승복의 승려들 등 그 지방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커다란 사진을 걸어두어, 작품들과 함께 그들의 정서를 더 가까이 느끼게 해 주는 전시방법이었다.
허탈해하며 특별전을 보고 나와 상설 전시물들이나 잘 보자며 미술관 안내 지도를 찾아 나섰다. 입구 왼쪽의 서점에는 한글 안내책자도 보였지만 비싸고 별로 볼게 없어서 카운터의 아줌마에게 무료 지도(FREE MAP)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인상을 쓴다.
화려한 불단-이런 걸 만드는 동안 서민들의 허리는 휘었을 터
처음 만나는 불친절에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헤매지 않고 다니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아줌마 앞의 1파운드짜리 지도를 샀다. 하지만 이럴수가! 서점을 나서자마자 눈에 띄는 인포메이션 센터와 무료 지도들에 우리는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오기 전에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찍어놓았던 대로 고대 그리스 미술품들이 있는 1번 방부터 차례차례 보기 시작했다.
대영박물관 유료지도 -무료지도와 별차이없데~요
고대 그리스의 흙인형 중에는 아프리카인형과 비슷하게 생긴 차렷자세의 풍만한 형태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조금만 넘어가도 도자기의 그림 속 선에서부터 조각상까지 그리스인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철철 넘쳤다.
손톱 만한 흙이나 브론즈의 동물인형, 신화 속 인물이 그려진 단추들을 보면 왠지 자꾸만 즐거워지고 미소짓게 된다.
어디선가 그리스의 공기가 흘러 들어오는 듯 하다. 그들의 향연에 드디어 우리가 정식으로 초대되려나보다
암포라엽서
고요한 고대 미술실에서 옷주름이 흘러내리는 거대한 조각상을 사이에 두고 지현이와 마주보고 앉아, 유리 천창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을 따라 시선을 풀어놓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완전히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에 빠져들 수 있었다.
입안에선 예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천공의성 라퓨타>의 주제음악이 맴돌았다.
그리스인들의 인체조각 중 옷의 묘사를 왜 그리 칭찬하나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정말 입이 안 다물어지는 실력이었다.
어떻게 돌을 가지고 투명해 보이는 옷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이름 모를 장인의 신기에 가까운 손길이 느껴진다.
날아갈 듯한 여신상
그런데 정적을 깨는 지현이의 질문
"그런데 왜 다들 목이 잘렸어? 다 있으면 훨씬 아름다울 텐데 사진 찍기도 그렇고. 신경질 나"
하지만 그건 신경질 낼 일이 아니라 슬퍼하거나 분노할 일이다.
전쟁통에 침략자들에 의해서 목이 잘려나가고,
또 어떤 정복자들은 예술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조각품뿐만 아니라 생 건물기둥까지 통째로 뽑아다가 배에 실어 자기네 나라로 가져오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상하고 망가진 채 그 침략자의 후손들의 놀라운 복원기술로 다시 땜질되어 서 있는 게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작품들이다.
이건 또 뭔가. 그게 바로 그 유명한 판테온의 기둥이란다. 굵기가 경복궁의 가장 두꺼운 대들보의 10배가 넘으니 그 웅장했을 판테온의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판테온기둥하나-기둥아래 메모하는 정현이 보이시나요
판테온 페디먼트에 있던 부서진 포세이돈-부분만 남아있어도 느껴지는 이 놀라운 덩어리감
이런 거대한 석상들을 만들던 조각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지위가 무척 낮았다는데,
그래도 어슴푸레한 달밤이면 자신이 만들어놓은 신화속 인물들 사이에서 술취한 제우스로, 아롤론으로 잠시나마 그들은 참 행복했을 꺼다.
그리스 여신상의 포즈는 현대의 모델들의 포즈에 절대 뒤지지 않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 특히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자태는 순결하면서도 섹시했다.
고개 돌린 아프로디테-그녀 앞에서 누가 멈출 수 있었겠는가
특이한 포즈로 눈길을 끈 작품으로는 <발가락의 가시를 빼는 소년> 만한 것이 없는데,
그런 순간적인 정황을 어떻게 잡아낼 생각을 했는지
예술가의 관찰력이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달의 요정 사이렌을 주인으로 둔 지친 말의 표정도 너무 생생해서 측은할 정도였다.
발가락의 가시를 빼는 소년
<사자의 울음소리로 가득 찬 앗시리아 미술>
살아있는 듯한 조각품들에 취해 그리스 로마실을 돌아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나보다. 폐관시간이 2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는 미술관 전체의 반의 반도 못 돌아보았으니 욕심 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대표적인 군국주의 미술인 앗시리아 미술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했던 그리스 미술과는 달리 창과 활이 빠지지 않는 늠름하거나 잔인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잔인한 사자사냥
특히 사자사냥 연작이 있는 방은 웬 사자를 그리도 많이 잡았는지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꽂힌 채 죽어 가는, 2500년도 더 지난 사건 속의 사자의 고통에 내내 이마가 찌푸려질 정도로 묘사가 뛰어났다.
지현이는 옆방에도 사자사냥이 이어지자 "또 사자잡이야. 잘났어 정말"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외면하며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역시 힘을 숭배하는 이들은 단순한 것, 직선을 아름답게 느끼는 미의식을 지녔던 모양이다.
부조 속의 나무는 모두 다 큰 기둥에서 같은 굵기의 중간 가지가 10개정도 뭉텅이로 솟아 나와, 역시 같은 모양과 크기의 나뭇잎 몇 개로 뒤덮이게 똑같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위대한 인물의 수염은 꼬불꼬불하게 나다가 다시 쭉 뻗고 다시 꼬불꼬불 하다가 쭉 뻗는 희한한 묘사를 했다.
<주마간산으로 본 이집트미술>
지현이는 예전부터 이집트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앗시리아 방들까지 돌아보고 나니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리스미술을 너무 오래 봤어"
2층으로 오르는 지현이의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난 이대로 나가도 후회 없어. 너무 좋았잖아"
정말 힘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에 떠밀려 다닐 거라는 예상과 달리 차분하게 푹 빠져서 본 그리스 로마실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나는 차라리 이 기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냥 나가고도 싶었다
1층에 사람들이 왜이리 적나 했더니 다들 2층에 올라와 있었던 모양이다. 대영박물관이 자랑하는 컬렉션인 만큼 이집트실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영화 <미이라>에서 보았던 청동 쇠똥구리 장식도 있고(스카렙이라고 부르는 이 쇠똥구리는 미라가 부활할 때 다시 심장을 박동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미라의 심장 위에 부적으로 얹어 놓는다고 한다),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진짜 미이라도 있었다. 안팎을 온통 섬세한 그림들로 채워 놓은 관도 있고 소머리장식의 하프도 있었다.
그러나 밝음의 미술이었던 그리스미술과 달리 부장품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서늘한 기운에 겁 많은 나는 얼른 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공포나 괴기영화를 좋아하는 지현이는 땅속에 웅크린 채 죽은 미라를 보면서
"어허~~~ 리얼하다"하며 좋아하고
이집트실을 보는 내내 오싹오싹했던 나는 자꾸만 부장품 가까이 데려가려는 지현이를 당기며 "싫어, 기분이 참 이상해 싫다니까"를 연발하며 도망을 다녔다.
좋아하던 이집트 미술품 앞에선 지현-그러나 지쳐있다
<불친절의 도를 넘은 감시원들>
한참 이집트관을 보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전시실의 불을 끄며 신경질 적인 표정으로 우리를 쫓아낸다. 시계를 보니 아직 4시 50분. 폐관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자기는 경찰복 같은 제복을 벗고 퇴근하려고 평복으로 갈아입고서 관람객들을 개 쫓듯이 몰아낸다. 대영박물관 지키는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자기네 나라를 찾아온 손님들한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쉽게 마음상하는 나는 심장이 다 벌렁벌렁 뛴다. 10분 일찍 나가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놀란 것이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니는 우황청심환을 먹을까 했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에 맘고생 하며 다닌다면 앞으로 남은 여행은 어떻게 다닐까 싶어 스스로 진정하며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
쫓겨 나와 미술관 앞 커다란 기둥 앞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혔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온 젊은 엄마는 뭔가 좋은 일이 있는지 아기를 어르며 싱글벙글이다.
잠시 후 엄마가 어딘가를 가리키자 아기가 까르르 자지러진다. 그쪽에서 아빠인 듯한 사람이 등장하여 아기를 안아 올린다.
상황을 보니 아빠가 퇴근하는 걸 기다린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칼같이 5시. 우리를 4시 50분에 쫓아내야 자기들이 5시에 퇴근하나보다.
한국에선 어떤 부인도 5시에 회사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밤늦은 시간 전철역에서 이제나저제나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엄마는 여러 번 보았다.
선진국의 올바른 노동문화라 칭찬해야할지 어쩔지. 아까 우리가 받은 대접이 있는 지라 곱게 봐야 할 것에도 고운 시선이 안 간다.
대영박물관 앞의 정현
대영박물관 기둥 옆에서 혼자 온 한국여학생 이순한양을 만났다. 혼자 오면 다 좋은데 사진 찍고 싶은 순간을 많이 놓치는 게 안타깝다고 해서, 함께 몇 장 찍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가까이에 런던대학이 있다고 보러 간다고 해서, 이제 저녁 먹을 일 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우리도 함께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길을 가르쳐 주는 외국 사람에게 내가 고맙다며 자꾸 고개를 숙이자, 캐나다에서 유학한 순한양이, 외국애들은 그런 모습을 참 이상하게 본다면서 그냥 고맙다고 가볍게 말만해도 된다고 가르쳐 준다. 하지만 오랜 습관을 어떻게 순식간에 고치랴. 특히 나이 많은 할머니가 길을 가르쳐 주시면 나도 모르게 허리까지 굽히게 된다. 지현이가 계속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사실 내가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은 탓도 있다. 고개 숙인 인사는 친절을 베푼 사람들한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된다. 우습게 보는 외국 사람이 있더라도 계속 내 방식대로 인사하며 다니고 싶다.
런던대학은 우리네 캠퍼스 같은 넓은 곳이 아니었다. 달랑 건물 몇 개와 잔디밭 뿐 이었다. 의외로 동양인 유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런던대학 오른쪽에 오래된 성당 같은 건물이 있어 뭔가 하고 들어가 보려고 살폈더니, 옛 건물을 개조한 아파트였다. 우리 같으면 다 밀어버리고 용적률 높게 새 건물을 지었을 텐데. 법으로 막고 있는 건지 스스로들 그러는 건지 런던시내에는 빌딩보다 옛 건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런던에서 지하철타기>
런던 지하철1구간은 길기도 하고 엄청 짧기도 하다. 그래서 지도상으로는 멀리 가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지나가는 역 이름을 잘 보고 있어 야 한다.
그리고 가까운 전철역을 물을 때는 지하철 지도를 펴놓고 물어봐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지하철역과 역 사이가 가까운 편이라서 엉뚱한 노선의 다른 역을 가르쳐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아주 바쁠 때는 꼭 두 번 이상 물어보라. 우리도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는 한참 있다가 '거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며 미안해하는 것처럼 그들도 실수는 한다. 그것도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자주.
지하철 표는 넙적하게 생겼는데 하루권, 3일권, 7일권 등 종류가 다양해서 명칭을 잘 확인해야한다. 트래블카드는 9시 30분 이후에 이용할 수 있는데 버스도 탈 수 있다. 그리고 1부터 6까지 Zone구분이 있는데 대개 2 Zone이면 된다.
전철표 2존 1day 트래블카드 (왼쪽) 6존 1day 트래블카드(오른쪽) 비교해보니 zone표시가 어디있는지 아시겠죠?
지하철역에서 표를 살 때는 발음에 웬만큼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원하는 표의 이름과 Zone을 적어서 내미는 게 좋다.
매표원이 한국식 발음은 못 알아듣고 예를 들면 "워털루" 라는 발음은 "워~럴루~~"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수업시간에 그렇게 발음했다가는 왕따 당하는 혀 꼬부라진 발음을 해줘야한다. 괜히 바쁜 시간에 안 되는 발음으로 우기고 있으면 직원이 답답해한다. 사려는 표 가격과 받을 거스름돈을 미리 생각하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한 승강장으로는 특정한 노선의 전철만 들어오는데 런던은 여러 가지 선의 전철이 한 승강장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처럼 전철노선에 고유색이 있기는 한데, 이름은 우리처럼 1호선 2호선이 아니라 노란선은 circle line 붉은선은 central line 이런 식으로 노선의 성격에 따라 붙여놓았다.
또 하나 런던 지하철노선도는 여기저기서 구할 수 있는데 전철역에서 주는 손바닥 보다 작게 접혀진 지도가 뒷면에 지명보고 쉽게 위치 찾을 수 있는 색인과 XY좌표식 표시가 되어있어 가장 편리하다.
<영국에 피클은 없다? >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5시간을 계속 걸은 셈이니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온다. 그렇다고 물가가 엄청나다는 영국에서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자니 맛도 믿을 수 없고 가격도 걱정된다.
그래서 여행 100배 즐기기 책에 소개된 "chelsea kitchen"을 찾아 나섰다. 지하철 노란선인 circle 라인과 녹색라인이 모두 지나가는 sloane square역에 내려서 kings road 98번지를 찾았다. 우선 kings road를 물어서 금발의 여인이 가라는 방향으로 왼쪽길로 쭉 따라 가는데 칙칙한 런던에 이런 거리도 있나 싶게 화려한 옷가게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반대편 길도 살피면서 5분쯤 걸었는데, 옷가게가 끝날 때쯤엔 어느새 kings road는 끝나버리고 다른 이름의 번지수가 시작되었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식당인가 보다 하고 반쯤 포기하고, 다시 현지인을 따라 무단횡단을 하여 반대편 길로 전철역 쪽으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오다보니 어느 식당 노천에 나이 드신 분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계셔서 '우리도 여기서 먹을 수 있나?' 하고 간판을 보니, 앗! 허름하고 조명도 없는 간판에"chelsea kitchen"이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큰길가에 있기는 하지만 멀리서는 잘 안보이게 생겼다.
내부는 소박하고 여행책자에 "싸고 맛있게"를 표방한다고 적혀있듯 조용한 고급레스토랑의 분위기는 아니고 웨이터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피크타임에는 지하의 좌석으로 내려가거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야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바로 그랬다. 에고 허리야)
5.5파운드짜리 세트메뉴와 3.6파운드짜리 굴라쉬를 시켜놓고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는데, 방금 나온 야채가 성글성글 들어간 붉은빛 도는 스프를 맛보고 지현이가 "음,익숙한 맛이야."하는 걸로 봐서 음식 맛은 괜찮은 모양이다.
드디어 본 메뉴가 나왔다. 세트메뉴는 써있기는 "soup+stake+mushroom pie or jam pudding"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stake가 아니라 굴라쉬와 비슷한 맛의 소스로 양념된 듬성듬성 썰린 고기 덩어리가 나온다.
그 말로만 듣던 굴라쉬라는 것은(여기는 헝가리가 아니니 정통 굴라쉬 인지는 확인할 바 없지만) 쌀밥 위에 정말 큼직하고 두툼한 고기 덩어리들과 양파 등을 매콤새콤하게 끓여서 덮은 덮밥형식의 음식인데 옆에 감자튀김과 야채가 함께 나왔다. 양도 많고(물론 식성 약간 좋은 여성기준) 맛은 한국인 입맛에 맞아 며칠동안 타이항공의 느끼한 기내식에 질린 우리들의 뱃속을 흐뭇하게 했다.
지현이가 먹는 동안 음식에는 손도 안대고 글을 쓰고 있다가 굴라쉬도 한참 관찰한 다음에 비로소 포크를 들자, 문가에 앉아있던 지배인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는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한 입 먹어본 내 표정은 '음 괜찮군' 하는 표정이었으니 안심하고 다시 신문을 볼 수 있겠지.
아니었다. 내가 접시에 담긴 것을 골고루 하나씩 먹어보고 지현이 것까지 먹어볼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 거다. 아, 어떻게 하겠는가. 맘 약한 나는 약간의 오버를 섞어서 맛있다는 것을 온 얼굴로 표현하며 식사를 했다.
정말 굴라쉬도 맛있고 세트메뉴에 나오는 mushroom pie도 맛있다. 지현이도 처음에 자기가 기대한 스테이크가 나오지 않아 실망했지만, 살코기가 엄마의 장조림고기 비슷하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유럽 쌀은 누구 말대로 불면 날아갈 것 같아 진짜 불어봤는데 내 입김이 약했는지 날아가진 않고, 포크로 잘못 치면 튕겨 나가기는 했다.
물은 듣던 대로 주문해야 했는데 아뿔싸 주의를 요하던 gas물이 나왔다. 못 먹고 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설탕 뺀 사이다의 씁쓰름한 맛이란.....
그런데 식사 중반쯤 되자 타이항공 음식보다는 개운했지만 김치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뭔가 개운한 것이 필요했다. 피클이 혹시 없을까 하여 웨이터를 불러 "pickle please"를 열심히 외쳤는데 남, 여 웨이터 모두 그게 무슨 소리여?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오이가 뭐더라???당황하니 중학교 1학년단어도 생각이 안 난다. 급히 한영사전을 뒤지니 cucumber가 나오는데 이번엔 마음이 급하니 발음이 안나온다 "큐-쿰 아니 컴-........" 도대체 왜 이러는 지. 웨이터 하나가 알아들은 표정을 짓고 주방에 갔는데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피클은 못 얻어먹었다.
나중에 슈퍼에서 찾아보니 다양한 채소로 피클을 담아두었는데, 피클 병에 적힌 것을 보니 오이피클은 pickled cucumber, 양파피클은 pickled unions 하는 식으로 재료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있었다. 아까 우리는 콩글리쉬로 "절인 거 줘요! 절인 거!"하고 있던 셈이니 이거 창피해서 원.
<워털루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safe way라는 식당 앞의 슈퍼에서 물가조사를 하고 오늘과 같이 배고픈 상태로 돌아다니지 않게 쵸컬릿(75펜스=1320원)을 샀다. 지현이가 먹어보고 싶었다는 쵸코파이의 하얀 부분만 모아놓은 것 같은 머쉬멜로우 덩어리도 샀는데, 나는 자꾸 고스트버스터에 나오는 머쉬멜로우 유령이 떠올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하철역에서는 흑인소녀들이 검표원 아저씨와 요금시비가 붙었는데 양쪽 다 만만치 않다. 아마도 그 복잡한 zone이 문제인 것 같은데, 우리같이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덤터기 벌금을 낼 것 같다. 앞으로 주의해야겠다.
동네 슈퍼에서 2차 물가조사를 했다. 아까 시내슈퍼는 우리나라 대형슈퍼와 별 다를 게 없어서 재미없었는데, 아랍인이 경영하는 동네슈퍼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량식품인 통에 담긴 젤리까지 있어서 구경하기는 더 좋았다. 가격은 물론 동네슈퍼가 더 쌌다. 우유(59p=1000원)와 오렌지주스 큰것(99p=1700원), 쵸코칩과자(99p)를 사고, 절대 안 된다는 지현이를 졸라 5펜스(85원)짜리 기다란 공룡젤리를 하나 입에 물었다. 한 입 준다는 데도 지현이는 끄떡을 안 한다. 젤리표면에 발라진 것이 설탕물만이 아닌 듯 자꾸 짜고 신맛이 난다. 여기 애들은 이런 맛을 좋아하나.
버튼을 눌러야 파란불로 바뀌는 건널목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아까는 낮이라 다니는 사람이 많아 몰랐는데 밤이라서 우리가 누르지 않으면 파란불이 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영국의 차들은 서행하는 편이고 사람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도심이 아니면 무단횡단이 보편화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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