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선포와 하나님 나라 복음”
Scripture: 막(Mk.)1:35-38, 눅(Lk.)4:42-43
Word: Mk.(막)1:38, Lk.(눅)4:43
38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Ἄγωμεν ἀλλαχοῦ εἰς τὰς ἐχομένας κωμοπόλεις, ἵνα καὶ ἐκεῖ κηρύξω[1], εἰς τοῦτο γὰρ ἐξῆλθον.
43 ὁ δὲ εἶπεν πρὸς αὐτοὺς ὅτι Καὶ ταῖς ἑτέραις πόλεσιν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2] με δεῖ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 ὅτι ἐπὶ τοῦτο ἀπεστάλην.
Wrong translated Bible:
38 And he said unto them, Let us go into the next towns, that I may preach there also: for therefore came I forth.-KJV.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개역한글.
43 And he said unto them, I must preach the kingdom of God to other cities also: for therefore am I sent. –KJV.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개역한글.
Word Parsing: 아래 참조에 있음.
Yah-Bible:
Translation: 38 and he said to them, “Bring another into have the towns that I may preach there. I came for into this.”
43 And he said to them that also I must to announce the gospel the kingdom of the God to other cities, because on this am I sent.
번역: 38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다른 것을 가져 가자 마을들 안으로 나는 그곳에서 선포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 왔느니라” 라고 말했다.
43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또한 나는 신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다른 도시들에게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나는 이일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Interpretation: 38 마가는 예수가 무엇인가를 선포하기 위해 마을에 왔다고 말하고, 43 누가는 예수가 신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라고 말한다.
*Commentary: 얼핏 보면, 이 두 구절은 똑 같은 의미의 구절처럼 보이지만, 단어 하나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1. Introduction:
성경 읽는 법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단어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단어를 모르면 성경을 전혀 읽을 수 없다. 때문에 단어를 모르면서 영적 해석을 하고, 설교한다는 것은 거짓말장이들이 하는 짓이다.
얼핏 읽어보면 같은 의미의 구절인 것같은 두 구절의 단어를 살펴 봄으로 두개의 각 구절이 어떤 다른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2. 막1장38절 분해:
Ἄγωμεν (agwmen)은 현재 동사 가정법 능동태 1인칭 복수이고, 이고, 기본어는 “ἄγω (agw)”로 “가져오다 bring”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Let us go”라는 번역 보다 “Let us bring” 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ἀλλαχοῦ (allaxou)는 부사 이고, 기본어는 “ἀλλά (alla: but, except, G235)로 “ἄλλος (allos: 다른 another, G243)의 복수형 형용사 이다. 이 문장에서는 목적어를 나타내기 때문에 형용사이지만 명사화 하여 “다른 것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Ἄγωμεν ἀλλαχοῦ εἰς τὰς ἐχομένας κωμοπόλεις,을 번역하면, “다른 것을 가져 가자 마을들 안으로”가 된다.
질문1. 마을 안으로 가져가는 다른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Let us go”로 번역된 성경을 읽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정확한 단어를 살펴보니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의문이 생긴다.
“다른 것”은 무엇인가? 막1장29-34절의 사건을 다시 읽어보면, 예수가 행했던 것은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 이였다. 즉 다른 것은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말한다. 이제 38절의 뒷 문장을 살펴보자.
ἵνα καὶ ἐκεῖ κηρύξω, (나는 거기에서 선포할 거야), 즉 다른 것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것이다.
질문2. 그가 선포한다는 것은 무엇을 선포하다는 것일까?
“선포하다”의 뜻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선포하는 목적어가 없다.
신약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이 질문에 복음(막1:1,14,15)을 선포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 대답하는 것일까?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 gospel 복음, G2098)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소식이든 들어서 기쁜 것은 모두 복음이다 라고 말하면 아니라고 한다. 그럼, 어떤 것이 복음이냐? 라고 물으면 또 헛소리만 한다. 예수가 없으면 복음이 아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복음이 아니다. 등등….
솔직히 논자는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주장은 모르겠다.
질문3. “복음”이 무엇인지 논해보시오.
εἰς τοῦτο γὰρ ἐξῆλθον. 나는 이것을 위해 왔다.
이 문장을 해석해 보면, “나는 선포하기 위해 왔다.”가 된다. 즉 무엇을 선포할지는 모르지만 문맥으로 보면, 예수는 선포하는 주체자 이다. 이것은 누가복음과 다르다. 누가는 예수를 선포의 주체자가 아닌 전달자로 묘사하고 있다.
질문4. 당신은 예수를 선포의 주체자로 믿고 있는가? 아니면 전달자로 믿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예수를 선포의 주체자 즉 야웨로 믿고 있다면, 당신은 우상 숭배자이고, 예수를 선포의 전달자 즉 선지자로 믿고 있다면 당신은 바른 믿음을 가진 자 이다.
3. 눅4장43절 분해:
ὅτι Καὶ ταῖς ἑτέραις πόλεσιν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 με δεῖ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 또한 나는 신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다른 도시들에게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 (euangelisasthai)”는 “to announce the gospel 복음을 전달하다, to preach the good news)”라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 (euangelisasthai)”는 “εὖ (eu: well 잘, good 좋은, G2097)” + ἄγγελος (angelos: a messenger 전령, an angel 천사, G32)”의 합성어 이다. 때문에 그 의미는 “good messengers 좋은 전령들 or good angels 좋은 천사들”이다.
만일 그릭 번역 성경처럼 “to preach the gospel”이 되려면, “κηρύσσω τὸ εὐαγγέλιον (kerusswn to euarrelion: preaching to gospel, 마4:23, 막1:14, etc.)”을 사용해야 한다. 그 이유는 “κηρύσσω (kerussw: preach 선포하다, G2784)”는 선포하다는 뜻의 기본단어이고, “εὐαγγέλιον (euaggelion: gospel 복음, good news 좋은 소식, G2098)”은 복음이라는 뜻의 기본단어 이다.
질문5. “복음을 선포하다”는 정확한 뜻을 나타내는 기본 단어가 있는데, 전혀 의미가 다른 단어를 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누가는 “preaching the gospel”을 “εὐαγγελίζω (euangelijw: to announce good news)”로 총 4번(눅4:18,7:22,9:6,20:1)을 사용하고 있다. 누가에는 “gospel”이라는 단어는 4번외에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preaching the gospel”을 “εὐαγγελίζω”로 사용하고 있고, “the gospel”로는 “εὐαγγελίζω과 εὐαγγέλιον“을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를 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한 이유를 짐착할 수 있다. “εὐαγγελίζω”는 “εὖ (well 잘, good 좋은)과 ”ἄγγελος (a messenger 전령, an angel 천사)”의 합성어 이기 때문에 “좋은 천사”로 번역하고 해석해 보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한 의도를 알 수 있다.
질문6. 당신의 번역과 해석을 말해보시오.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 (ten basileian tou theou: 신의 왕국)”은 신이 통치하는 나라를 일컫는 단어이다.
유일신교인 기독교인들은 말은 논리가 없다. 논리 없다는 말에 무조건 화 내지말고, 질문에 답해보라. 그러면 기독교인 당신이 얼마나 논리가 없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질문7. 이 세상은 신이 만들었나?
질문8. 이 세상은 신이 통치하는가?
질문9. 이 세상은 신의 왕국인가?
질문10. 당신은 신의 왕국 안에 살고 있는가?
질문11. 당신은 죽지 않는가?
신의 왕국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 다섯개의 질문에 하나라도 “아니오”가 있다면, 당신의 믿음은 거짓이다.
이 세상은 야웨가 만드셨고, 야웨가 통치하신다. 때문에 이 세상은 야웨의 왕국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야웨의 왕국에서 신으로 태어나고, 야웨의 왕국에서 신으로 살고 있다.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영생하나 야웨의 명령과 율법을 거역한 죄인은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 영원한 죽음의 형벌로 그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
이것이 타나크에 기록된 야웨의 말씀의 요약이다.
“ὅτι ἐπὶ τοῦτο ἀπεστάλην. (나는 이일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ἀπεστάλην (apestalen:: have I been sent forth)는 부정과거 동사 직설법 수동태 1인칭 단수이며, 기본어는 “ἀποστέλλω (apostellw: send 보내다, G649)”이다. 즉 타동사로 누군가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또 “ἀποστέλλω”은 “messenger 전령”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을 해석하면, “예수는 신의 왕국의 복음의 전달자로 보냄을 받았다.”라고 할 수 있다.
질문12. 눅4장43절에는 예수가 자신을 신의 왕국의 복음의 주체자가 아닌 피주체자 즉 주체자의 명령을 받아 보내어진 전령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령을 보낸 주체자는 누구일까?
당연히 신의 왕국의 통치자이다. 다시 질문한다. 신의 왕국의 왕은 누구냐? 왕의 이름이 무엇이냐? 답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정확히 알아보아야 한다. 물론, 예수라고 답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질문13. “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apostle 사도, a messenger 전령, one sent on a mission 임무를 위해 보냄 받은 자, G652)”라는 뜻이다. 보냄 받은 전령은 누구인가?
정답은 “예수”이다. 그러나 막1장38절과 비교하여 좀더 신중히 생각해 보라.
질문14. 당신은 “예수가 복음의 주체자인 신의 왕국의 왕”이라고 믿는가? 아니면 “예수는 복음의 주체자인 왕으로부터 보냄 받은 전령”이라고 믿는가?
3. Conclusion: “사건은 사실이나 증언은 거짓말.”
그릭 신약 성경을 읽으면서 항상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똑 같은 사건을 각 복음서가 서로 다르게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증언이 다 다른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복음서 저자의 증언이 진실되다고 확정할 수 없을 만큼 각 복음서의 증언이 너무 많이 다르다.
지금까지 4복음서에 동일하게 기록된 사건과 증언들 25개를 살펴보았지만, 단 하나도 진실된 증언은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 살펴본 막1장38절과 눅4장43절, 단 한구절도 이렇듯 서로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증언 중 자신들의 신앙에 맞는 구절을 선택하여 믿고 있다. 심지어 다른 증언을 표현만 조금 다를 뿐 의미는 동일한 증언이라고 억지 해석하여 믿고 있기도 한다.
이런 행위는 거짓 종교인들의 행위다. 결국 그릭 신약을 정경으로 읽는 기독교인들은 모두 거짓 종교인일 수 밖에 없다.
일어난 사건은 사실이지만 증언이 서로 다르다면 서로 다른 증언은 진실이 될 수 없다. 증언이 서로 일치 될 때에 진실이 되는 것이다.
[1] κηρύξω (keruxsw: I might preach): Verb Aorist Subjunctive Active 1st Singular “κηρύσσω (kerussw: preach 선포하다, G2784)”.
[2]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 (euangelisasthai: to preach good news): Verb Aorist Infinitive Middle “εὐαγγελίζω (euangelijw: to announce good news 좋은 소식을 알리다, preach the Gospel 복음을 선포하다, G2097)”: εὖ (eu: well 잘, good 좋은, G2097)” + ἄγγελος (angelos: a messenger 전령, an angel 천사, G32)”의 합성어, 합성어 이면, “좋은 천사”가 되어야 하는데, “to preach good news”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