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마신 술이 꽤 진했나 보다. 아니면 ‘중국발품취재’의 장정 앞에서 긴장한 것인지. 늦게 일어났다. 김태송씨는 행사(장보고기념관 공식개관식) 준비를 위해 츠산파화위엔(赤山法华院 적산법화원)으로 먼저 갔다. 오후 비행기로 국회의원들과 취재진, 그리고 중국과 공동 주최한 장보고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들어오면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될 터이다. 룽청시에서 적산법화원이 있는 스다오(石岛)까지 5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체크아웃(200위안)을 하고 택시를 탔다. “스다오삔관(石岛宾馆)”이라니 바로 출발. 5분 정도 지나 갑자기 차를 세운다. 합승을 해도 되냐고 한다. 뒤를 돌아보니 아주머니 둘이 막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배낭이 두 개나 되는데. 뒷좌석이 이미 꽉 찼으니 난감한 일이다. “량거런마?(两个人吗)” 두 사람씩이나 되니 곤란하지 않느냐 했더니만 미안한 듯 아주머니들을 팽개치고는 또 달린다. 40분이나 걸렸다. 택시비도 60위엔.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한 4성급 호텔이었다. 파도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분위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호텔 키를 받고 짐을 풀고 창문을 여니 수평선이 눈 앞에 펼쳐진다. 김태송씨와 스다오 진(镇 쩐) 내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해물전으로 점심을 먹고 장보고를 만나러 갔다. 룽청에서 스다오에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으로 츠산 풍경구 팻말을 따라 5분 정도 차로 올라가면 법화원이다. 다음 날 공식 개관식이 열리면 복잡할 터라 미리 가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내일 비가 올 지도 모른다는 예보도 있다.
이미 올해 1월 초에 다녀갔던 터라 한 걸음에 장보고기념관(张保皋传记馆)으로 갔다. 기념관이 보이는 곳에 삼각대를 걸고 캠코더를 돌렸다. 처음이어서인지 자꾸 어색하다. 참고:http://blog.daum.net/youyue/8556658
여전히 해상왕 장보고는 의젓하게 서있다. 여전히 아쉬운 것은 중국이 해신(海神)이라 하는 명신(明神 밍션)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 쓴 글에서도 느낌을 토로했지만 왜 명신이 산 꼭대기에 엄청나게 큰 몸집으로 서있건만 장보고 동상은 산 중턱에, 그것도 사면이 기념관이나 입구 건물에 파묻혀 있는 지 답답하다는 것이다. 내일 행사를 위해 분주하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한 기념관이다. 장보고는 한국 관광객을 위한 츠산지퇀(赤山集团)의 상품 그 자체다. 드라마 ‘해신’도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말이 기념관이지 아무리 또 봐도 그다지 알차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중국 땅에 역사의 인물인 신라인 장보고가 서 있다는 것으로라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명신은 장보고기념관에서 다시 산을 타고 5분 정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아니 스다오에 들어서는 한국 사람들이 장보고 동상이라 착각할 정도로 온 사방에서 보일 정도로 이미 눈에 익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청동 주조 동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김태송씨에게 물었다. “저 명신 말이야. 만들어서 가져온 거야 아니면 산 꼭대기에서 만든 거야?” “아니 어떻게 저 큰 걸 가져오나요? 산에서 만들었다고 하데요” 이상하다. 나는 산 아래에서 주조해서 헬리콥터로 실어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명신 동상 속은 자그마한 불상이 수없이 앉아 있고 벽화도 있는 등 텅 비었는데, 무겁지도 않으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산 높이 있다 보니 장보고기념관은 물론이고 산아래 마을, 멀리 바다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조자룡과 관우 동상 아래 산 마을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지. 이곳에 명신 대신에 장보고가 서 있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장보고와 관우는 영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다시 장보고기념관 쪽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더니 바다로부터 운무가 휘돌아 올라온다. 급하게 캠코더로 담기 시작했다. 싸늘한 냉기가 엄습하건만 몸 중심을 잡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장보고 동상을 지키느라 서늘한 땀까지 솟구친다.
비가 점점 굵어지더니 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몸까지 적신다. 일단 담 밑으로 피하고 잠시 있으니 비가 멈추는 기색이다. 빨리 내려가는 게 좋겠다 싶어 내려가다가 비도 피할 겸해서 잠시 영성민속관을 들렀다. 농사 짓고 살고 고기 잡고 사는 모습이 우리와 많이 닮아있는 느낌이다. 달콤하지는 않지만 담백한 맛을 주는 것이 역시 민속을 담은 박물관이지 않을까 싶다. 눈요기가 꽤 괜찮았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출구를 나서니 관광객을 거의 없다. 호텔까지 가려면 꽤 멀다. 관리사무실에 가서 부탁하니 차에 태워서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 취재진이니 편하다. 애써 편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도 늦었고 행사 만찬에 참여하려면 씻기도 해야 하거니와 핸드폰을 비롯해서 배터리 밥 달라는 녀석들이 많다. 6시 무렵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도착했다. 짐 무게 때문에 옷을 거의 가져오지 않아 티셔츠 하나를 팔아달라고 푸우위엔(服务员)에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내 방에도 한 친구가 들어왔다. 2인 1실에 찾아온 친구는 헤럴드경제의 하기자였다. 젊은 친구가 인상도 좋고 기자답지 않게 얌전해서 좋았다. 이틀 밤을 같이 보내기에 아주 편한 심성을 지닌 듯해서 마음이 편했다. 저녁 만찬은 양국 모두 100여명 정도나 되는 제법 큰 규모였다. 이 행사에 국회의원들이 왜 왔는지 다소 의아해 하면서 KBS, SBS 등 방송취재팀들과 한 테이블에서 맛 있는 저녁을 즐겼다. 1인당 100위엔이니 그럭저럭 좋은 음식들이 많다. 게다가 해산물의 천국인 룽청이니 즐거운 비명이 아닐 수 없다. 저녁을 먹고 김태송씨와 통역으로 온 구선생(영성외국인학교 교사)과 간단히 맥주를 마시러 호텔 밖으로 갔다. 구선생은 한족 학교를 다녀 우리 말을 못했는데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5년 동안 유학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조선족 발음이 아닌 서울말씨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맥주 집에서 김태송씨와 친분이 있는 화동페리호 기관장과 합석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좋은 사람들과 참 많이 만났다. |
출처: 有約-13억과의대화 [중국발품취재] 원문보기 글쓴이: 여우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