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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26~31(신 200) 소중한 만남 2026. 5. 17.
참 좋은 5월의 셋째주일인 오늘 이 아침에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교우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오늘 주일예배가 여러분들의 생애에 있어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소중한 날이 되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 세상은‘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도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고 고귀함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 살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라는 단어가 매우 소중합니다. 좋은 만남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잘못되고 안타까운 만남도 있습니다. 좋은 만남으로 인생의 큰 버팀목이 되는 사람을 만나는가 하면, 잘못된 만남으로 인생이 송두리 체 망가지기도 합니다.
오늘 오전 예배시간에 찬송가 413장을 불렀습니다. 너무나 힘이 되고 은혜로운 가사와 곡으로 만들어진 찬송가입니다. 은혜스러운 찬송가 가사를 작사한 분은 호레이쇼 스패포드라는 분이며, 아름다운 찬송가를 작곡한 분은 블리스라는 분인데, 자신이 작곡한 이 곡의 이름을 ‘VILLE DUHAVRE(빌 뒤 아브르)’라고 작명했습니다. 이 배가 만들어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 항구의 이름이지만, 여기에는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배 사진이 바로 아브르 배의 기록사진입니다. 이 배는1865년 2월 11일에 진수되었고, 대서양을 항해하여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중, 1873년 11월 22일 이른 새벽에 영국의 철제 클리퍼선 로흐 언과 충돌해 12분 만에 침몰했고, 226명이 목숨을 잃어 버립니다.
이 배에는 이 찬송가를 작사한 스패포드 아내였던 안나와 4명의 딸이 승선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침몰됨으로 4명의 딸이 함께 목숨을 잃어 버립니다. 아내는 다른 배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아내가 살아남았다는 전보를 받은 스패포드는 아내를 만나러 항해 하는 중, 딸들이 잠든 바다 지역을 지나가게 됩니다.
배안에 있던 여러 유가족들이 바다에 꽃을 던지면서 추모할 때 스패포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It is well with my soul(내 영혼은 평안하다)”라는 시를 적게 됩니다. 그리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 시는 작곡가 필립 블리스가 곡을 붙여 1876년 성가집에 실리면서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을 받는 찬송가 중 하나로 전해집니다.
호레이쇼 게이츠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는 미국 시카고의 변호사이자 미국 장로교교회의 장로로 알려진 신앙인입니다. 1873.11.22.일에는 네 명의 딸이 대서양에서 사망합니다. 그리고 1880.2.11.일에는 그들에게 남아 있는 4살 아들 호레이쇼가 성홍열로 사망합니다. 이것을 계기로 이들 부부는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가족은 육신의 가족이 아니라는 판단 아래, 예루살렘으로 이주합니다.
여기서 종교의 색깔을 뛰어넘어 유대인.무슬림.기독교인을 돕는 자선 공동체 아메리칸 콜로니(American Colony) 를 설립하고 평생을 헌신합니다. 그 결과 유대인이 아니면서 예루살렘 마운트 시온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찬송가에 얽혀 있는 깊은 신앙고백을 의미하면서 1절만 함꼐 다시 불러 보도록 합시다.‘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내 영혼) 평안해(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귀한 만남이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들 간에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의 인생에 가슴이 따뜻한 좋은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많이 있길 원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 보면 좋은 만남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 북부에 <에디오피아>란 나라가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못 사는 나라 중에 손꼽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신약 성경 기록 당시에는 매우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지만 에디오피아의 국고(나라의 살림살이)를 맡은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방문 한 후 힘들게 집으로 돌아가는 고된 여행길에서 전도자 <빌립>을 만나게 됩니다. 내시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대인 빌립을 만날 것을 조금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빌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이런 만남을 두고 뜻밖의 만남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소중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동네 어르신들이 종종 화투로 <화투점>이란 것을 치면서 ‘오늘은 귀인(貴人)을 만나겠구나’라고 던지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귀인을 만나겠다’는 말은 ‘오늘 뜻밖의 소중한 만남이 있겠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심심풀이 놀이로 하는 화투점이지만, 귀한 만남을 원하는 모습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다 동일한 모습입니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소중한 만남은 뜻밖의 만남으로 축하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해악을 끼치는 뜻밖의 만남 또한 늘 우리네 인생에 상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이고 뜻밖의 만남은 없으셨나요?
제가 알고 있는 선배 목사님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몰랐고, 교회 출석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분입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5월 축제가 끝나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다음 버스를 타고 보니 반가운 얼굴이 있는데, 같은 과 1년 여자 선배를 만납니다. 비록 선배였지만, 입학할 때부터 그 선배를 속으로만 좋아했습니다. 버스 타고 가는 중,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여자 선배가 그에게 깜짝 놀랄 제안을 합니다. ‘여름 방학 때 무슨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3박 4일 동안 나랑 함께 가자!’라고 말하는 거에요. 짝사랑하였던 여자선배가 ‘3박 4일 놀러 가자’는 말에 마다할 남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여름방학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선배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따라간 곳이 바로 대학생들이 모인 CCC 신앙수련회였습니다. 하나님에 관심이 없던 그는 처음엔 당황합니다. 중간에 그냥 빠져 나올까 생각도 하다가, 좋아하는 여선배 때문에 중도에 도망쳐 나오지 못하고, 끝까지 참석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 선배 따라온 이 수련회에서 그는 인생이 뒤바뀌게 되는 하나님을 만나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남자는 목사가 되었고 여자 선배는 사모가 된 것입니다.
이 분에게 있어서 여선배와 만남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뜻밖의 만남이었습니다. 처음 온 버스를 그냥 탔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날 버스 한 대를 그대로 보낸 덕분에 그는 평소에 짝사랑하던 여자선배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리고 인생에 가장 소중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소중한 만남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정말 뜻밖에 발생한 우연한 만남일까요?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다 그것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진짜 우연히 만난 만남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우연히 만나는 만남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성도가 만나는 것은 결단코 우연이 아닙니다. ‘당신과 내가 그저 좋아서 만났고 우리가 결혼했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창세전에 미리 예정하시고 준비하셨기에 가능한 만남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에서 빌립과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만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6절 보세요.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남쪽으로 향해 가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은 ‘유대 사막 한가운데 길’입니다. 이 길은 광야 사막 길로서 사람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는 가급적 다니지 않는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빌립에게 이 광야 길로 가라고 말합니다. 왜 그런가요? 빌립더러 그 광야 길에서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나도록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만남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만나게 하신 필연적인 만남이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와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만나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다른 교우들을 만나는 것이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함께 만나 예배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1. 우연의 만남과 필연의 만남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상황은 수천 수만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만났다’고 투덜대고 말하면서 평생을 백년해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면서,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화려하게 결혼식을 거행해 놓고, 불과 몇 년도 못 살고 싸우며 이혼하는 연예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수 만가지 만남의 종류와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 만가지 만남이 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사람의 만남에는 두 가지 만남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 만남이 무엇인가 하면, ‘우연(偶然)의 만남, 필연(必然)의 만남’입니다. 우연과 필연의 한문 뜻을 잘 살펴야 합니다. 우연히 만나느냐? 필히 만나야 되는 만남인가? 입니다.
‘우연히 만나 사귀다 보니 부부가 되었다’는 말은 매우 무서운 말입니다. 이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정말로 무서운 말입니다. 우연치 않게 만났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우연치 않은 오해와 갈등 때문에 쉽게 헤어질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연의 만남>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 말로 ‘하늘이 짝지워 준 만남’이라 말합니다. 이 말은 성도의 입장에서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만남’이라는 뜻입니다. 제 아무리 짤라 놓아도 다시 이어지고 만나는 만남은 필연의 만남입니다.
저는 그래서 가수 노사연 씨가 부른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만남>이란 곡을 좋아합니다. 일설에 보니 노사연씨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 만든 곳이라고 하더군요. 신앙 안에서 우연은 없고 필연의 만남만이 있다는 고백이겠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만난 이 만남을 그냥 우연히 만난 만남이라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여러 교우들을 만나는 이 만남을 통해서, 여러분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만남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나는 이 만남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해 놓으신 소중한 만남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무례하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만남은 없습니다. 옆과 앞뒤에 계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중한 믿음의 만남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2. 가장 소중한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겠습니까만,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 중에 그렇지 못한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에 왜 출석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 어떤 사람은 ‘외로워서 사람 만나러 간다’고 말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장사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람 사귀러 간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당에 와서 사람만 만나고 교제하는 것만 챙기고, 돈 버는 목적으로 교회당을 방문한다면, 이 분은 헛걸음하고, 헛다리짚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발견하고, 내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남 중에서도 예수님과의 만남이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나지 못한다면, 다른 만남은 중요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 버립니다.
매주일이 되면 모든 크리스천들은 교회당을 방문합니다. 교회당을 방문하는 목적이 무엇이에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며 경배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도들의 친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그 어떤 만남 보다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 안에서나 항상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하는 신앙생활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생활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내시가 그러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그렇게 아름답고 휘황찬란하게 만든 예루살렘 성전도 가보았지만, 내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서 내시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주경학자들은 내시가 풍문으로 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사실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에디오피아 고위직이었던 내시는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도 만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만났을 거에요. 하지만 그들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얻어 내지 못하고 다시 빈손으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전도자 빌립을 내시에게 보내어 말씀을 깨닫게 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이미 발견하고, 가슴에 모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소중한 만남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내시처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광야를 달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31절 보세요.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내시는 ‘자신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을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한다’라고 안타깝게 외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내시의 마음을 열어 주사 생면부지 유대인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타게 합니다.
그렇게 내시는 빌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후 39절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내시가 ‘기쁘게 자신의 길을 갔다’는 말은 ‘바로 빌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소중한 만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비워져 있었던 빈 마음에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이 전해졌기 때문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생활과 마음에 있어서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에 있어서 기쁨의 근원이요. 출발점이며 전부’라는 신앙 고백이 멈추지 않기를 축원 드립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분은 예수님과 소중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과 맺은 이 소중한 만남이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만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신앙장애인>이라는 불편한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과는 소중하고 좋은 만남을 이어나가면서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과는 불편한 만남을 이어나가는 분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신앙의 모습을 심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앙 장애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빌립과 내시의 만남처럼, 소망을 주는 만남이 우리 모두의 만남이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과 더 깊게 만나는 만남으로 통해 더 행복한 가정의 달 5월이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