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살면서 원하든 그렇지 않든, 여러 이별의 순간을 만나고 돌아서고 또 잊어버리며 살았다.
매 순간 그 상황에서 진심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진심은 나의 방식에서 나온 진심이었고 상대나 상황을 고려한 최선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매달렸던 경우, 더 돌아서기도 어려웠는지 모른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접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10월이면 이 시를 꺼내 읽곤 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 시는 10월의 감각이다. 푸릇한 희망의 시절도, 치열하고 무성한 시절도 다 보내고 나서 다시 나름의 속도로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보내는 마음도 “아주 영 이별은” 아닌, 엊그제 헤어진 마음은 아닌 듯 하라는 이 구절이 마음의 위안이 된다.
어떤 이별이 서운하지 않겠는가. 어떤 이별이 아쉽지 않겠는가.
하지만 화자는 “연꽃 만나러 가는” 설레는 마음이 아니라, 만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덤덤히, 그것도 방금 돌아선 것이 아니라 “한 두 철 전 /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하라고 귀띔해 준다. 무성했던 시간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나 나름의 진심과 서로의 인연이 다함을 느끼고 돌아서는 순간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순응이다. 진심으로 최선인 시간이 있었기에 인정하고 돌아설 줄 아는, 놓아줄 줄 아는 현명함이고 지혜로움이다. 그러나 아쉽고 안타까움은 어찌할 수 없기에, 언젠가 다시 한 번 정도는 만날 수 있기를, 그것도 이 생이 아닌 내생에서 만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그런 연연한 진심이 느껴지기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늘도 눈을 뜨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또 간간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리운 이를 만나고 부담스러운 이도 만나고 함께하고 돌아선다.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나아졌을까?), 그리고 내일보다 조금은 젊고 의욕적일 나를 만나고 하루를 꾸려 나간다. 매 순간 진심이길, 그리고 접어들 때에 절절한 그리움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시 한번의 만남을 더 기약하는 관계와 상황으로 남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되길…….
첫댓글 그때는 이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참 많이 휘청거렸는데..이 시를 그 때 만났다면, 또 샘의 글을 읽었다면 조금은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담담하지만 진심이 담긴 샘글에 위로받고 갑니다^^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시 구절이 마음에 맴돌아요. 이별하는 순간 바람 같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래요 매순간 진심이 아닌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거리를 두며 연연하지 않고 산다는거 참 어려운 일이죠. 시가 참 좋네요
선생님두요.
시 구절에서 울컥했다가.. 선생님 글 '무성했던 시간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나 나름의 진심과 서로의 인연이 다함을 느끼고 돌아서는 것..'에서 눈물이 나와요. 지난 번에 줌에서도 눈물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는데ㅎㅎ 담담해서 더 쓸쓸하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