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없을까.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Time and tide wait for no man)'라는 격언은 동서양이 같다. 그래서 세월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시계(時計)이다.
시계는 자연현상 중에서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을 기초로 하여 기계적, 전기적으로 시간과 시각을 잴 수 있게 만든 기구다.
인간은 각기 그 시대의 사회ㆍ경제 생활의 필요에 따라 여러가지 기구(機構ㆍ시계)를 만들어 이용해왔다. 해시계, 물시계 등이 시계의 초기 단계이다.
시계는 문명의 발생 당시부터 약 6,000여년이나 사용해오면서 제어가 가능한 기계시계가 고안되었으며, 점점 발달해 진자시계, 템프시계, 전기시계, 음차시계, 수정시계, 원자시계, 전자시계(크리스탈, 디지털)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정밀하고도 과학적인 시계가 등장한 것은 조선조 세종 16년(1434년)이다.
앙부일귀(仰釜日晷:해시계)다. 경복궁의 사정전, 창덕궁의 대조전과 후원의 주합루, 덕수궁의 석조전 앞에 가면 돌 받침대 위에 네 마리의 용이 솥 모양의 그룻을 떠받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해시계인 앙부일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19년(1437년) 4월, 앙부일귀 2개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종로거리의 혜정교(惠政矯:광화문우체국 근처)와 종묘 어귀에 설치하고 시를 나타내는 눈금위에 각 시를 뜻하는 12지신상을 그려넣음으로써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시간을 알 수있도록 했다고 한다.
'앙부일귀(仰釜日晷)'라는 이름은 솥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일명 오목해시계라고도 부른다. 앙부일귀는 오목한 반구형의 안쪽에 12시를 나타내는 시각선을 새기고, 위에서 아래로 24절기를 나타내는 절기선을 새겨 시반(時盤)을 만들었다.
그리고 위도(緯度)에 맞춰 반구형의 안쪽 남극에다 북극을 향해 영침(해의 그림자를 만든느데 필요한 끝이 뾰족한 막대)을 비스듬히 꽂았다.
이 앙부일귀를 해를 향해 남북으로 맞춰 놓고 그림자의 끝을 기각선 위에서 읽으면 현재의 시각을, 절기선 위에서 읽으면 절기를 각각 알 수 있다.
이때 읽은 시각은 평균태양시(時太陽時)가 아닌 진태양시(眞太陽時)며, 절기선의 눈금 간격을 세분하면 날자까지도 정확히 알 수 있다.
15세기의 만능 달력시계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당시에 해시계를 만든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었다. 현존하는 앙부일귀는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들로 15분 간격으로 시각선이 새겨져 있다.
이것으로 현재의 시각을 알아내려면 진태양시와 평균태양시의 차이로 생기는 균시차(均時差)를 보정해 주어야 한다. (균시차:현재 우리 나라의 표준시는 서울의 경도인 동경 127도30분을 사용하지 않고 동경 135도(도쿄)의 표준시를 쓰기 때문, 따라서 서울 기준으로 30분의 시차가 있다. 진태양시를 평균태양시로 하려면 30분을 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