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봄 / 文耕 양귀순
3월 5일 경칩이다. 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벌레, 개구리 등이 놀라서 깨어난다는 우수와 춘분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의 하나이다. 아침에 산에 갈 때는 아직 춥다는 생각에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겨울과는 다르게 변화가 있는 게 확연하다. 물오리도 저수지로 떼 지어 날라와 헤엄치며 봄나들이한다, 새소리도 겨울과는 다르게 활발하고,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도 힘이 있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옮겨 다니며 활발하게 지저귄다. 다만, 나무만은 아직 움트지 않는다. 좀 더 있어야 나무에 물이 오를 것 같다.
겨우내 산행하며 느낀 것이지만, 영하 20도의 추위를 견디어 내어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어 꽃을 피울 수 있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오롯이 자연의 변화만을 느끼고 싶은데 등산하는 사람 중에는 라디오나 음악을 큰 소리로 듣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요즈음은 블루투스 이어폰도 있는데 ‘내가 이런 음악을 좋아해요’ 하며 과시를 하는 듯하다. 맑은 공기와 고요한 산에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봄이라는 계절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따뜻한 공기가 몰고 오는 미세먼지와 중국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 때문에 시야가 흐려서 싫다. 나쁜 시력 탓에 꽃이 피어도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송홧가루 날리는 계절엔 문을 열어 놓을 수 없고, 자동차 위도 노랗기 때문이다.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 시는 그저 옛시인의 낭만이다. 산을 보아도 뿌옇다. 그래서 나는 신록을 더 좋아한다. 신록 예찬을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초록은 눈에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무언가 찾으려고 오래된 앨범을 꺼내어 열었다. 접착식이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줄 알고 포켓식 앨범을 선택하지 않았었다. 앨범을 여는 순간 내 젊은 날의 사진이 우수수 떨어졌다. 강력했던 접착력은 삼십 년 이상의 세월을 견디지 못했다. 비닐은 힘없이 펄렁거렸다. 그리고 사진도 떨어졌다. 영원한 것은 없다. 다시 정리하기 위해 접착식 앨범을 또 샀다. 이 시대에 앨범을 쓴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에 문외한은 아니지만, 아날로그로 남기기로 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정리하며 웃었다. 스무 살에 들어간 직장에는 언니들이 여섯 명 있었다. 스물다섯 한 명, 스물넷 두 명, 스물셋 두 명, 스물하나 한 명. 이렇게 나까지 총 일곱 명의 여직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배들은 포용력이 있었다. 갓 들어온 후배가 제 주장을 펼 때는 얼마나 미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당시는 상의만 유니폼을 입을 때였다. 시내버스 차장이 입은 상의였다. 학생복처럼 흰색 카라를 달았다. 몇 년 후에는 상, 하의를 다 맞췄지만, 하의는 치마였다. 겨울 유니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왜 그런 것을 싫다고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시대 흐름이었겠지. 시대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사진을 살펴보니 놀러도 많이 다녔다. 직장에서도 자주 다녔지만, 친구들과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봄과 가을에는 관광버스를 빌려 직원들은 야유회를 갔다. 사진을 보니 야유회 복장은 출퇴근 복장이었다. 말하자면 치마 투피스 정장이나 원피스에 뾰족구두를 신은 상태였다. 여직원끼리만 놀러 갈 때도 복장은 누가 보아도 구질구질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자가용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이동했지만, 모두 정장 차림이었다. 사진에서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풋풋한 나이였는데, 사진을 보니 노숙하게 보였다. 그때는 스물다섯 정도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던 때였다. 그래서 결혼 이야기가 없어도 스물여섯쯤에는 여직원 언니들이 퇴직하였다. 나도 그 나이에 퇴직했다.
1978년에는 오일쇼크가 있었던 때였다. 그때는 주당 48시간 근무였다. 그것은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이지, 나의 직장생활 초기에는 일요일도 근무했다. 일요일은 격주로 돌아가면서 쉬었다. 그리고 하루 근무시간도 아침 8시에서 저녁 7시까지 10시간이었다. 연장 2시간까지 넣어서 월급을 책정했다. 바쁘게 돌아갔던 시절의 산업 현장이었다. 야간대학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몇 군데의 직장을 그만두었던 내가 지금도 대견하다. 용감했다. 인생의 어느 한순간도 헛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 윗사람들은 얼마나 철없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용돈을 엄마에게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살았다.
지금 청춘들에게 부모들은 짤리지 않는 편안하고 안전한 직장생활을 하기 원한다. 교사, 공무원 등이다. 일단 되기만 하면 결혼 상대 1순위다. 그러나 수년간 공부하다가도 합격하면 좋은데, 세월만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무엇을 시작하기가 어중간하다. 그렇게 6~7년을 캥거루 새끼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것 역시 부모가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예전에는 공무원 임용고시도 나이 제한이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직장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직장에 대한 정보도 많다. 워크넷, 사람인, 교차로 등등 취업사이트도 많다. 그 당시는 학교나 지인들을 통하지 않으면 취업 정보도 얻기 힘들었다. 예전에는 인보증이 들어가야 입사를 할 수 있었다. 보증을 서주는 사람이 없으면 입사하기도 어려웠다.
무엇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면, 인생에서 어느 순간도 늦은 순간은 없다고 한다. 도전정신을 키우면 좋겠다. 무엇이든지 해 보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도전하면 좋겠다.
젊을 때는 등산하여도 지금처럼 꼭 등산복이나 등산화를 신지 않았다. 지금은 등산화나 등산복을 입지 않으면 산엘 가지 않는다. 아이젠이 없으면 눈 내린 산은 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30여 년 전, 1월 눈 내린 속리산도 정상까지 갔다 왔다. 물론 직장에서 단체로 직원들과 함께였다. 아이젠 없이 문장대에 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등산화가 무거워졌다. 랜드로바 신을 신고서 한라산 백록담까지도 다녀왔다. 젊은 시절에는 발바닥이 두툼했는지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다. 뻣뻣한 청바지를 입고도 등산했다. 한번은 치마 투피스를 입고, 힐을 신고 동학사에 들렸다가 남매탑까지 올라갔던 적도 있었다. 뾰족구두를 신었지만,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다. 설악산 대청봉 등산도 등산화를 신지 않았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 등산화나 트래킹화를 신어야 한다. 일반 운동화를 신고는 산엘 가지 않는다. 신축성이 없는 옷도 절대 사절이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야 산엘 오른다. 젊을 때는 올라가는 것만 숨차고 힘들었지만, 내려올 때는 무척 빨리 내려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등산보다는 하산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됐다. 몇 번의 낙상 경험은 하산 속도를 더디게 했다.
두려움이 많아졌다면 늙었다고 생각한다. 꼼꼼히 설계하고 나가는 것이 좋겠지만, 너무 세밀하게 많이 안다면 앞으로 나가는데 장애가 된다. 두려움이 없는 인생은 청춘이다. 젊은 청춘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전해야 한다. 수십 번의 실패가 있다 해도 도전해야 한다. 안주하며 살려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려움 없는 사람은 물리적인 나이가 많다고 해도 이미 청춘이다.
젊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두려움을 조장하지 않는 어른이 된다면 좋겠다. 자녀들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면 젊은이들은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다.
‘젊음이 재산’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보낸 청춘을 후회하지 않는다. 부딪히며 잘 살아냈다.
나이가 들어도 두려움이 없기를 기대한다. 두려움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순간은 인생의 봄이다.* (2021.03.05.)
첫댓글 퇴고를 여러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올려 놓고 시간이 되면 하나씩 수정하겠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부딪히며 잘 살아냈다는 표현 중에 '부딪힌다'는 수동적인 표현으로 알고 있어요. 글의 내용상 이 경우엔 '부딪치다'라는 능동적인 표현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선생님의 적극적인 생활방식을 저도 따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렇군요. 부딪치다와 같은 말 인줄 알았습니다. 하희경 선생님 감사합니다~
@양귀순 하선생님의 말씀이 맞기는 한데, 여기서는' 부딪히다(부딪치다)' 의 앞에 특별한 수식어가 없는 한, 둘다 가능하지 않을까요?
살다보면 내가 어떤 난관에 수동적으로 부딪히며 살아갈 수도 있고, 능동적으로 부딪쳐나가며 살아낼 수도 있겠지요.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부딪치기보다는 부딪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요?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어쩌면 여기서는 "부딪히며(부딪치며) 잘 살아냈다." 에 따른 주어 부분이 생략 되어서가 좀 애매해진것 같군요..
저의 생각입니다. ㅎㅎ
"두려움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순간은 인생의 봄이다" 라는 말이 참 좋네요.
@박인숙 감사합니다. 심사숙고 하겠습니다..
술술 써내려가는 문장력이 부럽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저도 노처녀 안되려고 스물다섯에 서둘러 결혼한 것 같아요^^
영화 20도의 추위에/ 싹을 틔우고 부분은
'추위를 (견디고 or 이겨내고) 싹을 틔우고' 어떨런지?
저도
"두려움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순간은 인생의 봄이다" 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저도 그 부분이 꼬였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