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백주간, 그 복된 말씀의 잔치
변성호 실비아 (천주교 세검정교회)
사랑하는 엘리사벳!
성서백주간에 대해 물어 왔을 때 많이 반가웠어. 성서백주간이라니, 삼 년이나 걸리겠네, 모두 기겁하며 겁을 낸다지? 그래 오랜 시간이야. 나도 그랬어. 봄에, 아플 때 시작했는데 속으로 생각했지. 다 마칠 때까지 아무 일(?) 없을까. 뭐라 흉보지 마. 우리의 시간도 우리 것이 아니니까. 그래. 작년에 베로니카를 그렇게 덧없이 떠나보내고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남들 말처럼 인생은 덧없는 것이야. 그래도 참 진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의 광야에는 하느님의 구름 기둥이, 불기둥이 비추고 있어. 그것이 나처럼 허허로운 이들에게는 구원이지. 그 말씀의 초대장을 받고 누구나 조금은 망설이게 될꺼야. 나도 오랜만에 다시 성경 공부를 시작하려니 조금은 갈등이 생기더구나. 새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난다는 일이 큰 부담이었어. 어릴 적 친구인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새로 사람 사귀는 일을 어려워하잖니. 부끄러운 내 이야기를 좀 할게.
젊은 시절에 정릉 영원한 도움의 수녀원에서 주관하는 성서 사십 주간을 시작하던 때였어. 처음으로 그분의 말씀과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지. 왜 스스로 그곳을 찾아갔었는지. 왜 배고픈 사람처럼 비를 맞으며 그 수녀원 언덕길을 향했는지 모를 일이었어. 다만 어릴 적부터 자꾸 배고프고 목마르던 그 허기증의 근원을 알고자 했는지도 몰라. 말씀이 담길 수 있도록 겸손한 듯 잘난체하던 나를 비워야 했어. 내 가슴은 돌밭이었어. 자갈도 커다란 돌덩이도 많았지. 열심히 개간하며 밭을 만든 그 빈자리에 말씀을 심었어. 상흔을 조금씩 지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던지 너는 알 거야. 그때 나는 마음 밭을 만드는 내가 자랑스러웠어. 그것 봐, 내가 해냈잖아. 그러나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지. 뒤늦게 알았어. 그러면서 명성이 자자하던 그 수녀님들의 명강의가 절절히 가슴에 닿기 시작했어. 그래, 많이 울었어. 왜 그렇게 울었을까. 성서 못자리를 비롯해서 본당에서 마련한 성경 공부반에도 열심히 다녔어. 갑자기 시련이 왔어. 그때는 내가 당한 불행을 어떻게 이겨낼지 도무지 방법이 없었지. 막막하고 캄캄한 절망이 밀려오고 있었어. 아, 그러나 내 마음에 심었던 말씀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어.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보석을 찾는 광부 같았어.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이만큼 묻은 때를 씻어 주었지. 내 영혼이 정화되어 가고 있었어. 그리고 그 복된 말씀들이 가슴에서 빛나기 시작했어. 그 빛나는 보석들이 나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용기를 키워주고 내일을 약속해주었지. 그러면서 슬프고 어려운 일들을 조금씩 이겨 나갔어.
본당에서 큰 수녀님과 성서 공부를 하던 때였어. 내 가슴엔 슬픔보다 기쁨이 많아졌지. 백 명이 넘게 시작했는데 늘 그렇듯이 점점 그 수가 줄어 갔어. 나중에는 열 명만 남았었지. 수녀님이 그러셨어. “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기쁨이 가득해야 한다 ”라고. 내 안을 바라보았어. 나는 그렇지 못했지. 가슴 깊은 곳에는 아직 작은 슬픔의 웅덩이가 남아있었어. 임기를 마치고 떠나시는 수녀님은 당부하셨어. 남은 사도행전 부분을 우리 힘으로 마치도록 하라고, 우리는 마치 예수님의 사도라도 된 듯이 사명을 가지고 사도행전을 끝마쳤어. 수녀님이 녹음으로 보내신 해설을 들으며 마지막 날 마지막 구절에서 우린 모두 울었어. 그때 젊었던 시절의 감격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마치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처럼.
어느 아름다운 성당이었어. 화창한 날, 미사를 봉헌하던 때였지. 복음을 봉독하시는 신부님의 음성을 타고 말씀은 찬란한 눈부심으로 내 가슴에 내려앉는 거였어. 피아노의 선율과도 같은 화려한 기쁨이 내 가슴에서 운율을 이루는 것이야. 그 황홀하고 찬란한 심상의 빛은 그분이 주신 선물이었어, 그래, 그때부터 내겐 거의 슬픔이 사라져가고 있었어. 기쁨의 가치를 이야기하시던 큰 수녀님의 말씀이 떠올랐지. 아, 그래, 그런 거였어!
엘리사벳!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가면서 잘한 일이 있다면 열심히 그분의 말씀을 사랑한 거야. 그래서 다시 나는 용기를 내서 처음 만나는 성서백주간을 시작했지. 성경 공부는 마치 처음 시작하는 여행 같아. 언제나 다시 어린이 같은 빈 마음과 진정한 겸손을 요구해. 이번 성서백주간 우리 그룹에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 그들이 나 때문에 불편하지 않을까 조심했지. 그러나 곧 우리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어. 앞으로도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은 느낌이야.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함께 광야를 걸었고 시나이산을 보았으며 가나안 땅을 정복해갔지. 그리고 왕정 시대의 흥망성쇠 안에서 지금 우리 시대에 들려오는 하느님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있어. 그러면서 그분께서 이 성서 백주간의 스승이심을 그리고 섭리하심을 느끼며 믿게 돼.
그래, 엘리사벳, 용기를 내서 시작해. 그분이 말씀 잔치로, 묵상의 정원으로 다시 너를 부르시는 거야. 우리 삶의 모든 드라마와 지혜와 희망이 그리고 햇살처럼 따스한 위로가 말씀 안에 있어.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 안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을 마련해 줄 거야. 세상에 물들어 살면 곧 우리는 다시 메마르고 목마르게 돼.
그분이 주시는 샘물로 다시 일어서서 우리도 누군가의 반딧불이 되고. 물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우린 얼마나 아름다운 한 점 그분의 티끌이 되겠니.
첫댓글 대구 경북 여고생들이 성서백주간으로 낮반(햇님반) 밤 반(달님)반을 만들어 믿음의 관계를 성장시키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 고영애 루시아님 척박한 대구에 성서백주간의 바오로 사도가 되어 활약하시는 모습이 생각나네요. 길 진리 생명의 길까기 동반하는 아름다운 친구관계를 발전시키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