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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 용화봉
20231225
1.북한강변길과 삼악산 아름다운 설경
성탄절날 용산역에서 춘천행 청춘열차를 타고 삼악산 산행을 떠났다. 강촌역에서 내리니 쏟아지는 눈발이 자욱하게 바람에 날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강촌천을 따라가다가 옛 강촌역 앞에서 북한강의 강촌교를 건너 북한강변으로 내려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북한강에 철새들이 날아가고 건너편 옛 경춘선 철로에는 레일바이크 열차가 달린다. 강물에 그려지는 산그리메 영상이 아름답다.
강변길을 걸으며 정태춘의 노래 '북한강에서'를 불러본다. 노래의 분위기와 현재의 북한강 풍경이 흡사하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나는 서울을 떠나와 북한강변길을 걷고 있소. 강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강가에는 강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놓아 호심처럼 고요한 강물을 바라만 보며 강변길을 따라 오르고 있소. 춘천 방향에서 흘러오는 북한강을 보면서 발원지 금강산을 떠올리며 가슴에 먹구름이 덮이오. 강촌 방향으로 흘러가는 북한강을 바라보면 남한강과 합수하는 두물머리와 한강이 서해 바다에 몸을 푸는 김포 유구섬이 떠오르오. 강물이 바다에 몸을 푸는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결국에 도달하는 죽음과 화해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하여 안개와 먹구름이 걷히오.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갯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젠 새벽 강을 보러 떠나요/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오/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정태춘의 '북한강에서' 노랫말)
강변길에서 경춘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경춘로를 통과하여 등선폭포 입구의 매표소로 향하였다. 성탄절이어서 입장료 2천원이 면제되어 무료로 입장하였다.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기분으로 협곡의 금강굴, 등선폭포를 지나 백련폭포, 옥녀담, 비룡폭포, 주렴폭포를 통과한다. 삼악산 입구의 이곳 풍경이 절정을 이루는 곳이다. 협곡의 벼랑에서 자라는 소나무, 암릉에 매달린 고드름, 옥구슬처럼 떨어져 백설로 날리는 폭포수, 눈덮인 등선골의 설경이 환상적이다. 하산하는 산객들이, 위에 올라가면 더 멋집니다, 라고 말하며 어서 올라가라고 부추긴다.
삼악산 운파산막 앞에서 왼쪽은 등선봉 오르는 길, 곧바로 가면 용화봉 오르는 길이다. 오랜만에 오르는 삼악산 산길이 희미한 기억속에서 어룽거린다. 작은초원 쉼터, 333계단의 너덜지대, 큰초원쉼터, 암릉지대를 통과하여 드디어 삼악산 최고봉인 용화봉에 올랐다. 그런데 짙은 안개가 북한강에서 피어올라 모든 풍경을 무화시킨다. 붕어섬이 보이지 않고,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삼악산 전망대로 올라가 보았다. 이곳에서 북한강은 더 짙은 안개에 가려 있고, 삼악산 능선의 기묘한 바위와 숲의 나무들이 멋진 설경을 연출한 뿐이다. 전망대에 설치된 위치안내도의 눈을 걷어내고 위치를 확인해 보려 했지만 짙은 안개는 오직 자신의 존재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삼악산은 세 개의 산봉우리, 청운봉, 등선봉, 용화봉을 이른다. 오래 전에 이 세 봉우리를 모두 올랐었지만, 모든 게 새롭다. 삼악산성으로 하산해 보려고 하는데, 운파산막에 머물고 있는 일행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운봉 갈림길에서 망설이다가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영서 지역의 맥족이 영동 지역의 예족에게 패배한 곳이 삼악산성이라고 한다. 이후 이 산성은 태봉국 궁예가 왕건과 전투를 벌였던 곳이라고도 한다. 삼악산성을 살피지 못하고 내려오는 도중, 대궐봉과 그 뒤 등선봉이 눈에 들어온다. 저 능선이 맥족이 패배하여 평창 청태산으로 후퇴했다는 곳이다. 대궐봉과 청운봉을 나란히 살피며 흥국사를 들러 운파산막으로 내려와 일행들과 합류했다.
일행들이 삼악산 산장지기 털보 성량수님과 점심식사와 주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의 삶과 산행 경력이 <노인봉 털보> 책으로 출간되어 있다. 나는 그 책을 읽지 못했고 그와 처음 만나게 되어 서먹하다. 그에게서는 산막에서 홀로 사는 외로움이 짙게 느껴지고, 그가 들려주는 유명 산악인에 대한 얘기는 생의 어떤 암시처럼 들린다. 삶이란 무엇이고 산이란 우리 인생에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방랑산인 운파의 '山의 생각 합류점'에 표현된 일 년의 산 이야기는 한 생의 이야기처럼 흐른다. "무리를 짓지 않는 참매처럼/ 山 속에 갇혀 산악 외인이 되어 멍때림한다./ 기다림의 봄은 진흙비에 갔고/ 뭉게구름 여름은/ 옛날이야기/ 긴긴 더위와 장마뿐/ 가을, 낙엽에 쌓여간다/ 찬바람에 구름은 흩어지고/ 만나고 만났던 山과 사람도 계절처럼/ 잊혀져만 간다." 운파산막 내부에 걸린 방랑산인 운파의 생각은 산과 자연과 인생을 압축한 한 해가 다가는 시점에 울림이 크다. "시계 밖의 시간/ 대자연의 리듬/ 山 속의 시간/ 자연의 시계./ 계절의 추억/ 또 다시 흐른다"
운파산막을 나와 올라왔던 그 길을 내려간다. 도중에 아침에 살피지 못한 백련폭포를 살피기 위해 비선담 매점 위 계곡으로 내려가 백련폭포를 살폈다. 얼어붙은 물기둥 사이로 백옥 같은 폭포수가 쏟아져 연꽃 이파리처럼 날린다. 겨울날 여름날 풍경을 보는 듯 착각했다. 등선폭포와 금강굴을 지나 이제 신선의 세계에서 속계로 내려간다. 북한강변으로 나갔다. 아침의 북한강 짙은 안개는 사라졌다. 강선봉 뒤쪽로 지는 해가 노을빛을 북한강에 비춘다. 아침에 이 길을 따라와서 저녁에 이 길을 따라 내려간다. 안개는 걷혀 있다. 송구영신의 연말, 새로운 해의 희망을 품으며 북한강변길을 걸어 강촌역으로 향하였다.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 년이 한 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에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 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길 막돌맹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 년 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 유안진(1941~)의 '송년에 즈음하면' 전문
2.산행 과정
전체 걸은 거리 :15.9km
전체 소요시간 : 7시간 15분
강촌역 광장에서 서북쪽의 강선봉을 조망한다.
강촌역 광장에서 동북쪽의 삼악좌봉과 등선봉 방향을 조망하지만 눈발에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강촌역 광장에서 강촌역사를 뒤돌아본다.
강촌로를 따라 창촌중학교 정문 앞을 거쳐 구곡2교차로 방향으로 이어간다. 구곡교를 건너 구곡2교차로에서 강촌천변으로 나가 구곡1교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강촌천변길을 따라 물깨말교 다리 앞에서 좌회전하여 강촌유원지 입구에서 강촌상상역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강촌유원지 입구의 춘강옥 옛터는 나훈아의 노래 '강촌에 살고 싶네'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강촌에 살고 싶네」 발상지 : 이곳은 가수 나훈아가 부른 강촌에 살고 싶네 노래의 발상지인 준강옥(春江屋)의 옛터이다. 춘강옥은 강촌 최초로 허가받은 식당이자 여관으로 1970년대초까지 경춘선 열차와 북한강 둔더리 배터를 이용하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작사가인 설강 김성휘 선생은 1965년경 초여름 저녁 무렵 경춘선 국도를 차를 타고 춘천에서 서울로 가던 중 산 중턱에 달랑 걸려 있는 강촌역사가 너무 아름다워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춘강옥에 여장을 풀고 마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산 속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아침, 냇가에 우거진 버드나무 사이로 하염없이 물 위를 날고 있는 새들이 보였다. "해가 지면 뻐꾹새가~"로 시작되는 노래가사 2절은 강촌에 도착한 날 밤 여관의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작사를 하고, 1절은 이튿날 아침 북한강변을 둘러보고 냇가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지었다고 설강 선생은 훗날 회고했다. 강촌문화마당과 강촌주민들은 2005년 화강석 위에 강촌 출신 우안 최영식 화백이 쓴 「강촌에 살고 싶네」 노래비를 건립하였으며 2019년말 강촌천변 출렁다리 건너편으로 옮겼다.
또오리의 또는 Again을, 오리는 Come 외에 Duck을 뜻하며 강촌리 북한강 일원에서 월동하는 천연기념물 제448호 호사비오리를 의인화하여 옛 강촌역의 역장으로 임명하였으며, 또오리의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또오리는 많은 방문객들이 강촌을 찾아 낭만과 추억이 흐르는 강촌, 사랑과 우정을 키워가는 강촌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구 강촌역(舊 江村驛) : 구 강촌역은 1939년 개통 때만 해도 역무원과 역사건물조차 없는 이름뿐인 역이었으나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더불어 꾸준한 관광 수요의 증가로 1953년 역사를 신축하고 두 차례 개축 이전을 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모해 왔다. 1972년 12월 국내 최초의 현수교인 등선교(일명 강촌출렁다리)의 건설로 수도권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가파른 암벽 아래에 역이 위치하여 피암터널이 역구내에 설치돼 있다. 피암터널 벽의 낙서가 유명하며, 2008년 그래피티(Graffiti)역으로 지정되었다. 구 강촌역은 경춘선 복선 전철개통으로 2010년 12월 20일 폐쇄됐다.
연혁 : 1939년 7월 20일 무배치 간이역/ 1968년 4월 1일 백양리역 관리 간이역으로 지정/ 1978년 2월1일 역사 준공 및 광장 확장/ 1998년 피암터널 및 현 역사 이전 준공/ 2003년 4월 30일 보통역으로 승격/ 2010년 12월 21일 수도권 광역전철 개통으로 역사를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왼쪽에 강촌상상역, 오른쪽에 강촌레일파크 강촌역이 있다.
경촌선 옛 철도가 강촌천을 가로지르고 있다. 현재는 강촌레일바이크로 이용되고 있다.
북한강을 가로질러 강촌대교가 놓여 있다.
북한강을 가로지른 강촌교를 건너 국도 46호선 경춘로 강촌삼거리로 향한다.
옛 강촌역사는 강촌 레일파크로 바뀌었고, 피암터널이 옛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쪽에 강촌 레일파크, 왼쪽에 강촌천을 가로지르는 옛 경춘선 철로가 있으며, 뒤쪽에 강촌유원지가 보인다.
북한강변길에서 뒤돌아본다. 왼쪽에 북한강, 중앙에 지방도로 403호선 강촌터널과 강촌대교, 뒤쪽에 강선봉 줄기가 솟아 있다.
북한경 건너편 옛 경춘선 철도 위로 레일바이크가 달리고 있다.
북한강변길을 따라 북한강을 거슬러오른다. 왼쪽에 국도 46호선 경춘로 등선교 고가도로가 달린다.
북한강이 강촌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오른쪽에 국도 46호선 경춘로 등선교가 달린다.
북한강변길 왼쪽으로 북한강이 강촌 방향으로 흐르고, 위쪽에는 국도 46호선 경춘로가 달리고 있다.
북한강변길을 따라가다가 경춘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등선폭포 입구로 올라간다.
경춘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경춘로 위로 올라와 춘천 방향의 경춘로를 바라본다.
북한강변길에서 경춘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경춘로 등선폭포 입구로 올라왔다.
등선폭포 매표소 입구의 상가를 거쳐 등선폭포 매표소 방향으로 진행한다.
1910년 전후 북한강가로 도로가 나면서 알려져 경천폭, 삼학폭으로 불려오다 신연강 철교(1931년)와 경춘철도(1939년) 개통 후 등선폭포로 널리 알려졌다. 계곡 입구 협곡인 금강굴, 신선이 노니는 듯한 분위기의 등선 제1폭포와 제2폭포, 신선이 학을 타고 나는 듯한 승학폭포, 흰 비단천을 펼친 것 같은 백련폭포, 선녀가 목욕하던 연못인 옥녀담,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있어 선녀탕 또는 용소로도 불리는 비룡폭포, 옥 구슬 문발 같은 주렴폭포가 '등선8경'으로 꼽힌다.
삼악산 제1매표소 앞을 통과한다. 입장료가 2천원인데, 성탄절이라고 하여 무료 입장이다.
등선폭포 삼악산에는 협곡을 따라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지는데 그 중 등선폭포가 가장 유명하다. 일명 경천폭(境川瀑)이라고도 불린다. 등선폭포 산행로에 들어서면 좁고 깊은 금강굴이라는 협곡이 나타난다. 규암의 절리에 의해 만들어진 협곡은 가파르고 날 선 기암괴석이 늘어서 신비로운 분위기다.
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 : 이 산 정상 능선을 따라 옛 산성이 있다. 삼국시대(三國時代) 이전에 쌓은 맥국(貊國)의 성지(城址)라 하기도 하고 한때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이 일대에 세력을 뻗치던 후삼국(後三國) 시대의 궁예(弓裔)가 성을 쌓은 것이라 전하기도 한다. 뒤로 북한강의 거친 물결이 놓이고 앞에는 서울로 향하는 석파령(席破嶺) 고갯길이 놓인 교통의 요충지대로 삼악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한 이 산성(山城)은 삼익산의 험준한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을 따라 동서로 길게 놓여 있다.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아득히 먼 옛날 이 고장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긴 고산성(古山城)이 위치한 산록(山麓)에 이 비를 세운다.
등선폭포 입구는 누각처럼 등선휴게소가 세워져 있다. 등선휴게소 아래의 통로를 통과한다.
등선폭포 입구인 등선휴게소 아래 통로를 통과하면 협곡이 펼쳐진다. 이곳을 금강굴이라 이르는 것 같다.
1957년에 세워진 등선폭포 기념비는 암릉에 있어 비문을 읽지 못하고 그냥 통과한다.
금강굴을 통과하여 등선(登仙)폭포로 향한다.
신선이 노닌다는 등선제1폭포 오른쪽 철계단으로 오른다.
등선제1폭포 위 협곡 바위에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왼쪽 아래에 '흰 비단천을 펼친 모습 같다'는 백련폭포가 있다. 오른쪽 철계단으로 오른다.
오른쪽 아래에 백련폭포가 있으며 그 옆에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백련폭포 철계단을 오르고 있다.
선녀가 목욕하던 연못이라고 하는 옥녀담 옆을 통과한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있어 선녀탕 또는 용소로도 불리는 비룡폭포를 지난다.
옥 구슬(珠)이 문(門)의 발(簾)처럼 떨어지는 모습 같다는 주렴폭포를 통과한다.
등선폭포 0.8km, 용화봉 정상 2.1km 지점을 지나 등선골 나무다리를 건넌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듯 등선골을 오른다.
삼악산정지 설명안내판을 지나 왼쪽길은 등선봉 가는 길, 위쪽의 운파산막 오른쪽길은 용화봉 가는 길이다.
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는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이다. 이 산성은 정상(654m) 서남쪽 지대의 골짜기를 둘러쌓았다. 산성 북서쪽으로는 과거 춘천에서 덕두원을 거쳐 가평·서울로 왕래하는 역로(驛路)인 석파령이 있다.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나뉘어 있는데, 내성의 둘레는 약 2km정도이며 외성은 약 4km이다. 내성은 삼악산 정상 서남쪽 봉우리(632m)를 중심으로 동남쪽 공간에 축조되었는데, 대궐터가 그 중심이다. 외성은 삼악산 정상의 서남쪽 공간을 둘러 쌓았는데 중앙부에는 흥국사 쪽에서 등선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이 있다. 내성은 외성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으며, 대략 후삼국시대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되어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개수되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외성의 경우 고려말 왜구가 내륙으로 진입하여 춘천을 거쳐 가평까지 이르게 되자 그 주요도로 인근에 위치한 이 산성을 급히 개수·확장해 대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지는 918년(경명왕) 태봉(泰封)의 궁예(弓裔)가 철원에서 왕건(王建)에게 패하고 피신하여 사용한 근거지로, 또 삼한시대(三韓時代) 맥국(貊國)의 성터라는 전설이 있다.
운파산막 입구 벽에는 <노인봉 털보> 책, '산의 생각 합류점' 시 등이 붙어 있다.
백두대간을 뛰어서 돌파한 시대의 기인 <노인봉 털보>, 320페이지, 20,000원 : 이 책은 노인봉 산장지기 털보 성량수의 인생을 산과 함께 조명한 산 인생 이야기다. 성량수는 청년교사 시절부터 좋아하는 산을 찾아 누비다가 교직을 그만두고 험한 산에 야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산맥종주와 국토순례, 백두대간 마라톤 종주로 세인을 놀라게 한 기인으로 언론매체를 통해 산악동호인들 사이에 알려졌으며, 1986년 이래 20년간, 오대산 노인봉 산장지기를 하면서 사람을 구하고 산을 지켰다. 쉰이 넘은 나이에 산에서 쫓겨나다시피 내려온 노인봉 털보는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서울 상계역 부근에서 막걸리 집을 하다가 2008년 북한산에서 인명 구조 활동 중 바위에서 추락, 중상을 입어 평생 보물인 '강건한 다리'를 잃었다. 그 후 몇 년간 막장노동을 전전하였고, '이동 양봉'으로 전업하여 떠돌다가 지금은 춘천 삼악산 산막에서 노년을 지켜내고 있다.
왼쪽 언덕의 흥국사는 내려오면서 들르기로 하고 용화봉 방향으로 오른다.
'작은초원' 쉼터에 '산을 사랑하시는 여러분께'라는 글이 적힌 코팅종이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산을 사랑하시는 여러분께' : 쉽게 생각하시는 쓰레기 한 번만 더 생각해서 버려줍시다. 땅콩껍질, 귤껍질, 나무젓가락, 등등, 쉼터에서 드시고 그냥 썩는다는 생각으로 버리시는데, 그런 것들이 그 자리에서 썩는다면 주변이 얼마나 지저분할까요? 보기에도 지저분하고요, 지저분한 곳 다시 앉으려면 누구든지 기분이 상쾌하지 못할 것 같아요. 각종 쓰레기 되가져 가 주시면 어떨까요? 산이 좋아서 건강하기 위해 이용하시는 모든 사람들을 한 번만 배려하십시다. 행복하세요, 여러분 ^!^
너덜지대 왼쪽의 333계단을 오른다.
333계단을 올라와서 333계단을 내려본다.
작은초원 쉼터와 333계단을 올라 왼쪽으로 돌아오르면 큰초원 쉼터에 이른다.
등선봉, 청운봉, 용화봉으로 이루어진 삼악산 최고봉 용화봉이 위에 보인다. 왼쪽 800m 지점에 삼악산성이 있다고 한다.
삼악산 최고봉인 해뱔 654m 용화봉 정상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삼악산 최고봉인 용화봉에서 북한강을 조망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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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 위쪽에 붕어섬이 있을 것이다. 왼쪽 산봉은 삼악산 호수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스카이워크일 것이다.
삼악산 최고봉 용화봉 정상표석과 함께 삼악산 산행을 기념한다.
삼악산 전망대의 위치안내도에 눈이 쌓여 보이지 않는다. 눈을 걷어내고 위치를 살핀다.
위치안내도를 보며 조망하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남쪽 방향에 솟은 기묘한 산봉의 설경이 아름답다.
동쪽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서쪽 방향으로 소나무 설경이 아름답다.
삼악산 전망대에서 정확한 위치 확인이 되지 않아 용화봉으로 되돌아간다.
삼악산 전망대에서 서쪽의 용화봉을 바라본다. 용화봉으로 되돌아간다.
용화봉으로 가는 도중 암릉에서 자라는 멋진 소나무를 살폈다.
삼악산 용화봉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한 번 용화봉을 살피고 하산한다.
오른쪽으로 청운봉 가는 길, 흥국사 방향으로직진한다.
하산하는 도중 서남쪽의 대궐봉을 조망한다. 대궐봉 뒤에 등선봉이 있다.
하산 도중 오른쪽의 청운봉, 왼쪽의 대궐봉을 조망한다. 대궐봉 뒤에 등선봉이 있다.
333계단 위에서 대궐봉과 그 오른쪽 뒤의 등선봉을 확인한다.
333계단 옆 비탈면 너덜지대에 산객들이 작은 돌탑들을 쌓아 놓았다.
흥국사 경내에서 중앙 뒤의 대궐봉을 조망한다. 저 뒤에 등선봉이 있다.
흥국사 경내에 통일기원 일붕 서경보 선시비(禪詩碑)가 세워져 있다.
흥국사 경내에 앙증스런 탑이 서 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 대웅전 안을 살피지 않고 아래쪽에서 보기만 하였다. 뒤쪽의 청운봉은 보이지 않는다.
흥국사(興國寺)와 삼악산성(三岳山城)의 유래(由來) : 춘성군 신북면 발산리에 하나의 부족국가적 형태를 이루고 있던 맥국이라는 나라는 오랫동안 평화로운 국토를 지켜오다가 적의 침공을 받아 천애요새인 삼악산으로 궁궐을 옮기고 적과 대치하였으며, 서기 894년경 후삼국시대 후고구려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왜(와)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 궁궐을 짓고 흥국사라는 절을 세워 나라의 재건을 염원했다고 전하며, 당시 산성의 중심에 궁궐이 있던 곳을 지금도 '대궐터'라고 부르며, 기와를 구웠던 곳을 '왜(와)데기', 말들을 매어 두었던 곳을 '말골', 칼싸움을 했던 곳을 '칼봉', 군사들이 옷을 널었던 곳을 '옷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서문과 북문에서 적을 맞아 싸웠다고 하며, 절은 옛날 그대로 흥국사라 일컫고 속칭 '큰절'이라고 부른다. 그 후 여러 번 전란에 불에 탄 것을 광무 2년에 다시 중수하였다가 퇴락하고 협소한 관계로 불기 2529년에 대웅전 17평을 중창하였다.
흥국사에서 내려가면 운파산막을 내려본다.
삼악산 운파산막 입구 벽에는 <노인봉 털보> 책자 홍보문과 '山의 생각 합류점' 시 등이 붙어 있다.
山의 생각 합류점 : 무리를 짓지 않는 참매처럼/ 山 속에 갇혀 산악 외인이 되어 멍때림한다./ 기다림의 봄은 진흙비에 갔고/ 뭉게구름 여름은/ 옛날이야기/ 긴긴 더위와 장마뿐/ 가을, 낙엽에 쌓여간다/ 찬바람에 구름은 흩어지고/ 만나고 만났던 山과 사람도 계절처럼/ 잊혀져만 간다. - 방랑산인 운파
일행들이 삼악산 운파산막 주인장 雲波 털보님과 함께 점심을 나누고 있다.
18일만에 국내 첫 백두대간 마라톤 종주 성공한 산악인 성량수의 산이야기 '노인봉 털보' : 이 책은 산악인 운파 성량수가 1970년 청주교대 1학년때 한라산 등산을 시작으로 평생 산과 인연을 맺은 후 온갖 고난을 뚫고 살아온 이야기를 구술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 수고로운 필담은 산우 이원복 작가가 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허세를 털어내고, 50년의 산 인생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꾸밈없이 진솔하고 담백하게 담아냈다. 신기루처럼 환영을 그린 것이 아니라 풍경화처럼 눈에 파노라마처럼 산에 대한 기록들이 선명하게 담겨있다. 책으로 산 이야기를 남기겠다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처럼 기록을 신선함 그 자체로 다가온다.
-스포츠경향, 2019.01.03 오후 2:41
시계 밖의 시간/ 대자연의 리듬/ 山 속의 시간/ 자연의 시계./ 계절의 추억/ 또 다시 흐른다
주렴폭포로 내려가며 중앙 아래의 주렴폭포를 내려본다.
오른쪽에 백련폭포, 중앙 아래에 비선담 매점이 있다. 백련포로 내려가서 백련폭포를 살폈다.
'흰 비단천을 펼친 모습 같다'는 백련폭포가 얼음을 뚫고 흰 비단천을 펼치며 떨어진다.
등선폭포 암벽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등선폭포를 내려본다. 등선폭포 옆 철계단을 내려가 금강굴로 향한다.
금강굴을 통과하여 등선휴게소 아래 통로를 통하여 등선폭포 입구로 내려간다.
등선폭포 입구를 나와 삼악산 매표소 앞을 통과한다.
금선사(金仙寺) 유래 : 이 절은 불기 2490년 정해 10월에 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에서 수도하신 이화응(李華應) 큰스님께서 금강산을 생각하시면서 산자수려한 이 곳에 사찰을 창건하시고 사명(寺名)를 금선사(金仙寺)라 하였습니다. 감로수의 약수가 있고 삼악산(三岳山) 명기가 모인 영험있는 기도도량입니다. 전국에서 많은 신도가 이 절에서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성취하였으며 대중교화와 모든 선남선녀의 참배 도량입니다.
경춘로 아래 지하통로를 통하여 북한강변길로 내려와 경춘로 등선폭포 입구를 올려보았다.
북한강변길을 따라 내려간다. 중앙 뒤에 강선봉이 우뚝하다.
북한강에 노을 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강촌상상역 뒤에 강선봉이 솟아 있다.
북한강변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뒤돌아서서 북한강 춘천 방향을 바라본다. 반대쪽 강변에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북한강을 갈로질러 앞에 강촌대교, 오른쪽 뒤에 강촌교가 있다. 오른쪽 뒤에 강선봉이 앞 산봉 뒤에 살짝 보인다.
강촌교를 건너며 왼쪽의 강촌상상역, 중앙의 피암터널을 바라본다.
맨 왼쪽에 강촌터널과 강촌대교, 강촟천이 강촌철교 아래를 흘러와 북한강에 합수한다.
북한강이 강촌교 아래를 통과하여 가평 방향으로 흘러간다.
옛 경춘선 철교 앞에 구 강촌역 설명안내판, 또오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옛 경춘선 철도는 레일바이크로 리모델하였다.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강촌대교가 앞에 보인다.
강촌천 위에 강촌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강촌길을 따라 올라간다.
강촌역 앞에서 삼악산을 조망한다.
북한강변길을 따라가 삼악산 용화봉에 오른 뒤 그 길을 되짚어 다시 강촌역으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