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 문명을 찾아서 -최보일(前 부산남일고 교장선생님)

[인나 김흥수]

인더스 문명을 찾아서 -최보일(前 부산남일고 교장선생님)

인도와 네팔은 여행지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그동안 쉽게 마음 문을 열지 못했던 곳 중의 하나다. 기후와 음식 때문에 차이피일 미루다가 이제 세계여행의 마지막 여정쯤에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인도와 네팔의 기후로는 12월과 1월이 가장 선선한 때이므로 적당하다는 북구여행 시 동행했던 인도 사람 엠디 헤론의 말을 참고했다. 신청을 하고 보니 국내 가이드는 우리와 함께 가지 않고, 현지에서 네팔인과 인도인이 각각 가이드로 나와서 우리를 안내하게 되어 있다.

지난 해 동유럽 여행 시 12일간의 여정 동안 그런대로 무리 없이 일정을 성실하게 진행해 주어 좋은 인상이 남아 이번에도 ‘참좋은여행사’ 상품을 선택하였다. 처음에는 성원이 적었고 뒤에는 26명으로 너무 많아 걱정이 되었으나, 내킨 김에 출발하기로 했다. 경험해본 바로는 너무 일행이 많으니 여러 가지로 진행이 더디고, 차량 안이 소란하고 번거롭고 해서 15명 내외가 적당한 것 같았다.

사실 네팔의 카트만두와 포카라는 지난해 4월 20일부터 약 11일간 히말라야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다녀왔기에 이번에는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를 아우르는 상품을 택하려고 했으나, 아내가 히말라야를 보고 싶어 하는 바람이 간절했기에 네팔과 인도북부를 묶은 상품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여정은 먼저 네팔의 카트만두로 가서 1박을 하고 히말라야 영봉이 가까이 보이는 포카라로 이동하여 이틀을 머무르게 된다. 그런 다음 나머지 11일간을 인도에서 주로 바라나시·자이푸르·뉴델리·아그라·뭄바이 등에서 체류하며 각종 인더스문명을 접하게 되는 13박 14일 기간을 보낸 다음 12월 12일 귀국하는 프로그램이었다.

2013년 11월 29일(목) 새벽 4시 30분, 부산의 날씨는 맑았으나 최근의 기온 급강하로 바깥 기온이 몹시 차가웠다. 공항까지는 택시로 약 30분 정도 걸려 도착했으나, 아직 공항 업무가 개시 이전이었다. 탑승객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앉아 못다 이룬 잠을 청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침 5시 30분이 돼서야 공항 업무가 시작되었고, 가방 두 개를 최종 도착지인 네팔의 카트만두로 탁송하는 절차를 끝낸 뒤에야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오전 7시 5분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대한항공 비행기는 안개 속에서도 순조롭게 기수를 북으로 돌려 약 40분 만에 인천국제공항에 당도하였다. 출국장으로 나가지 않고 곧장 환승구역으로 해서 7번 게이트를 통하여 9시 45분 발 네팔의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대한항공 KE 695편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기수를 한반도 남쪽으로 돌려 세로로 내려와 군산과 목포로 해서 제주도 상공을 거친 다음, 서해와 중국대륙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해외여행을 통하여 한국의 국제공항과 항공기들, 그리고 거기에 종사하는 스튜어디스들의 친절과 단정한 용모는 언제나 자랑스럽다. 몇 번의 간식 빵과 땅콩 그리고 음료수가 제공되었고, 이어서 때가 되어 점심이 나왔다. 역시 우리입맛에 맞춘 비빔밥이 좋을 것 같았다.

시속 798km로 달리며 약 1만m 상공에서 내려다 본 지상은 약간의 구름이 깔린 사이로 길게 누운 산맥과 들판 사이로 강이 실낱같이 이어졌고, 군데군데 마을과 도시가 아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전 9시 4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이곳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시차 3시간 15분을 감안하여 소요시간 7시간 15분만인 오후 1시 44분에 당도하였다.

신들의 도시, 네팔의 카트만두

1년 반 만에 네팔에 다시 와서 임국심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보니,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모든 것이 느리고 불편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은 공항업무에 답답한 마음이 들긴 했으나, 다시 보니 그마저도 정겨웠다. 까다롭게도 여권과 입국심사서를 미리 작성하여 비자비용 25달러를 내고서 통과하다보니,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비자 수속료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무려 2시간의 입국 수속 절차를 마치고 3시 40분, 청사를 겨우 빠져 나왔을 때에야 네팔인 현지 가이드인 고팔 씨가 대기하고 있었다. 고팔 씨는 경북 경산의 산업현장에서 약 3년간 일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말을 익히려고 노력하는 학구파였다. 한국어를 꽤 잘 해서 의사소통에서 크게 불편함이 없는 건실한 청년으로 그동안 한국에서 번 돈으로 땅도 사고 집도 사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30대 초반의 두 아이 아빠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네팔은 힌두교 인구가 80%, 티베트 라마교가 10%, 이슬람교가 4%. 기독교가 약 2% 정도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네팔 국민은 헌법상 평등하나 힌두교의 카스트제도가 유지되고 있어서 결혼 중매할 때 나타난다고 한다. 인도의 브라만계급에 속하는 바훈, 쿠사트리아 계급에 속하는 제프리 및 타꾸리, 그 외도 까미, 사르키, 다마이 등 복잡한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곳의 두 개 4년제 국립대학은 바훈 계층만이 진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해발 1,350m에 위치한 카트만두는 분지라서인지 먼지 매연 등이 바깥으로 빠져 나가지 못해 시가지 전체가 부옇게 시야가 맑지 못했다. 400만 인구가 상주하는 도시치고는 질서가 없고 교통이 복잡하고 도로가 제멋대로였기에 차는 차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이곳에서 115km만 위로 가면 중국 땅 티베트와 접경이고, 동서남쪽은 인도에 접해 있다. 한반도의 3분의2 정도 되는 14,7천㎢ 땅에 77%가 산악지대이고, 기후는 아열대·열대·몬순·온대기후가 지역의 표고에 따라 뒤섞여 있다. 5월에서 9월까지는 우기이고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건기이다. 지금은 건기라서 전국토가 물기 없이 메마르다. 가이드 고팔 씨의 설명에 의하면 네팔은 130여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93개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네팔어를 30%이상이 사용하고 있어 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인도와는 문자가 같고 종교가 비슷하고 문화가 같은 형제의 나라로서 인도에서 독립된 국가이다.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는 카트만두 시내에 위치한 더르바르 궁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 넓지도 않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주목할 만한 건축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로 기와와 검은 나무 조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3층 건물 정도의 높이 사원과 궁전은 오랜 세월 동안 연륜이 쌓이고 세월의 더께가 입혀진 듯 침착하고 중후해 보였다.

더르바르 광장 안에는 딸레주 사원, 쉬바파르바티 사원, 마주데발 사원 및 네팔 왕국의 살아있는 여신을 모시는 쿠마리 사원들이 모여 있는 광장이다. 국민들 간에는 종교관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어서 쿠마리 여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의 쿠마리는 현재 7살의 여신이었다. 130여개 종족가운데 불교를 믿는 부모 밑의 어린이 가운데서 선발한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월급과 연금을 받고 부모와 한 집에서 살 수 있단다. 32가지 조건에 맞는 4세 이상의 소녀 중에서 선발하되 초경이 시작될 때까지 여신의 자격이 유지된다. 우리의 요청에 따라 쿠마리 여신이 2층 창문을 통하여 얼굴을 내민 채 약 3분간 포즈를 취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천진난만한 나이에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지도 못하고 의관을 정제한 채 파리한 얼굴로 그 좁은 공간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처지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졌다. 종교도 좋지만 너무나 터무니없는 속박으로 한 어린이의 삶을 구속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 외에도 보오드나트 사원으로 거대한 티베트 불교의 순례지로 거대한 스투파(탑) 주변에 마침 참배하러 온 티베트인들이 경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해질 무렵 시가지 한 쪽에 카트만두를 상징하는 대표적 불탑 사원을 방문하였다. 부처의 눈을 묘사한 스투파를 중심으로 서 있는 스와얌부나르 사원은 일명 ‘몽키 템플’이라 불렸다. 어둠이 밀려오는 사원 300계단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계단을 오르내리며 손님들이 던져주는 바나나나 빵 종류들을 먹고 있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투파 주변에서 참배객들은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고 있었다.

오늘 저녁식사 자리는 네팔 전통음식점에서 네팔 민속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곳으로 인도되었다. 찰기 없는 맨쌀밥, 야채 카레, 콩국을 곁들인 ‘달밧타카리’라는 음식 등이 차례로 나왔다. 입맛에 그다지 맞지는 않았으나 달(국), 밧(밥), 타카리(카레) 등이 적당히 조미되어 그냥 먹을 만했다.

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11월 20일(금) 아침 7시, 우리가 묵었던 그랜드 호텔을 출발하여 무글링을 경유, 약 6시간 동안 버스 투어로 카트만두 서쪽 206km 지점에 위치한 네팔 최대의 휴양도시이자 교육의 도시인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는 해발 850m로 카트만두보다는 고도가 낮아 조금 더웠다. 1월의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4월에서 9월까지는 평균 섭씨 28도 정도 된다. 그러나 북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히말라야 산맥을 보면서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지난해 난생 처음으로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마주하고 느꼈던 감동을 다시 맛보게 되었다. 이곳에서 버스로 나야풀까지 3시간 정도 가야하고 다시 도보로 5박6일을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안나푸르나가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는 것도 날씨가 쾌청하기 때문일 것이다.

약 2,500km 길이의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와 중국, 아프가니스탄과 네팔에 걸쳐 이어져 있는 세계의 지붕이다. 약 8천m 이상의 고봉이 14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8개가 네팔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산악지대다. 그 중 3개가 포카라에서 접근할 수 있고, 5개가 동네팔 지역에서 들어간다. 그 동안 약 2만여 명이 고봉을 찾아 1인당 5만 달러씩을 내고 등산을 하였다고 한다. 영국의 지리학자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딴 에베레스트봉은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최초로 등정한 산으로 유명하며, 그간 24명이 등정하였고 그 중 5명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히말라야 산에는 약 200개가 넘는 트래킹 코스가 개설되어 있고, 4천여 개의 강이 있으며 아름다운 안나푸르나, 랑탕 등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약재 770여종이 생산되고 있고, 4,5천m 고지에서 생산되는 동충하초冬蟲夏草는 1kg에 천만 원이 호가하는 귀한 약재로서 이곳 사람들이 채취하여 주로 중국으로 판다고 한다. 국민의 약 70%가 농사를 짓고 살며, 약 200만 명이 해외로 나가 노동일을 한다. 산악에서 주로 생활하는 네팔인들은 체력이 좋고 용감하여 최근에는 영국과 인도에 용병으로 많이 나가고 있고, 부르나이나 싱가포르, 태국 등에도 많이 진출한다고 한다. 국민소득은 약 850달러 정도이지만, 네팔은 행복지수 1위, 부탄이 2위, 방글라데시가 3위로 이들은 아름다운 대자연이 주는 혜택과 종교에서 오는 삶의 만족감 등이 행복한 국민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130여 소수 민족들이 빚어내는 명절이 다 달라 1년 365일이 즐거운 명절 잔치행사로 이어진다고 한다.

포카라의 페와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만들어 내는 자그마한 폭포를 향했다. 스위스 여인이 이 폭포의 불어난 물에 실족 사망하여 이름을 데이비스 폭포라 칭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히말라야 설산의 모형을 설치해 둔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보트놀이를 하기 위해 페와 호수로 향했다. 호수의 길이는 약 4km에 깊이는 약 20-50m로 이런 호수가 네팔에만도 9개가 있다고 한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생긴 페와 호수에서 우리는 약 한 시간 넘게 뱃놀이를 하면서 감회에 젖었다. 안전보호 장구를 입고 보트 1대당 4명씩 분승하여 호수 중간에 있는 힌두교 사원이 있는 섬을 돌아오는 코스였다. 멀리 히말라야 영봉들이 호수 면에 비치고 주변의 숲들이 자맥질 하는 잔잔한 호수면 위로 미끄러지듯 저어가는 보트에서 평화로움이 묻어났다.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을 때 피난 나와 이주한 티베트 난민촌을 둘러보았다. 이들은 네팔 정부에서 제공한 땅에 동네를 형성하고 학교와 라마불교의 사원을 건립하고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공동 생산으로 카펫과 의류 등을 가내 수공업으로 짜서 공동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 속의 조국 땅 티베트를 떠나 정처 없이 떠돌며 달라이 라마를 추종하는 이곳 난민촌의 아이들은 세상모른 채 뛰놀고 있었다.

페와 호수의 뱃놀이를 마치고 시간을 내어 주로 실크나 양털 제품 등을 구입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 8시 늦은 시간에 호수 주변에 위치한 워터 프론트 호텔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12월 1일(일), 새벽 4시에 모닝콜이 들어와 주일 예배를 드린 후, 4시 30분에 모두 차에 올라 약 30분 거리에 있는 사랑코트 전망대로 일출을 보러 갔다. 각국에서 온 약 300여 명의 관광객들이 카메라나 핸드폰으로 일출을 찍기 위해 노심초사 대기했다. 아침 5시 57분 일출시간인데도 구름이 해 뜨는 곳 언저리를 가려서 일출을 보는 일에 실패했다. 허전한 마음으로 되돌아오는 시각 6시 30분쯤 북쪽 하늘 높이 히말라야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영봉이 구름을 뚫고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넋을 잃고 감탄을 연발하면서 셔터를 놀러댔다. 지난 해 안나푸르나봉으로 가던 중간 지점인 푼힐 전망대를 찾았을 때, 그곳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2,3,4봉과 마나슬러,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뇌리에 떠오르면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현듯 일어났다. 호텔로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9시 정각에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유명한 룸비니로 향했다.

시달타의 탄생지 룸비니

히말라야 눈 녹은 루비색 맑은 물이 흘러내려 까마득히 깊은 계곡을 만들고 푸른 숲은 우거질 대로 우거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했다. 하지만 도로 옆에는 우기가 아닌 건기가 시작된 지 꽤 지나 비포장도로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흠뻑 둘러 쓴 수목들이 제색깔이 아니었다. 끝없는 협곡을 따라 구절양장으로 이어지는 소로를 달리며 우리는 룸비니로 내려갔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록의 계단식 경작지가 꼭 우리나라 남해안의 다랭이논 같은 곳만 있는 줄 알았는데 룸비니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평야가 곡창지대로 이어졌다. 벼는 3모작을 하고 지금 막 추수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마침 사탕수수를 수확하기 바빴다.

점심식사를 위해 약 한 시간가량 보낸 것 외에는 거의 8시간 동안 길을 재촉하여 오후 5시 해질 무렵 쯤 목적지인 룸비니에 도착했다.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으로 테라이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까 불교의 4대 성지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이 룸비니,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가 보드가야, 처음 설법한 장소가 사르나트, 그리고 열반지가 쿠시나가라인데 네팔에는 성지가 룸비니만 있고, 나머지는 인도에 있는 셈이다.

룸비니는 불교도들의 영원한 순례지이다. 기독교의 베들레헴과 같은 곳이다. 조금 늦은 시각에 도착했는데 이미 세계 각국에서 밀려 온 참배객들 때문에 먼저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바깥을 둘러보았다. 아쇼카 대왕이 이곳을 방문하고 석가모니의 탄생지를 성역화하면서 사원을 건립했다는 기록문 비석이 2천년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싯다르타 부처님은 기원전 623년 이곳에서 탄생하신 것이다. 마야데비 사원은 마야 부인을 모시는 사원으로 연화대 위에 서서 주목나무(살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기를 낳고, 2명의 보조하는 시녀가 시중드는 모습이 새겨진 돌 조각으로 형상화 되어 있었다. 기원전 249년 부다의 탄생지인 이곳을 찾아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아쇼카 대왕이 세운 석주가 있고 그 아래는 벼락을 맞아 떨어진 말조각상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 뒤쪽으로 마야부인이 출산 후 목욕을 했다는 연못으로 기원전 5세기경 이곳을 찾았던 법현이 이 구룡못을 일컬어 “지금도 사람들이 항상 그 물을 마시고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네팔은 어디를 가나 해발 2천m 산중에 집이 서 있으니 집에 울타리가 없었다. 산 중턱이라고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웃집이 고개를 넘고 산을 넘어서 있기 십상이다. 해발 4천m이상의 산이 4천 개 정도가 있고, 해발 2천m 정도의 산은 언덕이라 표현한다. 초등학교는 대개 1시간 정도, 중고등학교는 2-3시간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걸어서 등교하는 일이 예사롭단다. 산지에서 생활한 네팔인들은 어려서부터 체력단련이 잘 되어 있어 성인이 되어 미국 영국 중동 지역으로 용병으로 나가 큰돈을 벌어 평지에서 농사를 짓는 땅을 구입해 놓는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무덤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장례 문화는 매장埋葬과 조장鳥葬 그리고 수장樹葬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의 80% 이상은 힌두교 문화권에 있기 때문에 화장火葬을 택하므로 무덤을 잘 볼 수 없었다.

오후 6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숙소인 뉴가든 크리스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인도의 국경을 넘다

12월 2일(월), 아침 7시 출발 예정으로 5시에 기상하고 6시에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이곳 네팔 땅 룸비니에서 약 480km를 약 10여 시간 넘게 달려 인도의 국경을 넘어 바라나시로 가야 한다. 그런데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우리를 인솔하여 인도로 넘어갈 인도인 가이드가 나타나지 않았다. 약 한 시간이 지체된 후인 오전 8시15분이 되어서야 가이드 알람씨가 나타났다. 사연을 들은 즉 자기도 1,300km 아래의 뉴델리에서 철도의 연착과 차량고장으로 약 10시간을 지체한 끝에 밤잠을 설치며 이제야 도착했노라고 했다. 듣고 보니 도로 사정이 열악한 인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가이드 알람 씨는 매우 학구적이고 성실하여 자기 노력을 통하여 한국어를 익힌 사람이었다. 네루대학교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친 후 박사과정을 고려대학교에서 금년에 수료했다고 한다. 한국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아르바이트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노라고 했다. 네팔의 고팔 씨 못지않게 한국어에 능숙해서 가이드에 별로 어려움 없이 인도에 대해 안내를 할 것 같았다.

오래 전 왕국 시절에는 인도 대륙이 여러 소왕국으로 난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무굴제국을 끝으로 왕조 시대가 끝난 뒤에 북부에 네팔과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가 독립하였고, 남쪽으로는 스리랑카가 독립된 국가로 나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인도와 네팔 사이는 여권과 비자 없이 통과가 가능하고 파키스탄과는 전쟁도 불사하는 사이로 외교 관계가 까다롭다고 한다.

인도는 남한보다 국토면적이 약 30배가 크다. 28개 주로 나뉘어 있어서 주 수상과 주 의회가 있고 연방정부의 국회의원이 따로 있어 의원내각제로 대통령은 실권이 없다. 남북 인도 간에는 자동차나 기차로 3박4일 정도 걸려야 한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밀밭과 감자밭은 한창 3모작 중이란다. 우기에는 쌀, 건기에는 밀을 교대로 심고 들판에는 푸른 채소들이 12월인데도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길가에는 큰 망고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지나가는 자동차와 사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6월에는 섭씨 40도를 훌쩍 넘기지만 길가의 망고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미각을 돋우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단다. 네팔과 비슷한 자연 환경과 기온, 풍경인데 집집이 담이 없고 아침저녁에는 서늘하고 낮에는 섭씨 28도 정도로 태양이 뜨겁지만, 그늘에서는 시원하고 습도가 없어 땀이 잘 나지 않았다.

룸비니를 출발한지 30분 만에 길거리에 차단기 한 대를 설치해 둔 곳이 네팔과 인도의 국경선이었다. 수속은 가이드가 우리의 여권과 입국신고서를 단체로 제출함으로써 약 한 시간 만에 간단히 입국절차를 마쳤다. 그 동안 우리 일행은 한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시가지 구경을 잘 할 수 있었다. 성인 남자들이 팬티 바람의 알몸으로 자기 집 문 앞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모습, 맨발로 먼지 풀썩풀썩 나는 한 길을 걸어 다니는 어른들, 구걸을 일삼는 아이들과 아이를 등에 업고 물건을 판매하는 여인들의 측은한 모습 등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 히잡을 쓴 여인이 가게에서 과일을 팔고 있었고, 온 몸은 물론 얼굴마저도 부르카로 덮고 물건을 흥정하는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소는 길거리를 자유자재로 활보하고 주인 없는 개도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쓰레기 더미는 언제 치우고 안 치웠는지 염소와 소들이 엉켜서 오물을 주워 먹고 있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오토릭샤와 자전거와 릭샤, 화물차와 자가용이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메우고 거의 습관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며 사람들과 함께 뒤엉켜 있었다. 그런 가운데도 먼저 가려고 노력하거나 접촉사고로 시비를 붙는 곳은 아무데도 없는 것이 신비롭다. 룸비니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길은 한창 공사 중이어서 먼지가 많이 날고, 길이 울퉁불퉁하여 자동차가 시속 20km를 넘기지 못한 채 몇 시간을 달렸다. 명색이 국도인데도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와 릭샤도 함께 다니므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언어는 주마다 사용하는 방언이 특이해서 주와 주 사이의 방언은 못 알아듣는 게 예사이다. 따라서 힌디어와 영어를 공통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으나 인도 전역에 15개 공용어를 인정하고 있다. 교육제도는 초·중·고·대학이 6·3·3·3제로 대학이 우리보다 1년 짧다. IT가 세계적으로 앞선 나라로 미국의 실리콘밸리 우수 IT인력의 60%는 인도인이라고 한다. 0과 ·의 개념을 도입한 민족으로 인도에서는 우리의 구구단의 9단이 19단은 기본이고, 시험을 준비하는 자는 29단까지 왼다고 한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공용어이고 수학을 잘 하므로 IT에 성공하고 해외로 취업이 잘 된다고 한다. 인도는 영국의 영향으로 민주주의가 빨리 도입하여 빈익빈부익부의 병폐가 심하여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3-4년 전에 비해 많이 발전하기는 했으나 아직도 잘 사는 사람은 서양인 부자보다 잘살고 못 사는 사람은 기아에 허덕인다고 한다. TATA자동차의 회장은 뭄바이에 1조원에 호가하는 집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 나라의 면적은 3,166,414㎢로 세계 7번 째 크고 히말라야산맥 이남의 인도대륙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화국이다. 국기는 3색기(빨강·하양·검정)로 힌두교·통일·이슬람교를 상징한다고 한다. 13억 인구 중 약 82%가 힌두교이고, 약 12%는 이슬람교이며, 나머지는 자이나교(2%), 시크교, 불교 및 기독교 등이 뒤를 잇는다. 석가가 이 땅에서 태어나고 설법을 전하고 이 땅에서 열반하셨는데도 불교신자가 극히 미미한 소수밖에 없는 것이 신기하다. 대신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를 신봉하여 같은 인도대륙에서도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영국이 1857년부터 1947년까지 90년간 무굴제국 이후의 인도를 지배하였고, 비공식적으로 동인도회사를 통해 지배한 햇수로 따지면 약 200년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국교인 기독교 신자가 2%도 채 안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만큼 기독교 국가로서 좋은 영향은 못 주었다는 말인가?

1948년 8월 15일 영국에서 해방될 때 네루(인도)와 진하(파키스탄)의 개인적인 욕망과 정치적 성향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 결국 나라도 나뉘게 되었고, 그 후에도 인도는 파키스탄의 과격파들에 의해 자주 테러를 당해왔다. 13세기 때 인도북부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으로 이슬람 세력이 확장되어 있었던 터라, 힌두교의 간디와 이슬람 파키스탄의 진하와 함께 정부를 세워나가기에는 동상이몽이었다.

인도는 네팔처럼 약 70%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소와 개, 코끼리와 양들이 시가지를 배회하고 있어도 개만 주인이 없지 나머지는 주인이 있어 밤이 되면 주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소는 집소든 들소든 힌두교 교리상 여신으로 신봉하기 때문에 잡아먹지 않고 우유와 똥(연료)을 얻기 위해 관리를 하지만, 이슬람 신자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따라서 인도에서는 염소나 양고기가 제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소는 일을 시키지 않고 남의 집 소도 자기 집에 오면 “소 어머니 드세요!”하면서 여물을 챙겨 준단다. 소가 한 길을 지날 때도 재촉하거나 채찍질을 하는 일은 보지 못했다.

브라만은 사제들의 집단으로 최고의 계급이고, 왕들은 군인으로 쿠샤트리아 계급이고 바이샤는 상인들이다. 그리고 맨 끝의 슈드라는 불가촉천민으로 화장실 청소나 빨래 등의 일에 종사하는 계층이다. 1947년 새로운 헌법에 의해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신분 상승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대물림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의 아이디알타워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룸비니를 출발한 지 14시간만인 저녁 10시였다. 차량 탑승 시간만 무려 12시간 만에 호텔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을 먹고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

12월 3일(화) 어제는 자동차 이동 시간이 14시간으로 모두 피곤했지만 새벽에 갠지스강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새벽 5시 45분 미명에 호텔 문을 나섰다. 아직은 어둠이 깔려 있는 도로는 한산했지만, 온갖 쓰레기와 함께 정리되지 않은 도로 주변의 풍경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곳곳에 힌두교의 여신인 소들이 웅크리고 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그들이 배설해놓은 똥들이 시큼한 냄새와 함께 도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멋대로 난 도로에 제각각 생긴 대로 지은 집들이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고, 온갖 무질서한 간판과 현수막 벽보들이 어지럽게 난무했다. 이른 새벽인데도 산발을 한 채,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모르게 걸치고 맨발로 길바닥을 쓸듯이 걷고 있는 수행자들! 아기를 안고 누추한 사리를 걸친 채 손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인들의 모습과 장애 노인들의 측은한 표정들이 이 도시를 더욱 슬프게 했다.

버스에서 내린지 10여분 만에 당도한 갠지스강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강폭이 길어서 바다의 한쪽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상상했던 것보다는 지저분하지 않았다. 아마 우기 때에 봤더라면 상류에서부터 도도히 흘러내려가는 탁류이었을 터인데, 지금은 건기가 상당히 지난 시기인지라 약간의 촛불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낙동강과 다를 바 없이 조용히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강 건너 지평선이 붉은 빛으로 변하더니 불꽃같은 태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강물에 그 빛이 반사되어 갠지스 강물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주변이 환해지고 있었다. 강 뚝 아래로 내려가 모터를 장착한 보트를 타고 약 4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옛 왕궁 터와 가트Ghat를 바라보며 상류 쪽으로 올라가보았다. 힌두교의 시바신의 신상을 대형 그림 형상으로 새겨놓은 바라나시 갠지스강의 아침은 이렇게 밝아왔고, 신들을 위한 잔치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하루 중 해 뜰 무렵이 제일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시간대이다. 가트에 자리 잡고 앉아 명상에 잠기고 있던 사람이 합장하며 갠지스강을 향하여 배례하고 있었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붉게 물든 갠지스강의 물빛과 조화를 이루어 주변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7대 성지 중 제일 클 뿐만 아니라 시크교와 자이나교의 성지로도 여기고 있어서, 한층 종교적 색채가 짙은 곳이었다. 육지에서 강으로 자연스럽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든 가트 계단 위에서 100여 개의 의식이 예사롭게 이루지고 있었다. 한창 시신을 태우는 불꽃이 맹렬히 타오르는 곳이 있는 가하면, 한쪽에서는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우물정井자로 장작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강변에서는 시신을 태운 재를 뿌리고 연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타다 남은 시체와 재를 쓸어서 강에다 버렸다. 마침 장작을 가득 실은 배들에서 장작을 부리는 곳도 있었다. 인구가 많으니 죽는 자들도 많아서 오늘도 성스러운 어머니의 강 갠지스 옆에서 시신을 태우고 그 재를 강물에 뿌리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작업까지 하고는 장례가 다 끝났는지 사람들이 강둑으로 올라갔다. 호곡소리가 없음은 물론 장사지내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너무 담담하고 평화로워서 슬픈 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고대 인도인들의 머릿속에는 이곳 바라나시에서 영민하면 천국에 입성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지금도 400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상주하고 있고, 연평균 200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연중 끊임없이 목욕재계를 하기 위해 찾아온다. 3천 년 전의 고대 부족국가 왕국의 왕들도 이곳 갠지스강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강변에 왕궁을 옮겨 짓고 살았다. 가트 뒤의 크고 작은 수많은 왕궁의 모습들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해가 솟자 수없이 많은 남녀노소 사람들이 떠오르는 태양이 반사되는 갠지스강물을 향하여 합장하여 경배를 올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알몸으로 한 무리의 성인 남자들이 히말라야에서 약 2,200km를 흘러내리는 성스러운 갠지스강물에 몸을 담그고, 그 물에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평생에 한번은 어머니강인 갠지스강의 강물에 몸을 담그고 마셔야 하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일생 동안 그러지 못했다면 죽어서라도 그 시신의 입에 강물을 떠 넣는다고 하니 인도인의 가슴 속에 갠지스강이 차지하는 그 성스러움과 중요성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강변 계단에 빨래를 패대기치듯 열심히 빨래하는 모습도 보인다. 자기 빨래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대량으로 빨래를 하는 사람들은 빨래를 업으로 여기며 힘든 삶을 통하여 슈드라라는 불가촉천민들이 내세에 더 나은 신분으로 환생하고자 바람으로 천한 작업을 열심히 감내한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빈부의 격차는 심하지만 부유계층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눈길이 없이 모든 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생에서 힘들게 살아가며 공덕을 쌓아 내세에는 더 좋은 신분계층으로 상승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보듯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계급투쟁에서 오는 혼란은 적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거나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전이 없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을 것 같다.

배를 타고 화장터·목욕터·빨래터를 지나면서 수많은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갠지스에 경배를 드리고, 강의 물을 떠 마시고, 그 물에 차를 끓여 마시고, 어머니 강에 몸을 씻으며 목욕을 하고, 그 강물에서 빨래를 하고 살다가 죽어서는 다시 갠지스강으로 재가 되어 뿌려지는 인도인들의 모습에 경건함을 느끼기보다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갠지스강에서 세례를 받고 죽어서 화장되어 그 재가 이 강물에 뿌려지는 것으로 속죄의 윤회에서 벗어난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출근길에 소들과 그것들의 배설물이 거리에 가득한데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도 없고, 그런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도 동화되어버린 듯하다. 국가의 과학기술은 화성에 인공위성을 보내고 핵무기를 보유하는 등 세계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개인의 삶의 질은 세계여행 중 어떤 미개한 곳도 여기보다는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부의 의지가 인도 13억 인구 개인의 삶의 질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종교라는 굴레를 벗어던지지 않고는 참으로 어려울 것 같았다. 앞으로 인도를 생각하면 바라나시를 떠올리게 되고 바라나시를 생각하면 인도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만큼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심장 부분이자 인도의 모든 것을 결집해 놓은 곳이다.

미로의 도시 같은 바라나시 시내를 약 20분간 도보로 겨우 빠져 나와 버스에 올랐을 때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차의 입구를 막아버릴 정도였다. 현지 가이드는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몇 사람에게만 주었을 땐 불만을 가지고 떠나가는 버스에 돌팔매질을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구걸에 응하지 말 것을 몇 차례나 당부했다.

불교와는 또 다른 종교인 힌두교는 원시불교의 탄생 모태이지만, 석가모니도 당시 이런 부조리한 교리에서 벗어나고자 불교를 창시하였는지도 모른다. 정작 힌두교는 석가모니를 아홉 번째 신으로 모시고 있으니 포용적이기는 하지만 불교 교리와 대조를 이루고 있어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가다가 약 30분가량, 근처에 있는 국립 베나레스 힌두대학교에 들렀다. 캠퍼스가 아시아 최대로 사방이 각각 약 5km로 역사가 100년이 넘으며 인도에서는 네루대학교 다음으로 힌두교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힌다. 과연 소문대로 캠퍼스는 너른 땅위에 건물이 3,4층의 강의동과 기숙사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전체가 망고나무와 보리수나무 숲으로 가득하여 캠퍼스가 평지에 넓게 조성되어 있어서 시원했다. 차량 제한 속도 20km로 서행하면서 등교를 서두르는 대학생들을 살펴보니 여느 나라 젊은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약 1만 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학비는 무료이고 1947년 까지는 브라만 계급의 자제들만 입학이 가능했으나, 요즘은 우수한 학생이면 신분에 구애 없이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대학은 산스크리트 분야와 힌두철학 분야에 두각을 나타낸다고 한다. 캠퍼스 안쪽에는 힌두교 사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라나시에 약 2천개 사원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원으로 여느 힌두교 사원보다 내부 장식이 현대식으로 꾸며졌다는 점이 달랐다. 관람 후 캠퍼스 정문 앞에 모여 짜이 한 잔과 인도식 카레를 곁들인 만두를 시식하며 시장기를 달랬다.

늦은 아침식사를 오전 9시에 들고 약 한 시간 정도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한 뒤에 오전 11시에 호텔 2층 요가원에 가서 전원이 요가에 들어갔다. 약 30분간에 걸쳐 몇 가지 동작을 하면서 인도 요가의 진수를 맛본 후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르나트 녹야원을 둘러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오후 2시 우리는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바라나시의 녹야원(인도어로 사르나트)으로 향했다. 고타마 시달타의 아버지 정반왕과 어머니인 마야 부인은 원래 힌두교 신자였다. 시달타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어느 날 왕궁에서 자란 시달타는 왕궁을 나서 늙고 병든 노인과 시신을 보고 나서 생로병사를 고민하고 28세때 왕궁을 떠나 설산에서 고행 끝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득도를 하고, 여기 녹야원에 와서 다섯 친구를 만나 설법을 전하게 된다. 아쇼카 대왕이 BC 3세기에 이곳 사르나트를 방문하여 벽돌 탑과 사원을 대대적으로 건립하였고, 그때 방문 기념탑을 만든 것이 4각의 돌탑과 원통형 설법 기념탑이다. 사르나트 녹야원 입구에는 님나무를 비롯하여 아쇼카나무와 보리수나무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서 있었고, 잘 정돈된 정원과 햇볕 가득한 잔디밭에는 장미꽃이 만발해 있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다비에서 얻어진 사리는 여덟 부분으로 나누고 그 중 한 부분을 묻은 장소에 큰 전탑을 세운 분도 아쇼카 대왕이었다. 당시 5천명의 군인이 주둔하며 이 탑을 지켰으나 지금은 그 사리를 뉴델리의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아쇼카 대왕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옛 사원과 군인들의 막사로 둘러 싸여 있던 사르나트 녹야원에는 그 흔적인 붉은 벽돌 기단만 남아있었다. 그 옛 자취는 사라져 버린 채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하는 사슴만이 뛰놀고, 이름 모를 새들만이 우짖는 평화로운 녹야원이 되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지진으로 파손되었고 이슬람 침략 때 거의 훼손된 채 지금은 사원 터만 남아 있지만, 당시 건립 때는 그 규모가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기록에 의하여 고증된 옛 사원 터와 빈 공간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 불경을 낭송하며 설법을 듣기도 하는 광경이 전혀 새롭지 않았다. 의상은 각기 달랐으나 추구하는 불심은 하나같이 뜨거워 녹야원 뜰을 울리고도 남았다.

사르나트 정문 오른쪽에 위치한 녹야원 박물관에는 이곳 녹야원에서 발굴된 불교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국에서 반출하려 시도했으나 국민적 저항이 거세어 실패한 힌두교와 불교 유물들이 1층에 파손된 채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입구 정면에 4사자獅子석탑이 있었는데 이는 인도 화폐에 모두 등장하는 인도의 상징물이다. 아쇼카 대왕이 불교를 4방으로 전파하고자하는 의욕을 상징화한다고 전한다. 또한 흰색 대리석으로 조각된 사자는 평화를 상징한다. 불교에 있어서 아쇼카 대왕은 기독교에 있어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갠지스강의 한 가트에서 힌두교 야간 축제 아루띠뿌짜가 개최되므로 5시 30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바라나시 시내로 향했다. 복잡한 도심 인근의 한 지점에서 버스를 하차하여 갠지스강까지 내외가 한 조가 되어 릭샤(인력거)를 타고 갔다. 휘황찬란한 조명아래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이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모여 앉았다. 아루띠뿌짜에는 9명의 사제가 촛불이 밝혀진 불 항아리를 들고 나와 불춤을 올리고 있었다. 공중에 매단 여러 개의 종을 줄로 연결하여 울려 퍼지게 하는 종소리와 지상에서의 북소리, 꽹과리소리 그리고 아코디언 비슷한 악기의 소리 등이 밤하늘을 진동했다.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향냄새가 진하게 풍겨나는 갠지스강 강변에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인도풍의 애잔한 멜로디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도인 특유의 목소리로 주문을 외는지 경전을 읽는지 음률에 따라 곡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갠지스 강의 가트 주위에는 향불 냄새가 진동하여 사람들을 몰아지경으로 빠지게 했다. 밤 7시가 넘어 되돌아오는 길도 릭샤를 타고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지점까지 왔다. 릭샤를 스치듯 지나가는 각종 자동차, 오토릭샤, 자전거 등이 곡예운전을 하여 아슬아슬 했지만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다.

저녁 식사 후 바람을 쐬러 밖에 나왔다가 호텔 1층 별관에서 거행하는 이곳 전통 결혼식을 약 한 시간에 걸쳐 구경했다. 인도는 요즘같이 한가하고 날씨가 선선해지면 야간에 결혼식을 많이 한다. 때문에 시내 곳곳에 휘장을 두르고 천막을 친 곳에 조명을 휘황찬란하게 해 놓은 곳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 같았다. 전반부는 사제의 주례로 혼인식을 마치고 신부가 친정식구와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석별의식을 가진다. 이어서 신랑이 등장하여 함께 양가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며 뒤에 신랑 신부 친구들이 사이키 조명 아래서 춤을 추며, 나중에는 신랑신부도 함께 참여하여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에로틱의 도시 카주라호

12월 4일(수) 오늘은 자동차로 10시간 넘게 가야하기 때문에 아침 7시에 호텔 문을 나섰다. 인도의 에로틱 도시 카주라호로 가기 위함이다. 약 5천 명 가량의 인구가 사는 소도시이므로 그곳까지 가는 동안 변변한 식당 하나 없어서 호텔에서 마련한 도시락을 각자 지참했다. 카주라호는 동네도 작고 인구도 적지만 1,100년 된 문화재가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에 공항이 있는 곳이다.

출발 약 30여 분 만에 실크 카펫 공장에 들렀다. 따불과 하모니엄을 반주로 인도 파키스탄 풍의 노래와 여인의 춤을 구경하면서 상품 구경을 했다. 현란한 춤사위와 다이내믹한 여인의 춤동작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한창을 바라보았다. 파키스탄의 캐시미르 분쟁 때 이곳으로 피난 나온 직조기술자들이 짜서 파는 상품인데 아주 우수한 카펫이었다.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휴대하고 다니기가 번거로울 것 같아 포기했다.

카쥬라호로 가는 길은 참 멀고 험했다. 밤 8시가 되었는데도 도로가 앞뒤로 막혀, 서 있는 상태에서 한 시간을 허송한 일도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오는 도중 가이드가 사다 준 삶은 계란을 간식 삼아 요기를 하면서 깜깜한 인도대륙을 엉금엉금 기듯이 나갔다.

밤 12시 드디어 카쥬라호의 라마단 호텔에 도착하였다. 바라나시에서 출발한 지 무려 17시간이 걸렸다. 모두들 버스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있었기에 피곤이 극에 달했는지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준비해 놓았으나 우리 부부를 포함 5명이 식사를 하고 나머지는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새벽 1시 30분이었다. 지금까지 세계 여행 중 가장 힘든 이동 구간이었다.

12월 5일(목) 어젯밤 늦게 도착하여 오늘 아침은 7시에 식사를 하고 10시에 카쥬라호를 관람하게 되어 있으므로 여유가 있었다. 호텔 건물 주변을 약 한 시간가량 산책했다. 호텔 시설도 우수했지만, 호텔이 자리하고 있는 정원 시설이 아주 훌륭했다.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터를 잡았음인지 마치 장원처럼 넓고 숲이 아름다웠다. 축구장·풀장·장미정원·채소밭이 싱그럽게 펼쳐져 있었다.

10시에 피곤을 다 떨쳐버렸는지 모두들 밝은 얼굴로 승차하여 카쥬라호의 동서 사원을 관람하기 위해 출발했다. 이곳 카쥬라호 주민들은 약 80%가 농사를 짓고, 약 20%는 관광업에 종사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약 1,100년 전 찬델라 왕조 시대에 90년간 84개의 사원이 건립되었으나, 지금은 그중 22개만이 남아 있었다. 이슬람제국의 왕들이 침범하여 상당히 많은 분야가 훼손되었으나 그런대로 전체의 골격은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관람객들이 운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힌두사원 건물 벽에는 이 카마스트라 조각품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는, 이른바 종교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성행위 장면 등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 큰 사원을 빙 돌아가면서 여러 자세의 섹스 장면, 짐승과의 수간, 기도하는 장면, 춤추는 장면, 전쟁하는 장면 등에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몸매가 너무 사실적으로 섬세히 잘 표현되어 있었다. 힌두교 3대 神인 시바신·헤즈나신·부라만신이 조각으로 형상화된 곳도 눈에 띈다. 사원의 위쪽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 의지가 강했다.

이 일대의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서쪽 사원은 거의 붉은 사암에 조각을 하고 탑을 쌓아 사원을 만들었다. 아쇼카나무와 님나무가 키를 자랑하며 푸른 하늘에 높이 서 있고, 사원들 앞에는 부겐베리아를 닮은 알따라스 꽃분홍 색깔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지나는 관광객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서쪽 사원을 관람한 다음 우리는 다시 인근에 위치해 있는 동쪽 사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쪽 사원이 힌두교 사원이라면 동쪽 사원은 자이나교 사원이다. 자이나교는 채식주의자이며 가죽제품을 휴대하는 것을 금하고, 사원 내부에서는 금연과 맨발을 주문했다. 사원의 개수도 현격하게 적고 훼손이 되어 있었으나 나체 신상을 크게 조각해 둔 것이 서쪽사원과 달랐다. 낮 12시 30분 경 호텔로 되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오후 2시에 괄리오르까지 약 350km를 강행하게 되었다.

인도의 맨얼굴 대평원

오늘은 3일간의 인도대륙에서 대평원만 보고 내려왔다. 도무지 산이라고는 구경할 수조차 없을 만큼 대평원의 농지뿐이었다. 수많은 동네와 길들을 지나오는 동안 맨얼굴의 인도를 보면서 우리나라 1950년대를 연상케 했다. 마침 우기(5월-9월)가 끝나고 건기에 접어들면서 기온은 섭씨 28도 전후였고, 햇볕은 따뜻했다. 우리나라 가을 정도의 기온이었다. 13억 인구가 먹고 살기에 충분할 정도로 땅이 넓고 비옥해 보였다. 3모작 농사가 말해주듯 끊임없이 벼를 심고 밀을 심으며 밭에서는 채소와 감자와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갠지스와 지류의 강들이 가로질러 가는 유역의 비옥한 땅에서 나는 농산물은 참으로 풍부함 그 자체이었다. 그래서 갠지스는 인도를 먹여 살리는 삶의 젖줄이다. 세계 4대 문명발상지 나일강·황하강·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과 함께 인도의 갠지스강은 세계문명을 일구어낸 문명발생의 모태이다.

힌두교에서는 갠지스강을 일컬을 때 히말라야에서 이어 내려오는 시바신의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리는 성수라고 믿고 있다. 그야말로 인도를 살리는 생명줄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제법 큰 도로임에도 화장실이 갖춰진 휴게소 하나 없다는 것이 인도의 한계점이다. 주유를 하기 위해 도중에 정차하면 직원용 화장실은 여성들 차지가 되고, 남자들은 근처에서 노상방뇨를 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었다. 호텔에서 마련해 준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마땅히 없어서 주행 중에 차 안에서 간단히 해결해야 했다. 차량 두 대가 안심하고 교차할 수 있는 공간이 안 되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불안해도 운전사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항상 추월할 때는 반대차선으로 가야하므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자니 경적을 수시로 울려대 상대방으로 하여금 주의하라는 경고를 끊임없이 보내다보니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새롭게 도로공사를 하든지 노면 보수를 하든지 울퉁불퉁 제멋대로 도로가 되어 있어도 시속 20km로 주행을 해도 조금도 불평불만이 있을 수 없다. 간디의 비폭력 항거에서도 보듯이 영국의 지배를 90년간 받으면서도 잘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는 강했다. 그래서 교육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지만 현실에 대해 불평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적었다. 여행기간 동안 주변에서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시비나 싸움이 없는 양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럼에도 가난과 천한 신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어떤 일에 종사하든 불평불만 없이 순종하는 이 민족은 힌두교의 교리를 누구보담도 잘 실천하는 민족인 것 같다.

석가모니가 이 땅에서 태어났고 설법을 하였고 돌아가셨는데도 이 땅의 사람들은 극소수만이 불교 신자라는 데 놀랍다. 또한 룸비니와 사르나트에 석가의 탄생과 설법의 흔적이 약간 있을 뿐 인도 어디에도 불교 사원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데가 없었다. 아주 작은 불교 교리를 지키고 불법을 따르기에는 너무 방만한 무사태평의 국민성 때문일까? 아니면 저희들의 종교 힌두교가 불교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유태교에서 벗어난 천주교와 개신교도 이와 유사한 형편이 아닐까? 예수님이 태어나 전도하시고 돌아가신 유대 땅은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않고 그들은 한 선지자 정도로 보고 있다.

인도에 카스트제도는 법적으로는 없어졌다. 그러나 결혼할 때 부모들이 많이 따져서 반대를 하는 경우 법원에 가서 판결 받는 경우가 많단다. 인도의 상징 간디는 바이샤 출신이고, 현 수상 맘모한 싱은 쿠샤트리아 출신, 네루와 인디라 간디수상은 브라만 계급이라고 한다. 계급에 관계없이 성공한 사람도 있다.

도로에 다니는 자동차는 모두 타타 자동차 밖에 없다. 우리나라 현대 자동차도 남부 공업도시 젠나이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워낙 인도국민들이 국산품 장려운동이 골수에 사무쳐 현대차가 잘 팔리는 것 같지 않다. 도로가 역시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중간중간이 파여 있어서 요철이 심한 도로를 따라 오다보니 속력을 제대로 낼 수 없어서 거의 시속 2-30km로 기어오다시피 했다. 화장실이 없어서 오늘도 노상에서 해결해야 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가장 급선무는 도로정비와 유적지 정화 및 휴게소 설치인 것 같다.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지 70년이 넘었는데 정치 지도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어디에 정신을 쏟고 있을까?

어제 바라나시에서 카쥬라호로 오는 도로보다는 오늘은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비포장 먼지 속에서 덜컹거리고 차량 2대가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위험스런 운행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후 2시에 카쥬르호를 출발하여 6시간 예정이었던 천년고도 괄리오르의 괄리오 레젠시 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경, 1시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인도의 숨은 보석 괄리오르

12월 6일(금), 어저께 밤에도 밤늦게 도착하였기에 아침 7시에 식사를 시작하고 8시에는 인도의 숨은 보석 괄리오르의 괄리오르성을 관람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괄리오르성은 만디르 왕조가 1486년부터 1516년까지 라자 만 씽이 왕일 때 건립한 왕궁이다. 성벽 10m 높이의 석조 건물 내부구조는 미로 같았다. 벽면과 창문과 천장의 조각이 너무 섬세하고 고와 금방이라도 사는 사람이 구석에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지하 2-3층의 가파른 계단 아래에는 왕비 8명이 목욕하는 장소였으나 왕이 전쟁에 나가 전사하자, 이 탕 안에서 왕비들이 남편의 뒤를 이어 자결하고 말았다. 당시 순장과 같이 여인들의 최후가 애잔한 전설처럼 가슴을 아리게 했다. 자이나교 사원들이 곳곳에 바위를 파서 그들의 신을 나체로 조각해 놓고 있었다.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 조각해 놓은 솜씨가 아름답고 고왔다. 아름다운 기하학적 도형과 창호와 벽면을 장식해 놓은 솜씨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다.

까마득히 100m 아래로 괄리오르 시가지가 옅은 안개 속에서 베일 속에 감춘 듯 드러나 보인다. 500년 세월의 모진 풍파를 이기고도 완벽한 모습으로 서 있는 고성의 의젓함에 당시 융성했던 왕국의 화려함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15세기 힌두교의 조각과 벽화가 남아 문화적 가치를 자랑하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 놓고 있는 것이다.

무굴제국의 영광 아그라성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놓고 점심을 먹은 후 버스에 탑승한 우리는 중앙 인도의 무굴 제국의 강대한 권력의 상징이었던 아그라성을 찾아 나섰다.

아그라는 델리 남쪽 200km 지점의 갠지스강 유역에 위치한 광활한 평야를 배경으로 형성된 도시였다. 북쪽 야무나 강 연안의 펀자브지방은 비옥한 평야의 연속지역이다. 무굴제국이 수도를 델리로 옮겨가기까지 약 1세기 동안 수도로 있었던 곳이다. 아그라로 가는 길은 도로 사정이 비교적 괜찮아 출발 3시간 만인 오후 5시경에 아그라에 당도하였다.

1565년 아크바르 대제에 의해 건설된 이 아그라성은 무굴제국의 권력의 상징이다. 아그라는 인도의 수도 델리, 핑크시티로 유명한 자이푸르와 함께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인도여행의 핵심 장소이다. 따라서 인도 전역에서 가장 볼거리가 풍성한 곳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운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그라성은 전체가 황토빛 석재를 사용하여 건축되었다. 마침 인근의 타지마할이 휴관하는 금요일이라, 이곳으로 몰려온 관광객들 때문에 더 혼잡한 것 같다. 야무나강을 끼고 요새에 서 있는 아그라 포트를 쌓을 당시 24세의 아크바르왕은 이 성을 철옹성으로 만들었다. 최고 높이가 50m에 이르는 성벽을 면도날 하나 삽입할 틈도 없이 완벽하게 쌓았던 것이다. 약 2.5km 가량을 성벽으로 둘러친 다음, 성벽 바깥쪽에는 너비 약 10m 가량의 깊은 수렁을 파 놓아 적이 건너오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성의 입구인 남쪽에는 ‘아마르 씽 게이트’ 하나만을 두고 있었다. 아그라 포트를 지금의 도시처럼 변모시킨 왕은 샤자한으로, 할아버지 아크바르가 만든 성을 지금의 호사스러운 궁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성 입구에 들어서자 견고한 궁전 건축물과 그 화려한 치장에 놀라고 석재를 마치 진흙 다루듯 조각을 해 놓은 솜씨에 감탄했다.

여름 궁전과 겨울 궁전이 나뉘어 있었고, 무희들이 아래 잔디밭에서 춤추는 장면을 관람하던 높은 대 위를 걸어보았다. 임종 때까지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말년을 이 궁전에서 멀리 아내의 무덤을 바라보며 권력부상과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꼈을 샤자한의 운명이 애처롭기만 하다. 강 건너편에 하얀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서 있는 타지마할이 한 눈에 바라다보였다.

순백의 순정 타지마할Taj Mahal

12월 7일(토), 아침 8시 아그라성에서 야무나강을 사이에 두고 그 외관만으로도 감동이 넘치는 타지마할을 관람하기 위해 약간 들뜬 기분으로 길을 떠났다. 요 며칠 안개가 심해서 타지마할을 카메라에 담아가는 것에 실패했다는 가이드의 말에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안개가 많이 끼지 않아 전경이 또렷하게 다가올 것 같았다. 입구에서부터 군인들이 무장하여 경계를 펴고 있었고, 공항 입국장에서나 보던 몸수색과 X레이 통과 과정도 거치면서 더욱 우리를 기대에 부풀게 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건물의 위용에 압도당하여 더 이상의 감탄사가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새하얀 대리석 건물로도 이처럼 웅장하게 대칭미가 어울리게,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분수와 진입로를 포함한 공간배치가 극도로 정제된 정원과 함께 조화로움을 끌어낸다는 것이 도저히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과연 인도 예술의 최고봉이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인도 여행의 백미는 역시 아그라의 타지마할이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 타지마할 건축물은 아그라시 남쪽 3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단일 건축물로서 예술의 극치이자 세계건축사의 불가사의한 흰색 대리석 건물로 찬사를 받고 있음이 결코 입에 발린 찬사가 아니었다. 타지마할은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653년에 완성되었다. 이 타지마할은 요즘 돈으로 환산하여 약 720억불의 돈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왕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타지마할에 버금가는 무덤을 야무나 강 건너편에 짓고 죽어서도 그 사이를 구름다리로 이으려는 샤자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죽어서 결국 타지마할의 왕비 뭄 타즈의 왼편에 묻히고 만다.

왕비 몸타즈는 페르시아 왕족 혈통으로 1593년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왕실 예의범절과 고품격고육을 받고 성장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 몸타즈는 당시 무굴제국의 4대왕 한기르의 총애를 받고 왕궁에서 기거했다. 몸타즈는 뒤에 5대 샤자한 왕이 된 쿠후람 왕자의 마음을 끌었고, 이들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하게 된다. 결혼한 지 17년째 남편이 왕위에 오른 지 3년만인 1631년 왕비의 나이 38세 때, 15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병을 얻어 결국 왕비는 죽음에 임하게 된다. 왕비는 임종이 가까워 오자 샤자한 왕에게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의 증거로 아름다운 기념비를 자신의 무덤에 세워줄 것을 부탁했다. 왕은 절대로 재혼하지 않을 것과 왕비를 위해 무덤을 짓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샤자한 왕은 왕비 몸타즈가 죽자 1631년 타프티강 건너편에 임시로 묻었다가 다시 아그라로 옮겨 왕과 함께 거닐었던 왕실 정원이 있던 야무나강 기슭에 안치했다. 왕은 2년 간 모든 종류의 쾌락으로부터 자신을 절제하고 금요일마다 조신과 귀족을 동반하고 흰옷에 맨발로 왕비의 무덤을 찾아 추도문을 낭독하며 슬퍼했다고 전한다.

샤자한은 수많은 도안 중 터키 출신 우스타드 이사 아완디의 작품을 선택하고 이란 출신 건축가들을 초빙, 1631년 12월부터 공사에 착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희고 검고 붉은 대리석은 육로로 강으로 수송되었고, 금은보석이 제국의 왕들과 귀족들에 의해 제공되었으며, 다른 물자들은 외국으로부터 수입되었다고 한다. 야무나강의 높은 강변에 위치한 왕실 정원에 22년간에 걸쳐 2만 명의 인부와 1,000여 마리의 코끼리를 동원 대나무를 이용하여 건물 위쪽까지 대리석을 운반하고 반대 계단으로 내려가는 식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타지마할의 동쪽과 서쪽에 회교 사원이 같은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타지마할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건물의 네 귀퉁이에 각각 한 개씩 모두 네 개의 미나레를 세웠는데 지진이 났을 때 타지마할 건물에 손상이 가지 않고 밖으로 무너지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왕비의 피부가 희기 때문에 타지마할을 하얀 대리석으로 꾸몄고, 아무나 강 건너편에 샤자한 왕의 검은 피부를 닮은 또 다른 타지마할을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의 영혼이 강위에서 만나도록 계획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타지마할의 건축으로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네 번째 아들 아우랑제브가 큰 형을 죽이고 그 아래 두 형을 축출한 다음 왕위를 찬탈하고 부왕을 감금했다고 한다. 이슬람 교도였던 아우랑제브는 백성들에게 힌두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여 힌두교의 반발을 샀던 모양이다.

약 한 시간 넘게 타지마할의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니 지금까지 인도의 어떤 건축물보다 솜씨가 뛰어난 것 같았다. 어찌되었던 루비와 사파이어, 그리고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궁전 내부는 그 동안 외부의 침입으로 탈취되었지만, 돌 하나 장식품 하나에 스며든 장인들의 손길은 감탄을 금할 길 없다. 대리석 속에 또 다른 대리석으로 꽃과 잎을 수놓은 그 정교함은 감탄을 금할 길 없다. 홀의 중간에 왕비의 무덤이 대리석 관으로 자리 잡고 그 왼쪽에 왕비무덤보다 조금 큰 석관무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이것은 모형일 뿐, 두 개의 무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지하에 안치되어 있었다.

삼 면이 야무나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요새인 무굴제국의 운명도 영국군의 신무기 앞에 속수무책으로 운명을 다한 것이다. 강대했던 무굴제국이 멸망한 데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겠지만 1526년 티무로족의 직계후손인 바부르에 의해 건국되었고, 현인과 같은 지혜에 의해 튼튼히 유지되어왔다. 무굴제국은 자한기르에 의해 정의正義가, 누르자한에 의해 광채光彩와 위엄威嚴이, 샤자한에 의해 불멸不滅의 나라로 자리매김 했으나, 6대 아우랑제브의 지각없고 편협偏狹한 정치로 쇠퇴하였고, 그의 아들들도 무능하였다고 전해진다. 1857년까지는 무굴의 말년에는 여러 왕들이 왕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폐위되곤 하다가 1857년 영국에 의해 왕위가 폐위될 때까지 명의상으로만 인도를 통치하고 있었다.

비운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야무나강의 강물은 오늘도 유유히 흘러내려 인도의 어머니강인 갠지스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자이푸르의 핑크시티

강 유역의 유채밭에서는 노오란 유채꽃이 만발하여 길손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렇게 유채가 많은 것은 인도인의 음식에서 기름은 거의 유채에서 얻는다고 한다. 아그라 시내를 거쳐 인도의 3대 성 중 하나인 자이푸르성에 당도한 것은 10시 30분으로 약 2시간가량의 관람을 끝마치고 노천 식당이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도 정갈하고 닭튀김이나 화덕에서 구운 밀가루 전병 같은 란도 맛이 있었다. 닷새를 달리는 동안 평원만 보면서 왔는데, 자이푸르성이 있는 낮은 언덕이라도 바라보니 항해 중 섬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었다.

12월 8일(일), 아침에 일어나 호텔 식당으로 가면서 언뜻 보니 머물렀던 이곳 클라크스 호텔이 꽤 훌륭한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하철이 4호선까지 있는 라지스탄주의 주도로 꽤 이름 있는 도시였다. 인구 500만 명의 자이푸르는 자이푸르왕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도시였다. 1799년 건축된 하와마할 궁전은 자이푸르의 대표적인 봉건적 건물로 이름나 있다. 창문이 많은 궁전에서 항상 바람이 불어 시원했기에 ‘바람의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여인이 밖에 나가면 안 되는 인도의 관습에 따라 ‘핑크 시티’ 답게 붉은 색 건물에 창문이 990개가 달려 있는 오렌지색 건물이었다. 지금 그 창안에서 여인들이 밖으로 우리를 내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그마한 언덕으로 올라가면 암베르성 안에 궁전이 나온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궁전이다. 이 언덕 정상에 마하라자 만싱 왕의 궁전이 있고, 12명의 후궁을 위해 지어준 궁전과 접견장이 호화롭게 위치하고 있었다. 궁전의 내외부의 문양과 대리석 조각은 호화로움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 이 궁전을 사용한다 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내부 시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

우리는 오후 3시경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당도하여 ‘인디아 게이트’를 찾았다. 뉴델리 한복판에 위치한 넓은 녹지에 1921년에 착공하여 10년 만에 완공된 이 문은 1차대전시 사망한 9만명 인도 군인의 이름을 42m 높이의 탑에 새겨놓았고, 그 앞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안치해두고 있었다.

이 주변에는 인도의 정치를 좌우하는 대통령궁을 비롯하여 입법 사법 행정 기관이 밀집해 있는 구역이 있었다. 특히 국회의사당과 545명의 국회의원이 거주하는 저택이 숲에 가린 채 서 있었다. 5년 국회의원 동안 이 저택을 제공받는다고 한다. 지금이 주수상 주의원 국회의원 선거철이라 전국의 어디를 가나 현수막이 내 결려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오후 4시경 우리는 인도인의 상징인 간디의 화장장을 찾았다. 영국에서부터 독립을 외치며 간디는 비폭력으로 항거했으나 당시 70% 인도인만이 그를 지지했고, 결국은 과격반대파의 총탄에 희생되고 말았다. 파키스탄은 독립하자말자 인도와 분리하고 말았다. 간디는 이곳 야무나 강변에서 전 국민들의 애도 속에 화장되었고, 그 재는 갠지스강에 뿌려짐으로써 평범한 힌두인처럼 그 어머니강에 안겼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려는 시각에 우리는 힌두교의 연꽃사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모양을 딴 꽃잎처럼 지붕을 얹은 넓은 연꽃 사원은 갑자기 어두워진 날씨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곧바로 또 다른 회교사원으로 차를 몰았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가인데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입장객 때문에 약 30분을 줄을 서서 기다리고 몸수색을 받고, 카메라 핸드폰도 가방도 소지하지 못한 채 겨우 밀려서 입장했다. 우선 그 규모에서 압도당하고, 야간이라서 분위기 있는 조명에서 놀라고, 마지막으로 그 내부의 조각과 시설물의 휘황찬란함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인도 힌두교의 야심작으로 약 5년 전에 지은 이 회교사원은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금은보석으로 내부가 장식되어 있었다. 영국인이 보석을 탈취해가지 않았더라면 타지마할의 야간 내부 경관이 이러했을까?

휴식 시간에 유채꽃이 만발한 밭에서 노랑나비를 보았다. 그 옛날 어렸을 때 봄의 들녘에서 보았던 그 노랑나비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어보았다. 한국 땅에서 느껴보지 못한 정취를 이역만리 인도 땅에서 가을 같지 않은 포근한 가을에 느끼게 하였다. 그 옛날 가락국의 허왕후許王后도 지금 내가 보고 있던 장다리꽃 노랑나비를 김해의 한 들판에서 보았을까? 고향 아요디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짓던 그 시절이 그리워 낯설고 물선 극동의 조그마한 반도의 남녘 들판을 헤매었을까?

아요디아(아유타) 왕국은 타이족이 세운 왕조로서 무슨 정변이 일어났는지, 공주는 16세에 오빠와 함께 AD 48년경 1만km가 넘게 떨어져 있는 한반도의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와 김수로왕의 아내가 되었다. 아요디아는 1351년부터 1767년까지 존속한 인도 북부의 왕국이었다. 고대 힌두교 7대 성지 중 하나로 번영한 도시였고, 기원전 6-5세기 때는 불교 전성시대이어서 100여개의 사원이 늘어선 불교 중심지였다고 전한다. 지금도 김해에는 그때 실려 온 돌탑과 건물에 쌍어문 표지가 남아있는데 아유타에서는 물고기를 신으로 섬긴다고 한다.

인도와 우리의 인연은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아내 허황옥許皇玉으로부터 출발한다. 1999년 4월 28일 인도의 마쉬라 왕손이 이곳 김해를 방문하고 자매결연을 한 이래 해마다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또한 일제시대 인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성 타고르가 우리나라 동경 유학생들에게 했던 유명한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너 코리아여!” 로 시작된 시 구절이다. 6.25사변 때는 전투부대는 아니지만 부상병 치료를 위해 의무대를 파병했고, 종전 후 포로 석방 시 네루수상 때 8명의 포로가 제3국인 인도로 망명을 신청하여 인도에서 살고 있다고 전한다.

한국과 인도는 외교적으로도 좋은 관계이다. 인도인들은 선천적으로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북한도 인도에 관광 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 대우·삼성·LG·현대 등이 속속 인도에 소개되었다. 지금은 곳곳에 삼성 LG 등의 가전제품 로고가 많이 눈에 띄고, 현대자동차는 젠나이에 생산공장까지 차려 인도산 TATA에 도전하고 있다. 타타그룹의 마인드라 회사는 한국의 쌍룡차를 인수하여 서로 경쟁하고 있다. 헤나염색약·강항가루·님치약·님비누·카레·홍차 등이 한국인에게 특히 인기가 있어서 많이 팔린다고 한다. 길거리에는 과일이 지천으로 쌓여 있었고, 구아바·바나나·무화과·용과·석류·오렌지 등은 1달라 어치만 사도 1kg씩을 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제품이 거의 판치고 있는 인도 시장에 고가의 일본제품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중산층이하의 시민들의 기호에 우리상품이 호응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서야 힌두사원의 야간 관람을 끝내고 중국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오랜만에 호텔 밖에서 식사를 마친 후 인근의 선물가게에 들렀다. 인도 최고의 홍차 닐기리와 아쌈 등도 유명했지만,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다질링 홍차를 몇 통 선물용으로 구입한 후 웰컴 호텔에 투숙했다. 내일 아침은 국내선 비행기를 탑승해야 하므로 새벽 4시쯤 호텔을 나서야 한다.

아르방가바드의 엘로라 석굴사원

12월 9일(월) 새벽 2시 40분에 모닝콜이 왔다. 호텔 도시락을 하나씩 받아들고 뉴델리 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시설 우수한 좋은 호텔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아직도 잠에 취한 채 차에 올라 새벽 5시 45분발 아르방가바드행 국내선 여객기를 탑승했다. 모두들 두세 시간밖에 잠자지 못해 피곤함이 역력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오는 도중 길이 많이 막혔다. 공항 입구에서 월요일 출근을 위한 승객들이 많아서인지 버스가 진입을 못하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뉴델리 국제공항 국내선 청사에 당도한 후 짐을 부치고, 몸 검색을 당하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일행 26명 전원이 셔틀버스를 타고 가 비행기에 탑승이 완료되었을 때는 출발 시각 정각이었다. 그런데 우리만 허둥지둥한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 뒤에도 몇 명이 더 들어 왔고, 비행기는 15분 후인 6시 정각이 되어서야 뉴델리 공항을 출발했다.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 비행기는 아직도 깜깜한 뉴델리 상공을 날고 있는데, 저 멀리 광활한 지평선 동쪽에서는 여명이 감돌더니 점차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지평선 한 쪽이 숯불처럼 타오르더니 드디어 아침 6시 40분쯤 천지는 잠에서 깨어나듯 황금빛 태양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 7시가 조금 넘어서자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맑은 날씨와 평화로운 들녘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인도의 넓고 광활한 대륙을 체험하면서 조그마한 산은커녕 언덕조차 없는 인도대륙이 한없이 부러웠다.

우리가 탄 스타이스제트 비행기는 약 1시간 35분 비행 끝에 아우랑가바드 공항에 안착했다. 우리나라 공항에 비해 시설은 열악했지만, 땅 넓은 나라답게 지방 공항인데도 활주로가 엄청 넓었다. 공항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비츠호텔도 역시 최상급의 호텔로 시설이나 객실 등이 훌륭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방을 정리한 후 10시 30분에 자동차를 타고 부사월로 이동하여 엘로라 석굴로 향했다.

아우랑가바드는 인도 중서부에 위치한 인구 약 백만의 휴양도시이다. 온 동네가 숲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인도풍 소도시였다.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한 가로수가 도열해 있었고, 동네마다 아름다운 수백 년 된 망고나무 보리수나무 님나무 등 숲이 우거져 있었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힌두사원들이 마을 회관보다 더 많았다. 그 동안 인도여행에서 보기 드문 얕은 야산이 이어진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서 오전 10시 경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엘로라 석굴에 당도했다.

엘로라 석굴은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사이에 건립된 힌두교 사원이었다. 몇 개의 산을 이루고 있는 바위에 천년도 넘은 세월 전에 도대체 무슨 연장으로 옆으로 혹은 수직으로 파고 들어가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흙을 파 들어간 것도 아니고 석재를 따로 조각하여 옮겨다 놓은 것도 아니었다.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뚫고 들어가면서 기둥을 조각하고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불상을 조각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경전에 나오는 신화의 인물과 동물을 조각으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보니, 인간의 의지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놀랍기만 하다. 2천명의 석공들이 약 400년에 걸쳐 이룩했다는 이 석굴의 내부를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허투루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믿음과 신념에 찬 의지와 필생의 각오로 정진하며 만든 작품들이었다. 그 옛날 초기에는 단청도 되어있었던 흔적이 엿보임을 보아 과거 화려했던 석굴 사원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고, 이곳을 참배한 신도들의 마음에 신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 같았다.

1호에서 34호까지 석굴이 있는데 30호부터 34호까지는 힌두교 사원이 아니고 자이나교 신전이었다.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인 자이나교는 교주의 모습을 나체로 조각해 연화대 위에 세워놓고 있었다. 모든 사원이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솜씨를 뽐내고 있었으나, 그 중 16호 사원이 가장 하이라이트였다.

점심을 인근 식당에서 먹고 걸어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자이나교의 신전을 둘러보았다. 남성 나체상을 조각으로 모셔놓고 신봉하고 있는 석굴로서 오전에 본 것보다 크게 나을 것은 없었다.

오후 3시 30분 자동차로 산등성이 위의 아우랑가바드 요새를 향하여 갔다. 성으로 올라가면서 3중 4중 철통같은 수비를 위해 만들어진 성벽과 성문을 보면서 성의 견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뉴델리에서 본 ‘인디아 게이트’에 이어 두 번째 인도문인 ‘승리의 탑’이 높이 솟아 있는 옆을 지나 요새로 올라가 보았다.

겹겹이 둘러친 성문을 지나 최후의 보루를 올라가니 사정거리 2km를 자랑하는 대포가 설치되어 있는데 무굴 제국의 6대왕 아우랑제브 때 만든 대포라고 한다. 출렁다리 건너편에는 병사들의 최후 병영이 바위에 숨겨져 있었다. 오전에 본 엘로라 석굴 힌두교 사원처럼 거대한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병사들이 기거했다는 말이다. 이들 인도인 선조들은 도대체 바위산을 우리의 흙산을 파듯이 파는 재주가 있었나 보다.

불교미술의 최고봉 아잔타 석굴

12월 8일(화) 아침 8시 느슨한 일정으로 가까이에 있는 아잔타 석굴로 이동하였다. 불교미술의 보고이자 인도 회화의 최고봉인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3세기에서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약 500년간, 그리고 다시 기원후 5세기에서 8세기까지 3백년간 불교 예술이 흥왕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약 2,300년 전부터 1,200년 전 언간에 조성된 이 건축물은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있었다. 신라시대 혜초 스님도 다녀갔던 기록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신라의 고승 혜초는 중국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AD 723년 남중국해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인도승 금강지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다. 불교의 근원지인 인도에서 더 공부하고자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의 돈황과 현재의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한 때가 AD 727년이다. 천축국인 인도를 공부하며 이곳 아잔타를 비롯한 불교 유적지를 둘러보고 기행문을 남겼으니 곧 ‘왕오천축국전’이다. 이 ‘왕오천축국전’은 약 1300년 전 인도를 둘러본 혜초의 여행기록문으로 1908년 프랑스 학자 펠리오에 의해 발견되었고, 지금은 그 책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태고의 시기에 지진으로 생긴 협곡에 바위 절벽이 형성되었고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고 삼림이 우거졌으며 남쪽으로 향한 바위산 인근에는 온화한 산등성이 구릉이 형성되었다. 마침 가을철이 다가와 나뭇잎은 그대로인데 길섶의 풀이파리들은 말라 버렸고, 땅은 건기라서 메마르고 먼지가 일고 있었다.

1816년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당시 영국 관리 존 스미스가 이곳 협곡으로 호랑이 사냥을 나왔다가 호랑이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석굴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 정부 지원을 받아 발굴해보니 1호부터 30호까지 엄청난 불교 유적과 미술의 보고가 발견된 것이다.

먼저 우리는 아잔타 석굴을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언덕 위에 차를 세우고 전체를 조망한 다음 석굴이 있는 수십m 협곡을 향하여 내려갔다. AD 629년 중국 당나라 때 현장법사玄裝法師가 이곳에 다녀간 기록이 ‘서유기西遊記’의 모태가 되었고, AD 8세기 신라 성덕왕 때 고승 혜초慧超스님의 발길이 닿았던 이 언덕을 숲속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감회에 젖었다. 그 당시 무슨 교통수단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당도했을까? 불도를 깨치기 위해 배를 타고 중국을 건너갔을 것이고, 아마 걸어서 중국 돈황을 거쳐 인도 대륙에 도착했을 것이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 더위와 밀림을 뚫고 비행기로도 7시간 넘게 날아와야 하는 이곳 인도의 중서부 지방을 방문했던 것이다.

어제 오전 관람한 아우랑가바드의 엘로라 석굴은 힌두교와 자이나교불교의 혼합된 석굴인데 반해 오늘 본 아잔타 석굴은 불교만의 석굴 사원이었다. 먼저 규모면에서 놀랍고 석굴 내부 사원의 섬세하고 놀라운 조각과 채색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바위를 파 들어가면서 문을 만들고 실내 공간을 만들고 감실을 만들어 조각을 하고 가운데쯤에 불상을 만들고 탑을 조성한 형태이다. 경주 불국사의 토함산 석굴은 참 쉽게 만들어진 불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무슨 연장으로 이 엄청난 규모의 사원을 짓기 위해 바위를 뚫고 조각을 해냈을까? 몇 백 년 동안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조각하는 사람도 대를 이어가면서 조각에 동원되었을 까? 설계도면은 몇 백 년 동안 어떻게 관리되고 전승되었을까?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바위산은 약간 검은 빛이 감도는 암벽이었고, 흙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산에 19세기에 발견될 때만 해도 밀림으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침입과 수백 년 간 정권을 잡은 이슬람권 무굴 제국의 왕들의 압제와 이 나라의 자생종교 힌두교의 방해로 말미암아 불교는 8세기를 끝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잔타 석굴도 발길이 끊어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나무 가지와 뿌리가 뻗어가 동굴의 입구를 막고 비바람에 동굴 내부는 훼손되고 막혔을 것이다. 곳곳에 탱화의 칠이 벗겨진 상태로 미루어보건대 당시 화려했던 내부 구조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현지 사원 해설자가 인도어로 해설을 해주면 우리 가이드가 다시 통역해서 전해주는 설명 형식이었지만 모두들 진지하게 경청했다. 시간 관계상 가장 중심적인 30개의 석굴 사원 중에서 10여개를 관람하고 시간 관계상 아쉬운 작별을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화밭에서는 한창 솜이 터져 나와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고, 사탕수수도 자랄 대로 자라 잎이 무성했다. 가는 도중 들른 주유소에서 소년에게 옆의 노거수나무 열매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마담’이라고 했다. 뒤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알몬드(아몬드)였다. 소년은 나에게 볼펜을 달라고 했으나 지금 사용하는 것 말고는 없어서 아쉬웠다.

아우랑가바드 사람들은 남자들도 아래위 원피스 같은 하얀 옷을 입고 머리에는 흰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목화 생산지이므로 자연스런 일이다. 여자들은 붉고 푸른 색채 있는 사리를 주로 착용하고 이마에는 붉은 점과 귀걸이와 코에도 보석을 끼우고 다녔다.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붉고 표정이 별로 없었다. 인도인들은 도로에 많이 다녀도 교통사고가 없다. 급할 것도 없고 경재심도 없다. 원망과 질투가 없기에 시비나 싸움도 없다. 모든 것을 신이 준 운명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며 산다. 발전은 조금 더디겠지만 그러나 불행하다든지 상대적인 빈곤과 박탈감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호텔로 되돌아오는 길에 ‘프로 존’이라는 쇼핑몰에 들렀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나라 삼성·LG·현대자동차 영업소가 크게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의류와 생필품은 우리나라보다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으나, 이곳 아우랑가바드는 인도에서도 잘 사는 부자 도시라서인지 상당히 고급 상품들이 점포마다 가득했다. 오는 도중 각종 과일이 풍성하게 나오는 그늘 아래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2시 30분 약 3시간 주행 끝에 아우랑가바드 호텔로 되돌아왔다.

12월 11일(수)

7시 정각에 비츠호텔을 출발 아우랑가바드를 벗어나 다시 인도 대평원을 남쪽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약 8시간 정도를 달려 인도의 4대 도시 중 하나인 뭄바이로 향한다. 더 이상 가면 점심 먹을 장소가 없다는 가이드의 말에 출발 4시간만인 오전 12시경 고속도로 옆 간이휴게소의 ‘그린 죠이’라는 음식점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인도 최고의 산업도시 뭄바이

오는 도중에 우리나라 국토순례대행진처럼 깃발을 들고 많은 남자들이 고속도로 옆으로 걸어가고 있어서 물어보니 힌두교 성지가 인근에 있는데 그곳을 가기 위해 순례행진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해주었다.

뭄바이는 약 2천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이다. 1898년 최초로 인도를 발견한 바스코다가마가 아라비아해를 거쳐 이곳 뭄바이에 당도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향신료를 싼 값에 구입하여 자기 나라 포르투갈에 37.5배를 받고 팔았다는 기록도 있다. 인도에서는 가장 넓게 잘 닦인 도로로서 편도 4차선 고속도로였다. 처음부터 이토록 확장된 도시가 아니었든지 인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층 아파트가 변두리부터 많이 치솟아 있었고 기존 도로가 비좁아 교통이 아주 복잡했다. 고층빌딩이 주위의 나무숲과 잘 어울려 전원도시다운 면모였다. 서쪽으로는 아라비아해가 인접해 있는 산업도시로 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나 도시기능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인도에서는 보기 드문 광폭 도로인데도 각종 차량이 빽빽이 밀려다니고 사람들은 신호등이 있으나마나 여기고 있고, 자전거 오토바이와 뒤엉켜 체증을 이루고 있었다. 도심으로 들어올수록 빈민촌과 슬럼화 된 서민 아파트가 많이 눈에 띄었다.

그 복잡한 도로 한 가운데서 빈민촌의 한쪽에 ‘도비가트’(빨래터) 라면서 구경을 시킨다. 우리나라 티브이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뭄바이의 빨래터는 약 1,000여명의 불가촉천민 계층인 슈드라들이 남의 빨래를 주문 받아 흰 빨래를 많이 널어놓은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옛날부터 이 뭄바이에는 어부출신 후손들이 인구의 약 40%정도가 살 정도로 가난한 동네였다. 이 빨래터에서 열심히 빨래함으로써 이 세상의 업보를 풀고 다음 생애에 나은 신분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란다.

다시 차를 타고 아라비아해를 옆으로 끼고 석양 무렵 마린드라이브 해안으로 나가 인도문과 타지마할 호텔을 구경하였다. 타지마할 호텔은 역시 소문대로 아시아 최고수준이며 인도를 대표하는 호텔이라 할 만 했다. 시간을 내어 호텔 내부로 들어가 프론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들러보니 시설과 디자인이 훌륭했다. 2008년에는 파키스탄의 무장게릴라의 소행인 폭탄 테러를 당하여 영국 미국인을 포함한 195여명의 살상이 있고부터는 안팎에서 무장 군인들에 의해 입장객 모두에게 공항 수준의 검문검색이 있었다.

타지마할 호텔 맞은편 해변에는 아라비아해의 해변에 뭄바이를 상징하는 ‘게이트 오브 인디아’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서 멀리 아라비아해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나와서 호수처럼 잔잔한 아라비아해 해변에서 휴식하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니 평화로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밤 8시 공항 인근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여행의 마지막 만찬을 하고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3,40분 걸린다는 공항까지의 길이 역시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도착하고 보니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밤 11시에 도착하여 다른 일행들과는 달리 인천공항을 거쳐 김해로 가는 대한항공 KE 656편에 가방을 탁송하고 탑승권을 받은 다음 탑승 코너로 들어가는 동안 무려 5번의 몸수색과 가방 검색이 있었다. 조금은 번거로웠으나 보안에 철저한 이들의 근무 자세가 이해되었다. 뭄바이발 인천행 비행기는 새벽 2시 30분 출발예정이었으나 30분 지연된 새벽 3시에야 출발하였다.

오는 도중 빵과 커피가 나왔고 오전 7시30분에는 아침 식사가 나왔다. 뭄바이를 출발한지 6시간 20분만인 한국시간 오후 1시에 인천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부산행 대한항공 환승을 위해 환승 출구로 나와 탑승 지역에서 대기하면서 쉬다가 오후 5시 10분 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후 6시에 김해 공항에 내렸다. 이로써 13박 14일의 네팔 인도 북부 여행이 끝났다. 부부 모두 건강과 좋은 날씨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번 여행을 함께한 26명의 일행과 열심히 가이드해준 알람씨에게 건강과 행운을 빈다. 특히 이번 여행을 통하여 많은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대화도 나누며 힘든 여행길이 즐겁도록 배려해 주신 이수연 선생님과 김교수님께 믿음의 형제로서 감사드린다.(2013.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