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의 풀어 쓴 한자 이야기 - 21. 지혜(智慧) 3.
2,5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 출신 공자(孔子)는‘어진 사람은 인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하여 그의 중심사상은 인이었다. 공자의 인(仁)은 도덕적, 인본주의적, 인도주의적인 의미에서의 사람다움, 즉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뜻한다. 그리고 공자의‘仁(어질 인)’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 바르게 실천에 옮기는 것이 인간의 기본도리라 굳게 믿은 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이다. 정약용 선생은 귀양지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베풂을 이롭게 여긴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인가? 하여 지혜(智慧: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를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슬기 지(智)는 지혜, 재능, 슬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알 지(知)에 해 일(日)이 더해진 글자다. 알 지(知)는 다시 화살 시(矢)와 입 구(口)로 파자해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화살처럼 빠르게 깨닫고 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지견(知見: 사물의 도리를 깨닫는 지혜), 지기(知己: 자기의 마음이나 참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가 좋은 용례이다. 덧붙여, 智자는 日(해 일)자가 부수이지만, 사실 말씀 왈(曰)자가 쓰인 것이다. 다시 말해 슬기 지(智)자는‘화살(矢)이 순식간에 구멍(口)을 통과하듯이 말(曰)을 잘한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말을 잘하려면 지식이나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智자는‘아는 것이 풍부하여 말함에 거침이 없다’라는 의미에서 지혜를 뜻하게 된다. 지술(智術: 지혜가 높은 꾀), 지용(智勇: 지혜와 용기)이 좋은 용례이다.
슬기로울 혜(慧)는 빗자루 혜(彗)에 마음 심(心)이 결합 된 한자이다. 빗자루 혜(彗)는 다시 싸리 빗자루 모양을 본뜬 丰(예쁠 봉)자와 손을 의미하는 ⺕(손 수)로 파자해 볼 수 있다. 즉 彗자는 싸리나무 두 개를 겹쳐 만든 싸리 빗자루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마음 심(心)자는 생각, 마음,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을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런데 빗자루를 손에 쥔 모습을 그린 빗자루 비(彗)자가 지혜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또, 그렇다면 사람의 지혜나 총명함은 눈에 보이는 것일까? 사람이 똑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슬기로울 혜(慧)자를 5천여 년 전 처음 글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慧자는 빗질하는 모습을 그린 彗자를 응용해 빗질할 때 햇살에 먼지가 반짝거리듯이 사람의 총명함이 반짝반짝 거린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매우 총명하고 재미있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 빗자루를 가지고 우리들 마음에 있는 탐욕, 미움, 거짓, 등 온갖 더러운 잡념이나 찌꺼기를 비로 쓸어 버린다면 마음이 수정같이 깨끗해져, 지혜가 그 깨끗한 빈 마음에 스며들어 총명해지는 것이다. 혜안(慧眼: 사물을 밝게 보는 총명한 눈), 혜오(慧悟: 민첩하고 슬기로움)가 좋은 용례이다.
다산(茶山)은 귀양지에서 고향의 이복동생 정약횡(丁若鐄)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에서 인간이 행해야 할 참으로 많은 지혜로운 행위가 있겠지만, 의원(醫員) 생활을 하는 아우에게 반드시 행해야 할 한 가지를 가르쳐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새벽 파루(罷漏) 종이 울리기 바쁘게 좋은 말을 대문 앞에 매어두고는‘수상의 명령이오’라고 말하고, 또 커다란 나귀를 뒤이어 매어 놓고는‘병조판서의 명령이오’라고 말한다. 또 멋진 말이 뒤따라와서‘훈련대장의 명령이오’라고 말한다. 뒤이어 가난한 선비 한 사람이 와서는‘나야 말 한 필도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 모친의 병세가 위중하오’라고 하면서 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이런 경우 네가 세수를 마쳤으면, 맨 먼저 가난한 선비의 집으로 가서 자상하게 병세를 살펴보고 정확히 처방을 내려주고, 그다음에야 여러 권세가 있고, 귀한 집으로 가는 것이 옳다”라고 일러주었다.
의원 생활을 하는 아우에게 형이 가르쳐주는 지혜는 권력자들의 위세에 굽히지 말고 가장 힘없고 가난한 집안의 위독한 환자부터 먼저 보살펴주는 인술을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가장 우선시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바로 인(仁)이고 지혜(智惠)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의원 생활을 하는 아우가 권력과 부를 누리는 고관대작들의 집안 환자를 먼저 보살펴준다면 당연히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선비 집안의 환자를 먼저 도와준다면 당장은 큰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결국에는 고관대작들 집안의 큰 혜택이 반드시 따르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라는 공자 말씀을 이렇게 적절하게 인용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구절초 피는 계절에 필자의 마음판에 다시 새겨 본다.
| 智 | = | 知(矢+口) | + | 日(曰) |
| 슬기 지 |
| 알지 (화살 시, 입 구) |
| 날 일(가로 왈) |
| 慧 | = | 彗 (丰 +⺕) | + | 心 |
| 슬기로울 혜 |
| 빗자루 혜 (예쁠 봉, 손 수) |
| 마음 심 |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네, 감사합니다. 좋은 날들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