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의고향 성산면 고탄리
위치: 경북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동)
마을소개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있는 리(里)이다. 마을 뒤로 산지가 있는 농촌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고탄, 쟁골, 봉곡이 있다. 고탄은 조선초 하씨가 개척한 마을로 의봉산 남쪽으로 높은 산여울에 에워싸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쟁골은 조선 선조 때 광산이씨 문종을 모신 경목당이 있었는데 재실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으로 쟁골이라고 불렀다. 봉곡은 마을 뒷산 봉우리가 봉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백과사전에서) 반대편 득성뒤산에서본 고탄리 전경
고탄리가 자리잡고있는 지형을보면 의봉산에서 남동으로 가지를친 칠봉 지맥 임도길따라 오른쪽은 운수면 팔산리 윈쪽은 성산면 용소(신기마을)능선 경계길을 따라 요즈음에 새로지은 팔각정( 일월정) 봉우리에 도착한다여기에서 우측능선 임도길따라 좌측골짜기는 고탄리 (대월)이고. 우측은 운수쪽으로 35분정도 임도따라가면 담밑재 고개를 만나고 고탄에서 운수 넘어가는 2차선 잘포장된 도로을 만난다. 일월정에서본 담밑재와 긴능선
고령군 지방도로 고개 마루에 산길따라농장이있고 좌측은 고탄리 우 측은 기족리 경계능선은 마지막은 성산면소재지 가기전에 88고속도로에서 끝을 맺는다.
다시 일월정에서 좌측으로 조금가면 고탄리 골짜기를 가르는 능선 우측은 대월 좌측은 절골 경계능선은 절골 못뚝까지가서 끝이난다.
이능선 다음능선은 우측은 절골 좌측은 너승골을 경계지우면서 고탄동의 등뼈격인 진등능선이다. 바로 동네 뒤까지가서 마을에 자리를 넘겨준다.
진등 능선 다음 능선은 동네 좌측 경계능선으로 좌측에는 용소 대흥을 경계로 능선 끝은 마지막에 봉곡(鳳谷)리를 사이두고 우측으로 매봉산이 88고속도로을 만나고 좌측은 맛바위에서 88도로와 현풍 여주고속도로 분기점에서 끝을 맺은다
성산면 일월정
고탄리와 대흥. 용소 경계능선
골안 골을 지나가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고탄(高呑)리는 봉곡(鳳谷). 쟁골. 대월(竹洞) 4개의 자연부락을 합하여 고탄리라고 하고 성산면에서 고탄리까지 1.6km거리에 제일 처음 우측으로 200여 m 들어가면 봉곡리마을이있다. 그옛날에는 6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3가구정도사는 외딴 마을이다.
고탄리 들어가는 입구
산모양이 매가 날르는 형상을하였다고 매봉산이고 마을이름도 봉곡이라고하였다고한다.
봉곡리 전경
이제 봉곡리를 나와 고탄마을들어가는 길은 그옛날 개울 방천따라 난길 큰비만오면 방천길이 떠내려가 학교도못가고 물구경하던때가 생각나는데 지금은 매봉산밑으로 2차선 도로 가 시원하게나있다. 좌측 기밀 들 잘경지정리가된 옥답이였는데 지금은 산업화의 물결타고 공장이 들어서 공단이 되어있다. 마을 입구 정자나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푸르름을 더하면서 나를 반긴다.학교에서 집에갈적에나 나들이후 돌아올때 꼭한번 들려서 쉬어가는장소로 동리 당산나무인 느티나무 참 추억이 많은 나무다.
쟁골이다. 재골이라고도하는 이마을에는 동네뒤에 광산 이씨 묘소와 재실이 있어 그래서 마을 이름도 쟁골 이라고한다고한다. 광산 이씨들이 많이 살고 고탄에서는 두번째 큰마을이다. 지금은 20호 이내로거주하고있다.
쟁골 입구 에서본 전경
동회관이다. 고탄리 마을 입석이 서있고 동회관 건립 비가서있으며 마당에는 팔각정 정자도있다.
동민 1 동민 2 동민 3
재미있는 지명들
동회관 우측은 뒤골이란 지명을갖고있는 작은 골자기 왜 동네 앞인데 뒤골이라 했을까. 아마 쟁골에서 부르던것이 그렇게 된것같다. 광산 이씨 한집과 뒤에 그집 농토만 있다.
동산 : 마을에서 좌측에 작은 봉우리로 산이라기보다 작은 봉우리인데 묘지와 묵은 밭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뒤에 뒤 개울이란 골짜기 어릴때 소먹이는 골짜기로 유명하다
새빛등: 아침에 해가 제일 먼저 비춘다고해서 그렇게 부른것같다.
애미등봉 : 그능선 위에 봉우리 우리마을에서 제일 높고 대흥리와 경계이고 우리가 어릴적에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 장소로 동네에서 달집을 짖고 달불놀이를 하던곳이다
너승골(谷 ) : 우리마을에 3번째 큰 골짜기로 작은 저수지가있고 밭과논 이 반반정
십이지장골 : 애미등봉과 방아등봉 사이에 형성된 계곡으로 골이 깊고 숲이 울창하다.
방아등봉 : 봉우리 능선이 하나로 내려오다가 중간지점에서 둘갈래로 나누어지는것이 디딜방아 모양을하고있다. 용소(창리)리와 경계로 되어있고 애미등봉보다 조금 낮고 창리 사람들의 달불놀이 봉이다.
큰 개울 : 너승골 제일 안쪽 좌측에 있는골짜기로 동네에서 두 번째 깊은 계곡으로 산 정상부근에 어곡의 서씨 의 농장이있고 경운기는 올라갈수있는길과 전기도 가설되어있다
진등 : 동네의 등뼈 역할을하는 긴능선으로 너승골과 절골을 경계지우고있다
절골 : 지금은 없지만 그옛날 절이있었다고 절골이라한다. 우리 마을에서 최고로 큰 골짜기로 저수지가있고 못밑에 논은 최고의 옥답으로치고있다 저수지 위쪽에는 60 - 70년대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절골 마지막 골짜기까지 토지를 개간하여 경작하고 산밑에까지 밤나무 . 뽕나무등을 심어 소득증대에 이바지하여 지금의 잘살게한 토지들이 지금은 대부분 묵전으로 변해있다.
분두골 : 저수지 바로아래 우측 진등 기슭 고령김씨들의 종중 산소가있는 산으로 지금도 그아래 김씨 후손들의 토지로 이루어져있다. 공동묘지 : 저수지 위 약간 위에 우측에 있는 동네 산으로 일제시대에 조성되어 동네 누구나 묘를 쓰는산이였는데 지금은 묘지쓸 공간이없다. 불탄골 : 강씨묘을지나 우측으로 난 골짜기로 그옛날에 산불이 난것이지유래는알수없다.
삼백골 : 크고 작은 골짜기가 삼백개나된다고해서 삼백골이다.
너븐등 : 절골의 제일 안쪽 골짜기를 마감하는 능선으로 산을 넘어가면는 용소리 신기로 이어진다.
동네골 음달 : 아마 그옛날에 이곳에 동네와 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고탄 마을에서 제일 깊은 골짜기로 산봉우리에 성산면 일월정 팔각정자가있다.
상여집 : 저수지 조금위쪽에 지금은 없어지고 빈터만 남은 상여집은 동네 상포계에서 상여를 만들어 대여해주고 이곳에 보관하여 왔는데 그이후 가벼운 꽃 상여에 밀려 찾은 사람이없어 저절로 사라지고없다.
강씨묘 : 공동묘지 약간위에 강씨묘란 조금만 휴식터가 하나있는데 강씨묘는 없고 단양우씨 묘소가있는곳인데 그옛날 농사 짐 운반과 나무짐. 소풀먹이로 오며가면서 쉬어가는 유일한 장소이고 들일하다가 점심이나 중참을 먹는 추억의 만남의 광장이다.
대월(竹洞): 고탄리 4개의 자연부락중에 마지막 한때는 6가구가 오손 도손 마을을 지키면서 아래 큰동네에 1개의 반으로 위세를 떨치기도 하였지만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고 나이드신 어른들은 돌아가시자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은 빈집만 3채정도있고 외지에서 어느 업자가 온천개발이 한창이다. 배암등 : 대월골짝 깊은골짜기가 꾸불꾸불 뱀같이 생기고능선이 길다고 뱀등이라고한다.
담밑재 : 고탄에서 운수면 팔산 넘어가는 군도 왕복 2차선으로 포장이 완료된 도로이다. 그아래 개곡을 담밑 개울이라한다.
밤지등 : 담밑재에서 능선따라 우측은 기족리 좌측은고탄을 경계로 마을 우측 개울건너 옛날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지 그산 봉우리를 밤지봉이라고한다. 개울건너 옥답은 지금 공장이 들어서 논공 공단이 되어있다.
마을 소개를 마치면서 위에 지명들은 저의 선친에게듣고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모아 풀어본 이름들이라 유래는 정확 하지는 않습니다. 더 자세한 지명유래를 아시는 분들은 연락주시면 수정또는 추가 하겠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 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고탄리 핫이팅!!!!!!!!!
메일 주소 wo3641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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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새 의 하루 원문보기 글쓴이: 산새
첫댓글 어릴적 소 풀먹이러 다니던 골짝골짝을 기억나게 합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소개해줘 무척이나 고맙습니다.선배님 오늘따라 고탄에서 테어난것이 자랑스럽네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