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양받아 기르기 시작했지만
복실이는 프란체스코가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강아지를 받고 싶다고 하여
시장 근처 다리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어떤 아주머니에게서 사온 것이었다. 1985년 2월이었다.
복실이는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잡종 개였지만 집 잘 지키고 영리하였다.
여러 마리의 개가 복실이가 있는 동안 같이 살다 갔는데 마지막에 함께 지낸 것이 ‘유비’였다.
1990년 어느 날 작은 언니 집에 놀러 갔더니 곱실거리는 긴 털과 어깨까지 늘어지는 귀를 가진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아메리칸 코카 스파니엘' 종이었다. 내가 예쁘다며 쓰다듬고 안아주고 하니까 언니가 한 마리 가져가라고 하였다.
나는 그 중 한 마리를 골라 언니가 주는 가방 속에 넣어 얼굴 보일 만큼만 남겨 놓고 지퍼를 채웠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한 시간 동안 가방 속의 강아지가 떨고 있는 진동이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들의 환호 속에 강아지를 꺼내 놓자 강아지는 목욕탕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만지려고 하면 깨갱 소리를 내며 더 도망을 갔다.
간신히 안아서 데리고 나왔지만 강아지와 사람간의 술래잡기는 계속되었다.
털실로 짜놓은 것 같은 탐스러운 털하며 복스러운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손만 내밀어도 질겁하며 도망을 가서 하는 수 없이 첫 날부터 마당에 있는 복실이의 집으로 들여보냈다.
강아지의 귀가 어깨까지 닿는다고 해서 이름을 ‘유비’라고 지었다.
삼국지에서 유현덕의 습을 묘사한 ‘귀는 어깨에 닿고 두 팔은 무릎에 닿았다.’라는 구절이 떠올라서 내가 그렇게 지었는데
나중에 친정어머니로부터 위대한 성현의 이름을 개한테 붙였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어머니는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으셨고 유현덕의 팬이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피하는 것은 낯설어서 그런 것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그 후로도 유비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인을 싫어하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식구들만 보면 반가워서 꼬리치고 겅중겅중 뛰면서도 손만 내밀면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자연 주인을 따르며 매달리는 복실이만 예뻐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복실이도 가까이 오지 않고 비실비실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복실이를 만져주거나 안아주고 나면 유비가 복실이에게 달려들어 깨물며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저는 다가오기 싫으면서도 복실이가 예쁨을 받는 것은 싫었는지 주인에게로의 접근을 결사적으로 막았다.
복실이는 체격이 저 보다 큰 유비에게 짓밟히고 계속 괴롭힘을 당하자
‘복실아!’하고 부르기만 해도 꼬리를 내리고 제 집으로 얼른 피해 들어갔다. 슬픈 눈빛으로 저를 부른 주인을 간절히 쳐다보면서...
아무리 덩치가 큰 개도 무서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악바리인데 유비한테만은 그 성질을 부리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였다.
'TV동물농장'을 시청해 보면 ‘동물 행동 교정사’가 원인을 규명해서 행동을 교정해주기도 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형제간에 붙어 놀던 유비를 모르는 사람이 와서 다짜고짜 안아서 가방 안에 집어넣고
낯선 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 큰 충격이었고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또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갈까 봐 안기는 것을 싫어하였고 한사코 사람의 손길을 피하게 된듯하다.
어렸을 적 받았던 상처나 나쁜 기억이 평생을 지배하며 함께 사는 사람까지 힘들게 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동물의 세계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복실이와 유비는 그렇게 주인에게 곁을 주지 않고 우리 집에 살다가
93년 우리가 집을 헐고 새로 짓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다.
복실이는 교우 젬마가 사는 연립 주택 1층 마당으로 갔고 유비는 넓은 마당이 있는 친구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둘 다 그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복실이는 너무나 짖어 이웃에서 항의가 들어와 서울 근교의 노인이 사는 전원주택으로 보내졌고
유비는 땅을 자꾸 판다고 하여 또 다른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6개월 후 우리의 새 집은 다 지어졌지만 개들을 데려다 키울 마당은 없어졌고 그 것들이 간 곳도 알 수 없었다.
복실이와 유비문제가 일단락되고 더 이상 마음 쓸 일 없이 잊고 지내던 어느 날 꿈에 복실이가 나타났다.
슬프고도 간절한 눈빛으로 바닥에 엎드려 살살 기면서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며칠 후 나는 젬마에게 전화를 걸어 복실이 요즘 잘 지내냐고 물어봤다.
“형님, 그게 말이유...하도 잘 짖어 집 잘 본다고 처음엔 좋아들 하셨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하는 수 없이 복날에 잡아 잡수셨다네요.” 내가 복실이 꿈을 꾸었을 그 무렵이었다.
세상에! 그 조그맣고 비쩍 말라빠진걸 뭐 먹을 게 있다고 잡아 잡수시나! 마음이 짠했다.
주인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복실이와 유비!
우리가 집을 짓는 바람에 그 것들에게 큰 아픔을 주고 말았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서라도 가둬놓고 계속 기를 걸 그랬나, 옥상에서라도 풀어놓고 키울 걸 그랬나.
똘망똘망한 복실이와 유비 사진을 보니 못할 짓을 한 거 같아 미안해진다.
(복실이와 유비가 주인을 쳐다보고 있다. 유비는 복실이가 주인에게 접근 하지 못하도록 앞에서 막고 있다.)
첫댓글 복실이와 유비
고모네 가족을 얼마나얼마나 그리워했을까요ㅠㅠ
동물들이 영은 몰라도 혼은 있다니
생의 마지막에 까지 고모를 엄청 보고파 찾아왔나봐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