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클방에서 누가 독후감을 써놨네요...
흥미진진해서 퍼왔습니다.
리히터가 본 동시대 피아니스트들, <음악수첩>에서
글쓴이 서준환 (goblet) 날짜 2006년 4월 22일 2시 23분 추천 12 조회 1422
이틀밤을 꼬빡 새워 브뤼노 몽생종의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이세욱
옮김, 정원, 2005)을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몽생종이 1부에서 대필한 리히터의 일
대기도 흥미로웠지만, 동시대의 예술가들을 바라본 마에스토로의 육성과
마주한다는 의미에서, 리히터가 1970년부터 1995년까지 직접 노트에 기록
했다고 하는 2부의 음악수첩이야말로 이 책의 고갱이일 듯싶습니다.
그 음악수첩에 따르면, 바그너 숭배자요 벤자민 브리튼의 평생지기였
던 리히터는 푸르트벵글러와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피에르 불레즈를 최고의 지휘자라
고 격찬하고 있는데 피아니스트들보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제시 노먼,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마리아 칼라스, 니나 도를리아크 등과 같은 성악가들
에게 더욱 찬탄과 존경을 바
치고 있을 뿐 아니라 좋아하는 레퍼토리에 관해서도 바흐의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바그너나 베르디의 오페라들, 브루크너의 교향곡, 드뷔시의 <바다>, 후고 볼프의
가곡 등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더군요.
그가 동시대의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호감을 표한 대상은 졸탄 코치슈, 데즈 란키,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글렌 굴드
(비록 도돌이표를 지키지 않았다는 유감 표명이 있긴 하지만-리히터는 반복구를 지
키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관해 대단히 까다로운데 이건 저도 마찬가지라 반갑더군요),
엘리자베스 레온스카야,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에밀 길렐스 (그의 인성에 문제 있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등에
불과하며 포고렐리치, 폴리니, 아쉬케나지, 호로비츠,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등에 대해
서는 극도로 매몰찬
혹평을 퍼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서도 아주 엄격하고 냉정한 반성
적 태도를 잃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리의 연주를 듣고 쓸 때는 언제나 비판조로 시작
해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찬사를 보내며 마무리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래는 그가 동시대의 피아니스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밝힌 페이지들 중에서도
흥미로운 대목들만 뽑아 정리해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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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렌 굴드의 연주로 바흐 <파르티타> 1-4번을 듣고 :
글렌 굴드, '바흐의 가장 위대한 해석자'. 그는 자기만의 바흐를 발견했고, 그런 점에서
명성을 누릴 만하다. 내가 보기에 그의 주된 장점은 음색 쪽에 있다. 그의 음색은 바흐
와 딱 어울린다. 하지만 바흐의 음악은 더 깊은 통찰과 더 많은 엄격함을 요구한다. 굴드
의 연주에서는 모든 게 조금은 지나치게 반짝이고 지나치게 외향적이다. 특히 그는 반
복구를 일체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을 용서할 수 없다. 그건 굴드가 바흐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미켈란젤리의 투르 리사이틀에서 베토벤 소나타 A플랫장조 op.26, 슈베르트 소나타
a단조 D537, 드뷔시의 <영상> 일부와 쇼팽 b플랫단조 소나타, 라벨 <밤의 가스파르>
중 '교수대' 등을 듣고:
늘 그랬듯이 나무랄 데가 없다. 독보도 정확하고 기교도 더없이 완벽하다. 다만 느낌이
너무 차갑다.
베토벤-'장송행진곡'의 트리오 부분 연주는 매우 형식적이고 건조하다. 그래서 조포를
연상시키기보다는 희극적인 느낌을 준다.
슈베르트- 이 연주는 무척 마음에 든다. 악보의 정확한 재현이다.
드뷔시 - 이의도 없고 감명도 없다.
쇼팽 - 장송행진곡, 특히 트리오 부분의 연주는 영감에 가득 찬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콘서트 전체에서 단연 뛰어난 대목이다.
라벨 - 드뷔시 연주와 마찬가지.
멋진 연주회. 하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 졸탄 코치슈 리사이틀 (브람스 간주곡 A단조/바흐 평균율에서 전주곡과 푸가 세곡/
모차르트 판타지 c단조/소나타 A장조 등) :
멋진 연주회였다. 졸탄 코치슈는 진지한 음악가이고, 우리 시대의 가장 재능 있는 신세
대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에게서는 자기도취도 아양 부리는 태도도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고자 하는 욕심도 엿보이지 않는다.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그의 고약하고
변덕스런 성격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듯한데도 말이다)
그의 연주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작품 110에 대해서는 찬성
할 수 없는 점이 있다. 그는 나 자신의 연주를 본보기로 삼아 연주했지만, 나는 그의 연주
에서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그는 약간 어두운 표
정을 지었다.
쇼팽의 왈츠는 숱하게 연주되는 곡이지만 더없이 환상적이었다. 그는 이 곡을 나에게 바
친다면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했다.
다른 앙코르곡들 역시 음악가들 (불레즈와 또 다른 음악가)에게 헌정되었다. 앙코르곡을
특정인을 위한 선물로 바꾸어버리는 것은 통례에서 벗어난 일이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 미켈란젤리의 연주로 라벨 협주곡 G장조를 듣고 :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서 오늘은 라벨의 G장조 협주곡을 선택했다. 미켈란젤리의 연주
중 가장 훌륭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이것이다. 이 협주곡의 연주로는 아직까지 그의 연
주보다 나은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미켈란젤리 특유의 차가움이 이 작품에는 오히려 딱
어울린다. 그의 특성이 음악과 전혀 갈등을 빚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감상
한 걸작 음반이다.
-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로 쇼팽 협주곡 1번과 폴로네즈, 마주르카, 즉흥곡, 야상곡 등
을 듣고 :
이 곡들은 모두 강력하고 금속성이 심하게 나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되고 있는 듯하
다. 내가 보기에는 그 때문에 진정으로 쇼팽다운 울림과는 거리가 멀다.
폴리니는 연주 스타일이 힘차고 때로 '영웅적'이기까지 하며 더없이 정확하고 기교가 뛰어
나다. 하지만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최신 유행을 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 마디로 '금속으로 주조된 쇼팽'이다. 그게 과연 진정한 쇼팽일까? 유감스럽게도
이 녹음은 나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하지만 싸늘한 연주다.
- 폴리니의 연주로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소나타 a단조, 유작소나타 등을 듣고 :
a단조 소나타의 첫 부분 연주는 화려하고 매우 통찰력이 있었다. 그래서 멋진 음악의 향
연이 펼쳐지리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제2악장부터 모든 게 약간 단조로웠다. 방랑자 환상
곡과 A장조 소나타도 사정이 비슷했다. 폴리니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프로코피에프나 20세
기의 다른 작곡가들이 쓴 작품처럼 연주한다.
- 데죄 란키의 연주로 쇼팽 연습곡을 듣고 :
란키는 대단히 까다로운 이 연습곡들을 연주하면서 단 한 차레의 실수도 없이 비범한 기교
를 보여주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애석하게도 음악이 희생
되어 그 참맛을 느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단한 기교를 요하는 작품들을 연주
할 때는 거의 언제나 그런 일이 생긴다. 하지만 란키의 연주는 경우가 다르다.
- 사이먼 래틀과 협연한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의 연주로 프로코피에프와 라벨의 협주곡을
듣고 :
가브릴로프의 연주는 1) 기교가 완벽하고 2) 힘차며(때로는 너무 힘차다) 3) 빠르고 (때
로는 너무 빨라서 연주가 명확성을 잃기도 한다) 4) 터치가 강하며 (때로는 그 때문에 음색
이 아름답지 않다) 5) 독창성이 있고 (항상 적절한 것은 아니다) 6) 예술적인 감각(약간 작
위적인 느낌이 들지만)과 호소력이 있다.
그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럼으로써 종종 좋은 결과를 얻는다.
요컨대 개성이 뚜렷하다. 그리고 많은 점에서 나와 가깝다. 이 녹음들은 나를 완전히 만족
시켰다.
- 미켈란젤리의 연주로 드뷔시 <전주곡집> 1권을 듣고 :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지만 분위기가 없는 연주의 또 다른 예다. 내가 보기에는 이 전주곡
집에 반드시 있어야 할 매력이 빠져 있다. 어쨌거나 악보를 광신적이다 싶을 만큼 정확하게
재현한 것은 분명하다. 미켈란젤리는 말 그대로 완벽주의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광신적 태도와 악기에 대한 극단적인 엄격함은 상상력의 비상을 가로막고 작품에 대한 진
지한 애정의 표현을 방해한다. 그래서 작품을 이토록 완벽하게 연주하는데도 '영감'이 결여
되고 마는 것이다. 영감이란 현대의 사전에서 추방당한 개념일까? 그렇다면 참으로 유감스
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 누가 명인을 심판할 수 있으랴.
-이보 포고렐리치가 연주한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6번을 듣고 :
얼마 전에 트빌리시에서 한 '부인'이 우리를 만나러 왔다. 그녀느 릴리 브리크와 찍은 파라자
노프의 사진과 자기 남편인 이보 포고렐리치의 음반을 가져왔다. 음반 재킷에는 연주자의 사
진이 실려 있다. 곱슬머리에 젊고 생기발랄한 남자의 사진이다. '부인'은 그 남자의 선생이다.
그녀는 자기가 리스트의 증손녀라는 얘기도 했다. 피아노 선생이라기보다는 거리에서 과일
이나 채소를 파는 여자 같았다.
나는 음반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 이 또한 프로코피에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연주였다. 연주자는 노출증의 성향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페달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있
었다.
- 미켈란젤리가 연주한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듣고 :
현재 이 곡을 연습하고 있는 터라 미켈란젤리의 녹음을 다시 들었다. 그런데 ... 유감스럽게도
내가 기대하던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모든 게 약간 부자연스럽고 피상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연습곡'이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연주였다. 이런 곡을 연주할 때 기교의 측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조금 더 높은 곳을 지향하고 싶다.
물론 말은 쉽다 ......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 장 필립 콜라르의 연주로 슈만 소나타 3번을 듣고 :
내가 보기에 콜라르는 일급 피아니스트였다. 불행하게도. 나는 나중에 가서 그에 관한 생각을
바꾸었다.
-하이든 협주곡 D장조를 외르크 데무스의 연주로 듣고 :
데무스는 이 곡을 너무나 빠르게 연주한다. (본래의 템포보다 정확히 두 배나 빠르다) 이렇게
템포를 빠르게 잡는 것은 음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 이 독단적인 해석
과 음악원의 타성을 어쩌면 좋은가!
-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의 연주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
나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바이센베르크가 굉장한 일을 해냈다. 축하를 받을 만하다. 이 녹
음은 그의 성실성과 양심과 이 작품에 대한 사랑을 입증한다. 다만 빠른 변주곡들의 말미에서
무엇에 쫓기듯이 서두르고 있다. 그로 인해 바흐의 음악이 훼손된다. 하긴 바이센베르크에게
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 글렌 굴드의 연주로 힌데미트 소나타 1번을 듣고 :
제3악장까지만 들었는데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나치게 멋을 부리고 있고, 템포를
너무 느리게 잡은 대목이 있다. 거드름이 느껴지는 연주다.
- 졸탄 코치슈의 연주로 드뷔시의 <잊혀진 영상>을 듣고 :
뜻밖의 기쁨. 알려지지 않은 드뷔시!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매우 경이롭다! 코치슈는 정말
굉장하다. 이 곡들도 연주하겠다고 나선 최초의 음악가다. 녹음이 아닌 생생한 연주로 전곡을
다시 듣고 싶다.
- 머레이 페라이어의 쇼팽 리사이틀에 다녀와서 :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심하게 긴장했던 탓인지 자신감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사람들 말로는 통역 겸 가이드인 어떤 바보 같은 여자
가 그를 노발대발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거의 모든 곡을 신통치
않게 연주했다. 그가 연주한 쇼팽은 전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B단조 소나타에서 주제 제시부의 반복구를 연주하지 않았다. 내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깜짝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소리쳤다. "아무도 그것을 연주하지 않잖아요." 한술 더 떠서
그는 슈베르트의 소나타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했다.
세상에?!?!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 폴리니의 연주로 쇼팽의 야상곡 가운데 두 곡을 라디오에서 듣고 :
이 쇼팽은 대단한 근육질이다. 우선 모든 게 '포르테'이다. 다음으로 시정이나 섬세함도 없
고(모든 게 더없이 정확하기는 하지만) 즉흥성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영웅주의는 물론
넘치도록 많다. 그런데 이것은 폴리니가 바르샤바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던 시절에 유행하던
'폴란드적 경향'이다. 당시에는 쇼팽을 애국자나 혁명가로 보이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약하다.
-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연주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곡들을 듣고 :
재능이 넘치는 젊은이이다. 소나타는 '나'의 해석과는 전혀 달랐지만 무척 마음에 들었다.
(3,4악장은 제외하고) <아이들을 위한 앨범>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플레트뇨프
는 왜 그렇게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마치 연주를 고문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 같다.
- 아니 피셔의 연주로 브람스 소나타 3번을 듣고 :
아니 피셔는 위대한 예술혼과 진정한 깊이를 지닌 대연주가이다.
브람스의 F단조 소나타는 그녀가 도달한 절정의 연주 가운데 하나다. 틀린 음들이 더러 있
지만 그건 무시해도 좋다 (나를 용서하시라)
-<블리디미르 호로비츠, 마지막 낭만주의자>를 비디오로 보고 :
굉장하다.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한편으로는 대단히 훌륭하다.(...)
음색이 환상적이면서도 모순적이다. 대단한 재능! 그리고 대단히 범속한 정신 ...
매우 친근하고 매우 예술적이면서도 한계가 매우 뚜렷한 사람이다 (그의 작은 웃음소리를
들어보고 그의 모습을 보라)
그가 젊은 피아니스트들(음악가들이 아니라) 의 감성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여러가지로 매우 묘한 사람이다.
'이해심이 많은 여자'임을 자처하는 그 '고약한' 완다는 또 어떤가. 그녀는 그를 도와줄 만반
의 준비를 하고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경계의 눈을 번득인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이보 포고렐리치의 뮌헨 필하모니 콘서트에 참석한 후 :
포고렐리치를 실물로 접했다. 이상하다. 까닭을 잘 모르겠다 ...
그는 자기가 무엇을 연주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세나 태도의 문제라기보
다 신체적인 것과 관련된 문제다.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 기묘한 불균형이 있다. 왼손의 연주는 때로 거의 들리지 않는다. 길게
말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만, 스크리아빈의 소나타에는 곡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반하는 터
무니없는 리타르단도들이 있었다.
쇼팽의 소나타에서는 첫 악장을 피아노의 고난도 곡예를 보여주는 연습곡으로 만들어버렸고
제2주제를 드러내놓고 '포르테'로 연주했다. 그런가 하면 '장송 행진곡'은 템포를 너무 빠르게
잡았고 중간부를 바흐 풍으로 연주했다. (그래도 음색은 아름다웠다) 마으지막 악장에서는
페달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다. 야상곡의 끝부분은 그야말로 웃음거리였다.
참으로 별난 사람이다!
- 에밀 길렐스의 연주로 베토벤 협주곡 4번을 듣고 :
길렐스는 이 협주곡을 매우 진지하고도 베토벤의 특성에 매우 충실하게 해석하고 있다.
기교와 음색의 관점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실망스러운 것은 제1악장의 템포를 너무 느리게 잡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연주가 말랑말랑하고 무기력한 느낌을 준다.
-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연주로 브람스 간주곡을 듣고 :
완전히 실망했다.
표현이 제로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런데 이게 볼로디 아슈케나지란다!
그는 다른 행성에서 온 게 아닐까?
- 호로비츠의 연주로 쇼팽 연습곡들을 듣고 :
이 연주에 대해서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찬성하는 말을 하고 싶냐 하면 그런 것도 전혀 아니다. 이 피아니스트는
정말 대단하다! 손가락들의 움직임이 굉장하다 ...... 하지만 음악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