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화가의 열정이 담긴 장안사 벽화
이정은 불과 8살 때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과 실력을 견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이조시대의 소년 화가였다. 그가 11살이 되던 해, 금강산의 명소인 장안사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마침 스님들이 정자에 둘러앉아 장안사의 벽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한 스님이 장안사는 신성한 불교사원인 만큼 부처님의 세계인 극락세계를 그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이웃나라에 다녀온 적이 있던 스님이 일어서더니 황룡이나 봉황을 그려야 한다고 단언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떠들썩했고 주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난처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이 때, 이정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서울에서 온 이정이라 합니다. 저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소년을 찬찬히 바라보던 주지는 허락의 뜻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스님들,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금강산은 천하의 명산으로 이웃나라 사람들까지도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고 금강산의 경치가 과히 신비하여 부처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스님들은 보지도 못한 극락세계나 남의 나라 것을 그리자고 주장하십니까? 장안사는 다름 아닌 금강산의 절입니다. 그러니 장안사 벽에는 천하절경인 금강산을 그려 넣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비록 소년이지만 사리정연한 그의 말에 주지는 크게 감동하였고 다른 이들도 감히 이의를 표시하지 못했다. 주지는 이정에게 장안사의 벽화를 그려줄 것을 정중히 청하였고 이정은 금강산의 1만 2천 봉우리를 실감나게 옮겨 놓아 당시의 풍경화로서는 최고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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