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회 같이 살면 죄가 아니지
“철이를 어릴 적부터 해코지해서 이렇게 된 것 아니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해코지가 아니라 서로 끌려서 그런 거지”
“끌려서 동생이 죽어가게 만드나요?”
“그런 말 말어, 나는 사랑해 준 죄 밖에 없어”“나이 어린사람을 사랑하면 잘되게 만들어야지요, 모두 아주머니 책임이지요.”
“젊은 사람이 못하는 말이 없네, 내가 고향에서 쫓겨나서 여기 밖에 올 수 가 없었어, 이놈의 팔자가 드세서 철이가 죽어가니, 내가 어떻게 하냐고 엉 엉 엉”
이 동주는 바닥에 또 퍼질고 앉아서 울었다.
“형 그만해”철이가 역성을 들었다.
“하기는 같이 살면 죄가 아니야”
석이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형은 교회 다니고 나는 절에 있는 스님이지만, 서로 따로 믿으며 사는 거지, 형 고마워“
“교회 나가서 새 사람이 되지, 이게 뭐냐?”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부처님의 은공이지, 따지고 보면 내가 기독교를 믿었으면 마음은 편했겠지”
“왜?”
“기독교는 예수님 조상이 근친상간으로 덮어있어도 죄를 묻지 않으니 말이야! 그런데 내가 배다른 동생 순이 하고 산 것에 죄의식이 있어서, 모두 깨끗이 하자고 불교에 귀의 한 거야”
“너는 네 몸만 깨끗 하자고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를 죽여서 남을 살리는 사랑의 종교다.”
“형 말이니 듣고 있지만, 종교를 강요는 하지 마”
“김 기사 갑시다. 빨리 병원으로 가야지 말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석이는 절에서 동생을 업고 나와 차에 실었다.
“이제 형 집에 가서 씻고 푹-쉬어야지”
철이는 형의 집으로 간다니 안도를 했다.
석이는 그 길에 달려서 집근처 고양시에 있는 종합병원에 철이를 입원시켰다.
집으로 철이를 데리고 가봐야, 응급처치도 힘들고 간병이 어려웠다.
철이는 병원 침대에 눕자마자, 오랜만에 긴 여행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나그네처럼 평안하게 웃었다.
이 동주가 병원까지 따라와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병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철이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권 수인이 방문했다.
“아니 동생이 여기서 뭐해?”“언니 철이 간호하려고...”“철이를 간호하고 있었구나, 그간 마을을 떠나 어디 갔나 했지, 몸은 건강하고?”“네 언니 미안해요.”
이 동주는 미안한 모습을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해 할 것 없네! 다 팔자지, 몸이 먼저 말하는 데, 넌들 어쩌겠는가? 같이 살면 죄가 아니다.”“이놈아, 잘 좀하지 네 식구 다 죽이고, 너도 죽어가니 하늘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그 보다 너를 낳은 내 죄가 더 크다.“”엄마가 무슨 죄가 있어요, 있다면 저 여자지“”그런 말마라, 이모도 어쩔 수 없었다. 속죄하느라 네 옆을 지키는 것
내가 다 안다.“
“언니 죄송 해유, 흑 흑 흑”
“아녀 네 팔자여, 철이를 자네한테 맡기고 가네, 철아 언능 일어나라”
“야”
철이는 더부룩한 수염을 쓸면서 말했다.
“내가 뭐랬냐? 순이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바보 같은 놈아! 이제는 너마져도 이승에서 저승으로 오락가락하니 내가 미치겠다.“
무너매 어미가 병실로 문병 와서 딸랑이를 흔들면서 염불을 했다.
“시끄러워요, 가세요.”
“죽어도 성질은 지랄이라 누가 있나? 보고 싶은 사람은 없어?”
“없습니다, 빨리 가유”
순간 출가 득도한 욱이가 찾아와서 집안의 병 덩어리를 물리쳐 달라고 염불했다.
그리고 다들 부처님에게로 떠났다.
122회 우 민자의 한
또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 설 빙수가 잡혀가자, 송 명월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이때다 싶은 무너매 어미가 집으로 쳐들어와서 안방을 차지했다.
우 민자에게는 미치고 폴짝 뛸 일이 벌어진 거다.
시숙이 범죄인으로 잡혀가고, 자기를 보살피던 시어머니가 죽고, 동네서 흉보던 무너매 어미가 안방을 장악하고, 시아버지와 같이 지내면서 삼시세끼 밥 해대라고 하는 것이 속상했다.
거기다, 동네에 눈만 마주쳐도 수근 대는 것 같아서,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맨 정신으로는 도무지 살 수가 없었다.
반편인 신랑은 온 동네 다니면서 미친놈이 되어서 이말 저말을 물어 나르지 환장할 일이었다.
송 명월이가 살아있을 때는 남편이 시원찮아도 나중에 재산이라도 떼어 줄 것 같은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무너매 어미가 안방을 차지하니 그마저도 없어서 기운이 쑥빠졌다.
다행이 분이가 옆에서 거들어주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어도, 가여운 분이에게 누가 청혼하는 남자가 없고, 나이 30살이 되어도 노처녀로 지내는 것도 안타까웠다.
분이 만 아니면 그냥 예전처럼 훌쩍 떠나고도 싶었다.
그런데 무너매 어미가 부아를 질렀다.
“너는 어디서 굴러먹던 년이 재수 없게 집에 들어와서, 집안 어른들 말을 안듣고 동네 다니면서 씨불이고 다니냐?”
무너매 어미가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만신당을 집안으로 옮기고, 부처님 앞에 밥을 차려라, 물을 떠다 놔라, 촛불을 켜라, 꺼라, 잔소리를 하며 무당의 널뛰기에 맞추어 살기도 벅찼다.
“엄마 나 취직하러 서울로 간다.”
더구나 눈치 빠른 분이는 일찌감치 취직한다면서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도망 가버렸다.
혼자 남은 우 민자는 그동안 챙겨주던 송 명월이도 없고 분이마저 없으니 자신을 잃었다.
그리고 남편 칠득이와 무너매 어미가 시시덕대는 것도 전혀 흥미가 없었다.
또 아랫동서 김 소운이 설용수의 옥바라지를 부탁하면 죽고 싶은 지경이었다.
“아니 이년아, 동서가 부탁하는 그런 청도 못 들어 줘, 차라리 나가 죽어버려라. 너는 전쟁 때 이미 죽은 목숨이여”
무너매 어미가 신끼들린 소리를 지르는 날은 너무 서러웠다.
가난하게 사는 집 방안의 흙벽이며, 흙방바닥이 온몸을 흙으로 덮는 것 같아서 정나미가 떨어졌다.
차라리 죽으면 수의로 덮어서 온몸을 싸주기라도 하지, 맨날 천날 흙바닥에서 사는 것도 지겨웠다.
비가 내렸다.
삼베 수건을 방문 처마에다 매고, 목침을 발아래 가져다 놓고 목을 감았다.
저 멀리 느티나무가 보였다.
그네를 탔다, 시익시익 비바람이 불었다.
툭- 하고 목침이 넘어지면서 눈앞이 흐려져 왔다.
귀신이 쓰인 칠득이는 이 광경을 보고 한마당으로 냅다 뛰었다.
“목맸다, 목을 맸다.”
“저놈이 또 무슨 소리하는 거여”
병동 노인이 물었다.
“쯧쯧 또 누가 목을 맨 모양이구먼”
123회 합장
이 동주는 철이를 안고 울면서 말했다.
“너 없으면 남 못살아 나도 같이 죽을 겨”
철이가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한밤 꿈에 순이가 철이의 목을 졸라서 소리쳤다.
“순아, 그만 쾍 쾍 쾍”
이 동주는 침대에 흰 천을 길게 묶고 다음에 철이의 목에 흰 천을 감고, 자기 목에도 흰 천 끝을 감아서 침대 밑으로 축 늘어졌다.
철이나 이 동주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병원에서 연락받은 석이는 두 사람을 나란히 합장을 해주었다.
“형은 왜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어린 철이 일생을 망친 이 장댁을 용서 해주었어?”
배 욱이가 형 배석에게 물었다.
“이 장댁이 물론 죄가 있지, 그러나 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슨 죄가 3가지야?”
“죄라는 것은, 첫째 법으로 정해진 것을 어기는 경우이고, 둘째는 법으로는 정하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이건 죄야 하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사랑법이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의 경우처럼 죄가 인정되어도 남녀 간에 부당하게 일을 저질렀지만, 사랑한다면 죄를 물을 수가 없다.”
“그중에 제일 큰 힘이 있는 법이 사랑법이구만”
“그렇다. 사랑 법은 나무랄 수가 없다.”
동생 철이와 이 동주의 사랑처럼 나이와 처지가 달라도 하늘에서는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석이의 마지막 염원이 담긴 엄숙한 장례였다.
장례식장 위로 잠자리가 쌍쌍이 날라 다녔다.
가을 하늘 아래 나무숲에 두 사람의 뼛가루를 뿌렸다.
그렇게 모두들 떠나가도 남은 사람들은 여름이면 쥐똥나무 꽃에서 풍기는 향기를 사랑하며 살았다.
시커멓던 맹탕개울도 맑아지고 여름이면 흰나비 네 마리가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 말고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돌이가 복이 사이에서 낳은 예쁜 아기를 안고 맑은 밤하늘에 은하수와 달의 화합에 감복하며 지냈다.
복이는 남은 인생을 심성 착한 돌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며 살았다.
-끝-
그간 뇌출혈로 응급실을 오가며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