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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6:1~4(995) 평강으로 지키시리라 2024. 6. 16
영국에서 출발해서 프랑스로 가는 여객선을 탄 부부가 있었습니다. 배는 순조롭게 항구를 출발했지만 곧 날씨가 급격하게 변하여 큰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타고 가는 배가 매우 큰 여객선이 아니라서 배는 매우 심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배가 침몰 될 것이라 말은 하지 않지만,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하였습니다.
아내는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남편은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책을 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여보, 배가 요동치고 뒤집힐 지경인데 글자가 눈에 들어와요? 어찌 그리 태평스러워요? 전 너무 무서워요’라고 남편에게 따지듯이 물어 봅니다.
이 때 남편이 이런 말을 아내에게 합니다. ‘내가 지금 매우 날카로운 칼 하나를 가지고 당신을 찌른다고 하면 당신은 바로 죽을 터인데, 당신은 내가 무섭지 않나요?’.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도 안 무섭지요. 날카로운 칼은 여전히 무섭지만, 당신이 나를 찌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섭지 않지요’
그때 남편은 웃으면서 ‘여보, 산더미처럼 덤벼드는 파도는 금방이라도 배를 침몰 시킬 것 같은 날카로운 칼과 같지요. 파도가 제 아무리 사납고 무섭더라도,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는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이제 폭풍우를 보지 말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세요’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참된 평안과 평화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에 보면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합니다.
모든 만물보다 가장 뛰어나고 완벽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킨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평강을 덧입기 위하여 예수 안에 있으면 가능합니다.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라는 말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얼마 전에 친한 목사님이 갑작스레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쓰러진 목사님은 저와 신대원에서 같이 공부를 하였던 동기 목사님인데, 이 분은 학교 다닐 때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양지 신대원의 그 넓은 운동장을 자신의 발로 밟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녔던 분이었습니다. 정말로 건강한 분이었습니다.
동기 목사님이 목회하는 곳은 경기도 분당지역이어서 저도 그 목사님은 만나 본지는 벌써 10년은 훌쩍 지난 오래전 일입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도 목사님이 집에 오지 않아서, 사모님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안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으로 와 보니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쓰러져 있었고, 119를 불러서 응급실로 옮겼지만, 너무 늦게 발견해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뇌출혈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동기 목사님들과 문자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제 우리 나이가 양지 신대원을 펄펄 날라 다니는 30대 그 때가 아니고,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때가 되었다’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조심하고 관리를 한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나의 생사화복을 관여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이 연약한 상태입니다. 아무리 보약을 먹으면서 편안한 몸을 만들고자 하지만, 그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양 속담에 ‘상아로 만든 진기한 침대를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꿀잠은 사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편안함을 줄 수는 있어도 평안은 주지 못합니다. 세상적 쾌락이 육신의 즐거움과 편안함은 줄 수 있어도 참된 평안은 주지 못합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안락한 소파, 값비싼 침대 등이 만들어 주는 편안함은 육체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평안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만이 성도를 온전하게 세우는 기둥이 됩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서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평강에 평강으로 채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평강하고 평강하도록”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평강하고 평강하도록’이라는 말은 “평화에 평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이 말은 완벽하고 완전한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NIV성경에서는 ‘perfect peace(완전한 평화)’라고 표현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완전한 평화를 주시고, 평강에 평강으로 이어 주시는 분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백성들은 6월이 되면 6.25한국동란을 떠올립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6월의 시간이 돌아오면 모든 사람들이 한반도 땅에서 정착되는 완전한 평화를 꿈꾸게 됩니다. 더군다나 요즈음에는 북한에서 ‘오물풍선’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풍선을 남쪽으로 날리면서 긴장이 첨예하게 대립된 상태에 있습니다.
북한에서 쓰레기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내자,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을 향해 대북방송을 재개한다고 말합니다. 북한정권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대북방송 카드를 내민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필요합니다. 나라에도 평화가 필요하고, 가정에도 평화가 필요하고, 성도들의 마음에도 참된 평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1. 믿음을 지키는 자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2절,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여기서 표현된‘신의(信義)’은 ‘믿음’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신의를 지킨다는 말은 ‘믿음을 지킨다(keeps faith)’는 말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문을 열고서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게 합니다. 믿음을 지킬 때에 하나님의 자녀는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는 열악한 상황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킨 이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진 것을 자랑하던 모든 자들은 가나안 40년의 여정에서 다 죽어 버렸습니다. 불순종하던 자들 역시 광야 40년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목숨을 잃어 버렸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가나안의 문을 열어 주셨고,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말이 바로 2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문을 열어 주셔서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절대 잃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다른 것 다 놓쳐 버려도 되지만, 믿음은 놓쳐서 안 됩니다. 내가 가진 믿음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도록 합시다.
한국인들의 애창곡인 찬송가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를 보면, 작곡 월터 마틴(W.S. Martin), 작사 시빌라 마틴(C.D. Martin)으로 이 둘은 부부사이입니다. 아내인 시빌라가 작사하고 남편인 마틴 목사님이 작곡한 찬송가입니다.
이들 부부가 찬송가 ‘너 근심 걱정 말아라’를 작사 작곡한 데에는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1904년 당시 아내 시빌라가 중병에 걸려 있는 상황이었고, 이 때 다른 교회에서 월터 목사님에게 주일 저녁예배 설교를 부탁합니다. 월터 목사님은 ‘아내가 위중한 상태라서 설교하러 집을 비울 수 없다할 수 없다”라고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때 어린 아들이 월터 목사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하나님께서 아빠가 설교하시길 원하신다면 아빠가 엄마 곁에 없는 동안 하나님께서 엄마를 지켜 주실 거예요!’
마틴 부부는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고, 월터 목사님은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을 전합니다. 남편이 설교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시빌라는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하나님에게 병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를 하는 사이 몸의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정신이 맑아집니다. 마음에 평안이 임했을 그 때, ‘내가 너를 지키리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순간 시빌라는 아들에게 종이를 달라고 말하고 바로 찬양시를 써 내려갑니다.
저녁에 월터 목사님이 돌아오자 시빌라는 자신이 쓴 시를 남편에게 보여 줍니다. 월터 목사님은 그 시를 읽자마자 풍금 앞에 앉아 싯귀에 맞추어 바로 곡을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찬송가가‘너 근심 걱정 말아라’라는 찬송가입니다.(421.내가 예수 믿고서 죄사함 받아)
‘1)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후렴: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2)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이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나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나를 위해 더 강하게 역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평강에 평강으로 더해 주신다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2. 심지가 견고한 자가 받는 평강입니다.
3절,“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상반절에 보면 ‘심지가 견고한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지(心志)라는 말은 ‘마음에 품은 뜻이나 의지’를 말합니다. 옛날 우리나라 선비들에게 가장 뛰어난 칭찬은 ‘심지가 올곧고 물질에 넘어가지 않는자’라는 칭찬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에 “그 사람의 심지가 곧다”는 말은 ‘그 사람이 마음에 품은 뜻이나 의지, 혹은 마음의 근본 바탕이 올곧고 바르며 한번 품은 뜻은 흔들림 없이 반드시 지켜 내는 좋은 성품’을 말합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아도 ‘심지가 견고한 자’라는 말이 “마음이 확고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마음이 확고부동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확고부동하고 옹고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신만이 가장 똑똑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외골수로 편협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외골수 사람에게 심지가 곧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심지가 곧다고 평가를 듣는 사람은 ‘바로 믿음의 심지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자’를 말합니다. 가끔 보면, 성도들 가운데는 신앙의 심지가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생활 잘하다가도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금방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 둡니다.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 더디다고 쉽게 중단합니다. 자신의 처한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흔들리며 신앙의 기복이 심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신앙의 심지가 견고하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7세기경이나, 2,900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이나 신앙의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이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대한민국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집집마다 비상시에 사용할 양초를 준비해 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재난 상황이나 안전을 대비해서 집집마다 양초와 라디오, 방독면 등을 준비해 놓으라고 말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양초를 켜 보지 않아서 양초가 무엇인지도 잘 모를 것입니다. 아무리 굵은 양초라고 하더라도 양초에 심지가 없으면 양초는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양초의 맨 아래 부분까지 심지가 내려져 있지 않다면, 양초는 타다가 심지가 없는 부분에서 꺼져 버립니다.
이렇듯 양초의 심지가 중요한 것처럼, 사람마다 그 속에 박혀 있는 믿음의 심지가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믿음의 심지가 굳건한 성도가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말과 행동에서 올 곧고 올바른 심지를 가진 성도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을 더하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4절,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여호와를 영원히 믿으라’라고 말합니다. 평강의 주되시며 구원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반석이 되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쉽게 변하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인심이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시절이 변합니다.
지난 주간인 12일에 대구에 있는 어떤 아파트 화단에서 ‘꽃 한 송이를 꺾은 80대 치매 노인에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합의금 명목으로 35만 원을 요구했다’는 황당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치매 노인은 경찰에게‘꽃이 예뻐서 꺾었다’라고 진술하였고, 가족 측은 사과와 함께 10만 원의 합의금을 제시합니다. 가족들이 안하무인으로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과하는 것과 함께 합의금 10만원을 제시한 것은 최대한 예의를 다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사무소측은 합의금 10만원을 거절하였고, 결국 이것이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후속보도가 있었습니다. 인심을 저버리고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라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치매 노인이 화단 전체를 망친 것도 아니고 꽃 한송이를 꺾었는데 합의금 35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 대한민국의 인심이 이리도 야박하고 험한 것이냐?’ 등의 반발이 많았던 사건입니다. 이렇게 쉽게 사람과 인심은 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도 쉽게 변하고, 인심도 쉽게 변하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은 쉽게 변하여도, 하나님이 영원한 구원의 반석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반석이시며, 변치 않는 반석이시며, 요동치 않는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의 중순에 우리는 머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백성들이 온전한 평강을 원합니다. 세계 군사력 4-5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국군도 전쟁하기 위해 있는 군대가 아닙니다. 전쟁을 하려고 있는 군대가 아니고, 도리어 전쟁을 막기 위해 60만 대군이 불철주야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군인들만이 대한민국의 평안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내가 맡은 바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대한민국의 평안함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영원한 반석이 된다는 점을 알고서 불신자들에게 널리 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심자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6월의 모든 시간이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