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호주국립대학"(ANU)이 호스팅을 제공하는 온라인 학술저널 <뉴 만달라>(New Mandala)에 폴 챔버스(Paul Chambers)가 2010년 6월 9일 기고한 논문이다. 2010년 9월에 태국군의 장성급 정기인사이동이 진행되어 일부 상황이 변화했지만, 폴 챔버스의 분석은 태국 군부의 인맥구조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정보를 주고 있다.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후 사진자료를 추가했다. |
[논문] 태국 왕당파 군부의 인맥 분석
The challenges for Thailand’s arch-royalist military
문민통치의 보장 : 태국 왕당파 군부의 오늘과 그 앞에 가로놓인 도전들.
Guaranteeing Civilian Control: Thailand’s Arch-Royalist Military Today and its Coming Challenges |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문민-군부 관계는 군대의 장교들과 선출직 혹은 임명직 민간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의사결정에 관한 연관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양쪽 모두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러한 현상은 태국에서 '민간인'(civilian)이란 용어가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첫번째 차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민간인을 의미하고, 두번째 차원은 군주제 혹은 왕권과 관련된 민간인들을 의미한다.
태국에서 두번째 차원에 속하는 문민관료들은 선출직 민간인 및 군부 인사들 모두에 엄청난 권위를 발휘하며, 그들에 대해 정치적 우월성까지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선출된 문민 관료와 왕권에 의한 문민 관료들이 동등한 관계가 되는 것은 매우 제한된 기회에만 나타난다. 오히려 왕권에 의한 문민 관료들이 군인들과 공조하여 선출직 민간인들에 반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다.
태국의 정치적 궤적은 1947년 군부와 왕당파의 공동 노력을 통해 갑작스레 단절됐다. 1976년 10월 6일의 유혈사태는 왕실이 배서한 "폭동"(putsch)의 2번째 등장이었을 뿐이다. 1991년의 쿠테타와 "2006년의 쿠테타" 역시 동일한 패턴을 보여주었다.
한편, 선출직 문민 정치인 역시 왕권적 문민 관료들에게 반드시 순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는 2001년 총선에서 기록적인 압승을 거두게 되자, 왕권적 헤게모니 유지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태국 정치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시키려고 시도한 바 있다. 문민통제의 관점에서, 궁극적으로 태국이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두 종류의 문민관료들 사이에 발생하는 변증적 관계이다. 한편에는 지존으로 군림하는 군주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선출된 정부가 있지만, 선출된 정부가 부수적 위상만 갖는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태국적인 "민간인성[性]"(civilianness)의 모호함과 더불어 두 종류의 문민 관료들 사이의 산발적 힘겨루기로 인해, 태국의 문민-군부 관계를 적절하게 분석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만일 문민통치(civilian control)라는 것을 왕실에 초점을 맞출 경우, 1957년 이후로 민간인들이 군부를 통제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당시 살릿 타나랏(Sarit Thanarat) 장군이 빽 피분송캄(Plaek Phibul Songkram) 정권을 전복시키면서 왕권적 문민 관료들이 부상할 수 있는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문민통치를 선출직 민간인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태국에서 문민통치가 과연 부상한 적이 있기나 했는가 하는 보다 복잡한 문제에 봉착한다. 태국에 있어서 선출직 민간인들이 부상은 민주화의 시작이란 점과 연동될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태국에서 민주화는 과연 언제 시작됐는가?
혹자는 태국의 민주화가 1988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시 찻차이 춘하완(Chatchai Chunhavan)이 총선에서 승리한 후 군부와 왕실의 인준 속에서 총리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태국의 민주화가 1992년에 발생한 "검은 오월"(Black May: 피의 오월)의 학살사건에 뒤이어 시작됐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시의 민주화가 이후 14년 동안 단절되지 않고 선거로써 선출된 정부가 이어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또 다른 이들은 '2006년 쿠테타'에서 기인한 과도정부(군사통치)가 끝난 200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민주화됐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지들은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첫째, 태국에서 쿠테타가 반복해서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인정한면, 과연 태국의 민주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확신을 갖고 결정할 수나 있단 말인가? 둘째, 왕권적 문민관료들의 전능한 위세와 군부가 가진 고도의 자율성을 생각한다면, 심지어 태국이 어느 정도 민주화되기는 했단 말인가? 궁극적으로 보면, 태국의 민주화는 그 연속적 이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왕권적 문민 관료들의 정치적 네트워크는 국왕이 임명하는 '추밀원'(Privy Council)을 통해 결정적 지원을 받는다. 추밀원 위원들은 그들이 왕실과 밀접하게 동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치보다 한 단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이 비록 공식적으로는 주권을 위해 봉사한다고는 하지만 또 하나의 권위를 가진 문민 당국이 되고 있다.
추밀원 위원들의 역할은 왕실을 위해 자문하는 것이지만, 정치적 변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데 있어서도 성공을 거뒀다. 현재 태국 추밀원에서 가장 중요한 위원 3인방인 쁘렘 띠나술라논(Prem Tinsulanond) 의장과 수라윳 쭐라논(Surayud Chulanond), 피찟 꾼라와닛(Pichit Kullavanijaya)은 모두 예비역 장군 출신들로서, 추밀원이 점점 더 군사화된다거나 군부의 영향권 하에 들어간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그러한 논란과 관련하여, 추밀원이 이룬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왕후 근위대'(Queen’s Guard: 제2사단 제21보병연대)를 증강시킨 일이다.

(사진) '푸미폰 국왕의 복심'이라 일컬어지는 쁘렘 띠나술라논 추밀원 의장.
'왕후 근위대'(제21연대)는 단순한 1개 부대가 아니다. 지난 2007년 아누퐁 파오찐다(Anupong Paochinda) 대장이 '왕립 태국육군'(RTA) 사령관(=참모총장)에 취임한 이래로, 제21연대는 태국 군부 내에서도 선도적인 분파로 성장했다. 비록 곧 있을 2010년 10월의 군 정기 인사이동에서 이 파벌이 견제를 받지 않은 채 유지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2010년 5월 19일에 있었던 '레드셔츠'(UDD) 시위대의 강제진압 이후, 이 파벌은 태국 군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강화시켜 왔다.
2010년 5월 19일의 강제진압은 2006년 쿠테타, 2007년 헌법 개정, 2008년 사법부에 의해 2차례나 이뤄진 친-탁신 여당들의 해산명령, 반-탁신 시위대(옐로우셔츠, PAD)에 대한 군대의 진압거부, 현재의 민주당 정부와의 조악한 새판짜기, 그리고 '레드셔츠에 대한 2009년의 송깐시위 유혈진압'에 이어, 태국 군부가 보여준 8번째 반-탁신적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반-탁신 움직임들은 강력한 군대의 힘이 필요했다.
제21연대는 상당히 큰 예산을 사용하고 있고, 군대 내 인사이동에 있어서도 문민 관료들을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제21연대 파벌은 그 선도적 영향력을 쁘렘 띠나술라논 추밀원 의장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는 쁘렘 의장이 계속해서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쁘렘 의장의 헤게모니는 4가지 요소에서 나온다. 첫째, 그는 영민한 정치적 행동가이며 군부의 파벌들을 달래기 위한 균형잡기 게임을 오랜 기간 주의깊게 해왔다. 둘째, 1988년 이래로 그는 '추밀원'의 사실상의 수장이었고, 군부의 인사이동에 있어서 그의 목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은 왕실이 권위를 행사함에 있어서 그의 자문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셋째, 그는 69년간의 군사적 경력을 통해 군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그의 경력이 가진 이러한 영향력은 군부 그 자체의 성장은 물론이고 신진 장교들의 후견인 역할도 가능케 하고 있다.
2010년에 쁘렘 의장이 90세가 되자, 일부에서는 그가 지는 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태국 정치에 있어서 여전히 영향력 있고 선도적인 참여자로서, 왕실에 이은 제2인자의 위상을 갖는다. 그리고 쁘렘 의장은 과도하게 길고도 성공적인 경력을 통해, 친-왕당파 군부(arch-royalist military)에 대한 성공적인 제어가 가능할만큼 군부 내의 합의를 단단하게 만들어 왔다.

(사진) 2010년 10월 1일부로 전역한 아누퐁 파오찐다 정 육군사령관. 그는 군사예비사관학교 10기생으로 탁신 전 총리의 동기였지만, 제1군구 사령관 시절에 2006년 쿠테타에 가담했다.
1941년에 '쭐라쩜끌라오 왕립 [육군] 사관학교'(Chulachomklao Royal Military Academy: CRMA)를 졸업한 그의 동기생들은 이후 권세있는 군인이나 정치인들로 성장했다. 이들 중에는 장래 총리가 되는 찻차이 춘하완(Chatichai Chunhavan 혹은 Chatichai Choonhavan), '국내안보작전사령부'(Internal Security Operations Command: ISOC)의 대부로 불리는 사이윳 껏폰(Saiyud Kerdpol, สายหยุด เกิดผล), 총리를 지낸 타넘 낏띠카쫀(Thanom Kittikachorn) 장군의 동생인 상가 낏띠카쫀(Sanga Kittikachorn), 그리고 장래 육군사령관이 되는 슨 나 나콘(Serm Na Nakorn, เสริม ณ นคร)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총리가 되는 끄리양삭 처마난(Kriangsak Chomanand, เกรียงศักดิ์ ชมะนันท)은 쁘렘 장군보다 겨우 1년 먼저 임관했다.
1941년에 발생한 '프랑스-태국 전쟁'과 1942-1945년 사이에 영국과 교전을 벌인 버어마 작전에서, 쁘렘은 기갑병과 장교로 참전했다. 이 전쟁들에서 그는 차룬 라타나꾼(Charoon Ratanakul Serireongrit) 중장 및 핀 춘하완(Phin Choonhavan 혹은 Phin Chunhavan: 찻차이 춘하완의 부친) 중장의 휘하에서 전투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훗날 총리가 되는 살릿 타나랏(Sarit Thanarat) 대령 밑에서 더욱 직접적인 지휘를 받았다.
하지만 살릿이 피분송캄(Phibul Songkram) 총리 및 파오 시야논(Phao Siyanon)에 대항해서 독자적인 쿠테타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쁘렘은 빨리 별을 달지는 못했다. 1959년, 살릿은 쁘렘을 대령으로 승진시킨 후 군부가 조종하는 '헌법초안위원회'로 발령했다. 이후 타넘 낏디카쫀 원수와 빠팟 차루사띤(Praphas Charusatien) 장군이 1971년에 그를 소장으로 진급시켰다. 쁘렘의 가장 중요한 군 경력은 1968년과 1975년에 '왕실 전속부관부'(royal aide-de-camp)에 근무한 것인데, 이는 그가 왕권적 문민관료들과 끈이 있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1978년에 그는 왕립육군 사령관에 임명되는데, 이러한 승진에는 국왕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승진은 여러 고위 장성들을 제쳐두고 올라간 것이기도 했다.
쁘렘은 1980-1988년 사이에 비선출직 총리를 역임하고 이후는 '추밀원'에서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1978년 이래로 30여년간 태국 군부와 정치에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게다가 쁘렘 장군과 밀접했던 장교들이나 그가 신뢰했던 장교들은 군대 내에서 선도적인 지위로 승진했다. 그러한 측근 인사들 중에는 1986-1990년 사이에 육군사령관을 지냈고 총리를 역임한 차왈릿 용짜이윳(Chavalit Yongchaiyudh: 1932년생) 대장, 1990-1992년 사이에 육군사령관이었던 수찐다 카빠윤(Suchinda Kraprayoon) 대장, 1992-1995년 사이에 육군사령관이었던 위몬 웡와닛(Wimol Wongwanich 혹은 Vimol Vongvanich) 대장, 1998-2002년 사이에 육군사령관이었고 2006년 쿠테타 직후 과도총리를 지낸 수라윳 쭐라논 장군도 포함된다.
쁘렘은 '왕후근위대'(제21연대)를 성장시키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08년에 창설된 이 부대는 1932년 절대왕정이 붕괴하면서 상당히 쇠퇴해 있었다. 이 부대는 친-왕당파 장군이었던 살릿 타나랏의 도움을 받아 1959년부터 그 위상이 강화됐다. 이 부대는 현재 태국군의 여타 부대들보다 엄청난 자율을 누리고 있다. 이 부대는 군 지휘계통의 지침보다는 국왕에게 그 최고의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부대는 1973년에 태국 군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했던 바, 즉 왕실의 충신이 되는 일의 모델이 되었다. '왕후근위대'의 발전은 '태국 중앙정보부'(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왕실을 수호하기 위해 위툰 야사왓(Vitoon Yasawat 혹은 Vitoon Yasawad) 중장이 지휘하는 60명으로 구성된 엘리트 왕실근위대를 창설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주1) '왕후근위대'와 마찬가지로, 이 부대 역시 충직한 친-왕당파 군부의 정서가 발원하는 원천이 된다.
1992년에 발생한 '검은 오월'(Black May: 피의 오월)의 학살은 태국 사회의 시야 속에서 군부를 약화시켰고, 군부 내 다양한 파벌들을 흐릿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계기는 쁘렘으로 하여금 영광적인 왕당파이자 친-쁘렘적 군부 지도력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더구나 열광적인 친-쁘렘계 장군인 수라윳 쭐라논 대장이 1988-2002년 사이에 4년 동안이나 왕립육군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이러한 흐름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2001년까지 고위 군장교들에 대한 인사는 거의 완전하게 쁘렘이 그들을 인준하느냐에 따라 작동했다. 그리고 군 지휘권에 관한 발언권은 사실상 '추밀원'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에 심각한 도전을 야기시킨 인물이 바로 탁신 친나왓이었다. 2001년 총선에서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자, 탁신은 독자적인 정치적 성향을 보이면서 군내 승진과 사업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선거로 당선된 총리가 '추밀원적 쁘렘주의'(Privy Premocracy)에 대해 그러한 방식으로 도전했던 것이 바로 5년 후 탁신이 실각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2006년 쿠테타는 군부 내에서 단합된 왕당파들이 욱일승천의 궤적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어진 연례 및 중간 정기 인사이동에서 '왕후 근위대'(제21연대)는 그 고삐를 더욱 강화시켰다. 군 인사이동에서 특히 혜택을 받은 인맥은 '군사예비사관학교'(Armed Forces Academies Preparatory School: AFAPS) 제10기, 12기, 13기들이었다.
- 제10기 : 아누퐁 파오찐다 육군사령관과 친한 이들에게만 해당.
- 제12기 : 현재 육군본부 참모장(참모차장급)인 빠윳 짠오차(Prayuth Chan-ucha) 대장이 주도.
- 제13기 : '제1군구' 사령관인 카닛 사삐딱(Khanit Sapitak 혹은 Kanit Sapitak) 중장이 주도. |
(역주1) 폴 챔버스가 이 논문을 발표하던 2010년 6월에는 아직 군 정기 인사이동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태국 군은 2010년 9월에 장성급 정기 인사이동을 단행하여, 10월부터 강경 매파인 빠윳 짠오차 대장이 육군사령관을 맡고 있다.
(역주2) 방콕과 중부지방을 관할하는 제1군구 사령관이었던 카닛 장군은 2010년 3-5월에 발생했던 '레드셔츠'(UDD) 운동의 대규모 시위에서 강제진압을 망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는 한직인 육군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결국 당시의 유혈진압은 현재의 육군사령관인 빠윳 장군이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주3) 고교과정인 '군사예비사관학교'의 졸업생들은 대부분 이후 육,해,공군 및 경찰 사관학교들로 진학한다. 경찰 출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이 학교의 10기생으로, 아누퐁 장군과 동기생이다. 따라서 한동안 태국사회에서 '예비사관학교 제10기'라는 용어는 '탁신의 인맥'이란 말과 동의어로도 사용됐다. 2006년 쿠테타 당시 육군 사령관이었던 손티 분냐랏낀(Sonthi Boonyaratklin) 장군과 당시 제1군구 사령관이었던 아누퐁 파오찐다 장군이 바로 그러한 10기생들 중 반-탁신적 성향을 지닌 경우에 속한다. |
가장 두드러진 점은 아누퐁, 빠윳, 카닛 등 3사람 모두 '제2사단' 예하 '왕후근위대'(제21연대)를 지휘했던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2010년 4월에 있었던 태국군의 중기 인사이동에서는 79명의 승진이 있었는데, 이 조치는 '제21연대'의 군부 내 장악력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이 인사에서는 특히 아누퐁 장군 및 빠윳 장군의 측근들이 많이 포함됐다.(주2)

(사진: Bangkok Post) 빠윳 짠오차 현 육군사령관. 왕실에 대한 충성도 면에서 매우 확고한 매파로 알려져 있다.
빠윳 장군은 아누퐁 육군사령관이 2010년 9월에 퇴임한 후 그 뒤를 이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비록 빠윳 장군이 아누퐁 장군의 오랜 부하이자 절친한 후배이긴 하지만, 그가 쁘렘 장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빠윳은 쁘렘 장군 및 수라윳 장군의 노선에 입각하여 불굴의 반-탁신 성향 및 초-왕당파적 충성 성향을 보여왔다. 만일 그가 육군사령관이 된다면(아직까지는 완전하게 확정되진 않았다), 그는 60세가 정년이라는 규정에 따라 2014년까지 그 직책을 유지할 수 있다.
비록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 [그가 육군사령관에 오르기 전에] '레드셔츠' 세력이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혹은 Abhisit Vechachiwa) 현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을 뒤이어 정권을 잡게 된다면, 빠윳은 자신이 갈망했던 승진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0년 5월 19일의 레드셔츠 시위 강제진압과 더불어, 빠윳의 승진 작업은 다시금 궤도를 찾았고, 군부의 지도력은 다시금 탁신에 반대하는 사격 각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태국 군사비 예산지출'은 2010 회계년도에 1,500억 바트(약 49억 4천만 달러)였고 2011 회계년도에 1,480억 960만 바트(약 48억 7천만 달러)로 감액할 예정이었지만, --- 비록 아직은 의회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 현재는 1,702억 8,500만 바트(약 56억 달러)로 증액하자는 안건이 제기되었다.(주3)
하지만 2010년 10월로 예정된 '빠윳 장군의 승진'이 군부 내에서 반-탁신 지도부를 구성하는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현재 육군본부 참모를 맡고 있는 삐룬 패오폰송(Piroon Phaeopolsong) 중장과 '군 총사령부'(RTARF HQ: 합참본부와 유사) 부사령관보를 맡고 있는 윗 테빠사딘 나 아유타야(Wit Thepasadin Na Ayuthaya) 중장 및 티라왓 분냐빠답(Teerawat Boonyapradap) 중장은 빠윳 장군보다 군사예비사관학교 선배 기수에 속한다. 하지만 빠윳 장군은 '제1군구' 사령관에서 그들보다 앞서서 육군본부 참모장과 육군 부사령관으로 승진한 바 있는데, 그의 화려한 승진은 군 내의 앙금을 서서히 증가시켜 왔다.
이들 세 사람 중에서, 윗 테빠사딘 나 아유타야 중장은 향후 등장할지도 모를 친-탁신 정부에 가장 호의적인 입장일 것이라고 보여지고 있다. 그의 부친은 욧 테빠사딘 나 아유타야(Yot Thepasadin Na Ayuthaya) 장군으로, 욧 테빠사딘 장군은 빠팟 차루사띤(Praphas Charusatien) 원수의 측근으로서 육군 부사령관을 역임한 바 있다. 욧 테빠사딘 장군은 1978년에 육군사령관 자리를 놓고 쁘렘 장군과 경쟁을 했던 사이이다. 윗 테빠사딘 중장은 탁신 전 총리의 사촌인 차이싯 친나왓(Chaisit Shinawatra) 장군의 측근으로, 친-탁신 10기생들 중 한명인 뽄차이 깐릇(Pornchai Kranlert) 장군의 처남이기도 하다. 뽄차이 깐릇 장군은 육군사령관이 되기 위해 길을 닦았던 사람이다.(주4)
삐룬 패오폰송, 윗 테빠사딘 나 아유타야, 티라왓 분냐빠답 장군들은 과거 '왕후 근위연대'에서 근무한 경력도 없고, 빠윳 장군과 같은 군사예비학교 제12기에 속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삐룬 패오폰송 중장과 윗 테빠사딘 중장은 [2010년 레드셔츠 시위 당시 암살당한] 고(故) 캇띠야 사왓디폰(Kattiya Sawasdipol: 일명-세댕[Sae Daeng]) 소장과 동일한 제11기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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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세댕'(붉은 장수)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캇띠야 사왓디폰 육군소장. 그는 자신의 해임 문제에 관한 군법회의에 출두한 다음날(5.8)에도, 레드셔츠 집회장에 모습을 나타내고 팬들의 요청에 따라 사진촬영에 응해주고 있다. 매니아들 사이에서 연예인급의 인기를 누렸던 기인인 그는, 이후 5월13일에 저격수의 총에 피탄되어 암살되면서 레드셔츠들의 마지막 일주일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
어찌되었든 이들은 2011년 10월에 전역하기로 되어 있다. [아피싯 총리가 이끄는] 현재의 연립정부가 그때까지 존속하게 된다면, 어떤 장군들을 이러한 직책들에 승진시킬지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의 표를 참조하라. 이 표에는 태국군 고위 장성들의 군사예비사관학교 기수 및 인맥이 제시되어 있다.
[표] 태국군 고위 장성들 : 직책, 졸업기수, 인맥
성명 |
직책: 2009-2010 |
졸업기수 |
인맥 및 연줄 |
아누퐁 파오찐다 대장
(Anupong Paochinda) |
육군사령관 |
10기
(2010년 전역) |
- 왕후근위연대장
- 제2사단장
- 제1군구 사령관 |
빠윳 짠오차 대장
(Prayuth Chan-ocha) |
육군 부사령관 |
12기
(2014년 전역)* |
- 왕후근위연대장
- 제2사단장
- 제1군구 사령관
- 아누퐁 장군의 최측근 |
위롯 브어차룬 대장
(Viroj Buacharoon) |
육군본부
자문위원회 의장 |
9기
(2010년 전역) |
- 2006년 쿠테타 지도자였던 손티 분냐랏낀(Sonthi Bunyaratklin) 장군 및 아누퐁 장군의 측근 |
윗 테빠사딘 대장
(Wit Thephasadin
Na Ayutthaya) |
군총사령부
부사령관 |
11기
(2011년 전역)* |
- 아누퐁 장군의 측근 |
티라왓 분냐빠답 중장
(Teerawat
Boonyapradap) |
군총사령부
부사령관 |
10기
(2011년 전역)* |
- 아누퐁 장군의 측근 |
삐룬 패오폰송 중장
(Piroon Phaeopolsong) |
육군본부 참모장 |
10기
(2011년 전역)* |
- 아누퐁 장군의 측근 |
다오퐁 라타나수완
중장 (Daopong
Ratanasuwan) |
육군본부 부참모장 |
12기 |
- 빠윳 장군의 측근 |
말라이 께우티엉 중장
(Malai Kieowtieng) |
육군본부 부참모장 |
12기 |
- 빠윳 장군의 측근 |
타닌 껫땃 중장
(Thanin Kettad) |
육군본부
군수담당 참모장보 |
10기 |
- 아누퐁 장군의 측근 |
악손 껏폰 소장
(Aksara Kerdphon) |
육군본부
작전담당 참모장보 |
13기 |
- 카닛 장군의 측근
- 전 국방총사령관을 역임한 사이윳 껏폰(Saiyud Kerdpol) 장군의 아들 |
수라삭 깐차나랏 소장
(Surasak
Kanchanarat) |
육군본부
민사작전 참모장보 |
12기 |
- 빠윳 장군의 측근 |
싱슥 싱파이 중장
(Singsuek Singphrai) |
육군 작전사령관 |
12기 |
- 빠윳 장군의 측근 |
뽀독 분낙 소장
(Podok Bunnag) |
특수전 사령관 |
12기 |
- 빠윳 장군의 측근 |
카닛 사피딱 중장
(Khanit Saphitak) |
제1군구 사령관 |
13기 |
- 제2사단장
- 악손 장군의 측근 |
위왈릿 촌삼릿 중장
(Veevalit Chornsamrit) |
제2군구 사령관 |
10기 |
- 아누퐁 장군의 측근 |
타왓차이 사뭇사콘 소장 (Thawatchai Samutsakorn) |
제2 기동군 사령관 |
12기 |
- 빠윳 장군의 측근 |
타농삭 아피락요틴
중장 (Thanongsak Apirakyothin) |
제3군구 사령관 |
11기 |
- 아누퐁 장군
및 윗 장군과 친함 |
완나팁 웡와이 중장
(Wannathip Wongwai) |
제3 기동군 사령관 |
12기 |
- 빠윳 장군의 측근 |
삐쳇 위사이쫀 중장
(Pichet Wisaijorn) |
제4군구 사령관 |
11기 |
- 아누퐁 장군
및 윗 장군과 친함 |
왈릿 로짜나빡 소장
(Walit Rojanapakdi) |
왕후근위 제2사단장 |
15기
* 레드셔츠 시위기간 중, 의문의 기습을 당해 중상을 입었음.(역주4) |
- 왕후근위대
- 빠윳 장군의 동생인 삐차 짠오차(Preecha Chan-ocha)와 동기생임. |
수라삭 분시리 소장
(Surasak Boonsiri) |
제1군구 예하
제2 기갑연대장 |
14기 |
- 악손 껏폰 소장과 졸업 동기임. |
우띳 순톤 소장
(Utis Sunthorn) |
제1군구 예하
제9 보병사단장 |
14기 |
- 악손 껏폰 소장과 졸업 동기임. |
깜파낫 루딧 소장
(Kampnat Rudit) |
제1군구 예하
제1 보병사단장 |
16기 |
- 카닛 장군의 측근 |
아피랏 콩솜퐁 대령
(Apirat Kongsompong) |
국왕근위연대인
제11 보병연대장 |
20기 |
- 전직 국방총사령관이었던 순톤 콩솜퐁(Sunthorn Kongsompong) 장군의 아들. |
산센 깨우깜넛 대령
(Sansern Kaewkamnerd) |
비상사태 대책본부
(CRES) 군 대변인 |
23기 |
- 전 국가안보위원회(CNS) 대변인 역임. |
비고
- 기수 옆에 별표가 붙은 장성들은 2010년 10월에 아누퐁 사령관의 후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들이다.
- 굵은 갈색 글씨의 직책은 태국 군에서 가장 중요성을 지닌 '5대 호랑이'(Five Tiger)라 불리는 자리이다.
만일 빠윳 짠오차 장군이 육군사령관으로 승진할 경우, 삐룬 패오폰송 장군은 육군본부 자문위원회 의장과 같은 한직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그와 동시에 빠윳 장군의 측근들인 다오퐁 라타나수완 장군과 말라이 께우티엉 장군이 삐룬 장군의 후임으로서 육군본부 참모장 직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제1군구 사령관인 카닛 사피딱 중장은 보다 고위직으로 승진하게 될 것이다. 2010년 3-5월에 있었던 레드셔츠들의 대규모 시위 당시, 진압 책임이 그의 지휘권 하에 있었다. 카닛 장군은 전임자인 빠윳 장군과 마찬가지로 제1군구 사령관에서 육군본부 참모장으로 영전할 수도 있다. 아니면 조금 가능성은 낮지만 아누퐁 장군의 전력과 마찬가지로, 육군 부사령관으로 승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역주5) 이 부분에서 폴 챔버스가 예측한 내용 중, 다오퐁 라타나수완 장군은 대장으로 승진하면서 현재 육군본부 참모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레드셔츠 시위에서 망설임을 보였던 카닛 장군은, 중장 계급을 유지한 채 육군본부 특별자문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
일단 삐룬 패오폰송, 윗 테빠사딘 나 아유타야, 티라왓 분냐빠답 장군들이 2011년에 전역하고 나면, 5대 주요보직(5대 호랑이)(주5)에는 빠윳, 다오퐁, 말라이(이상 12기), 카닛, 악손 껏폰(이상 13기)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군사예비사관학교 12기생들의 부상은 군부 내에서 보다 큰 앙금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기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보직들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빠윳 짠오차 대장이 육군사령관이 되고, 다오퐁 장군이나 말라이 장군 중 한명이 육군본부 참모장, 완나팁 웡와이 중장이 제3군구 사령관(북부지방 관할), 타왓차이 사뭇사콘 중장이 제2군구 사령관(북동부 관할), 그리고 2011년에는 왕후근위대 출신의 타나삭 파띠마빠콘(Thanasak Phatimapakorn) 중장이 송낏띠 짝까밧(Songkitti Chakkrabat 혹은 Songkitti Jaggabatara)(역주6) 대장의 뒤를 이어 국방총사령관(=합참의장)에 오를 것이다.
(역주6) 송낏띠 짝까밧 장군은 2011년 6월 현재도 국방총사령관 직을 유지하고 있다. |
한편, '왕립 태국해군'(RTN)에서는 고위직에 오른 12기 출신들은 많지 않은데, 빠윳 장군이 승진할 경우 현재 해군본부 참모장보를 맡고 있는 아피찻 수완나찻(Apichart Suwannachat) 장군의 승진 논의를 촉발시킬 것이다. '왕립 태국공군'(RTAF)에서는 12기 출신으로 현재 공군사령관보를 맡고 있는 카닛 수완넷(Khanit Suwannet) 대장의 승진가능성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수에 기반한 승진 관행에서, 12기나 왕후근위대 출신을 선호하는 승진이 편향된 것이라고 보는 장교들이나 승진과정에서 소외당한 장교들은 이미 환상을 깬 상태이다. 이러한 자각은 군부 내에서 불화를 키워 왔고, 그 결과 최근의 레드셔츠 시위기간 중에 가시적으로 돌출되기도 했다.
실제로 12기의 약진은 단지 한 기수만이 승진에서 이익을 취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왕후근위대 파벌의 주류적 인식을 부숴버릴 수도 있다. 왕후근위대는 군부에 대한 통제력 발휘를 2007년에 다시금 시작했고, 그들에게 고위직으로의 승진을 안겨줌으로써 중요한 부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 탁신 전 총리와 아누퐁 육군사령관으로 대변되듯이 --- 10기생들이 심각하게 분열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2010년에 단합된 모습을 보이는 12기생들이 부상한다는 것은 --- 20년 전에 수찐다 카파윤(Suchinda Kraprayoon) 대장의 5기생들이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 출신 부대보다는 출신 기수가 승진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향후 12기 출신과 13기 출신들이 군 지휘부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함에 따라 양 기수 사이의 마찰을 보게 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왕후근위대가 군내 권력을 계속해서 잡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제1군구 사령관인 카닛 사피딱 중장이 왕후근위사단(제2사단) 사단장을 역임하긴 했어도 빠윳 육군사령관의 뒤를 계승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빠윳 장군이 2014년 전역할 예정이지만, 카닛 장군 역시 2015년에 전역해야만 한다. 따라서 2007년에 사팡 깐라야밋(Saprang Kallayamitr) 장군의 제안으로 복귀했던 카닛 장군은 육군사령관에 오르더라도 임기를 1년 밖에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렇게 짧은 임기는 현재 군부가 갖고 있는 권력 장악력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한편, 2014년 이후의 군 지휘부를 예상해보기 위해서는 보다 하위계급 장교들을 살펴봐야만 한다. 2010년 5월 19일 레드셔츠 시위대 진압이 끝난 후, 군의 승리를 지휘했던 몇몇 제1군구 소속 장교들이 표창을 받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장교들이 포함된다.
- 수라삭 분시리 소장 : 제1군구 예하 제2 기갑연대장.
- 우띳 순톤 소장 : 제1군구 예하 제6 보병사단장.
- 깜파낫 루딧 소장 : 제1군구 예하 제1 보병사단장. |
이 중 특히 깜파낫 소장(16기)이 잠재적으로 제1군구 사령관으로 승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과거 제1군구 사령관을 역임한 바 있는 살릿 타나랏(Sarit Thanarat), 타넘 킷띠카쫀(Thanom Kittikachorn), 빠팟 차루사띤(Praphas Charusatien) 장군들이 "기수를 따라 권력을 잡은" 관행에 근거한 것이다.(주6) 하지만 깜파낫 장군은 왕후근위대가 주류라는 현상을 고려하면, 그들과 경쟁해야만 할 것이다.
깜파낫 장군은 잠재적으로 육군사령관으로 승진할 수 있는 가능선 상에 서있지만,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왈릿 로짜나빡 소장(15기)이 가능성이 높다. 왈릿 소장은 왕후근위사단(제2사단) 사단장으로서 15기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2017년에 전역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 4월10일 의문을 공격을 당하면서 심각하게 부상을 입었는데, 당시 그의 심복이자 혜성과 같은 존재였던 왕후근위연대장 롬끌라오 투와탐(Romklao Tuwatham) 대령은 사망했다. 만일 그가 부상에서 회복한다면 빠윳 장군과 카닛 장군을 이어 --- 미래의 승진을 위해 거쳐야만 하는 --- 제1군구 사령관 후보 1순위가 될 것이다.
곧 있을 군 정기 인사이동을 앞두고, 태국 군 지도부를 살펴보기 위해선 고위 장성들 이외에도 지난 5월19일 레드셔츠 시위대 진압을 직접 지휘하여 보상을 받을 대령들도 살펴봐야만 한다. 여기에는 --- 1991년 실패한 쿠테타 지도자 순톤 콩솜퐁 전 국방총사령관의 아들인 --- 아피랏 콩솜퐁 대령(보병 11연대장)과 '비상사태 대책본부'(CRES) 대변인을 맡아 태국인들 사이에서 연예인 비슷한 유명인이 된 산센 깨으깜넛 대령이 있다.
끝으로, 태국 군 전체에 단합을 가져오기 위해 달랠 필요가 있는 장교들은 그러한 대령들 및 여타 중하위급 장교들이다. 또한 태국군의 '수박병사화'(watermelonage)(역주7)를 피하기 위해서도, 이들 사이에 퍼져있는 인사 관련 불만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사진: Reuters) 레드셔츠 시위기간 중 CRES 대변인을 맡은 산센 깨으깜넛 대령은 현재 육군본부 대변인으로 근무 중이다. 군부의 대언론 창구인 그는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령이다.
5월19일의 강제진압을 통해, 탁신 및 레드셔츠 세력에 대해 승리한 태국 군부는 표면 상으로는 단합된 것으로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왕후근위대와 12기 파벌은 군 수뇌부를 점점 더 장악해나가고 있다. 만일 다음 총선에서 [친-탁신계 야당인] '프어타이 당'(Puea Thai Party)이 승리한다면, 그들이 가진 우월적 지위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 특히 차왈릿 용짜이윳 장군이 국방부장관을 맡게 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 특히 여전히 탁신의 영향권 하에 있는 --- 태국의 민선 정부가 일시적이고 취약한 특성을 고려하면, 왕후근위대 파벌에게 놓인 위험성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다. 왕후근위대 파벌에게 더욱 큰 위협은 오히려 고위 장교들에 의한 군 내부의 불만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불만을 감소키켜야만 군에 대한 통제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
왕후근위대 라인의 군에 대한 장악력을 영속화시키기 위해 쁘렘 장군과 수라윳 장군이 군 내부의 다양한 계파들 사이에서 균형을 취한다면, 왕당파적 군부 내에서 어떤 단합된듯한 외관은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균형을 유지하지 않거나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군 내의 분열은 점차로 폭력적 양상으로 변해 갈 것이다.
2006년 쿠테타 이후 형성된 왕권적 문민관료들과 군 장교들의 동맹세력은 현재 그 핵심적인 연결고리를 '추밀원' 인사 2명에 두고 있다. 그들은 탁신이 실각한 이후 군 내 인사이동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수년 동안에 발생할 태국 정치 지형의 격렬한 변화는 '추밀원'의 장악력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은 태국 군부의 보다 직접적인 역할까지도 초래할지 모른다.
어찌되었든, 태국은 군부에 대한 문민관료의 장악력 문제에 대한 중요한 사례연구 대상으로 남아 있다. 비선출직 왕권적 문민관료들이 비공식적으로 태국의 민간-군부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이에, 2006년 탁신이 실각한 이후 등장한 선출직 문민관료들은 정치적으로 부수적인 여흥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왕권적 문민관료들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요소는 의문의 여지없이 단결된 '왕당파 군부'(arch-royalist military)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이 더욱 강화된 정치적 소요를 보이면서 그러한 단결의 유지는 점점 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태국군에 대한 왕후근위대의 헤게모니 유지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 필자소개 : 폴 챔버스는 현재 하이델부르그 대학 정치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바로가기) "[연구자정보] 폴 챔버스 : 독일 하이델부르그 대학 선임연구원"
각주
(주1) Cable from Secretary of State to US Embassy, Bangkok. Subject: “Anderson Alleges CIA Influence in Palace Guard,”Feb. 1975, Declassified /Released US Department of State, 2005-6-5.
(주2) "Mid-Year Reshuffle Involves 79 Positions", Daily News, 2010-4-2.
(주3) Daily News 2010-4-28일자 보도인 "Military budget of 51-54 ครับ" 및 “เตรียมยกเลิกแผนกู้เงิน4แสนล้านบาท”을 참조하라.
(주4) Wassana Nanuam, “The Big Five: Army Chief and his Big Four Deputies,” Bangkok Post, 2010-2-4.
(주5) '5대 호랑이'(Five Tigers)는 왕립 태국육군에서 가장 중요한 보직을 일컫는다. 육군사령관, 육군부사령관, 육군본부 참모장, 육군 부사령관보 2명.
(주6) Chai-anan Samudavanija, The Thai Young Turks, Singapore: ISEAS, 1982, p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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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좋은 글이네요 ... 쭉 일독해야 겠습니다 ...
크세의 귀염둥이 보아즈 올림
의외로 태국의 육군사령관들은 아들을 잘 못낳는단 말이죠..
빠윳 장군도 장성한 딸만 2명인 모양인데..
미혼인 보아즈 님이 잘 좀 살펴보시길,,, ^ ^
앗~ ㅋㅋ 그런 좋은 정보를 주시다니 ... 약 빠이 크룽텝 하여 작업 하고 싶습니다만,,, 맨날 루카밖에 안됩니다 .. 끽 ... 잔넨 ㅎㅎ
크세의 귀염둥이 보아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