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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러시아의 노래 <갈린까> 네바 강에 흐르는 서정(4)
5. 상드 뻬쩨르부르그에서 ‘최후의 심판’을
나는 까마득한 과거를 그려 본다,
네바 강가의 뻬쩨르부르그의 집을
너는 초원 지대의 소지주의 딸,
끄르스끄 태생인 여학생이었네
너는 예뻐, 너를 따르는 자가 많았네
우리 두 사람은 이 백야가 새도록
너의 창문 가에 앉아
네 마천루에서 밑을 내려다 보았네
가로등은 가스등의 나비처럼
아침의 첫 한기에 부딪혀 떨고 있었네
나는 너에게 조용조용 이야기했네
멀리에 잠든 풍경처럼
너와 나는 끝없는 네바 강 너머에
파노라마처럼 쭉 뻗어 있는,
저 뻬쩨르부르그를 감싸고 있는,
흡사 신비에 가까운 정경에 취하고 있었네
저 쪽 멀리 우거진 숲 속,
봄의 그 백야에
밤 꾀꼬리가 찬미하는
우레 같은 소리가 가득했네 ― 빠스떼르나크의 의사 지바고가 쓴 시 ‘백야’의 일부
이틀간의 상드 관광을 이 곳 토끼섬에서 마무리짓기로 한다. 이제 막 페트로 파바로프스키 성당을 둘러보고 나온 길이다. 청동의 베드로 좌상에서 고행자의 굳은 의지를 읽었고, 하늘 높이 솟은 첨탑에서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로 부침을 거듭하던 인간사의 덧없음을 읽을 수 있었다. 유아독존적 사상의 오만은 체제 존속을 위한 힘의 결집에만 있었다. 사필귀정, 문화는 정체되고 사회주의 역사는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도스또예프스키가 250여 일 동안 갇혔다가 사형 직전 사면되었다는 요새 감옥이 바로 이 섬에 있다.
강은 잉어 비늘 같은 잔물결을 나울치며 넉넉하게 흐르고 있다. 포구의 끝은 핀란드 만(灣)이다. 해는 만을 쉬 넘어갈 기세가 아니다. 북방은 저물녘이 길다. 여름 저녁의 햇살이건만 따스함이 퍽은 정겹다. 일광욕을 즐기는 허여멀건 벌거숭이들, 서른 앞쪽의 나잇살인 여인은 아예 알몸이다. 유방은 개똥 참외처럼 햇살에 익어가고 있었다. 벗고도 너무 당당한 그들 앞에서 보는 우리들이 오히려 죄스러워진다. 잔양을 한 줌이라도 더 쬐려는 그들의 모습이 자못 진지하여 장난질이라도 걸고 싶어진다.
우리들은 잠시 강가에 누워 노을에 젖어가는 석양을 바라본다. 강 건너에는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이 있고, 겨울 궁전이 엎드려 있다. 석양에 번쩍이는 양파머리 황금지붕들이 동화의 세계인 양 신비스럽다. 로스트랄 등대 기둥은 기이한 모양으로 저녁 노을을 휘두른 채 밤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나는 수첩을 내어 상드에서의 여정을 정리한다.
티흐빈 공원 묘지 → 이사크 성당 → 네바 강 선유 → 궁전 관광 → 네프스키 거리와 운하 → 카잔 성당 → 에카데리나 여제 동상 → 선상 호텔(1박) → 네프스키 거리를 거쳐 스파스나 크라비 성당 → 에르미타주 국립 박물관 → 쾌속정 → 페트로드보레츠의 여름 궁전 →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열차는 밤새도록 어둠 속을 달려 이튿날 아침에야 일행을 상드에 내려놓았다. 연전(年前)까지만 하더라도 상드는 ‘레닌 그라운드’로 불리웠던 러시아 북서(北西) 도시이다. ‘모스크바호텔’에서 가이드가 도착할 동안 우리는 티흐빈 묘지를 찾기로 하다. 호텔 맞은편이었다. 묘지공원은 넓었다. 무작정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몰려 있는 곳부터 찾는다. 그 곳은 차이코프스키의 묘지. 아찔한 어떤 전율에 몸을 맡기며 나는 가슴을 훑어내리는 한기로 몸을 떨었다. 이 곳이 세계 음악계의 거성 차이코프스키가 묻힌 곳이란 말인가.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그의 선율에 감동하며 지금도 잊지 않고 노래하는 조상(彫像), 아름답다. 돌아가면 음반을 구해 그를 더욱 가까이서 사랑하리라.
도스또예프스키가 계시다는데 어디에 누워계시는가? 러시아 문자에 익숙지 않은 탓에 답답한 가슴을 쓸며 빙 둘러 나오는 길에 매표원에게 물어보았다. 입구 오른쪽 담장을 끼고 뻗은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발음이야 좀 다를 테지만 고유명사의 덕을 톡톡하게 보다. 처음부터 우리는 길을 잘못 든 모양이었다. 30여 보를 가자니 사진으로 익히 만난 바 있는 도스또예프스키의 흉상을 모신 묘지가 나타난다. 나는 무덤 앞 길바닥에 엎드려 우리 식의 큰절을 올린 다음 묵념을 하다.
‘이역 만리 당신을 찾아 이 곳에 왔습니다. 당신의 소설을 일찍부터 사랑하던 한국의 독자, 여기 마음의 화환을 바칩니다.’
무덤 주위에 활짝 핀 금잔화와 만수국이 낯설지 않아 정겹다. 오래 머물 수는 없다. 기념 촬영을 한 후 하직하다.
이사크 성당은 인간 재능의 극치이다. 웅장한, 금빛의 둥근 지붕과 네 아름이나 되는 석조 기둥하며 건물의 외관부터가 제정 러시아 정교회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1818년부터 40년에 걸쳐 완성을 보았다는 석조 건물, 창조주의 권위를 최대한으로 살린 걸작 중의 하나이다. 그 예술혼이 새삼 부럽다. 장엄하고 거대한 힘의 예술, 제정 러시아의 국력을 이 건물 하나로 알 만하다.
사진으로 보아왔던 수많은 미술 작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노라니 가슴이 떨리고 눈이 시려옴을 막을 길 없다. 성화(聖畵)는 성화대로, 조각은 조각대로 성스럽다. 까마득한 천정과 벽에 그려진 벽화는 기독교 예술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노아의 대홍수’, ‘최후의 심판’은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색채감의 조화에 주눅들게 하다. 62점이나 된다는, 자연석을 정교하게 깨어 제작한 모자이크화는 그 섬세함에서 단연 돋보인다. 돌에 어찌 이런 고운 색채가 숨어 있단 말인가. 무한정 한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을 시간은 없다. 쫓기는 일정 탓으로 눈에 띄는 대로 얼른얼른 가슴에 쓸어담으며 일행의 꽁무니를 열심히 좇는다. 목이 뻣뻣해짐조차 잊고 쳐다본다. 서구의 회화는 확실히 역동적이다. 제작에 힘이 드는 만큼 그림의 혼 또한 살아 있어 보는이의 시선을 붙드는 흡인력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오래 보고 있노라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다. 한국의 회화처럼 부드럽고 은근한 정(情)이 없다.
네바의 습지에 이 웅장한 성당을 짓게 된 공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모형 또한 귀중한 유물이 될 만하였다. 일만사천 명이나 수용할 수 있다는 이 거대한 박물 성당을 벗어나자 공원이다. 오른족 숲 속에 고골리의 집이 있다. 강변으로 난 공원의 산책로를 잠시 걷자니 표토르 대제의 거대한 기마인상이 네바강을 향해 힘차게 뛰어 오르고 있었다. 단숨에 강을 건너뛸 듯한 이 동상을 ‘청동의 기사’라 이름한단다.
궁전 광장에 누워 콜라를 마시며 스탈린을 웃기도 하고, 카잔 성당의 어둠 속에서 인류의 평화를 위한 기원의 촛불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런 다음 에카데리나 2세 여제의 동상으로 향하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이니치코프 다리를 건너며 인간과 말을 소재로 한 생동감 넘치는 조각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독일인 출신으로 러시아의 황제가 된 에카데리나 2세, 사후에도 그녀는 저명 인사 아홉 명을 심복으로 거느리고 알렉산드리아 광장에 위풍도 당당하게 서 있다. 러시아에는 동상과 광장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선상 호텔에서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이튿날은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을 찾다. 관광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실컷 눈요기를 하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화가, 조각가들의 작품이 다 이 곳에 모인 것은 아닐까 싶다. 화려한 회화와 조각, 세계 미술 문화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전시물을 보며 힘과 약탈의 유물에 어지어질 놀라다. 라파엘로, 램브란트, 고갱과 피카소를 만난 것은 행운. 한국인 화가 김응수 화백의 ‘승무도(僧舞圖)’가 반갑다. 세 시간여에 이른 다리품으로도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다. 그만큼 전시물은 많았고 일정은 팍팍하였다. 쉴 틈도 없이, 햄버거로 간단히 점심을 대신하고, 페트로드보레츠에 있는 ‘여름궁전’을 향하여 쾌속정에다 몸을 맡기다.
화려한 금빛 조상들, 삼손과 악어의 싸움이 인상 깊었다. 금장 조상 전부가 성서의 인물을 소재로 한 것이란다. 기독의 문화가 이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힘차게 솟아오르는 분수를 보며 호화 극치로 지낸 표트르 황제의 삶을 엿보다.
해가 서서히 발틱해로 기울고 있다. 우리들은 이제 일어나야 한다. 석식 후에는 다시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밤을 새워 가야 하지 않는가. 내일이면 모스크바를 떠나는 것.
잘 있거라, 네바 강. 그리운 내 추억들아.
1997년 9월 중순
♧ 후기 : 너무 큰 나라 러시아를 몇 줄의 기행문으로 엮어 말하는 어리석음을 나는 끝내 저지르고 말았다. 공항까지 바쁜 시간임에도 기꺼이 동행하여 모든 출국 수속을 밟아 주신 우리의 털보 박형서 목사님께 일행을 대신하여 이 글을 통해 감사드린다. 그리고 여러 제자들의 따스한 환대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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