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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산줄기는 현재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산줄기를 어떻게 답사하고 있을까? 산경표에서 제시한 13정맥 중 이런 질문들에 대한 올곧은 답을 주는 정맥이 하나 있다. 남한과 북한에 걸쳐있는 유일한 정맥인 한북정맥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빼앗긴 우리 산줄기 이름에 대한 아픔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되찾지 못한 우리 산줄기 이름에 대한 아쉬움을 지금도 허리가 끊긴 채 묵묵히 우리의 품에 돌아올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온전하게 우리의 산줄기를 표상해 온 산경표의 1대간, 1정간, 13정맥은 1902년 고토 분지로가 조선 땅에 들어와 지질구조선을 근간으로 태백산맥 등 40여 개의 산맥을 임의로 만들면서 우리의 지도에서 사라졌으며 광복 후 우리의 산줄기를 찾을 수 있었던 기회를 우리의 게으름과 무능으로 놓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지금과 같이 산맥이라는 지질구조선을 멋모르는 우리들이 배웠고,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지리 교과서에 어엿하게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통탄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두 번의 기회를 놓친 한이 서린 산경표는 한북정맥을 식개산부터 장명산까지로 표기해 놓았고, 정맥꾼들은 이 산경표에 의거해 남한에서 민간인이 접근할 수 있는 최북단인 수피령부터 시작해 종착점인 장명산까지의 도상거리 약 161.6km를 ‘한북정맥 종주’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대간이나 정맥이 10대강이나 바다에서 그 맥을 다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위배되는 바, 박성태 선생은 신산경표에서 이를 지적, 수정해 한북정맥의 경우 정맥상의 한강봉을 지난 산줄기가 양주시 장흥면과 백석읍의 경계인 꾀꼬리봉(425m) 부근에서 그 정맥 마루금이 울대고개로 향한 것을 서진시켜 말머리고개를 지나 개명산(560m), 됫박고개, 월롱산(229m), 보현산을 지나 오두산(110m)에 이르는 약 221.3km의 구간이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에 더 합당하다고 하면서 이를 원산경표 상의 한북정맥(도상거리 약 234.8km)과 구별하기 위해 신한북정맥이라 명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남한 쪽의 신한북정맥 도상거리 약 148.1km를 6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한다. 한편 이 한북정맥은 북으로는 임진강이, 남으로는 북한강의 울타리가 되므로 그 위세에 걸맞게 거느린 줄기도 많아 우리는 이 줄기를 거니는 동안 많은 지맥들과 그 지맥에 속한 명산들을 즐기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우선 대표적인 산줄기들로는 애초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악, 명지, 천마, 수락, 명성, 감악, 왕방, 오두-신산경표에 의할 경우 도봉지맥- 등 소위 한북8지맥을 위시해 최근에 널리 알려진 왕재, 보개, 적근, 대득 4개 지맥을 더해 12개 지맥을 맛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분단의 아픔과 군사시설로 인한 진행의 어려움, 무차별 개발로 인한 산줄기 훼손은 정맥꾼의 마음을 두고두고 아쉽게 만든다.
진행은 그 집을 우회해야 하므로 왼쪽으로 틀어 내려간 다음 바로 나오는 골목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진행하면 고개 부근에서 다시 마루금을 만난다. 나무의자 같은 시설물에 이정표까지 설치되어 있어 이정표의 매봉을 따르도록 한다. 헬기장같이 생긴 매봉에서 바로 우회전하면 바로 차도가 나오고 직진하는 길에는 ‘미희농원’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철문이 열려진 상태이지만 마루금은 여기서 우회전해 고개까지 오른 다음 과감하게 좌측 낮은 절개지를 치고 올라간다. 표지띠가 몇 장 보이며 철문과 바리케이드가 있는 등 제법 마루금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나오는 임도 삼거리에서 직진하지 않고 좌측 숲으로 들어서면 희미하게나마 산꾼들이 걸어간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좌측으로는 공장부지를 조성한 공터가 보이며 파주오산지방단지를 내려서면 56번 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해 조금 더 내려가면 우측으로 최자실금식기도원 간판이 크게 보인다.
기도원 주차장 좌측에 묘지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고 정자 옆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마루금으로 들어서면 103봉에는 군삼각점이 보인다. 여기서 20m를 돌아 나와 우회전해 진행하면 좌측으로 공장이 보이고 마주치는 마루금을 부대가 점거하고 있다. 부대 우측으로 돌아가면 부대 후문이 나오고 여름에는 사람 키만큼 자라 있는 잡목을 헤치고 진행하느라 고생 좀 하게 된다.
부대 우측으로 너른 공원묘지 주차장이 보인다. 여기서 고개로 올라 부대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에 합류하면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천주교 공원묘지를 순회하듯 ‘⊃’ 모양으로 돌면 벙커 봉우리가 나온다. 다시 되돌아 나와 찻소리가 들리는 좌측으로 내려가면 78번 도로 상의 ‘대전차방호벽’이 나오고 길 좌측으로는 ‘동광비철’이라는 고철수집소가 보인다. 마루금은 전차방호벽 위로 올라가야 하고 실제 그 방향인 전봇대 옆으로 표지띠도 붙어 있다. 필자도 그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그러면 철탑을 지나 군용 창고를 만나고 여기서 좌회전하면 너른 광장 같은 곳에 군용 트럭들이 돌려나간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진행이 아주 난감하다. 표지띠고 뭐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아예 처음부터 전봇대 옆으로 오르지 않고 비포장도로를 타고 직진하면 바로 이곳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여기서 무조건 직진해 길도 없는 경사면으로 넘어가면 우측 나뭇가지에 표지띠들이 붙어 있는데 평소에는 이것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군교통호를 따라 내려가면 이내 너른 길이 나오고 수로를 따르면 ‘등산로’라는 표시가 밭에 붙어 있다. 좌측으로 ‘이성데크’라는 공장이 보이나 우측으로 진행해 수로를 좌측에 놓고 우측 숲으로 들어가면 이내 부대 철조망이 나온다. 그 부대를 왼쪽에 놓고 진행하면 군사훈련장이 나오고 이내 포장도로가 나온다. 그 길을 따르면 레미콘공장 옆으로 작은 숲이 있다. 그 길을 따르면 전철 철로 위를 지나 1번 도로를 건너 9사단 백마부대 표지석을 본다. 바로 아래는 월롱역이라 여기서 식사나 물보충이 가능하다.
표지석 뒤로 들어갔다가 다시 도로로 나오면 흔적도 없어진 다락고개인데 지금은 공장단지의 삼거리다. 서진하면 청주사씨 비석 하나를 보면서 멀리 보이는 예비군훈련장 간판을 따르게 되고, 방호벽을 지나 정면으로 보이는 송전철탑을 보고 진행하면 예비군교장 위병소 바로 앞에서 진행하기가 난감해진다.
여기서 과감하게 위병소 앞에서 숲으로 들어가면 예비군 이동 통로가 나온다. 이를 따르면 #21, #80 철탑을 지나 ‘등산로’ 지시방향대로 이동하면 118.8봉에서 4등급 삼각점(문산452)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주민들이 산책길로 이용하는 길을 편하게 따르면 훈련장도 나오고 이정표의 ‘정상’을 따라 진행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월롱산에서 경기도에서 박은 삼각점을 보고 되돌아 내려간다. 헬기장을 지나 이정표의 ‘팔각정’을 따르다 표지띠들을 따라 좌회전하면 ‘감리회’ 말뚝이 안내를 한다. 5번 도로로 내려서서 우측의 yes24 물류창고를 확인한 다음 너른 절개지 우측 길을 따라 오르면 기간봉 정상에 위치한 부대와 만난다. 군 비상도로를 버리고 군용교통로를 따라 내려오면 철거된 철조망을 지나 삼거리 절개지로 떨어지게 되어 부득이 그 옆의 민가 마당을 통해 내려오면 21번 도로이다.
묘지를 치고 올라가면 잠시 잡목숲을 지나다 수렛길이 나오고 철조망 지대를 지나 다시 수렛길을 만난 다음 어지러운 마루금으로 등로에서 50여 m 떨어진 곳에 있는 54.3봉의 삼각점(개성428)을 어렵사리 확인한다. 다시 마루금을 이어가노라면 ‘⊂’ 형태로 공장지대를 싸고돌면서 평산신씨 묘지군을 지나면 바로 310번 도로의 바구니고개다.
고개의 공장 팻말이 있는 곳을 치고 올라가면 공장지대를 우측으로 두고 진행하게 되며 이내 마루금은 편안해지면서 공원묘지 안으로 들게 된다. 마루금은 정면으로 보이는 산불감시초소(131m)를 겨냥해 진행하면 되고, 이 131봉에서 파주 LCD 단지와 북한 땅 그리고 북한산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돌아나와서 등로를 내려가면 펜스를 따르게 된다. 정면으로 바로 치고 올라가면 복잡한 숲을 지나 공원묘지 전망대에 올라서고, 계단을 내려와 녹색 펜스를 넘으면 보현산 입구의 대광물류센터 앞 고개이다. 마주 보이는 공장 앞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가면 보현산(108m)이라고 쓰인 코팅지를 볼 수 있다. 여기서 급좌회전하면 군부대 경고판이 보이고 그 철조망을 따라 가면 ‘일송정’ 식당이 나와 직진 후 골목 끝에서 우회전하면 고개가 보인다.
그 고개에서 좌회전하면 북한군과 모형대포 등이 보이는데 마루금은 공장이 가로막아 진행이 어렵다. 좌측으로 우회해 ‘탄현지방산업단지’ 간판까지 내려가 다시 우측으로 올라가 마루금을 이어간다. 이번에는 절개지를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건 보통 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치고 올라가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을 확인할 수 있다. 희미한 마루금을 따라 걸으면 99봉에서 군용삼각점을 확인할 수 있다. 조망이 좋은 이 봉에서 북한땅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으며 오두산도 이제 바로 손에 잡힐 듯하다.
19번 도로로 내려서 성동4거리를 지나 교통안내판 뒤로 치고 올라가면 공사현장이 나오고 모텔 하나가 보이며 공사장을 지나면 ‘뜰’이라는 카페가 보인다. 왼쪽 표지띠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 후 철수한 부대 안으로 들어가 폐초소가 있는 117봉에서 주위를 조망한 후 임도를 따라 내려온다. 자유로 위를 통과해 보초를 서고 있는 육군 제9사단 병사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면서 도로를 따라 오르면 신한북정맥의 끝 오두산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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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드리고,
자세한 설명이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