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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담 / 본지 편집주간 임 애 월
번개와 벼락의 춤사위, 그리고 신화적 상상력
박 현 솔 시인
- 2020년 봄... 어수선한 시간을 뚫고
박현솔 시인님을 만나러 제주도 성산포에 왔다
언제나 당당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일출봉
그 너머로 짙푸른 바다 한 무리 달려온다
바다처럼 눈매가 깊은 시인님도 사뿐하게 다가오신다 -
임애월 : 박현솔 시인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제주도에서 만나니 더 반갑네요. 고향에 사셔서 그런지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웃음)
박현솔 : 네, 안녕하셨어요? 한 달 전 행사 때 뵈었는데 늘 열정적이신 선생님의 모습과 언제나 묵묵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계시는 것도 너무 보기가 좋습니다.
임애월 : 에구구.... 칭찬 맞나요? 암튼 고맙습니다.(웃음)
제주도는 언제 와도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어느 바닷가에나 그냥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되거든요.
박현솔 : 네,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바다가 다르게 보이는 걸 저도 요즘에야 느끼고 있어요. 빛에 따라서, 구름이나 안개가 깔리는 것에 따라서 바다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것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임애월 : 여기 성산포가 시인님 고향이지요? 익숙해서 조금 둔해지셨을 수도 있겠지만 성산포는 정말이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와우~ 저 바다 표정 좀 보셔요.
박 시인님께서는 날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피부로 느끼면서 사셔야 해요.(웃음)
박현솔 : 네, 성산포는 제 고향입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와서 그런지 성산포의 풍경이 좋아 보이고 고향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제 시의 뿌리도 여기에서부터 뻗어나갔음을 알겠더라고요.
임애월 : 어련하시겠어요. 저기 보이는 저 섬은 우도가 맞지요?
시인님에게 섬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저는 기어이 탈출해야 하는 감옥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었거든요.(웃음)
박현솔 : 네, 우도는 제 아버지의 고향이에요. 저기에 할머니께서 살고 계셔서 어릴 적에는 할머니를 뵈러 우도에 자주 가곤 했어요. 그 당시에는 우도에 수도시설이 없어서 빗물을 받아서 빨래를 하고 식수로도 사용하는 것을 봤어요. 그땐 할머니가 용돈을 주시면 동생과 나누는 맛으로 자주 놀러가곤 했지요.
저에게 섬은... 들여다보고 싶은 기억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임애월 : “들여다보고 싶은 기억”이요? 역시 시인다운 답이십니다. 섬에 대한 애정도 참 많으신 것 같고요.
성산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셨나요? 시인님의 어린 시절은 어떤 소녀였을까... 궁금합니다.
박현솔 : 어릴 적의 저는 조금은 소극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백일장을 시작으로 숨어있던 문학적 감성이 촉발되었는지 3년 동안 거의 모든 글쓰기 대회를 휩쓸었지요. 그때 저는 ‘나한테도 이런 재능이 있구나’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중학교에 가서는 글보다 공부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3년 동안 공부에 신경을 썼고 제주 시내에 있는 고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시골에서 도시로 가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시에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문학적 감성도 다시 살아나게 되었어요. 2년 동안 공부는 뒷전이었고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외국시인들의 시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고, 문학서클 활동을 하며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어요.
임애월 : 맞아요. 고교 때 문학(서클)에 빠지기 시작하면 입시공부가 뒷전이 되기도 하였지요.(웃음)
박현솔 : 그러다가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을 했고 어른들의 걱정에도 마침표를 찍었답니다. 그렇게 격랑에 나부끼던 제 사춘기는 공기가 다 빠진 풍선 같이 후줄근하게 종료가 되었어요.(웃음)
임애월 : 그러게요... 어째 사춘기가 좀 맥이 빠지게 끝났네요.(웃음)
시를 본격적으로 쓰시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박현솔 : 1994년에 직장을 다니면서 다시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 제주도에는 여러 문학 모임들이 있었는데 저는 오승철 선생님이 계시던 시조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써간 시를 보고 오승철 선생님이 내 시는 시조보다 자유시에 가까우니 다른 모임을 추천해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소개를 받은 또 다른 모임이 ‘다층 동인’이었어요. 다층 동인들은 그때 윤석산 선생님 휘하에서 한창 계간지를 창간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기존에 함께 있던 동인들은 중앙의 신춘문예나 계간지 등에 원고를 투고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일 년 정도 동인들과 공부를 한 뒤에 시험 삼아서 제주신인문학상에 원고를 투고해 보았어요. 그때 당선이 되어서 상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식물도감을 샀던 기억이 있어요.
임애월 : 네, 그러면서 신춘문예에도 응모를 하신 거로군요.
박현솔 : 동인들이 거의 등단을 하고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을 보니 저도 본격적으로 등단 작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주에 있는 《한라일보》에 작품을 투고했어요.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12월로 막 진입하던 시기였는데 당선 소식을 듣고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 발표 지면이 여의치 않아서 다시 월간 《현대시》로 재등단을 하게 되었어요.
임애월 : 등단 초기에는 문예지 작품발표가 아무래도 손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 당시 시인님 주변의 문단 분위기는 어땠나요?
박현솔 : 등단을 하고 나서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다층 동인들과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어요. 그리고 대학원에서 만난 이순현 시인과 시에 대한 좋은 얘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2001년에는 동국대 석사 지도교수님이시던 홍신선 선생님과 인연이 닿았고, 2004년도에는 아주대 조창환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렇게 등단과 공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면서 문학적 열정을 맘껏 펼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푼 날들을 보냈어요.
임애월 : 네, 문학수업과 등단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으니 더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셨겠어요. 그러면 첫 시집 달의 영토는 등단한 지 몇 년 후에 나온 셈인가요?
박현솔 : 2006년도에 첫 시집이 나왔는데 등단 후 7년 만에 시집을 냈던 것 같아요. 그때에도 편수가 모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오래 걸렸을 거예요. 저는 평소에 시를 많이 쓰지 못하고 양보다는 완성도에 많이 매달리는 편이라서 더디고 그와 함께 성격도 느긋한 편이에요.
모두들 잠든 시간, 서늘하게 걸려 있는
저 달은 우주로 귀환하지 못한
영혼들의 오랜 영토가 아니었을까
남겨진 이들이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갈라진 논바닥처럼 가슴이 타들어갈 때,
달에 스민 영혼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상을 내려다본다, 저 영토에도
개울이 흐르고 새가 날고
창백한 영혼들이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
지상에서의 한때처럼 둥근 숟가락질을 하겠지
먹구름이 달의 주위를 감싸고돈다
사자死者들의 영토에 밤이 도래한다
창가를 비추던 달빛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기억을 쓸던 달빛도 순간 사라지지만
내 기억 속 한 사람이 상흔처럼 되살아난다
그는 지금 저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지만
한때 그의 중심에 박아놓은 수많은 옹이들
이젠 어떤 참회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 안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힐 때까지
달의 안부를 오래도록 묻고 있다
- 「달의 영토」 전문
임애월 : 선뜻 지구를 버리지 못해 “우주로 귀환하지 못한/ 영혼들”이 밤마다 달 속에 앉아서 지구를 그리워하고 있어서 밤마다 달빛은 아련한가 봅니다.
박현솔 : 달을 보면서 저곳도 하나의 영토라고 했을 때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시에요. 살아있는 자들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지만 너무나 지상을 그리워한 존재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그 어디에도 갈 수가 없으니 중간지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때 지상과 천상을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존재들의 심정을 형상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임애월 : “어떤 참회로도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달의 안부를 오래도록 묻고 있”는 지구상의 화자도 서늘한 달그림자처럼 참 애달파 보입니다.
박현솔 : 지상에서 맺은 인연들이 시간이 다해서 소멸한 후에 남겨진 자들의 마음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망자에게 던진 상처의 말들이 아닐까 싶었어요. 저도 우도에 계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을 보면서 모진 말들을 했는데 그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어요. 그때 왜 제 눈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관계가 많이 껄끄러워 보였을까요?
임애월 : 전통사회에서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는 고부간의 갈등이었겠지요... 어린 눈에도 그게 보였나 봅니다.
저는 달의 영토에 실린 작품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걸 감춰둔 눈물이라고 읽었어요. 이 시집 해설에서 홍신선 시인은 ‘세계의 완강함과 그것들이 내장하고 있는 폭력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삶의 신산함이나 애환 등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면서 ‘박현솔의 시들은 질척거리는 감정의 유출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애환의 냉철한 객관성을 한 꺼풀 벗기면 질벅한 눈물자국들이 보이거든요. 시대의 잣대로 봤을 때 온전치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 무표정을 가장하고 언술하고 있지만,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슬픔의 덩어리들이 온전하게 보입니다.
박현솔 : 첫 시집 달의 영토는 제 유년의 기억들과 무의식을 끌어올려서 햇볕에 평편하게 널어놓은 슬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닷가에는 우뭇가사리가 많은데 저도 어릴 때 햇볕에다가 그것을 많이 널어봤거든요. 제주 여인이신 선생님도 그 작업들을 해봐서 동향의 시인이 갖는 특유의 시적 감성을 알아보신 것 같네요.
긴 도시의 강을 업고 온 안개의 발바닥이 너덜거리고
미세한 혈관들이 터져 얽혀 있던 길들이 쏟아지네
안개의 발밑 평온해 보이는 강물 속에
먼 곳에서 흘러든 부음들이 하나 둘 젖은 몸을 뒤척이고
사람들의 검은 울음이 불씨를 숨긴 채 꺼져가네
나는 안개에 떠밀려온 깊은 물소리를 듣고 있네
오래전 강가를 떠돌던 사람들에게
물소리 외피를 벗겨 물결의 안부를 띄우네
누군가 던져 넣은 슬픔 속으로
안개의 발이 빠지는 것을 보았네
안개의 검은 발바닥을 보았네
- 「안개의 발바닥은 왜 검은가」 부분
임애월 : 저는 바닷가에서 한 2Km쯤 떨어진 중산간 마을에 살아서 제주도 어촌의 정서를 오롯이 느낄 수는 없었지만, 같은 영토(?)의 주민으로서 정신의 기저에 내장된 집단무의식 같은 동종의 슬픔에 빠르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이 시에서처럼 “검은 울음의 불씨를 숨긴 채 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누군가 던져 넣은 슬픔 속으로” 함께 깊숙하게 “발이 빠지는 것”이 보이니까요.
박현솔 : 도시가 가진 화려함과 상처받은 사람들의 사연이 강물 속에서 함께 얽히는 장면이 이 시의 출발점이에요. 섬 출신인 제가 도시에서 느꼈던 것은 매연과 밀집된 인구와 치열한 경쟁 같은 조금은 부정적인 것들이었어요. 그것은 수평선 너머로 꿈꾸던 이상적인 곳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 약값을 위해 소를 팔던 날
외양간 나서는 소의 깊은 눈망울 앞에서
후줄근한 몸빼 차림의 어머니가 휘청거린다
다음 생엔 네가 내 주인이 되어 만나자꾸나
자꾸만 머뭇거리며 고삐를 넘겨주지 못하는
제 주인의 마음을 읽었는지
어미 소가 어머니의 손등을 핥아준다
고삐를 잡은 손이 위태롭게 허공을 향한다
- 「말뚝에 대한 기억」 부분
임애월 : 이 작품에서도 “제 주인의 마음을 읽었는지/어미 소가 어머니의 손등을 핥아주”는 구절에서 이별의 근저에서 솟아오르는 뼈아픈 눈물을 읽었어요.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은 신산하고 고단한 삶의 과정, 그 중에서도 가장 아프게 견디어내야 하는 일이잖아요.
박현솔 : 어릴 적에 집에서 키우던 소를 팔아야 했는데 그것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가 30대가 되어서 시로 형상화 되었으니까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세상에 나온 시였지요. 그 당시 성산에는 초지가 많지 않았고 일출봉 안의 분지가 그나마 소들이 먹을 풀들이 많이 자랐어요. 아버지가 소 세 마리를 일출봉 안에다 방목해 놓아서 우리 가족은 일출봉까지 물을 주러 다녔는데 초등 3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거의 매일을 다녔어요. 작은 몸에 그만한 물통을 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 걷고 있으면 정상을 향해 오르던 관광객들이 대단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곤 했지요. 그땐 그게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웃음)
임애월 : 어렸으니까요. 그리고 섬이라는 중심으로부터 떨어진 지역이 주는 열등감 같은 것도 아마 있었을 거예요. 자꾸 대입하게 되는데요. 저는 어릴 때 제가 살던 산간마을은 바닷가마을보다 못하다는 이상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었답니다.(웃음)
그런데 박 시인님 외모만 보면 부잣집 외동딸로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데...
소한테 물을 주러 그렇게 험한 길을 다니기도 하셨다고요?
박현솔 : 제 또래 아이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해녀이신 어머니가 바다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해산물을 손질하러 가기도 하고, 밭일도 도와드리기도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하기도 하고, 물통을 지고 일출봉을 오르기도 하고... 그래도 어른들이 보기에는 성에 차는 도움은 아니었을 거예요.
임애월 : 아이구나~ 참말로 착한 어린이였네요. 해녀의 딸로 태어났으니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두 번째 시집 해바라기 신화는 제주의 신화들을 탐구하고 형상화하셨는데 그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박현솔 : 제가 등단 후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때 공부하면서 제주에 신화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주 신화를 찾아보고, 읽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제주신화를 시로 쓴 것이 있나 없나도 찾아보았지요. 다행히(?) 제주 시인들이 아직 건드리지 않은 미개척지였어요. 그래서 제가 기쁘게 제주신화를 시말화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임애월 : 네, 아주 잘 하셨네요. 신들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제주는 18,000의 神들이 산다고 하지요? 그야말로 신들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어요.
박현솔 : 제주신화를 읽어보면 어릴 적에 들었던 신화도 여럿 있었고, 들어보지 못한 신화들도 꽤 있었어요. 전 세계에서 신화가 많기로는 제주도가 몇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해요. 마침 제가 그 즈음에 두 번째 시집을 기획하고 있었거든요. 일부러 찾아서 읽은 제주 신화들 중에서 시적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뽑는 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되었어요.
임애월 : 토속문화인 제주신화를 시의 세계로 끌어내는 작업은, 제주만의 고유한 정신문화의 폭을 넓히고 재생산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유독 신들이 많은 이유가 단순히 자연환경 때문일까요?
박현솔 : 인간은 이성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의 세계와 근거 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신화(Myth)의 세계에 함께 속해 있어요. 인간이 이성적인 사회체계를 벗어나서 제한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그 체계를 버리고 자신만의 비이성적이고 신화적인 상상력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 입장에 놓이게 되면 소통은 불가하게 되고 자신만의 상상에 의존하여 신화적 요소들을 따라가게 되지요. 이러한 수많은 비이성적 체계가 각각의 믿음으로 수많은 신화들을 만들어가는 것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을 때 더욱 가속화되는 특징이 있어요. 그렇게 개별적인 신화들을 만들고만 있다가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서 공통적인 신화적 요소들을 짚어내게 되면서 현대의 신화 연구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주의 자연환경이 그 많은 신들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되지요.
제주 주년국에 살았다는 소사만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렵게 산 사만이가 장가를 들었지요. 능력이 없었던 그는 아내의 머리까지 잘라야 했지요. 그의 부인은 비단결 같은 머리를 자르면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지요. 천성이 착한 남편이 머리를 판 돈으로 양식 대신 총을 사들고 왔을 때, 그녀의 가슴엔 먹구름 드리우고 사나운 바람이 불었겠지요. 그래도 아내는 남편을 이해했지요. 사냥에 미쳐 산천을 쏘다니며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에도,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에도 그의 지친 발을 어루만져줬지요. 남편의 사나운 잠을 어루만지는 아내, 들짐승과 산짐승에 쫓겨 벼랑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해바라기처럼 그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지요. 남편이 주워온 해골을 날마다 닦고 문지르며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고, 그 정성으로 가세는 불같이 일어났지요. 고방에 놓여있던 해골은 신선이었고 곧 저승 차사들이 잡으러 올 거라고 귀띔을 해주었지요. 부부는 놀라 온갖 정성을 다해 차사들을 대접해서 보냈고, 한 상 거하게 얻어먹은 저승 차사들이 그들의 정명을 삼십이 아닌 삼천으로 고쳐주었지요. 三十에 획 하나를 더해 三千이 되었다는 장난 같은 운명, 사소한 삶에서 운명을 엮은 사람들,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가 고방 속에 감춰져 있었지요.
- 「해바라기 신화-멩감 본풀이」 전문
임애월 : 이 신화에서는 남자인 서사만이보다 그의 아내가 더 현명하게 그려지고 있는데, 제주여인들은 예로부터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능동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가만히 앉아서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활동적으로 무엇인가를 향해 주도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분명 있었던 거 같아요.
박현솔 :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 두 분의 성 역할이 바뀐 부분이 많았어요. 해녀이신 어머니가 바다로 물질을 나가시면 아버지는 집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아이들을 챙기는 역할을 하셨어요. 그리고 추위에 떨다 올 아내를 위해서 군불을 지피셨고요. 물론 아버지도 어부고 거친 바다와 싸우던 시간이 많았지만 아내가 생활전선으로 뛰어들면 아버지도 그에 맞춰서 세심하게 보조를 맞춰주었지요. 그래서 저는 세상의 남편들이 모두 제 아버지 같은 줄만 알았어요.
임애월 : 아하, 해변마을이니 그런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겠지요. 물론 우리 산간마을에도 간혹 그런 아버지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성향의 아버지를 참 특이한 분이라고 생각하긴 했었어요.(웃음)
음력 2월 초하루부터 영등굿이 시작되었을 텐데요. 저도 몇 년 전에 칠머리굿당에서 영등굿하는 것을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굿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구슬퍼지더라고요.
박현솔 : 아, 그러셨나요?
굿은 여러 명의 무당과 악공이 가무와 실연(實演)을 위주로 제의를 하는 경우와 한 사람의 무당이 신에게 간소한 제물을 바치고 가무 없이 앉아서 축원을 위주로 하는 약식 제의가 있어요. 선생님이 보신 그날의 영등굿은 가무와 실연이 없이 축원을 비는 굿이었나 봅니다. 또는 영등굿이 바다에서 죽은 영혼들에게 바치는 의미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셔서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고요.
임애월 : 내용도 그렇지만 무속인이 부르는 주술적인 노래 있잖아요. 그 가락이 왠지 너무 애달팠거든요.(웃음)
영등굿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면서요?
박현솔 : 네, 2009년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어요.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과 바다의 신인 용왕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를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진행하고 있어요. 올해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행사 규모를 축소시켜서 진행한다고 해요.
임애월 : 에구~ 그놈의 코로나19가 많은 부분들을 제약받게 하는군요. 영등굿의 주빈인 영등할망은 제주의 터줏신이 아니고 바다 건너 외방에서 영등 달에만 오는 바람의 신이라고 들었어요.
박현솔 : 영등신은 본래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박이섬’의 신인데 이 나라에서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제주도로 찾아왔다가 2월 15일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요. 영등신이 제주도 동쪽 끝에 있는 우도로 들어와서 섬을 돌며 바다에 미역·전복·소라 등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려서 번식시켜준다고 하네요.
임애월 : 외눈박이 나라... 다시 들어도 정말 오감이 쫄깃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저도 어릴 때 어머니께 ‘자청비’나 ‘감은장아기’ ‘토산뱀’ ‘오백장군’ ‘이어도’ ‘김녕뱀굴’ ‘산방덕이’ 등의 설화를 들으며 자랐어요. 무당도 아닌 저의 어머니께서 실감나게 구연해주실 때는 그야말로 이야기의 가운데로 들어간 것처럼 정말 소름이 돋기도 하고 더러는 실망에 빠지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웃음)
박현솔 : (웃음)제주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신화적 이야기에 노출되지 않기가 더 어렵지요. 같은 이야기들을 공유하면서 성장한 제주인들이 비슷한 성향을 지니는 것도 모두 그런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임애월 : 이렇게 맑은 바다를 사방에 두르고, 그렇게 많은 신들이 지켜주는 제주는, 또 한편에서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축복받은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현솔 : 제주의 신화 속 신들은 굉장히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요. 때로 신들이 행하는 행적들이 놀라울 때도 있지만 인간 세상의 선과 악, 부조리, 도덕과 규범들이 함께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그게 바로 제주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족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해주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해주는 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것 같아요.
임애월 : 신들은 대부분 다 인간적이지 않나요. 그리스 로마 신들도 그렇고요.(웃음)
제주도민이면 누구나 신화에 관심은 있겠지만... 제주신화를 주제로 작품을 몇 편이나 쓰셨는지요?
박현솔 : 두 번째 시집 해바라기 신화 1부에 제주신화가 35편이 실려 있고 2부에는 현재의 제주 신화의 기억들이 제 삶에 어떤 방식으로 간섭하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형상화하거나 노래하고 있어요. 과거의 신화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되살아나는 상상력이 무척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임애월 : 네, 상상 속 나라를 휘젓고 다니셨으니 얼마나 재미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제 예상했던 것보다 작품 수가 더 많은데요. 대단합니다.
박현솔 : 제주신화를 제대로 공부하신 분들이 보면 뭐라고 하실까요. 제주신화 시편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어서 독자들이 제주신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시집을 내려고 준비하는 기간 동안 시집 전체를 순수하게 제주신화로만 채울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러면 현재의 시간을 사는 독자들이 제주신화를 과거의 시간 속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2부에는 신화와 연계된 현재 나의 이야기를 써서 그 공백을 메우려고 했어요.
임애월 :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제주 고유의 토속신앙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모습 때문인지... 이 땅의 시인으로서, 제주인으로서 오늘따라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십니다.
박현솔 : 제주를 떠나서 20년 넘게 살다보니 고향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던 게 사실이에요.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제주 신화와 4‧3의 역사까지 모두 제 시의 자양분이 되고 있었으니까요. 저에게 온 영감을 시적 언어로 옮겨놓는 작업을 했을 뿐이고 이제는 사물과 세상을 대하는 눈이 좀 더 깊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번개를 맞아 까맣게 타버린 나무. 전율을 느낀 영혼은 몸이 들리던 순간에 몰두한다. 음악이 어두워진 몸속을 흘러 다니고 주름들이 물결을 만든다. 풍랑이 일고 너울이 거세진다. 주름들이 활짝 펼쳐질 때, 어떤 간구는 신에게도 감동이다.
고대 원주민들은 태어나거나 결혼할 때, 생을 마감할 때 춤을 추었다. 존재가 성숙해지는 것은 신의 은총이다. 고기를 잡으러 갈 때와 씨를 뿌릴 때에도 춤을 추었다. 존재를 먹여 살리는 것 역시 신의 은총이다. 강이나 들판이 숙성되는 동안 박자도 느리게 흘러간다.
가뭄이 들거나 부족 간에 전쟁이 벌어질 때 전사의 후예들은 춤을 추었다. 존재가 심약해지는 것은 신의 소관이고,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질 때까지 둥글게 모여 춤을 추었다. 신을 경배하기 위해 춤을 추고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춤을 추었다. 붉은 칠을 한 전사들의 화려한 몸짓은 생명의 지속을 갈구하는 춤.
이전의 춤은 부족원에게 자랑스럽게 전승됐지만 오늘날 청춘들은 불안과 우울을 견디기 위해 춤을 춘다. 태양과 달의 주기를 벗어난 운행으로 자유로운 몸짓들. 간절한 기원과 간구를 담을 수 없다. 비트와 욕망이 풀어내는 춤. 세상의 모든 나무와 들판을 다 태우고도 성에 차지 않을 번개와 벼락의 난무.
어떤 춤은 하늘을 머리 위에 내려놓아도 무겁지 않고, 땅을 딛고 있으면서도 자유로우며, 경계 없이 어울려도 예의바르며, 우주를 어지럽게 가로질러도 난폭하지 않다. 그것은 나무의 춤이고, 별의 춤이고, 우주의 춤이다. 이런 춤판엔 신도 가끔 어울리신다.
- 「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 전문
임애월 : 세 번째 시집 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 얼마 전에 묶으셨지요? 김광기 시인은 이 시집 해설에서 ‘집단에서 개인으로 개인에서 다시 집단으로 회귀하면서 욕망을 다 풀어내면서도 모든 인간과 함께, 춤판을 관장하시는 신까지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해법이 있을 것이라는 집단 성찰을 희구하’고 있다고 했지요. “번개와 벼락”이 치는 일마저도 그것을 어떤 “춤”이라고 규정할 만큼 인간과 자연이 한 데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춤”은 매우 중요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읽히는데요, 인간에게 춤은 무엇일까요?
박현솔 : 춤은 인간 존재의 기원과 간구를 춤의 형식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춤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과거의 춤이 신의 섭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것이었다면 요즘의 춤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는 약간 교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임애월 : 개인주의가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하하
박현솔 : 번개와 벼락의 춤은 인간들이 좀 더 주위를 살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어요. 그렇게 되면 신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겠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임애월 : 그러고 보면 기쁠 때보다 슬프거나 괴로울 때 춤으로 그 감정을 풀어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살풀이춤도 있듯이 한이 깊어도 춤으로 풀어내잖아요.
“고대 원주민들은 태어나거나 결혼할 때, 생을 마감할 때 춤을 추었다” 는 구절에도 있듯이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은 지금도 장례식에서 3일 동안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고 합니다.
박현솔 : 삶의 모든 순간을 춤을 추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춤이 끝날 것 같은 죽음의 순간에 타자들이 나의 죽음을 애도하며 춤을 추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삶과 죽음을 잇는 춤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육체의 소멸이 끝이 아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춤은 현실과 초월적 세계를 잇는 그 어떤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애월 : 그러네요. 가장 원시적이고 본능적 표현예술인 춤은 “기원과 간구”를 위한 아주 간절한 도구인 것 같네요.
박현솔 : 네, 생의 모든 순간을 위한 기원과 간구가 춤이 되고 그것으로 공동체의 무의식적인 부분들을 채워갈 것 같아요. 어쩌면 무당의 굿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종의 춤이라고 할 수 있고요.
임애월 : 네, 그래서 인간과 신의 중간자인 무속인들도 춤으로 두 세계를 연결하려 하는가 봅니다.
뭍과 섬을 오가던 고깃배들이 파도에 출렁인다. 섬의 안쪽에 높이 솟아오른 일출봉. 그 아래에 동굴들이 뚫려 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어 준 곳. 군인들을 피해 동굴에 숨어있던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와 해초로 목숨을 연명하는 동안 파도는 수시로 동굴 안을 엿보았다.
밀고자는 가까이에 있었다. 동이 트기 전 아이들 울음이 속사포로 터지기 전까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그날의 폭죽놀이. 마을 사람들이 체포되는 동안 구름은 태양을 붙들어서 시야를 희뿌옇게 만들어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체포되고 난 뒤에야 바다 위를 비추는 태양.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줄 세워서 해안가로 끌고 간다. 모래 위에 걱정과 두려움을 줄줄 흘리며 끌려가는 사람들.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들은 어디로 가는가. 점점이 덧씌워져서 지문이 다 닳아버린 발자국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움푹 파인 모래 속으로 파도가 달려들어 떨고 있는 발목들을 자르고 도망간다. 갈매기들이 마을을 향해 끼룩거린다.
해안가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고 군인들이 멈춰 선다. 뭔가를 예감한 멸치 떼들처럼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도망치지만 거세진 물살은 옴짝달싹 못하게 사방을 조여 온다. 수백발의 총성이 울리고 수평선이 형체도 없이 일그러진 후에 그물 가득 잡힌 멸치떼들.
마을 사람들은 바다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함께 밭일을 하고 그물을 걷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곳. 빨갱이는 태양을 가리키는 이름일 뿐. 일출봉은 아침마다 붉은 울음을 토해내고 수평선은 참담히 표정을 고친다. 봄마다 붉은 울음이 터져버리는 터진목. 번져오는 슬픔이 뭍을 향해 길을 내고 있다.
- 「붉은 울음, 터진목」 전문
임애월 : 가슴 아픈 이야기를 꺼내야겠네요....
“터진목”은 4‧3때 성산포 주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곳이라고 들었어요. 저기 보이는 저쪽인가요?
박현솔 : 네, 저기 성산일출봉에서 좌측으로 보면 '육지와 섬 사이에 모래가 쌓인 퇴적 지형을 볼 수가 있는데 해안가를 따라 길게 뻗어간 저곳이 터진목’이에요. 그곳에서 성산포 일대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학살을 당했어요. 터진목에서는 일 년 내내 큰 파도가 치고 바다 색깔도 짙푸르러서 날씨가 흐릴 때에는 서늘한 기운마저 감도는 곳이에요.
임애월 : “수백발의 총성이 울리고 수평선이 형체도 없이 일그러진 후에 그물 가득 잡힌 멸치 떼들”... 독재자의 그물에 걸려 희생된 죄 없는 양민들이 그야말로 “멸치 떼”처럼 피투성이로 걸려들었군요...
박현솔 : 속절없이 죽음의 포위망에 걸려든 무고한 양민들을 그렇게 비유적으로 표현하였고 그 당시의 상황이 긴박하고 처절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음을 독자들에게 리얼하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임애월 : “봄마다 붉은 울음이 터져버리는 터진목”...
혹시 <터진목>이라는 이름도 4‧3때 그 사건과 관련이 있나요?
박현솔 : 터진목은 지형적으로 탁 트인 곳이라는 의미인데 4‧3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임애월 : 아,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그렇게 참혹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건... 생각하는 것조차 참 힘이 드네요. 그러나 잊어버리면 안 되는, 꼭 기억해야할 제주의 역사이지요.
박현솔 : 물론입니다. 4‧3사건은 제주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잊어버릴 수도, 잊혀질 수도 없는 비극적인 역사이지요.
임애월 : 제주도민이면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동네마다 제사가 같은 날에 무더기로 몰려있는 날이 있지요. 멋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그게 재미있고 좋았어요. 어른들 가슴이 찢어지는 일인 줄도 모르고요...
박현솔 : 마을 주민들 460여명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서 이곳으로 끌려오고 집단 학살을 당했기 때문에 마을의 제사가 같은 날에 치러질 수밖에 없었지요. 저도 어릴 적에는 그런 일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왜 우리 동네에는 제사를 같은 날에 지내지? 생각하곤 했어요. 그러면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면서 각자 엄마 손에 이끌려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야 그때의 상황을 알게 되고 그때의 일들이 꼭 가슴 깊이 기억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임애월 : 동백꽃처럼 “붉은 울음”조차 목젖 아래로 삼키며 살아야 했던 신산한 세월을 건너온 제주인들의 삶에... 그냥 가슴만 먹먹할 뿐입니다.
박현솔 : 당시에 4‧3사건에 연루된 집들은 그 사실이 소문날까봐 아이들은 물론 이웃들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어요. 그것이 연좌제처럼 자손들의 앞길을 막을까봐 늘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웃들이 끌려가거나 주변에 누군가의 소문이 안 좋게 돌아도 직접 도와줄 수가 없었고 그들의 상황을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신고를 하거나 해코지를 하는 경우에는 진정한 마을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었어요. 아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비상사태였고 특수한 상황이었어요.
임애월 : ...... 섬 기슭을 기어오르며 하얗게 부서지는 저 파도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영혼들이 자신들의 넋을 스스로 위로하며 살풀이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더 아픕니다.
박현솔 : 저도 터진목 바다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곳에는 비극적인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바다가 더 애잔하게 느껴지고 슬픔으로 출렁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일출봉으로 오르다가 좌측으로 빠지는 길에 ‘우뭇개동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제주도의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끌려와서 학살을 당했어요. 더구나 그곳은 4‧3 유적지로 표시도 되어있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저 아름다운 풍광만 둘러보고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아파요.
천개의 음은 천개의 건반 위를 달려서 해변에 도착한다. 어부들이 오래전부터 들어온 음악을 쫓아 바다로 나가고, 바다는 홀로 천개의 섬을 키운다. 조개가 다닥다닥 붙은 난파된 보물선. 조개들이 잠든 사이에 가만히 흘러나오는 악기 소리. 사라진 선원들이 노를 젓는 소리가 들린다. 파도에 섞인 음악이 주상절리의 육각형 단면에 새겨진다.
태초의 음악은 신들의 것이었고 거북 등껍질과 황소 힘줄로 만든 악기는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증거였다. 신이 떨어뜨린 악기가 인간의 땅에서 발견되면서 음악은 인간의 것이 되었다. 선인들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음악을 간구했다. 악마가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를 북을 쳐서 열어주었고, 온갖 짐승의 뿔로 인간의 귀를 매혹시켰다.
라디오는 매일 사랑 노래를 흥얼거린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나 사랑을 얻은 사람 모두 사랑에 결박당한다. 쾌락을 쫓는 자극적인 노래는 혀끝을 마비시키고 부드러운 숨길을 막는다. 거칠게 몰아쳐서 영혼을 흔드는 노래들. 지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바람처럼 떠돈다. 사랑의 유목을 부추기는 허리케인의 노래.
생의 노래는 어머니의 탯줄로부터 감지된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배를 쓰다듬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가 온몸으로 시집살이를 건너가는 소리가 들린다. 논밭을 일구느라 기진맥진한 아버지가 기운을 내는 소리가 들리고, 광 열쇠를 내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가 달님에게 뱃속의 딸을 아들로 바꿔달라고 조르는 순간 나는 몸을 더욱 움츠린다. 모든 지나가는 것들이 노래가 되어 나를 키운다.
검은 바위 속을 들락거리는 게의 집게발 소리와 어린 조개들의 살 오르는 소리. 바다를 점령한 먹구름과 소나기가 거세게 흩뿌리는 소리가 완성된다. 인간 세상의 일들을 살피느라 신들도 쉴 때에는 귀를 열어놓는다. 어부는 줄을 잘못 건드려서 그물을 열어버리고, 물고기들이 그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속도가 노래가 된다. 물고기를 잃고 노래의 만선을 이룬 돛단배가 수평선에 걸려 있다.
- 「먹구름과 소나기의 소리가 완성될 때」 전문
임애월 : 이 작품 「먹구름과 소나기의 소리가 완성될 때」에서 “생의 노래는 어머니의 탯줄로부터 감지된다” 즉, 태아에서부터 시작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는 “어머니가 달님에게 뱃속의 딸을 아들로 바꿔달라고 조르는 순간” 움츠러들 수밖에 없던 당시 여성들의 불합리한 차별대우를 짐작하게 합니다. 사실 공공연하게 남녀차별을 해도 그게 당연시되던 사회였는데 어려서부터 여성이라는 트라우마도 분명 잠재하고 있었던 시대였지요?
박현솔 : 저희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아서 할머니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아버지와 갈라설 생각도 했지만 뱃속의 저 때문에 이혼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어머니는 모진 시집살이를 다 견뎌내신 것 같아요.
임애월 : 우리의 어머니들은 여러 가지로 힘든 시대를 잘 참으며 살아내셨어요.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사실 저는 워낙 철딱서니가 없어서 어머니께 아들만 낳으시지, 딸은 뭐 하러 낳으셨냐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었거든요.(웃음)
박현솔 : (웃음)아마도 오빠나 동생에 대한 질투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렸나 봅니다. 저도 어머니로부터 아들타령을 듣는 것이 싫었던 적이 많았어요. 어머니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싫어서 아들보다 더 훌륭한 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임애월 : 아하, 박 시인님께서는 어렸지만 정말 훌륭한 생각을 하셨군요. 살면서 혹은 창작과정에서 여성이어서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으신가요?
박현솔 : 어릴 적부터 성역할이 바뀌신 부모님 때문에 저는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들타령을 하시는 어머니와 일찍 떨어져 살게 되어서 여성으로서 심리적인 피해를 그리 많이 받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성적인 세계와 여성적인 세계를 분리시키지 않고 통합적인 시선으로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임애월 : 박 시인님께서는 타고난 객관적 평정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시절을 건너온 대부분이 여성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굉장히 부조리하다는 걸 내내 체감하면서 살았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박현솔 : 한편으로 보면 제 시도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표방하고 있진 않지만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 어떤 연민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더라고요. 그것은 자식을 키우면서 무의식중에 형성된 모성애의 연장선상에서 발현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프고 다친 것, 버려진 것, 슬프고 외로운 것, 외면당한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쓰이고 그것들을 위로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제서야 진정으로 타자들을 배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품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임애월 : 네, 마음도 참 아름다우십니다. 그 “품”이라는 선한 것,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는 않거든요.
바다는 가끔은 “천 개의 음”이 되고 가끔은 “사랑 노래”가 되고 또 “물고기를 잃고 노래의 만선”이 되기도 하는데, 아마 시인님의 가슴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 저 넓고 신비한 바다가 출렁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박현솔 : 제주의 기억과 신화, 역사를 두루 휘젓고 다닌 것 때문에 그렇게 느끼셨나 봅니다. 앞으로 더 좋은 시인이 되라는 말씀으로 알고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애월 : 앞으로 문학적 계획이랄까... 혹시 그런 게 있으신지요?
박현솔 : 그동안 존재론적인 물음에서 시작된 것이 고향 제주와 연관된 것들을 탐색하는 여정이 되었는데요. 이제는 어느 정도 존재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보편적인 것들에서 울림과 깨달음과 감동을 찾아야 할 것 같고 타자들과의 소통에서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감성을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계간 《문학과 사람》이 놓여있기도 하고요.
임애월 : 네, 현재 《문학과 사람》 편집주간이신데 거기 실린 좋은 작품들과 개성 있는 편집, 잘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주에서 만나 뵈니 마음이 편하고 더 뜻깊은 시간이 된 것 같아 참 좋네요. 앞으로 더 자주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박현솔 : 네, 귀한 지면을 내주시고 시인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중간지점을 점검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자주 뵈면서 소중한 인연을 잘 이어가고 싶습니다.
- 번개와 벼락과 수많은 신화 속에서
제주의 역사적 아픔을 끌어안고
우주공간을 종횡무진하는 박현솔 시인의 詩的 춤사위는
어느 신을 향한 이 시대의 간구인가
그녀의 너울거리는 춤사위를 통해
망망대해 검은 어둠 속에 우뚝 선 등대의 긴 불빛처럼
견고한 희망과 위안의 메시지를 여기 와서 읽는다
詩는 개인의 성찰이면서 시대적 성찰이기도 하다
제주바다는
제주인들이 꿈꾸는 신화의 짙푸른 방목지이다 -
■□ 시인의 자선시
풍장의 왈츠 외 4편
박 현 솔
오랜 습관처럼 발밑에 누운 잔디를 쓸어본다.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마다 물빛이 번진다. 잊혀진 기억 속의 문장들을 내 손바닥이 읽는다. 손바닥 사이로 길이 갈라지고, 지문이 물결쳐간 곳에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성곽이 있다.
한때 사람들은 태양을 건져 올리기 위해 낚싯대를 썼다. 해변의 끝까지 파도를 밀고 온 것은 이국의 태양이 아니었다. 섬마을의 비릿한 바람이었다. 갈매기들 멀리 북반구로 날아간 뒤 커다란 빗장이 질러진 곳, 고풍스런 샹들리에, 금제 나이프, 포크들이 정지된 시간 속에 잠들어버린 곳, 검은 장막이 풍경을 닫아버린 곳, 가끔은 거센 파도가 이는 수평선처럼 느슨해지기도 하는 호텔 캘리포니아. 꿈을 잃어버린 밤이 오래 이어졌다. 바닷바람은 몸을 조금씩 베어 물고, 헐거워진 뼈마디에서 녹슨 시간이 떨어져나가는 소리 들린다. 별들도 잠든 밤이면 샹들리에 불빛이 밤하늘을 환히 비추고, 나비넥타이를 맨 귀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왈츠를 추는 호텔 캘리포니아.
거대한 성곽이 무너지고 퇴화된 그 자리를 바람이 쓸고 있다. 기억 속으로 날려 보낸 풍장의 내력을, 잊혀지지 않는 호텔 캘리포니아 전설을.
우주의 시간
국수를 삶으며 직선의 행적을 따라간다 직선은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 흐물흐물 곡선이 된다 물의 결이 뭉치지 않고 돌개바람을 만든다 이제 회오리는 뜨겁고 짜다 면발들의 탄성을 가늠할 때 혀는 정직해지고 오래된 탐욕만이 위장 속으로 흘러든다
인류가 먹었던 가장 오래된 국수의 흔적을 황하강 유역에서 발견했을 때 당시 오래 살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은 죽고 없다 면발의 실크로드를 따라 장수의 염원만이 이어져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생명의 길, 욕망의 길, 유혹의 길
그 실크로드의 기억을 입 안에 밀어 넣으며 내 몸이 가늠하는 삶과 죽음의 교차 지점을 건넌다 권력자들은 더 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악마와 거래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생각한다 줄에 매달려 늘어진 목각인형의 핏기 없는 팔과 다리……굶주린 회오리바람이 그림자를 잽싸게 낚아채간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결코 오래 살 수 없었던 사람들과 삶의 매순간을 미련 없이 버린 사람들이 별똥별로 사그라지는 시간……정성껏 끓인 한 그릇의 국수를 앞에 두고 몇 가닥은 과거로 또 몇 가닥은 미래로 흘려보내는 순간, 어디선가 면발 한 올을 물고 새떼들이 북반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서천꽃밭, 꽃감관
먼 데 외진 길들이 모이는 곳인가
그곳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서네
칠흑의 어둠과 발등에 차오르는 물
급류를 헤치며 길을 가고 있네
가슴으로 듣는 잎사귀들의 속삭임
발길을 이끄는 낯선 풍경을 지나
먼 곳에서 불어오는 향기의 군무
물굽이를 돌아 물길이 한곳에 모이듯
생의 굽이마다 피어나는 꽃들
수레멜망악심꽃, 웃음웃을꽃, 환생꽃
감춰진 도량이 너무 넓고 커서
인간의 꽃밭엔 필 수가 없는 꽃
햇살을 향해 꽃잎을 열어젖히듯
눈앞을 가린 어둠을 한 장씩 벗겨내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밀려오네
滅의 시간과 吉의 순간들이
꽃 피는 주기처럼 돌아오기도 하니
죽어가는 영혼을 일깨워 살아나게 하고
불멸의 기운을 말아 꽃 속에 스미게 하네
만개한 고요가 익어가는 들판에서
천상의 향기를 흘려주는 밭지기가 되리
꽃에서 꽃으로 이어진 길,
길을 잘못 든 벌 한 마리 적막을 열고 있네.
불멸의 손톱
고양이 손톱으로 흥건한 피맛을 보았다
깊숙이 나를 찌르며 고통스러웠다
뒤척이는 꿈속 살갗을 긁는 손에는
칼날 같은 손톱이 자라나 있다
가려운 것은 살갗뿐만이 아니라
관계이고, 진실이고, 패랭이꽃이고
쓰다만 글귀의 푸성귀 같은 진정성이다
달빛의 능선에는 빛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가파른 벼랑 끝이 위태롭게 깎여나간다
독이 오른 손톱은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린다
예기치 못한 신념을 향해 날을 세우다가
자신을 해치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키운 독기가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몸의 세포들이 파괴되어 세포 아닌 것이 되고
조직이 경직되어 조직 아닌 것이 된다
꼼짝없이 자신에게 결박당하는 순간에야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비애가 있다
푯대 잃은 날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손톱 위에
초승달, 그것을 나는 불멸이라고 부른다
밤마다 몸속을 휘젓는 불멸을 깎아버리고
더는 혼란스럽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으려 하지만
먼 기억 속의 나에게서, 또 다른 나에게로
푸르스름하게 이어지는 불멸의 시간을 본다
지면 위에 떨어진 손톱들, 독기가 풀려간다
파도의 레이스
오래전에 당신을 만났을 때에는
열정이 당신을 끌고 가는 듯했지만
오늘 당신은 고요가 가득해 보여요
이제 당신은 홀로 나부끼지 않고
도(道)에 가닿은 흉내를 내지도 않고
풍경 속에 녹아들 줄 아는 여유가 생긴 듯해요
당신에게서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고
모든 풍경이 풀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러는 동안
큰 산을 보려고 허리가 다 젖혀졌고
넓은 바다를 품으려 가슴이 다 벌어졌지요
파도의 주름을 느슨하게 잡으며
먼 바다를 향해 낚싯줄을 던지는 사람
낚싯줄에 걸린 것은 물고기도
뭍을 향한 욕심도 아닌
일렁임만으로 충분한 바다의 시간이에요
박현솔 시인 약력
제주 성산 출생
아주대 대학원 졸업(국문학 박사)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와
2001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 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 등
시론집 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이 있음
2005년과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문학과 사람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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