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외과 (학부)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외과 (대학원)
델라웨어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정치철학)
뉴욕 유니온 신학대 기독교 윤리학 박사
현 미국 뉴저지 소재 길벗교회 담임목사
뉴욕 유니온 신학교
-자유와 해방의 신학, 그 열정의 현장
유니온 신학교 풍경스케치
할렘가의 진입로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스트리트와 세 블럭을 두고 밑으로 뻗어 있는 브로드웨이 122가(2년 전 '라인흘드 니이버 스트리트'로 명명 ), 그리고 흡사 정원같은 아름다움 때문에 별칭 '가든 스테이트(Garden State) '라고 불리우는 뉴저지주를 한쪽 허리에 낀 채 흐르는 허드슨 강, 바로 그사이에 자리잡은 아담한 고딕건물, 뉴욕 맨하탄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문화적 매력과 도시적 움직임이 뿜어내는 활력을 호흡하면서 자유의 정신을 만끽할 수 있는 신학실험의 현장. 인종적 복합성의 현실을 매일 경험하는 가운데 규모있는 세계적 시야의 신학을 향해 아무런 제약없이 가슴을 활짝 열수 있는 자리. 유니온 신학교는 우선 이러한 분위기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신학도의 영혼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유니온 신학교의 바로 뒤 클레어몬트 애버뉴에는 미국현대사속에서 진보적 인 기독교사회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리버 사이드 처치 '가 한블럭 전체에 이르는 크기로 우뚝 서있다. 이 교회는 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맥을 이어오면서 유니온 신학교의 신학적 풍토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현재 이 교회의 담임목회자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설교자이자, 얼마전까지 유니온 신학교의 설교학 교수를 역임한 바 있는 흑인 목사 제임스 포브스이다. 그는 진보적 신학정신의 예리함과 복음주의적 설교의 영적 감동을 상호모순 없이 치밀하게 엮어내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서 오늘의 교회강단이 추구해야 하는 설교의 모델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리버 사이드 처치' 맞은 편에는 미국 교단의 각종 본부와 사무실, 인권 단체 등이 빽빽하게 차 있는 '인터처치 센타'가 현대식 건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는 미국교회의 주요한 움직임을 압축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분주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인권상황과 민주화,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이 가장 집중적으로 표출되는 현장이기도 하며 미국의 국내 및 국제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곳이라고 하겠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미국교회협의회가 남북한 유엔대표부를 초청하여 정책질의와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중요한 국제기독교회의가 수시로 열리는 등 일종의 유엔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유니온 신학교와 가까운 인연으로 자연히 유니온 출신들이 이곳에서 상당수 활약하고 있다.
신학함의 의미를 묻는 곳
브로드웨이 건너편, 유니온 신학교 앞에는 그 엄격한 학문적 전통과 사상적 깊이를 자랑하는 '유대인 신학교(Jewish Theological Seminary)'가 있다. 이 학교는 유니온 신학교의 구약학 전공자들에게도 강좌를 개방하고 있어 성서해석학 비교연구에 관심있는 신학도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유니온 신학교 왼편에는 줄리아드 음악대학과 명문의 쌍벽을 이루는 「맨하탄 스쿨 오브 뮤직(Manhattan School of Music)」이 있어, 음악도들이 발랄함을 물씬 풍겨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음악도의 미국 유학하면 으레 줄리아드만을 떠올리지만 이 학교도 그에 못지 않은 수준의 국제적 명망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울려나오는 악기 연습소리와, 악기를 들고 여기를 드나드는 학생들의 경쾌한 모습은 신학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술적 영감의 세계를 자극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학교와 대각선 방향으로 서 있는 '사범대학(Teachers' College)'은 미국 교육학의 산실이다. 이 학교는 유니온 신학교와 공동강좌 및 공동학위 프로그램을 개설, 기독교 교육학쪽으로 상호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연세대학 원주분교 교목 김영호 목사도 이 학교 출신으로서 유니온 신학교의 기독교 교육학 프로그램을 함께 수강하면서 학위를 마쳤다.
유니온 신학교의 주변 환경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육기관은 컬럼비아대학이다. 학기중에는 컬럼비아 대학의 학생들이 이 지역 주변을 그야말로 활기롭게 채운다. 대학촌만이 갖는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사실 이곳에 있는 상가와 음식점, 그리고 책방들은 컬럼비아 대학생들을 주고객으로 하여 생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니온 신학교는 컬럼비아 대학과 학점 교환제도가 있어서 일정한 학점 범위 내로 컬럼비아 대학의 강좌수강이 가능하다. 특히 사회과학과의 학문적 연관을 강조하는 학풍으로 해서 컬럼비아 대학의 강좌수강이 필요한 경우가 있으며, 두 학교 사이에도 공동학위 제도가 있다.
이밖에 여자 명문학교인 바나드 칼리지가 컬럼비아 맞은 편에 있으며, 115가와 116가 사이에 있는 서점 '바나드북스토아'는 각 분야의 신간서적을 연중 풍부하게 갖추어 놓음으로써 미국학계의 최신동향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활력 그리고 폭넓은 교육적 환경과 함께, 혹인 빈촌 '할렘'이라는 미국의 사회적 모순이 압축된 곳이 바로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음으로 해서 유니온 신학교는 신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매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신학교가 자연의 풍치가 좋은 곳에 아늑하게 위치해 있는 반면, 유니온 신학교는 신학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미국 사회내부가 고뇌하고 있는 긴장의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에는 백인지배문화의 엘리트적 자존심이, 다른 한편에는 미국 내에서 제3세계적 존재인 흑인사회의 암울한 좌절이 깔려 있는 현실을 보고 경험하면서 '오늘의 현실과 세계 속에서 신학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유니온 신학교의 사회적 환경은 그 신학의 언어와 사고가 상아탑에 안주하는 소수의 신학자에게만 통용되는 현학적 관념과 애매모호한 추상성에 빠지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성과 실천의 세계를 추구하게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학문적 훈련의 과정은 매우 혹독하다.
다양성과 현실성의 자리
1836년 세워진 유니온 신학교는 창설자들이' 충실한 학문, 진정한 경건성, 지성을 존중하는 체험(solid learning, true piety, and enlightened experience)'을 강조하였으며, 이 정신은 오늘에도 유니온 학풍의 기초가 되고 있다. 많은 경우 신학교가 현장 목회자 양성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유니온은 그와 함께, 학문적 배경이 폭넓고 단단한 기독교 지식인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에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창립 이후의 전통으로 해서 그 학업량이 상당한 편이며, 유니온이 배출하는 인물들은 목회자만이 아니라 연극인, 영화제작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무용가, 언론인, 대학교수, 카운슬러, 정치인, 행정가, 사회운동가, 소설가, 잡지편집자, 심지어 코메디안(여기에는 설교용 조우크 북-joke book-작가도 포함된다. )등 각종 분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말하자면, 신학교 입학은 당연히 목사가 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없는 것이다.
애초에 장로교 교단의 공신도 가운데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인물들이 시작한 교단 신학교였음에도 처음부터 교단적 제한을 두지 않는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으며, 당시의 최고 학문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던 대학과 의학교육의 수준에 못지 않은 전문교육을 한다는 데에 뜻을 두었다. 어느 무엇보다도 '학문의 자유'를 철저히 옹호하는 전통으로 말미암아 유니온은 1892년. 성서해석의 역사학적 비평론을 내세운 찰스 브릭스 교수에 대한장로교단의 이단 심판을 계기로 장로교단과 결별하게 된다. 이것은 유니온이 초교파 신학교로 새롭게 출발하는 전환점이었으며, 학문의 자유에 대한 전통을 다시 한번 뿌리깊게 다지는 사건이었다. 유니온은 당시 장로교 교단의 간섭과 정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학의 후진성을 가져올 뿐이며, 성서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자유는 포기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후 뛰어난 학문적 성과와 지도력을 겸비한 프랜시스 브라운 학장(1908∼16), 맥기퍼트(1917∼26) 학장 세대를 거치면서 유니온의 확고한 학풍을 형성하게 되었다.
머물고 간 거장들
1910년, 파크 애버뉴 70번가에서 부터 현재의 자리로 옮긴 유니온은 앞에서 언급한 주변환경과의 만남으로 학문의 다양성과 현실성을 보다 구체화하게 되었다. 30년대와 4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니온은 라인흘드 니이버와 폴틸리히라는 거장의 활동으로 미국과 세계신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특히 디트리히 본회퍼의 유니온 체류는 그의 신학적 현실참여를 유니온의 정신적 유산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시기 이들의 활동에 전력의 지원을 하면 서유니온의 신학을 사회운동과 연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미국 현대 교회사에서 그 유명한 이름을 남긴 헨리 슬로안 코핀학장이 었다(1926∼45).
2차대전 이후 60년대 초반에 걸쳐 유니온은 밴 두첸 학장의 지도하에 에큐메니칼 운동에 깊은 관심을 쏟았으며 이것은 이후 제3세계의 현실과 신학에 눈을 뜨고 해방신학을 선도하게 하는 역사적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3세계 출신 기독교 지식인들의 유학이 줄을 이었고, 유니온의 신학은 종교적, 문화적, 인종적 다원성의 환경을 두텁게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에 유니온에서 수학한 한국인들은 강원룡 목사, 서광선 이대교수, 현영학 전 이대교수, 박형규 목사 등으로 국내 기독교의 진보적인 흐름을 형성한 인물들이라고 하겠다. 유니온이 국내에 알려지게 된 시기도 이때이다. 그러나 국내의 분위기는 유니온의 신학을 신신학, 자유주의 신학, 성서의 영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이라고 규탄하면서 강한 반발감 내지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60년대말과 70년대에 유니온은 흑인신학, 해방신학의 물결을 타고 라인흘드 니이버나 폴 틸리히가 대변하다시피한 서구의 백인 진보신학의 한계를 타파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이어 여성신학의 소리가 점차 커지게 되었다. 제임스 콘의 흑인신학은 신학의 주제를 억압과 해방으로 압축시켰으며, 이와 접맥된 해방신학을 통해서 유니온의 신학조류는 제3세계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미국과 국제정세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문동환 목사는 유니온에서 제임스 콘의 흑인신학을 연구하면서 민중신학의 교육학적 기초와 연관하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70년대 중반에서부터 91년까지 학장을 맡은 도날드 슈라이버 교수는 대단한 활동가이자 특히 지한파로서 한국의 인권운동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보였고 한국유학생들을 매우 잘 대해주었다. 그는 김대중 씨와도 꽤 친밀한 개인적인 연분을 가지고 있으며, 현 한완상 통일원장관이 5공화국 신군부세력에 의해 학교에서 물러나 미국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유니온 신학교에서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써 한 장관이 이후 설교가로서 신학적인 깊이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제3세계 학생들과 여학생들의 비중이 현저히 높아졌고, 해방신학적 관점은 유니온의 학풍에서 기본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여성신학의 발전과 사회과학,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져서 여타 신학교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마르크스주의 강좌가 개설되었다. 이 강좌를 맡았던 인물은 현재 프린스톤 대학의 흑인연구학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코넬 웨스트이다. 그는 40대 초반의 학자로서 미국의 백인주류학계에서도 감탄해마지 않는 뛰어난 지식인이며, 그의 마르크스 강좌는 마르크스 고전에서부터 포스트 맑시즘에 이르는 폭넓은 것으로서 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를 치밀하게 조명해 나간 명강의였다. 그가 프린스톤으로 간 후 마르크스주의 강좌는 진보적 학풍으로 이름난 '뉴 스쿨'과의 교환학점 제도를 통해서 보강하고 있다.
인간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여성신학의 경우 우선 유니온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포괄적 언어(inclusive language)'를 써야 한다는 원칙이 명확하다. 즉 인류를 대표하는 문법적 의미의 man, his 등의 남성명사와 소유격을 쓰는 것이 아니라 human과 his or her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Each one has his or her own viewpoint"와 같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괄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언어사용에서부터 시작해서 여성들의 목소리와 대우가 남다르다. 예를 들어, 입학허가사정의 과정에서,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조건의 경우 여성우선의 원칙을 따르는 형편이라 도리어 남학생들이 불이익을 보게 된다고 불평할 정도이다. 그러나 유니온은, 남성들이 이제껏 역사적으로 누려온 권리에 비하면 이것은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이와 함께, 유니온은 지금까지도 거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신학적 금기에 속하고 있는 '동성연애자(Homo-sexual)'의 문제를 과감히 신학적 주제로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유니온은 이 문제를 동성연애자에 대한 신앙적 정
죄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동성연애자들의 인권문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동성연애가 성적 방종과 타락의 결과로 인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적으로 주어진 어찌할 수 없는 생물학적 특징이라면 이들이 받고 있는 사회적 불이익과 차별은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생명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침해라는 것이 유니온의 신학적 견해이다. 이것은 또한 AIDS문제에 대한 신학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문제는 사람의 생명을 겨냥하는 군사비에 대한 예산을 줄이는 대신, AIDS치료제 연구예산을 늘리고 개발치료제의 구입비용을 싸게 하라는 사회적 요구로 발전한다. 평화운동과 생명신학의 접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성연애자들의 문제를 자유롭고 진지하게 다루어 나가는 분위기 속에서 유니온은 동성연애자 신학도의 수가 적지 않다. 이들은 오랫동안 여러 가지로 사회 적인 고통을 받아왔기에 정치 경제적 억압의 현실을 경험한 제3세계 출신의 유학생들에 대한 이해심이 깊고, 인간적으로도 그 내면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한국에서 갓 유학온 학생들의 경우 신학교라는 장에서 이들의 존재와 그 만남으로 처음에는 당황해하고 놀라지만, 이들이 보이는 인간적 깊이, 그리고 그 상처를 알고 난 뒤에는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인식이'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동성연애자의 문제는 해방신학과 함께, 유니온 신학교가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오해와 편견을 받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동성연애를 조장하고 격려하는 신학이라는 식의 비난이다. 그러나, 유니온에서의 신학은 동성연애자들의 고통과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신학은 신학의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기에 한국인 박사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한신대학의 김이곤 교수(구약학)가 유니온 박사 한국인 1호이며, 그후 노정선 목사(기독교 윤리학/연대), 서창원 목사(조직신학/감신대), 이재훈 목사(실천신학/피어선 신학교), 정현경 교수(조직신학/이대), 구춘서 목사(조직신학/뉴욕 한인 중앙교회담임)로 이어졌다. 현재 유니온에서 박사학위과정에 있는 한국학생들은 모두 8명이며, 이들 대부분이 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자신의 연구주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교수들의 모양새
여기서 교수 진용을 일일히 들어서 소개하기보다는 몇몇 대표적인 교수들의 학문적 특징을 서술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유니온은 특히 라인흘드 니이버 이후 기독교 윤리학 분야가 미국신학계에 미치는 영향이 강하다. 니이버의 경우 신학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분야에까지 그의 영향력이 지대했으므로 자연 유니온의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 정치, 사회윤리」의 맥락이 뚜렷하며, 존 베넷트와 로저 신 등이 그 전통을 이었고, 이들이 은퇴한 오늘날 니이버를 비롯한 이들 선배 거장들의 교육으로 성장해 온 여성 신학자 비벌리 해리슨과 래리 라스무신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미국 기독교 윤리학회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비벌리 해리슨은 여성신학만이 아니라, 마르크스 경제학에도 조예가 깊고 그의 신학방법론은 사회과학적 기초가 단단하며 미국 자본주의의 분석과 기독교 윤리와의 관계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천착하고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치이슈가 되고 있는 '낙태문제(Abortion)'와 관련해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권리는 여성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입장(Pro-Choice)에 서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옹호하고, 미국의 제3세계 외교정책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노정선 목사가 해리슨 교수의 지도로 동학혁명을 소재로 해서 제3세계 상황의 폭력문제를 기독교 윤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학위를 받았다.
래리 라스무신은 디트리히 본회퍼 신학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으며, 권력의 문제, 성서윤리, 평화운동, 환경보호, 생명과 창조의 신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문제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으며그 또한 존 베넷트 등이 강조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사회윤리적 비판의 전통에서 성장한 신학자답게 제3세계 출신의 유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다. 그의 '십자가신학'은 고통과 억압을 감당하면서 역사의 변화를 꿈꾸는 민중신학과의 친화력으로 해서, 그의 강좌에는 민중신학부분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조직신학의 경우, 흑인해방신학자 제임스 콘의 위치는 막강하다. 그의 강의는 열정적이며 매력적이다. 제3세계 일반의 신학경향과 흐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실로 압도적이며, 서구전통신학의 실천적 한계와 신학적 추상성에 대한 비판은 집요할 정도이다. 역사를 지배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억압받는 민중의 시각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여성신학에 대한 옹호도 대단하며 한국민중신학자들과의 교분도 두텁다.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열기를 직접 경험한 바 있는 그는 한국학생들에 대한관심과 애정이 깊고, 두 해 전 버클리대학에서 민중신학을 강의한 바 있는 안병무 박사가 유니온을 방문했을 때 혹인신학과 민중신학간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의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서창원 목사(민중신학의 흐름), 정현경 교수(아시아에서의 여성신학), 구춘서목사(민중신학 기독론)가 그의 지도 하에 학위를 받았다.
서구신학의 전통적 흐름과 진보적 경향, 그리고 칼 바르트에 대한 보편적 주제와 관련해서는 크리스토퍼 모스 교수가 강의를 맡고 있다. 그는 백인 남성신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우월감에서 해방된 신학자라고 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신학개념이 갖고 있는 허를 찌르는 질문들을 통해서 학생들의 신학이해를 날카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는 강좌를 맡고 있지 않지만, (작년에 정년 은퇴한) 톰 드라이버 교수는 문화신학자로서의 명망이 높은 학자로서 특히 예배양식과 관련해서 유니온 신학에 끼친 영향력이 크다. 그는 또한 민중신학의 문화적 성격에도 주목하여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온 바 있으며, 그의 저서에는 문화민중신학자 현영학 교수의 신학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방향으로의 관심은 유니온의 낮 예배가 창조적 정신이 가득 찬 것으로 발전되어 오는 데 공헌했으며 신학의 문화적 양태를 다양하게 검토하는 학문적 넉넉함을 그 전통으로 수립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성서신학분야에서는 구약에 여성 성서신학자 필리스 트리블, 그리고 신약에 바울서신 연구가 로빈 스크로스와 신예 혹인 성서신학자 빈센트 윙부쉬 등이 포진하고 있다.
필리스 트리블은 널리 알려진 바대로 하갈, 입다의 딸 등에 대한 연구로 이름이 높고, 그의 강의는 수술 메스처럼 예리하기 그지없다. 그의 구약학 강의는 언제나 학생들이 가득차 있으며, 학기 마지막 강의를 끝내고 나면 가르치는 교수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기립박수(standing ovation)를 받는 인물이다. 그녀의 성서해석학은 문학분석을 위주로 하여 성서 텍스트 자체에 매우 충실하고 엄격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성서해석 과제물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으며 고도의 치밀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성서이해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이 다소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학적 분석이 텍스트에 표현되어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한 상상력에 지나친 비중을 두는 우려가 있다고 경계하면서, 어디까지나 텍스트가 언급하고 있는 부분에 한해서만 해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서의 사회학적 분석과 관련해서는 히브리 공동체의 역사적 형성에 대한사회학적 성서연구로 명망있는 노만 고트발트의 강좌를 개설하기도 하며, 그가 강의를 맡고 있는 뉴욕 신학교와 뉴욕 대학 종교학과와 학점교환을 하기도 한다. 또한 구약개론의 시간에는 그의 저서인 「The Hebrew Bible : A Socio-Literary Introductions을 주교재로 쓰고 있기도 하다.
고트발트는 정년으로 은퇴했지만 여전히 정열적인 학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로빈 스크로스는 초기의 불트만적 틀에서 벗어나 성서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분석방법론을 그의 해석학에 동원하고 있으며 특히 바울서신연구에 있어서는 여러 선진적인 연구를 내놓은 학자이다. 그는 사회학적 분석을 적용시켜 나갈 때도 성서텍스트의 독자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신중하게 해석해 나가기 때문에 '사회문학적 분석'의 경향에 보다 가깝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흑인 성서신학자인 신예 빈센트 윙부쉬는 초기 기독교형성 사회사와 성서연구로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신약분야에서는 유니온 출신이며 현 학장인 흘란드 헨드릭스 교수가 강좌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교회사분야에서는 초기기독교사를 옥스포드 출신의 노리스 교수가, 중세 및 종교개혁시기를 루터주의자인 데이빗드 룻츠 교수가 각각 맡고 있으며, 이후의 시기와 미국 교회사 및 인권운동의 역사체는 흑인 교회사가인 제임스 워싱턴 교수가 명성을 드날리고 있다. 특히 노리스 교수와 룻츠 교수는 교회사의 대가 로버트 핸디 교수(은퇴)와 함께 상당수의 미국신학교 교회사 주교재로 쓰이고 있는 서양교회사(A History of christian Church)를 공저하여 개정판을 거듭하는 등 그 학문적 영향력을 공인 받고 있다.
기독교 교육학 분야에서는 파울로 프레리와 함께 WCC를 통해서 활동해온 바가 있던 월리암 케네디 교수가 있다. 그는 그람치의 헤게모니론을 중심으로 해서 교육학과 사회학, 매스 미디어 분석, 그리고 이데올로기론을 결합시켜 기독교 교육의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방법론을 세우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케네디 교수는 매우 인자하고 따뜻하며, 깊이있는 인간성으로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인밖에도 종교심리학 분야쪽으로는 여성학자 앤 벨포드 율라노프가 심층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영성의 세계를 다루어 나가고 있는데, 피어선 신학교의 이재훈 교수는 그의 지도하에 학위를 마쳤다.
이 밖에도 유니온은 매년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들을 초빙하여 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독일의 진보적인 여성 신학자 도로시 죌레, 라틴 아메리카 해방 신학자 구스타보 구띠에레스, 엔릭크 뒤셀, 아시아 신학자알리우스 피에레스, 곽부란, 남아프리카의 존 그루치 등의 학자가 있으며, 각종 신학세미나를 통해서 특히 제3세계 신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이러한 지적 풍토 속에서 성장하는 신학도들의 정신은 따라서 국제적 시야의 폭을 가지고 있으며, 기존의 전통과 논리에 묶이지 않는 매우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어떠한 파격적인 이설(異說)도 논의의 주제로 선택되어 아무 제약없이 주장되거나 검토될 수 있으며, 그것을 이유로 해서 신앙적 정죄나 규탄을 받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종류의 의문과 질문도 가능한 것이며 이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신학적 사고를 위축시키고 신앙의 성격을 독단적이거나 편협하게 만들뿐이므로, 그러한 생동감 있는 자유로움이야말로 학문과 신앙의 발전 모두를 위해 진정 필요한 동력이 된다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눈물의 아리랑 고개
유니온에서 개설하고 있는 학위과정으로서는 우선 학사학위 소지를 전제로 하는 목회학 석사(M.Div.)가 되기 위한 신대원 3년 과정이 있는데 유학생의 경우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M.Div. 과정이야말로 '눈물의 아리랑고개'이다. 첫 일년과 다음해 이년째는 거의 정신차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학업량이 요구되고 있다. 어찌나 그 학업부담이 큰지 교목이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정신상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이다. M.Div. 과정에서는 성서신학, 조직신학, 교회사, 조직신학 및 윤리, 실천신학, 선택, 논문 등 전체 76학점(대개의 경우 한과목이 3학점1)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현장실습이 6학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유니온의 전체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그 성적평가제도이다. A, B, C, D 식의 기존평가제도가 이기적이고 경쟁주의적인 인간형 형성에 관련된다고 해서 Credit/No Credit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성적평가는 제출한 과제물과 세미나토론의 결과를 교수가 따로 자세히 기록하는 평가서로 대신하고 있다.(M.Div.의 '경우 박사 과정의 조교가 교수와 공동으로 작성한다.) 평가서의 내용은 대단히 구체적이며,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성적이 우수한 경우는 Credit with Distinction을 표시하여 기존의 평가제도를 택하지 않는 약점을 보완하면서 우수한 학업결과를 격려해주고 있다. 또한 선택과목에 한해서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과제물의 부담없이 단지 수업출석과 교재물을 충실히 예습하는 것으로 성적을 인정해주는 R(registration) 제도가 있어서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도 학문적 관심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러한 학제는 교수진의 일방적인 결정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활발한 의견개진과 학제개편의 참여과정에서 의견이 반영되어 유니온의 전통으로 굳어지게 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M. Div를 마친 학생의 경우 석사과정 인 S.T.M.(Master of sacred Theology) 일년과정(24학점)이 있는데, 유학생은 박사학위에 직접 신청해서 입학할 수 있는 경우는 없으며 일단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학교 분위기와 전공교수들과 친숙하는 시간을 갖고 나서 박사학위신청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S.T.M. 일년과정은 실로 '피말리는'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년 뒤 박사학위과정에 입학이 성공하면 그대로 유니온에 남을 수 있지만 실패하는 경우 눈물을 머금고 학교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가 아무래도 서툴고, 학교생활도 익숙하지 않은 채 한학기가 지나면(12월 21일 가을 학기 종료) 1월 6일 이전까지는 박사과정 신청을 완료해야 하므로 첫학기 성적과 수업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된다. 이 기간 중에 교수의 인정을 받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며 학기말 시험과 과제물을 처리해야 하니 얼마나 바쁘겠는가는 상상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이 정히 힘드는 경우에는 2년으로 연장해서 다소 여유있게 학교생활을 하는 방법도 있으나 교수진의 사전특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박사학위과정은 앞서 밝혔던 성서신학, 교회사, 조직신학, 기독교윤리, 종교심리학의 분야에 걸쳐 입학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으며 자신의 구체적인 전공분야를 세분해서 정리하도록 해야 한다. 입학신청서류는 일찍 제출할수록 유리하며, 특히 제 2외국어의 준비는 미리 단단히 해놓고 떠나는 것이 백번 좋다. 외국유학생들이 제2외국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 필수과정을 마치고도 1년, 2년의 시간을 전공분야의 연구가 아니라 외국어 시험준비에 보내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학교당국의 요구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박사과정은 필수학점 40학점을 이수하면 제2외국어 통과를 전제로 하여 'field examinations'이라고 불리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각 전공분야에 따라 5부문에 걸쳐 보게 되어 있는 이 시험은 여기서 상론할 수는 없으나 결코 간단치 않다. 이 고비를 넘어야 비로소 학위논문 구상에 들어갈 수가 있다. 대개의 경우 박사학위과정에 들어가서 논문을 마치기까지 최소한 5년을 잡아야 하며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매우 빠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과정을 시작해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사람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육학 박사(Ed. D. : Doctor of Education)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제2외국어 시험이 없고 Ph. D.에 비해 그 부담이 다소 가볍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TOEFL과 G.R.E.는 일반 대학원의 박사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요구되며 시험날짜를 잘 맞추어서 입학신청서류를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입학신청서의 자기 계획을 쓰는 부분은 압축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자신의 전공에 대한관심과 향후 방향, 그리고 유니온에 입학신청을 하는 이유를 서술해야 한다.
입학허가 여부는 3월 말이나 4월 초 또는 4월 중순경이면 통보된다. S.T.M.의 경우엔 장학금 수여가 없으므로 수소문해서 일단 국내장학금의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며, Ph.D.의 경우 등록금 면제에서부터 생활비 일부지급에 이르는 여러 종류가 있다.
어학과 학비조달이 관건
두 가지만 언급하기로 하겠다. 첫째는 영어실력이 우수할 것. 학기당 각 강좌에서 요구하는 30페이지 정도의 소논문을 작성 제출하는 일이 쉽지 않고 세미나에 참석해서 발표하고 토론을 벌이는 일은 영어실력이 우선적으로 좋아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신학적 사고가 나름대로 예리하고 지식의 축적이 있다 할지라도 표현이 안되면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미국 사회다. 또한 읽어야 할 방대한 양의 과제물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이 역시 영어 실력이 충분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둘째는, 경비문제이다. 뉴욕은 물가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미국전역이 불경기의 여파로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옛날식으로 현지에서 어떻게 자금조달하여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불안한 방식이다. 혼자와서 공부한다치고 학비를 제외한 비용을 대략 계산해 본다면 아파트 렌트, 책값을 포함한 한달 생활비가 약 1천불정도 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곳 이민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하면서 비용조달을 할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이곳에서 자란 1.5세나 2세 신학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져서 그것도 과거와는 상황이 다소 달라졌다고 하겠다. 따라서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알아 볼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생활의 부담으로 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렵고 고달픈 유학의 여정에 생각지도 않은 난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언급이 유학의 의지를 꺾는 것으로 들려서는 아니될 것이다. 실로 굳센 의지로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면서 준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데에 뜻이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