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려고 하는 스르지 전망대는 380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두브로브니크의 뒷산인 스르지산에 있는데 올
라가는 방법은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 그리고 택시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다.
케이블카를 타는 비용이나 택시를 타는 비용이 같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만 택시를 선택하면 올라가
는 길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전망대를 거쳐서 갈 수 있다고 하여 택시를 선택하였다.
택시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더 재미있고 좋다고...
택시에서 마침 아는 팝송이 나오자 멤버들이 따라 부르자 기사 아저씨가 기분이 좋아서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
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 올라간다.
우측으로 바다를 끼고 지그재그로 올라가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는 두브로브니크와 바다는 그냥
한자리에 서서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아름다운 산을 가만히 서서 보는 것보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것이 더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두브로브니크 성을 들어갈 때 갔던 그 길을 간다....
관광객들이 길거리에 가득(?)하다....그런데 오른쪽 버스는 왜 글씨가 뒤집어져 있지???
전망대 쪽으로 올라가는 골몰길...좀 한가해진 길
위에 전망대가 보인다.
올라가는 길에 오른쪽에 보이는 바다.
산을 올라가면 이런 평지가 나온다.
우리가 지나온 마을
위에는 평원이고 두브로브니크는 400미터 아래 절벽 아래 있는 셈이다.
산을 올라가면 평원이 나오고 조그만 마을을 지나면 전망대가 있는데 별도로 표시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곳
이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포인트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려서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바이런과 버나드 쇼가 두브로브니크를 왜 그리 찬양을 했는지가 이해가 가게 된다.
붉은 지붕과 짙푸른 바다와 오래된 성채, 그리고 얕은 언덕의 초록 숲들과 산기슭으로 이어진 희고 붉은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곳과는 유럽의 어떤 도시들도 견줄만한 도시들이 없는 것 같다.
많이 가 보지는 못 했지만 북유럽의 해안 도시들이나 터키의 해안도시인 안탈리아나 이스탄불, 이탈리아의 카
프리섬과 나폴리,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등 등.....
우리나라의 부산이나 마산, 목포 같은 도시들도 뒤에 산이 있는 항구 도시로서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곳은 다른
도시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 분명하다.
스르지 전망대 가는 길
택시를 타고 올라가면서 전망대에서 보는 두브로브니크
성채가 없다면 매력이 덜 했을 것이다.
구경하는 일행들과 다른 관광객들
기념사진이 빠질 수는 없고....
배를 탈 때 보았던 정박중인 크루즈선
신항까지 보인다.
앞에 보이는 케이블카 전망대까지 걸어가도 되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간다.
주차장...지진과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들
저 산 너머에는 보스니아이고 조금 더 너머는 몬테네그로이다.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보는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 바다
신항 쪽...
푸른 숲과 잘 어우러진 붉은 지붕과 흰 건물들
케이블카 전망대
이곳에서는 케이블카 선 때문에 사진을 잘 찍을 수가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깃발 아래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고 세운 십자가가 보인다.
바다 반대편쪽
전망대에서 구경을 하고 조금 떨어진 정상으로 가면 케이블카가 있는 곳이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구경을 하고 차와 음식을 먹기도 한다.
케이블카 옆에는 옛날에는 요새였던 역사박물관(Homeland War Museum) 건물이 있는데 건물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도 유고내전의 전쟁터였다고 하며 내부는 전쟁 기념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시
간이 없어서 내부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전쟁 기념관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아드리아해 전채가 보이는 능선을 갈 수가 있고 이곳에서는 신항을 포함한
두브로브니크 전체를 볼 수 있고, 능선을 타고 트레킹을 하는 길도 나 있어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대부분 패키지관광객들은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머물면서 사진을 찍느라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관심이 없는데
우리 일행도 핸드폰 사진 찍느라 주변을 둘러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사진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않을 거면
서....
택시를 타는 시간까지 합쳐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전망대의 관람을 마치고 다시 성으로 내려와서는 성벽을 돌
사람은 성벽을 돌고 성안을 구경할 사람은 성 안을 구경하는 자유시간을 가진다.
누구의 묘지인지.....꽃이 헌화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1991년 유고 내전 때 희생된 사람인 듯.
유리창에는 전쟁 당시의 상황의 사진이 있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에서 탈퇴를 하려고 하자 세르비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크로아티아를 공
격했고 두브로브니크를 포격하여 건물의 68%를 파괴하였다고 한다.
건물 내부...인터넷
건물 뒤를 돌아나가면 이런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뒤쪽에서 본 전망
이곳에서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다.
두브 로브 니크의 지브롤터라고 불린다는 로렌스 요새( St. Lawrence Fortress)
오전 네움에서 이곳으로 오던 해변이 보인다.
천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천혜의 항구로서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전망대에서 보는 두브로브니크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두브로브니크 앞 바다
이곳도 전망이 좋은데 사람들이 모르고 그냥 돌아간다.
구경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올라왔던 길로 내려간다.
산비탈에 나 있는 길
이 길이 보스니아나 몬테네그로에서 올 때 이 길로 오게 된다.
두브로브티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이다. 7세기에 도시가 만들어져 라구사
(Ragusa) 공화국이 되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경쟁한 아드리아 해안 유일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 중심지로 막강한 富(부)를 축적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다. 십자군 전쟁 뒤 베네치아 군주 아래 있다가(1205~1358)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
다. 이때 도시가 요새화되고 지협의 각 측에 2개의 항구가 세워졌다.
15∼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았고 엄격한 사회 계급 체계를 유지하며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
지(1416)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다. 1667년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815년 빈 의회 결의안에 의해 오스트리아 제국(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가 1918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1991년 10월,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군이 3개월에 걸쳐 총 공격
을 해와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1994년 구시가지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
산에 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성채, 왕궁, 수도원, 교회 등 역사적인 기념물 가운데
가장 크게 손상된 건물들이 복원되었고 옛 명성을 되찾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7월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여름 축제도 다시 개최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달마티아 문학의 중심지로
크로아티아 문학의 일부를 이룬다. 식품·포도주·올리브유 등의 생산이 성하다.(두산백과에서)
방문하는 도시의 역사를 다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알아 볼 수 있다면 알아 보는 것이 그 곳을 방문한 자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역사도 같이 올립니다.
전망대에서 본 두브로브니크의 야경...구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