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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학교혁신 사례
1. 개황
참여정부 들어 학교혁신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교육에 대한 대통령자문기구가 교육혁신위원회라고 명명된 이후 혁신이라는 용어는 교육과정, 수업, 학교행정 등 교육활동이 벌어지는 상황에 줄곧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몇 년간의 혁신 활동이 많은 공문서를 통해 하향식으로 요구되고 또 그 보고가 상향식으로 전달되는 동안 혁신이란 단어는 더 이상 ‘혁신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현장의 인식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교육계에서는 기존의 학교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거의 이견이 없었으므로 광범위한 개혁을 추구해 왔으나 학부모, 학생이나 교사들에게 그 실효성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노정시켜 왔다. 이에 혁신은 거시적, 물리적 개혁수단이라기 보다 학교 운영 주체인 교원의 주도하에 교실 교육과정과 수업을 개선하고 학교 운영에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도록 하는 제반 조건의 변화를 의도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문서를 통해 교사들에게 전달되는 혁신이라는 용어가 현장에서 어느 정도 그 영향력이 감소한 것이 사실이나 이상과 같은 정의에 의하면 여전히 그 의미는 중요하다. 관료제적 의미에서 위로부터의 개혁 또한 나름대로의 효율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결국 아래로부터의 교육혁신 노력이 부재하다면 어떠한 개혁 수단도 학교혁신을 위한 충분조건으로서 자리를 잡기에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혁신을 가장 가능하게 하는 자원으로서의 원천이 있다면 그것은 단위 학교 주체인 교사들의 자발성이다. 이에 기초하는 경우에만 단위학교 또는 단위학급의 교육활동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교혁신이란 매우 ‘희망적이면서 동시에 제한적인’ 개념이다. 교사의 자발성에 기초한다는 것은 자발성을 유도할 수 없는 경우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고 전국의 모든 학교와 교실상황에서 이러한 교원주도의 자발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교원주도의 자발성과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란 입시경쟁이 치열하고 학원에 요구하는 교육적 열망과 공교육에 요구하는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적 상황에서 용이하지 않은 일이다. 이에 교원주도의 자발성으로 교육적으로 진정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교육혁신의 일반화가능성을 포기해야 한다. 일반화 가능성의 포기는 학교혁신이 ① 교원주도의 자발성에 기초하는 학교에서만 가능하다는 명제와 ② 모든 학교와 모든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논리적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평범한 경구를 인정하는 것이 학교혁신의 기초라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교, 수업, 교육과정에 있어서의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은 다음 몇 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본다. 첫째, 학교공동체 안에서도 특히 가르치는 주체인 교원주도의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 둘째, 교육과정 운영을 정상화하는 일이다. ‘정상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보다 학문적인 토론 속에서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겠으나 최소한 현행 국가교육과정에 나타난 교육목적에 맞는 교육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입시경쟁 구조가 왜곡하고 있는 교육과정의 비정상적 운영 부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업이 이에 속할 것이다. 셋째, 공동체와의 연계 및 기여이다. 혁신되지 않고 있으며 개혁의 대상이 되는 교수활동 및 학습활동은 학생들에게 오직 자신의 공리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으로서 공부하도록 만드는 제약으로 기능하고 있다. 교육이 그 기본에 회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교육받은 결과로서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민주 시민으로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존 듀이나 조오지 카운츠가 후배 교육자들에게 당부한 교육 사상의 정수이다.
본 사례 소개에서 살펴볼 이센셜 학교연합체는 이상과 같은 학교혁신 모형에 대체로 적합한 사례로 보인다. 그 논거는 첫째, CES가 교원주도의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CES 협력학교 또는 제휴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 주체들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다음에서 살 펴 볼 CES의 일반 원리는 입시기관으로서의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채택하기 어려운 교육과정이므로 CES 학교가 된다는 것은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적 수용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다. 공교육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CES는 교육의 일반 원리를 완전히 체화한 학교, 즉 다른 학교의 모범이 되며 학교교육에 발전이 있었다는 실질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단위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회원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원들의 자발적 헌신성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둘째, CES의 회원교가 된다는 것은 보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과정을 이행하는 학교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CES 학교들은 교육과정의 근간이 되는 교육의 일반 원리로 알려진 학교교육의 목적과 실천방안에 대한 공통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Sizer의 운영 하에서 수십 년간의 연구와 실천을 바탕으로 한 이 원리는 교육과정을 통해 진정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CES는 공동체에 대한 기여는 물론 이보다 확대된 의미에서의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 CES 회원교가 된다는 것은 개별학교 뿐만 아니라 학교 제도 및 체제가 평등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전체 교육 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CES 회원교는 지역 교육 센터가 학교를 돕고 학교의 관할 구역과 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CES 원리를 제도화한 학교들의 설립과 지원을 촉진하는 정책 조건을 고안하는데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CES가 발행한 문서에 따르면 학교개혁이란 함께 일하고 서로 공유하는 전망을 가지고, 공동체의 저력, 지역 사회의 역사,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는 인적 구성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글은 이상과 같이 살펴본 학교 혁신의 방향에 이정표가 되는 미국의 학교사례를 기술하고 이 사례가 우리 교육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표집된 두 학교 사례를 직접 살펴보기 전에 이 학교들이 속하고 있는 학교연합체(CES)의 성격과 내용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Ⅱ. 이센셜 스쿨 연합
(Coalition of Essential School)
1. CES의 역사 및 성격
CES는 일종의 학교혁신 네트워크로서 진보주의적 교육철학에 기초하여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단위학교가 신청하면 교육과정을 보급하고 자문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간단히 정의하면 교육과정 자문단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체는 미국 사회에서 저명한 교육자이며 학자인 Theodore R. Sizer에 의해 설립되었다.
1984년 Sizer와 일부 동료들은 학교교육 현실에 관한 5년간의 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고등학교 연구>(A Study of High Schools)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추후에 Sizer는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여러 종의 연구결과물을 출간하였는데 일련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미국의 지역적, 인구 통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고등학교 교육은 심각한 문제를 공유한다는 면에서 상당히 비슷하다고 주장하였다. Sizer가 보기에 고등학교에서 하루에 150명 또는 그 이상의 학생들과 만나는 교사들은 무엇이 학생들로 하여금 ‘깊게 생각하도록’ 자극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기엔 너무 바쁘다고 보았다. 교사들은 이러한 과업에 종사하기 보다는 무엇이 빠르게 점수화 될 수 있는지에 기초하여 수업한다고 관찰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교과별로 통합성이 고려되지 않아 상호 관련성이 전혀 없는 55분간의 수업들을 듣기 위해 교실과 교실, 교사와 교사 사이를 옮겨 다니는 학생들은 어떤 주제를 충분히 탐구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다고 판단되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다양한 주제 사이에 놓여있는 상호적 관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도 얻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야 했다는 것이 Sizer의 비판이었다. 전형적인 미국의 고등학교는 탐구에 대한 무관심과 학업 면에서의 무기력 상태를 조장했다는 것이고 Sizer는 이러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이 학교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전달했던 교훈은 배우는 것이 한 마디로 지루하다는 것이다.”라고 쓰기도 하였다.
Sizer는 학교가 혁신적으로 개혁되기 위해서는 하향식(top-down) 개혁을 필두로 한 미국 교육사를 재고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Sizer는 학교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교육의 일반원리를 개발하고 이러한 교육철학 및 교육과정에 찬동하는 학교들을 공모하게 된다. 이에 1984년, 7개 주의 12개 학교가 Sizer의 개념을 토대로 기존의 학교를 혁신하기 위해 이 연합체에 가입한다. 이후 Sizer가 근무한 미국 Brown 대학교에서 학교 혁신의 이론적 토대를 지원한다.
CES가 개발한 교육의 일반원리는 미 전역에서 신청한 많은 수의 공립과 사립학교에 도입되었다. CES가 설립된 이후 십여 년 동안 전국에서 수백 개 학교들이 CES연합센터(CES Affiliate Centers)의 창설을 도모하였으며, 이 연합센터는 학교 교육과정 설계, 학급 운영, 학교 행정가의 리더십 및 공동체와의 연계와 같은 분야에서 각 학교를 직접적으로 지원한다.
2. 교육의 일반원리
CES, 즉 본질적/필수적 학교연합의 일반원리는 수십 년간의 연구와 실천에 기초하고 있으며, 개별화되고 공평한 그리고 학업적으로 고무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종사해온 많은 교육자들의 지혜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CES의 공식문서가 요약하는 바를 번역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을 배우기
(Learning to use one’s mind well)
학교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을 배우도록 돕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② 덜 배우는 것은 더 배우는 것, 범위에 우선하는 깊이
(Less is more, depth over coverage)
학교의 목표는 단순해야 한다. 각각의 학생들은 필수적인 기술과 지식의 영역을 터득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과 영역들을 가르치기 위한 프로그램의 설계는,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과목”이라는 틀에 구속되지 않고, 학생들이 요구하는 지적 능력과 상상력에 부합하도록 구체화 되어야 한다. “적게 배우는 것이 실은 많이 배우는 것이다.”는 경구는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관련된 모든 결정은, 단지 피상적인 내용의 전달이 아닌, 철저히 학생들의 숙달과 성취라는 목적에 따라 좌우되어야 한다.
③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목표(Goals apply to all students)
학교의 목표는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다양해야 - 학생들이 다양만 만큼 - 한다. 학교 운영은 다양한 학생들과 학급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④ 개별화(Personalization)
교수와 학습은 가능한 최대로 개별화되어야 한다. 교사에게 중․고등학교에서는 80명 이상, 초등학교에서는 20명 이상의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방향으로(직접적인 책임을 지우지 않는 방향으로) 교사 일인당 학생수를 감축해야 한다. 개별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습과정, 학생과 교사의 시간 활용 방식, 교수 자료 선택, 특정한 교육이론(교수방법)의 선택과 같은 세부사항에 대한 결정은 순전히 교장과 교사의 권한 하에 놓여져야 한다.
⑤ 참여자로서의 학생, 조력자로서의 교사
(Student-as-worker, teacher-as- coach)
학교의 지배적인 운영상의 은유는 지시적 전달자로서의 교사라는 은유보다 참여자로서의 학생이라는 은유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된 교육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어떻게 학습해야하는지 배우고, 교사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⑥ 전문적 지식의 공개 입증(Demonstration of mastery)
교수 및 학습은 실질적인 과업에 대한 학생의 수행을 토대로 입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아직 적정한 수준의 능력에 도달하지 않은 학생들은 그러한 기준을 신속히 충족시키도록 필요한 지원과 자원을 집중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학습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로부터 특정한 프로젝트(보통 과제를 말함)의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다양한 형식의 증거들이 사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학습자의 능력과 요구를 더 잘 이해하고, 향후의 지원을 계획하는 데에 활용해야 한다. 학생들은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 앞에서 그들의 전문적 지식을 보여줄 기회를 가져야 한다(전시회 등). 학위증서(일종의 졸업증명서)는 졸업을 위한 최종 입증 형식 - ‘공개발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우에 수여된다. 학위증은 위의 사항이 충족되었을 때 수여되기 때문에, 학교의 프로그램은 기존의 학점 시스템도, 엄격한 나이에 근거한 학년 분류 방식도 배제하는 것이다. 결국 학생들이 중요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 위한 것이다.
⑦ 예절바르고 신뢰하는 태도
학교의 분위기는 서로에 대한 기대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신뢰, 예의범절(공평함, 관대함, 인내)이라는 가치들을 명시적으로, 의식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학교의 개별 학생들과 교사에게 적합한 나름의 격려가 필요하며, 학부모는 중요한 협력자로서, 학교 공동체의 핵심 일원이 되어야 한다.
⑧ 학교 전체에 대한 헌신
교장과 교사는 첫째로 그들 스스로를 만능인(일반 교육의 교사이자 학자)으로 여겨야하며, 둘째로 전문가(한 가지 특정분야의 전문가)라고 여겨야 한다. 교사들은 학교 전체에 대한 다양한 의무(교사, 상담자, 관리자)는 물론 헌신성(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⑨ 교수와 학습을 지원하는 자원
행정과 예산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학습을 위한 것으로 편성되어야 하며 교사의 교수활동을 최대한 조력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들을 더욱 고무할 수 있도록 소정의 범위 내에서 일반 학교들보다 융통성 있는 예산 사용이 허용되어야 한다.
⑩ 민주주의와 평등
학교는 비차별적이고 포괄적인 정책, 운영 그리고 공평한 교육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학교로부터 교육의 주체를 포함하는 민주주의적 운영 방침을 따라야 한다. 학교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형태의 불평등에 의도적이고 명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공동체의 공유된 권한을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Ⅲ. 학교혁신 사례
1. 센트럴 파크 이스트 중등학교
가. 학교의 성격
Central Part East Secondary School(이하, CPESS)는 CES에 관련된 학교이기도 하지만 특성화학교로 해석할 수 있는 마그넷스쿨이다. 마그넷스쿨은 학군(근거리 배정원리에 따른)과 관계없이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다는 것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이를 특성화학교라고 의역하는 이유는 교육과정상 특징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다가 인권운동이 성장하면서 마그넷스쿨은 인종통합을 위해 학군의 경계를 무시하고 학생들을 서로 인종적으로 다양화하기 위한 학교로 부활하였다. 마그넷스쿨이 교육과정을 특성화시키면 백인 학생들을 유색인종들의 거주지역 학교로 유인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의도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마그넷 스쿨이 학교선택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사회민주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마그넷스쿨은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해서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유형화하여 통계조차 내기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예술, 경영, 과학, 공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종의 대안학교 형태의 것도 포함된다. 여기서 살펴보고 있는 CPESS는 공립형태의 실험적인 대안학교라고 할 수 있다.
나. 교육과정의 특징
미국의 대표적인 마그넷스쿨,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CPESS)는 미국에서 매우 잘 알려진 학교혁신 모형이 되었다(Apple & Beane, 1995). 이 학교의 교육과정은 CES가 설정한 교육의 일반원리를 따른다. 특히 이 중에서도 다음 4가지 원리를 중시하고 있다. 첫째, “많이 보다 깊이”(Less is more)의 원리이다. 이는 교과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우는 것 보다 조금을 가르치더라도 깊이 알도록 가르침의 의미한다. 둘째, 개별화의 원리이다. 학습 과정은 통일적이고 일관성을 지니되, 교수 및 학습 활동은 개별화되어야 한다. 어떤 교사도 한 학기에 80명 이상의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으며 담임하는 학생들도 15명이 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목표설정의 원리이다. 모든 학생에 공히 높은 성취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정확하게 완수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하면서 배우는 학생”(students as workers)의 원리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정답을 추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도록 안내하기만 한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매달리지 않으며 “함으로써 배우는” 문제해결 활동을 통해 정답을 찾아낸다(성열관, 2004).
센트럴 파크 이스트 중등학교는 공통중핵 교육과정을 채택하고 있어서 교육과정의 폭과 깊이의 문제에 있어서 폭을 줄이는 대신 깊이를 심화시키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교육과정 구성의 기본 원칙은 두 개의 중핵과 그 주변적 교과로 나누어져 있다. 이중 첫 번째 중핵영역은 수학과 과학이고, 다른 중핵영역은 예술, 역사, 사회, 문학과 같은 인문학이다. 중핵중심 교육과정은 다양한 교육과정 사조에 변용되어 활용될 수 있는 것이나 보통 진보주의 교육과정에서 잘 사용하는 모형이다. 중핵과정은 종합과정이면서 중심에 위치하고, 또한 생활학습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과정 설계가 보통이다(홍후조・박도순, 1999). 중핵의 내용은 학생들이 공통으로 학습해야 하는 것으로 선정될 수 있다. 반면 중핵 주변의 교육과정은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어 있으면서 중핵에서 성취되어야 할 학습내용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CPESS의 교육과정은 중핵의 원리는 따른 동시에 통합중심 교육과정으로 설계되고 있으며 주어진 단원별로 수업한다기 보다는 주제중심 학습법을 채택하고 있다.
CPESS의 교사들은 뉴욕 할렘가의 교육을 재생시키기 위해 헌신적인 교사로 충원되었다. 학교 교육과정 운영은 매우 탄력적인데 이는 학교가 소규모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행정적 융통성은 교사들에게 시간활용의 탄력성을 허락하였다. 교사들은 탄력적 시간운용을 통해 강의는 물론 소집단 활동, 실험, 문제해결학습, 지역사회 문제 해결 활동 등을 수행하는 것이 유용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 학교의 교육과정은 학습자 중심의 진보주의 교육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학교처럼 물리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가르치기로 동기화된 교사들이 길러내려는 학생들은 그 결과로서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 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 학교 교사들이 자원해서 가르치는 학교가 의도하는 교육받은 결과는 바로 ‘생각하는’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문제상황에 직면하면 스스로 생각하는 전략을 개발함으로써 사회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정의 교육과정이 주어지기 보다는 학생들 자신이 학습과정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활동계획을 세우도록 고무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나의 생각이 나를 어느 쪽으로 이끄는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내가 더 읽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읽거나 얻은 정보 중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이 처음과 비교했을 때 발전이 있었는가? 이 단원에서 배운 것을 다른 문제해결 장면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이 단원에서 배운 것을 가정이나 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등이 이 학교가 사려 깊은 학생들을 기르기 위해 모든 교과에서 중시해야할 질문들이다(성열관, 2004).
다. 평가 방식
이 학교의 평가는 주로 포트폴리오와 학예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학교는 교사,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평가위원회를 두고 14개의 학습영역에 대해 졸업사정을 하도록 되어있다. 포트폴리오는 학생 개개인의 학업수행 과정에 만들어진 과제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선정하여 이상의 평가위원회에서 평가받는 수행평가의 일종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배운 경험과 성취 - 지식, 능력, 이해를 중심으로 - 를 기록하고 과제를 포함하는 자료들을 학습한 증거로서 제출한다. 이러한 종류의 평가는 마치 대학의 박사학위 심사와 비슷한 졸업위원회를 구성하여 질적 평가를 받는데, 이 위원회는 학생마다 달리 성립될 수 있으며 2인의 교사는 필수적으로 가입되어야 하며 나머지 일인은 동료학생, 지역공동체의 성인이 될 수 있다. 1인을 선택하여 3인의 졸업위원회를 구성하여야 한다.
이 때 평가의 대상이 되는 14개의 학습영역은 ① 졸업 후 계획, ② 과학 및 공학, ③ 수학, ④ 역사 및 사회, ⑤ 문학, ⑥ 자서전 쓰기, ⑦ 학교 및 공동체의 대민 봉사나 인턴십, ⑧ 윤리학 및 사회쟁점 토론, ⑨ 미술, ⑩ 실과, ⑪ 미디어, ⑫ 지리, ⑬ 외국어, ⑭ 체육이며 이 중에서 7개의 영역은 주요 영역, 나머지 7개는 보완 영역이 된다. 주요 영역에서는 학점을 받게 되고 보완 영역에서는 합격/불합격의 판정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평가에 있어서도 중핵적 원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남부 가족 학교(Southside Family School)
가. 학교의 성격
Southside Family Schoo(SFS)는 K-8(유치원에서 8학년)의 초등 대안학교이며, 1972년 이래로 학습자들의 다양성을 고려한 공동체이며 열심히 공부시키고, 사회적으로 사려 깊은 교육을 제공해왔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이 학교 역시 CES 회원교이며 차터스쿨과 같은 형태로 부분적 공립(50%는 공교육비, 나머지는 기부 등) 학교이다.
이 학교는 대안학교로서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대안교육 시작은 1989년임) 그동안 시민 사회의 성장과 사회정의를 위한 교육에 헌신해 왔다. 진보주의 계열 중에서도 비판적 재건주의 교육과정을 실천하는 학교로 해석된다. G. Counts가 주장해온 사회 재건적 관점이 이 학교의 교육과정 목적에 잘 나타나 있다. 재건주의자들은 학생들이 지역사회의 불평등 문제 등 개선이 필요한 분야에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인권, 환경, 직업 교육, 환경 문제, 세계 평화, 제한된 자원의 활용 등을 주요한 학습 주제로 삼는다(홍후조・박도순, 1999). 학생들은 지역 사회의 어려움과 시민들이 당면한 문제를 잘 파악하고 이의 해결에 유용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과정도 문제해결력에 강조를 둔다. 이 접근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수업 방법은 집단 활동이다. 사회 문제에 대한 탐구, 조사,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토론, 지역사회 참여 활동 등이 강조되고 평가에 있어서도 이러한 능력이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이 학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방식은 학문적 탁월함과 교육과정에서의 혁신, 부모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에 헌신해온 작은 규모의 도심 지역 학교라는 것이다. 특히 이 학교가 CES의 회원교로서 작은 학교를 지향하는데 그 이유는 개별화된 지도와 애정이 있고 안전한 학습 환경에 전념하는 작은 크기의 학급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교와 달리 일반 초등학교 역시 매우 소규모인데도 불구하고 더 작은 학교를 지향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 이 학교 교육과정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자주적인 마음을 가진 시민이 되도록 가르치는 사회정의 교육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기본적인 기술을 강조하고 창조적인 표현을 장려하며,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는 것도 주요한 교육적 원리로 포함하고 있다. 특히 사회정의에 의해서 이 학교는 이러한 원칙을 매우 직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를 소개하면,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계급주의와 동성애혐오가 없는 분위기에서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 자발적 참여를 장려, 공동체로서의 교실, 양질의 교육과정 개발, 학생 가족에의 관심, 사회정의와 의사결정, 문제해결과 관련된 주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여타의 다른 대안학교와 마찬가지로 Southside Family school는 헌신적인 교사들에 스스로의 자발성에 기초해 일반 공립학교와는 질적으로 다른 교육활동을 벌이는 교육공간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적극적이고 참여하는 학습 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고무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제공되는 교육적 체험은 대체로 창조적인 놀이와 예술적인 표현, 개별 학습, 교사와 함께하는 일대일지도와 평가, 학교 밖의 세계 탐험(현장학습, 문화 행사 등), 교직원이라기보다 젊은이와 어른들로부터 이끌어지는 대화, 수업 또는 활동 등이라 할 수 있다.
이 학교의 학생은 약 85명이다(출처: 2006년 9월 현재 학교 홈페이지). 다수의 학생들이 미테소타주 미네아폴리스의 중남부 인근지역에 살고 있다. 인종구성에 있어서는 학생들의 62%가 유색인종이고, 경제적인 여건을 나타내주는 것으로서 70%가 무료 또는 삭감된 가격의 급식 대상자이다. 이 학교는 현재 정원보다 지원자가 많아(약 2배) 원칙적으로 선착순으로 학생을 받으며, 재학중인 학생의 친척에 우선권을 주고 있다.
학생들은 보통 일반학교에서의 적응에 애로가 있어서 이 학교에 등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 학교가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특징이 있어서 특정 학부모가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측면이 많아서라고 볼 수 있다. 학부모들은 또한 그들이 사회정의 교육과정, 학습에 대한 참여적 접근, 작은 학급 규모(한 교사당 12명 학생의 비율), 그리고 자녀교육에 대한 좀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낸다고 소개되어 있다.
나. 교육과정의 특징
이 학교의 가장 특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사회정의 교육과정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계급주의 그리고 동성애혐오증을 조장하는 근본적인 사회 쟁점들에 관해 보다 포용적인 공동체 안에서 교육활동을 전개한다. 학생들은 이후 성인이 되었을 때 사려 깊은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교육받는다. 사회정의 교육과정은 그동안 정의롭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차별 의식을 내면화 하는 것을 피하도록 돕는다. 사회정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기본적 능력 및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며, 동시에 역사를 공부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그들이 공부하면서 만나게 되는 역할 모델을 성취하고자 열망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정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주요한 학습활동으로 역사 탐방을 하게 된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신장시키고 이를 기초로 학생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조망이 가능하게 한다. 이렇듯 배움에 대한 일생의 열정을 고양시키기 위해, 학생들은 사회적, 문화적 깨달음을 획득하도록 유도된다. 이를 위해 계획된 것이 현장학습을 통한 세상의 탐험이다(고학년을 중심으로 1년에 3회).
사회정의에 대한 교육과정은 이 학교 학생들이 학업성취를 등한시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학생들은 Minnesota주의 기초 표준 평가의 읽기와 수학 부문에서 주 평균 합격률(각각 52%, 44%) 보다 현저한 차이로 우수한 성취결과(읽기와 수학 각각, 79%, 79%)를 보고하고 있다. 학교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모범적인 학업성취 달성은 어떤 배경의 어린이든 기대치가 높고 교육자가 각각의 학생에게 개별적으로 책임을 진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Ⅳ. 시사점
1. CES의 성공과 교사의 자발성
이상에서 살펴본 두 학교 사례는 모두 CES의 회원교로서 살펴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사례에 대한 총평 및 이를 통한 시사점의 도출은 CES의 특징과 밀접히 관련될 수밖에 없다. CES는 약 20여 년 전 교육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학교혁신의 과정과 그 결과를 기록해 왔다. 이 연합체에 가입한 학교들에 대한 미국 교육계의 관찰에 따르면 이 회원교 학생들이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Center for Collaborative Education (2006)은 <진보와 약속: 보스턴 파일럿 학교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하였고 이후에도 유사한 연구들이 다수 출판되었다. 이들 연구는 대체로 보스톤에 소재한 실험적인 파일럿 학교들을 조사한 것으로 CES학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유형의 연구물들은 학생의 학습결과, 즉 성취에 미치는 학교의 효과를 조사한 것으로 CES학교들의 성공적인 정착에 대한 증거들을 취합하여 보고하였다. Foote(2005)의 연구는 뉴욕시의 CES와 제휴한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의 대학진학률과 성공에 관해 조사하였는데 CES 원리를 체계적으로 이행하는 학교들에서 진학률이 높고 여타 CES의 특성 -수행평가, 작은 규모, 통합교육과정, 탐구와 지적 능력에 초점을 맞춘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라는 교육과정, 프로젝트 학습 - 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보다 학술적인 성격을 지닌 Darling-Hammond 등 (2002)의 연구는 뉴욕시 연합 실험적 학교운영 프로젝트의 7년간 연구는 과거에 양산된 실패한 고등학교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작은 학교의 독특한 탄생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이 연구는 다섯 개의 새로운 학교가 비록 교육적으로 훨씬 혜택 받지 못한 학생들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실질적으로 과거의 학교보다 더 나은 출석률, 더 낮은 사고 발생률, 일기와 쓰기 평가에서 더 나은 성취, 더 높은 학위(고교졸업) 취득률, 더 높은 대학진학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 학교들은 학교 설계상의 특성에서 공통점이 있었고, 그것들이 이러한 결과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타의 많은 연구들은 CES 소속 교사들이 학문적 흥미를 유발하는 기회의 창출과 개별화된 지원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다양한 방법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또 CES 교육의 일반원리에 의해 조직된 학습 환경이 전통적인 수치와 비교하여 학생들의 성취를 향상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또한 증명해 주었다.
CES에 속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학업성취의 진보를 가져온 것은 여러 가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함의를 한국적 인식론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미국은 우리와 상이한 교육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CES 회원교는 교육적 혜택이 매우 낮은 지역의 학교들이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CES의 일반 원리 중 어느 것이 가장 학업성취 제고에 기여하였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사들의 헌신성이 가장 중심에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일부 경제학자 등은 이것이 마그넷이나 차터스쿨의 시장효과라고 주장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다.
CES는 교육의 일반 원리가 회원 학교에 체화되도록 조력함으로써 학업면에서 활력이 넘치고, 자기 주도적이며 평등한 학교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자기주도성은 다른 어떤 원리보다도 중요하다. CES는 회원교를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CES가 가지는 교육철학과 공유할 수 있는 학교 교원들의 자기주도성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CES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평등하고, 지적인 활력이 넘치며, 자기주도적인 학교를 설립하고 지원하여 그러한 학교가 미국 공립 교육의 표준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CES의 존재의의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문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것과 유사한 단체가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 이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의 성공 역시 바로 공립학교간의 경쟁과 학교선택권을 보장한 결과인 시장효과라고 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는 1940년대 뉴욕의 달톤스쿨(Dalton School)과 유사하였으며(Cookson, 1994), 교사들의 헌신적 노력의 결과로 학생들의 졸업률이 증가하고 성적이 향상되었다. 한국에서 졸업률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학교개혁의 중요한 척도는 아니겠으나 미국에서 졸업률은 교육개혁의 성공을 재는 가늠자이다. 미국은 학교교육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로서 졸업률에 매달릴 만큼 총체적 위기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연구자들(Apple & Bean, 1995; Henig, 1990)은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의 성공이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개혁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학교선택을 통한 시장효과인가”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똑같이 선택을 보장받은 뉴욕 지역의 다른 학교들에게서는 전반적으로 시장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연구자들은 교사들의 헌신성과 시장선택의 효과를 혼동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스트할램 지역의 학교선택제는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 같은 하나의 혁신적인 학교를 창조했지만, 문제의 도심지역 학교를 재구조화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시장효과를 부인할 수 있는 근거이다.
학교혁신의 기초는 교사들의 헌신성과 성실성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고무시키는가이다. 모두에 설명하였듯이 학교혁신은 모든 학교에서 일어날 수 없으므로 광역단위에서 학교를 지정하거나 신설하여 CES와 같은 교육적인 실험이 가능하도록 공립 실험학교들을 창출하는 것을 제안할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 중에서는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집단이 있으며 국가는 이들을 위해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특히 고교에서 입시교육을 할 수 밖에 없어 무력감을 느껴온 다수의 성실하고 자발적인 교사들이 있다. 이들이 실험적으로 질 높은 공교육 모형을 정립할 수 있도록 소수라도 공립학교를 만들어 이들, 성실하고 양심적인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를 광역 수준에서 몇 개씩 만드는 것이 현명한 정책수단일 것으로 본다.
2. CPESS의 성공과 특성화학교의 전망
현재 실업계고교는 인문고 진학이 어려운 학생이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에서는 패션디자인, 정보관광고교, 호텔경영과 관련된 학교 등 실업계 고교보다 훨씬 다양해진 특성화고등학교가 설립되어 많은 학생들이 성적과 관계없이 특성화고를 소신 지원하고 있다. 흥미, 관심, 소질과 적성에 기초한 많지 않은 학교가 특성화고교이다. 성적이 하위권이라서 실업고를 진학할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성화고를 더욱 지원하여 실업고가 양질의 특성화고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제안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회 저변에 깔린 ‘실업계 낮추어 보기 의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성화고가 성공하면 실업계 고교를 다양한 형태의 고교로서 유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교육개혁이 있었지만 대체로 성공한 것은 특성화고 모형의 정립에 있다. 이는 단지 특성화 고교의 성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획일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고교 교육과정 다양성에 기여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과정의 편제와 수업시수 배당이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어 왔다. 이러한 중앙집권형 교육과정 거버넌스가 단위학교의 자율성 및 다양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제6차 교육과정은 이를 완화하기 위하여 교육과정 거버넌스에 있어서 국가, 지역, 학교의 역할 분담을 최초로 시도하였다. 또한 제7차 교육과정기에 들어서면서, 고등학교간 교육과정 편제상의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도입한다. 그러나 일반계 고교에서는 이러한 정책의도가 거의 실패한 반면 특성화고에서는 교육과정의 다양성이 여러 가지 제약하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교육개혁 차원에서 이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전체 교육체제에 유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고교 교육과정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은 대입규정력으로 이는 평준화 또는 비평준화 지역에 상관없이 발생하는 제약 요인이다. 그러므로 일반계 고교 체제 속에서는 그중에 어느 것도 교육과정 다양성을 촉진/제약 하는 독립변수로 기능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이에 고교 교육과정의 획일적 운영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중심교육과정 등은 그리 유용하지 않으며(효과가 미미), 대입규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교(예: 특성화 고등학교 등) 운영에 의한 것이 더욱 실질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특성화고 산학협동 프로그램은 사내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의 기술을 익히고 초빙교육 등을 통하여 학생들을 동기화시킴으로써 우수한 기능인력으로 성장시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많은 실업계 고등학교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획기적인 변화의 모색이 요청되고 있다. 유능한 기능인 양성 교육의 존재 의의는 실업계 교육이 일차적으로는 종국교육이 되어 고교 졸업 후 산업현장에서 기여하고 대학교육은 직장과 병행하는 평생교육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오늘날 83% 가까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는 교육과정 따로, 대학진학 따로 병행되는 교육과정의 변형 운영을 초래하였다.
입직연령이 점차 늦어지고 있어서 실업계(특성화)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전문대 또는 4년제 대학 교육과정을 연계하고 조기 졸업이 가능한 학제 등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실업계(특성화) 고등학교에서도 교육과정 다양화를 신장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능력과 흥미에 맞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학교생활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3. 남부가족학교의 진정성과 공동체 참여를 위한 교육과정
CES는 모든 아이들이 애정 어린 양육과 지도를 받고 그들의 잠재력을 펼치도록 하는 교육적 세계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부가족학교 역시 교육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우리도 더욱 평등한 학교를 설립하는 것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어 볼 필요가 있다. CES의 원리를 제도화하는데 공헌했던 노력은 오랜 세월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모든 학교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신 이 네트워크 안에 있는 학교들에 대한 정서적, 물질적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진정성이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전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단위학교에서 활력이 넘치고, 자기 주도적인 교육활동이 가능하게 되는 실천방안을 보급하고 교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남부가족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철학은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 최근 인정 학교가 늘어가는 추세이긴 하나 - 대안학교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국가교육과정은 다양한 교육관과 이데올로기가 타협한 결과로서 도출된다는 것은 기정의 사실이며 교육과정 학계 역시 인정해온지 오래다. 그러므로 남부가족학교의 교육철학 및 교육과정은 교육과정 개발자들에게 도전과 긴장을 유발할 것이다. 이에 교육과정은 ‘숙의’의 절차를 제도적으로 따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단위 학교가 입시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우리 사회가 대체로 합의할 수 있는 ‘철학적’ 선에서 민주적 시민을 양성하고, 평등, 평화, 환경, 공동체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공교육에서보다 더 ‘교육적인’ 학교가 설립가능하다면 이를 국가교육과정의 예외로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교육과정의 예외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며 입시 명문고교로서 사회적 위상을 가질 필요 등의 목적으로는 그 예외가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남부가족학교의 경우처럼 개인의 욕구와 흥미에 초점을 맞춘 자기주도적인 교육, 교사와 학생이 친밀하게 지내는 작은 학교와 교실 지향, 참된 과제(authentic tasks)의 수행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평가, 민주적이고 평등한 학교 정책과 실천, 여타 학교 공동체와의 친밀한 협력관계를 교육목표로 하는 학교가 있다면 적어도 이 학교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들은 충분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학교가 공립으로 설립되지 않는다면 이상의 수요를 가진 학부모들은 대체로 학력비인가 대안학교에 보내야 하는 ‘고부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국가는 보다 진정한 학습이 가능한 학교에 학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학부모와 또 이러한 학교에서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입시경쟁의 경로를 이탈해야 하는 약간의 부담은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의미 있다고 인정해주는 질 높은 공립학교를 다닐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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