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 '묵상-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를 읽었습니다. 2018년 여름, 로마에서 파리까지의 수도원 기행을 담고 있는 책 '묵상'은 단순한 수도원 기행을 넘어 진리를 갈구하는 한 인간의 진지한 구도의 순간들을 담고 있으며, 수도원의 역사와 그 안에 담긴 교회의 이야기 그리고 여행에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옥서입니다.
"여행은 어떻게 가는 게 좋을까? '여행의 기술'을 쓴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현실에서 만나는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여행은 도피 수단 밖에 되지 않으며 일상을 증오로 몰 뿐이어서 불건전하다. 내 생각으로는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니,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한다. 우리가 현실에 살면서 얻는 정보나 지식으로 나도 모르게 어떤 사물이나 정보에 대한 환상을 쌓게 되는데, 그 환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 같아 힘이 없다. 심지어 우리의 삶을 허위로 내몰 위험도 있다. 믿건대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일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게 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말은 항상 사실이었다." p23
"고요. 그렇다. 순례의 끝에 발견하는 풍경은 고요다. 트랜킬리티 Tranquility. 순례라는게 여기 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가치라면, 그 과정에서 이미 순례자의 고통과 번민, 불안과 근심, 증오와 시기, 욕정과 탐심, 오만과 분노 모두가 해소되었을 게다. 그러면 그 순례의 끝에서 얻어지는 건 고요밖에 없다. 그게, 내가 도달하지 못한 피안이라서 그렇다. 나는 고요,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p462
"이제 이 기행을 끝내는 시간이다. 모두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여행을 마친 사람은 항상 그렇다. 일상의 삶을 살며 알게 모르게 축적된 환상은 거짓이기 쉬워 힘이 없다. 힘은 진실에서 비롯된다. 그 진실은 늘 현장에 있으니, 여행은 이를 마주하는 가장 유효한 기회며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 현실에 복귀할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더구나 진리를 찾고자 스스로를 추방하며 경계 밖 극한의 현장에서 삶을 산 이들을 탐색한 여행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게다." p505
기행을 마치는 순간, 모두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표현하는 부분은 마치 하느님을 직접 뵙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는 표현처럼 읽혀졌습니다. 이 책의 일독을 통해 우리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일상의 환상을 모두 깨부수고 진실에서 비롯된 힘을 되찾아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다시 힘차게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첫댓글 우와~~ 여행 갈 때는 그저 경치에 취해 아름다운 경치만 보다 왔는데 이책 아주 큰 길잡이가 될 것 같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